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 하임베르크는 염문설을 몰고 다니는 사내다·
서부에선 꽤 공공연하게 퍼져있는 이야기였다·
처음은 그가 13세가 되던 해였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하임베르크는 성에 눈을 뜬 날 홍등가를 찾아 10여 명과 관계를 맺었다·
이후로도 그랬다·
매달 1일이 되는 날은 하임베르크가 홍등가로 향하는 날이었다·
그때가 되면 포주들은 기쁨에 비명 질렀고 여인들은 경악에 비명 질렀다·
신심으로 투철해야 할 성직자·
그것도 교국의 성기사 장이라는 자가 그런 구설수를 몰고 다닌다면 말리는 자가 나와야 했지만 누구도 그러지 못했다·
-···신의 뜻으로·
-창녀랑 노는 게 신의 뜻이오?
-신의 뜻으로·
교국의 성직자들이 그의 염문설에 관한 질문에는 언제나 ‘신의 뜻’이라는 말만 하며 대답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수백 년 만에 나타난 신의 성흔을 진 아들이었다·
그리고 염문설을 제외하고 본다면 그야말로 신심 깊은 성직자의 표본이었다·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힘으로도 안 돼 명분으로도 안 돼·
하임베르크가 창녀와 잠자리에서 주님을 부르짖으며 절정 해도 헌금을 사창가에 던져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여하튼 그런 탓에 하임베르크는 염화 이그렛과 함께 서부 2대 괴인으로 불렸다·
또한 뭇 변태들의 우상으로 불렸다·
그럼에도 그가 나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기벽이라고 해야겠지·
그는 창녀가 아닌 자와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
그의 오랜 추종자가 10여 년에 걸쳐 밝혀낸 사실이었다·
‘그런 사람이니까·’
티리아에게 추파를 던지진 않겠지·
다날은 기도에 가까운 마음으로 추측했다·
“아아 카샤 형제님의 부인이셨군요·”
지휘 본부 막사 성자 하임베르크가 티리아와 대면하고 있었다·
그 곁에는 3황자 크레돈 마히르와 엘버스 그레이엄이 함께하고 있었다·
하임베르크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가정의 평온을 기도해드려도 되겠습니까? 형제님과 자매님을 위하여·”
누구보다 가정의 해체에 진심일 것 같은 사람의 말·
하나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티리아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모았다·
“영광되신 주님에게 간청드리니····”
하임베르크가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다날은 속이 바짝 타는 기분이었다·
‘대체 이 인간이 왜 여기 있는 거야?’
그가 있는 북서부 전선은 지금 전쟁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충지 중 하나였다·
한 번 뚫렸다간 다시 전선을 복구하는 일이 몇 배는 힘들어질 정도로 그 중요도는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였다·
그렇기에 의아하다·
그 전선의 책임자가 후방의 지휘 본부까지 온 이유가·
혹여 전장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까지 차오른단 말이다·
“···형제님과 자매님의 가정에 평온이 깃들기를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자연의 숨소리가 언제나 함께하기를·”
기도를 마친 하임베르크가 활짝 미소 지었다·
그는 건치였다·
“주님의 은총이 언제나 함께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성자님께 직접 은총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해서····”
티리아는 얼떨떨하고 기뻐 보였다·
자리가 이래서 중요했다·
“자 그럼 기도는 여기까지 하고·”
엘버스가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정리했다·
“이제 슬슬 도착들 했다고 하니 자리를 옮기지· 부인도 오시겠소?”
“전쟁에 관한 회의라면····”
“엘릭 그 친구의 대리 역할이 필요하거든· 원래는 내가 했지만 부인께서 왔으니 넘겨드려야 하지 않겠소·”
티리아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엘버스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럼 가보지·
라고 하며 그가 안내를 시작했다·
도착한 곳은 드넓은 회의실·
그곳에는 선객이 있었다·
“마님?”
“부부부부부인?”
에드워드와 이그렛이었다·
다날은 그 순간 직감했다·
‘여 염병····’
전장의 상황이 급박해진 듯하다·
*
대륙의 7강 즉 왕국 연합 전선의 정상들이 모인 회의 자리였다·
티리아로선 얼떨떨한 일이었다·
이런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앉는다니 시골 남작 부인에겐 당연히 당혹스럽게 다가올 일이었다·
하지만 중압감 같은 것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티리아가 담력이 강해서는 아니었다·
“부인 저 창놈 새끼랑 떨어져요· 더러운 거 묻어요·”
“하핫! 너무하십니다· 염화 자매님·”
“너무는 지랄이! 어 어제도 창녀들이랑 뒹굴었다며?”
“사랑을 나눈 것이지요·”
그냥 분위기가 가벼웠다·
그냥·
“개뿔이 그거 알아요· 부인? 저 새끼 매달 1일만 되면 창녀들 수십 불러놓고 해 뜰 때까지 뒹구는 놈이에요· 진짜 불결한 새낀데 왜 저딴 게 성자라고····”
“틀렸습니다· 자매님· 저는 사랑을 실천한 것이 맞아요·”
“지랄?”
“들어보십시오·”
충격적인 진실에 티리아의 속에 황망함이 차오르던 중이었다·
하임베르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했다·
“성(性)이라 함은 주님께서 지으신 남체와 여체가 교합하여 사랑을 자식의 형태로 잉태하는 일입니다· 하나 이 땅엔 그런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요· 사랑을 사랑으로 볼 수 없는 그저 금전과 맞바꿀 재화로 보는 이들이 있단 말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진중하기 그지없었다·
“저는 그런 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메말라버린 사랑에 물을 주는 것이지요· 당신들도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 사랑을 널리 퍼뜨리라는 주님의 뜻을 위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헛소리였다·
당장 저 사랑에 주는 물이라는 단어가 티리아로 하여금 진한 불쾌감을 느끼게 했다·
그럼에도 하임베르크는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제 몸이 하나뿐인 것이 통탄스럽습니다· 마음 같아선 그 일에 제 모든 생을 헌신하고 싶건만·”
“밤낮으로 뒹굴고 싶다는 말을 되게 서정적으로 하네· 미친 변태 새끼·”
“누님 마님도 계신데····”
“····”
에드워드가 티리아를 언급하자 그제야 이그렛의 입이 다물렸다·
엘버스는 그때까지 쿡쿡 웃음만 흘리고 있었다·
대체 이딴 걸 회의라고 하는 것인지·
티리아의 속에 환상이라 불러야 할 무언가가 깨지려는 순간이었다·
“잡설은 다 하셨소?”
크레돈 마히르가 나섰다·
그의 눈은 침잠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 상황에 대한 분노···라기 보단 사람 자체가 그랬다·
티리아의 기억 속에서 그는 언제나 과묵하고 표정 변화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지·”
그가 손짓하자 엘버스 그레이엄도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제야 본론이 나왔다·
“대대적인 전면전이 있을 겁니다· 전 병력을 소집해야 할 규모의·”
쿵 티리아는 심장이 크게 널뛰는 것을 느꼈다·
*
나자크의 왕성 지하·
그곳엔 넝마가 되어 쓰러져 있는 세 구의 언데드와 그들 앞에 서 있는 흉터투성이의 사내