전쟁의 참혹함을 말하는 목소리가 그리도 드높으나 막상 그를 표현을 해보라면 나오는 말은 대체로 같다·
피비린내 흙먼지의 맛 굉음 진동 비명·
누구에게 묻던 비슷한 답이 돌아오고 달리 말해 전쟁의 본질이 그 속에 있다는 말이 된다·
엘릭은 오랜만에 그 사실을 되새겼다·
“아아아아악!!!”
촤좌좍!
붉게 달아오른 마나가 적진 한복판에서 폭사한다·
병사들의 피와 살점이 튀어 오르고 직후 그들이 쓰러지며 흙먼지가 비산한다·
멀리서 꽝꽝 쏘아져 내리는 마법 폭격 어디선가 날아드는 총탄과 화살·
그것들이 몸 주변으로 펼쳐둔 마나의 벽에 가로막힌다·
엘릭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기계적인 살인의 연속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끝을 알리는 것은 뿔피리였다·
뿌우우우우―!
승전이었다·
뱃고동 소리를 닮은 것이 전장에 울려 퍼지자 하나둘 무기를 버리기 시작한다·
“사 살려····”
그제까지 끈질기게 숨이 붙어있던 적군들이 머리를 바닥에 처박으며 애원한다·
별다른 감상은 들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들면 보이는 능선 너머만이 신경쓰일 뿐이다·
“포로를 포박하라! 전장을 정리해!”
뒤늦게 도착한 아군 병사들이 지휘관의 외침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중
“카샤 님! 수고하셨····”
“의뢰 대금이나 잘 처리하시게·”
엘릭은 그들을 지나쳐 전장을 빠져나갔다·
*
정확히 두 덩이로 갈린 서부 땅을 차지하기 위한 소모전은 격렬했다·
그 어느 전장도 중요치 않은 곳이 없었으며 그런 만큼 7강이라 불린 이들 모두가 서로 다른 전장에서 전선을 틀어막고 때론 물러나며 치열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엘릭 또한 그랬다·
『탄달 요새 함락 이번에도 주인공은 검귀였다·』
기사가 서부 곳곳으로 널리 퍼져갔다·
본격적으로 전장에 뛰어든 지 약 한 달이 조금 더 넘은 시간·
엘릭은 용병의 신분으로 왕국 연합에 투신해 하루를 바삐 보내고 있었다·
위빈에서 무뎌진 감각은 빠르게 회복됐다·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과거와 같은 망설임도 없이 그리움을 지워내고 황성에 있을 상황에 대한 증오만을 가득 채우고자 노력했던 결과물이었다·
다만 반동이라 해야 할까·
몇 가지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억지로 신체 능력을 끌어올리다 보니 그 반동이 찾아온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맛· 개중에서도 달콤함이나 새콤함 같은 몇몇 맛이었다·
다과 같은 것을 씹어도 종이를 씹는 느낌이 나고 술을 마시면 오로지 쓴맛만이 입 안을 가득 절였다·
낫긴 할까?
아니 상관없겠지·
다가올 미래 중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전장에서의 죽음이었으니 새삼 먹는 즐거움을 따질 이유는 없다·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왕성 파티시에의 솜씨는 동부 전체에서도 정평이 나 있지요· 하나 드셔보십시오·
흠칫 지난 겨울의 일이 스쳐 지나감에 엘릭은 몸을 떨었다·
인상을 찌푸렸다·
공연히 속을 울리게 만드는 목소리를 잊고자 빵을 입안에 욱여 넣었다·
그걸 한참이나 씹던 중이었다·
“어르신!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그의 숙소로 에드워드가 찾아왔다·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었다·
엘릭의 미간이 좁아졌다·
“무슨 일인가· 자네가 맡는 전선은 이쪽이 아닐 텐데·”
“에이 제가 전선에 있는 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아시잖습니까?”
“···하긴 전투 쪽으로는 쓸모가 없긴 하군·”
“····”
에드워드의 표정이 일순 삐걱였다·
하나 그 기색은 빠르게 지워졌다·
그는 이내 상당히 비굴한 미소를 띄워냈다·
“그··· 어르신이 나서는 전장마다 승전보가 끊이질 않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만나 뵙고 싶어 하는 분이····”
“물리게 같지도 않은 소꿉놀이를 할 생각은 없으니·”
검귀라는 별칭이 생긴 이후부턴 왕왕 있던 일이었다·
요즘같이 전쟁이 격렬할 때면 더욱이 그랬다·
유력자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승냥이들이 있다·
타인의 명성이 기생하는 비겁자들은 은밀한 만남과 제안을 해왔고 그것들은 언제나 엘릭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형태였다·
이번 역시 그럴 것이리란 생각에 단호한 거절의 말을 내뱉었고 그에 에드워드는 조금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그 그게 말입니다·”
“왜 자네 국왕이 날 보고 싶다 하던가?”
“그것이··· 국왕은 맞는데 저희 국왕은 아닙죠·”
그제야 엘릭의 시선이 에드워드를 바로 향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타국의 국왕이 왜 아르민의 공작인 에드워드를 통해 자신과 접선하려 한단 말인가·
아니 그것을 왜 에드워드가 들어주려 한단 말인가·
그는 초 국가적 기업을 운영하는 총수다·
암만 국왕이라 해도 그를 뒤에서 움직일 수는····
“···아·”
···그럴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지·
문득 한 사내의 이름이 엘릭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소리를 흘리자 에드워드가 눈치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 저희 대주주님께서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요····”
그는 엘릭의 생각이 정답임을 시인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를 제 입 안의 혀처럼 굴릴 수 있는 유일한 국왕·
나자크의 주인이자 대륙 7강 중 가장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내·
“마왕·”
“예입····”
대륙이 그를 부르는 이름은 마왕 제르디아 나자크였다·
*
언젠가 마제로 불린 그리고 이제와선 마왕이라 불리는 노인은 이 대륙의 신비에 가장 근접한 사내였다·
그의 실체를 아는 사람이 참으로 드물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세간은 그가 통치하는 국가를 이르러 말한다·
[나자크는 국가이되 국가가 아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로 그러했다·
나자크라는 왕국에 살아있는 생자는 오로지 국왕인 그 하나뿐인 까닭이다·
40년 전의 나자크는 참으로 융성하던 마도국가였다·
당대의 국왕이었던 제르디아는 마제라는 이름으로 대륙의 제왕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나자크를 이르러 서부의 맹주라 이르는 수많은 목소리가 그를 증명했다·
그런 나자크를 멸망시킨 것이 현대에 상황이라 불리는 검제 그의 제국 마히르였다·
나자크는 영문도 모른 채 한순간에 스러졌으며 그 와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제르디아는 흑마법에 손을 대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모두가 나자크의 종말을 말했다·
모든 생의 절멸을 시행한 후 유유히 검제가 돌아선 이후 무주공산이 된 땅으로 인근 국가들이 군대를 진군시키기 전까진 모두가 그런 줄로 알았다·
단 한 줄의 기사가 그런 평을 뒤집었다·
[나자크에는 언데드가 있다· 그들이 그 땅을 지배하고 있다·]
제르디아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쳐 나자크의 백성들을 시신으로 일으켰던 것이다·
그렇게 국가의 형태를 유지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국가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목소리가 일었다·
목소리만 있었다·
[나자크로 진군한 모든 군대가 전멸했다·]
제르디아는 힘으로 말한 것이다·
자신이 눈 감지 않는 이상 나자크는 불멸할 것이라고·
그렇게 40년이다·
서부 전쟁이 시작하고도 20년이다·
이제는 모두가 그의 고집을 알았다·
나자크라는 땅에 웅크린 그가 그 국가의 이름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엘릭이 아는 것도 딱 거기까지였다·
‘마왕이라····’
엘릭은 마왕을 실제로 만난 적이 없었다·
그가 활동하는 나자크는 서부의 북동쪽이었으며 주로 엘릭이 활동했던 약소 왕국은 서부의 남서쪽이었다·
지리적으로 맞지 않음은 물론이오 양측 다 공성보단 수성을 일삼는 진영이었기에 대치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갑작스런 그의 접견 요청이 당황스럽다·
하나 만나볼 가치는 충분했다·
무엇보다 그가 검제 시절의 상황 엘하다크 마히르를 안다는 사실이 주효했다·
엘릭의 목표는 황성의 옥좌에 있을 그였다·
그러니 정보를 더 수집할 필요가 있단 말이다·
“이쪽에 계십니다·”
요청을 수락하고 움직인 곳은 EW의 지부였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개인 접견을 요청하셔서 저는 밖에 있겠습니다· 어르신··· 아 그러니까 저쪽 어르신은 남이 얘길 엿듣는 걸 무지 싫어하셔서·”
에드워드가 드물게 굳어 있었다·
엘릭은 궁금증이 치솟았으나 구태여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안쪽으로 들어가면 알게 될 인간이었다·
적당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엘릭은 지부 안으로 발을 들였다·
건물 전체가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벌레 하나 살아있지 못할 것이라 예상되는 그런 압박감이 전신을 지그시 내리누르고 있었다·
엘릭은 인상을 찌푸렸다·
마나로 기운에 저항했다·
그리하며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있는 장소는 감각에 노골적으로 걸리고 있었다·
정원 쪽이었다·
뚜벅 구둣발 소리가 표표히 울리는 건물 내부를 지나 커다란 문 앞으로 그 문을 여니 보이는 것은·
“왔는가·”
검게 말라죽은 꽃 한가운데 티 테이블에 앉아있는 정장의 노신사였다·
그가 지그시 웃자 얼굴 위로 주름이 깊게 패였다·
‘강하다·’
세간에서 평가되는 것보다 훨씬 더·
긴장감에 엘릭은 물었다·
“당신이 마왕이오?”
그에 노신사가 답했다·
“그래·”
이어 덧붙이니
“과연 네가 검제의 제자구나·”
그것은 엘릭의 숨을 멎게 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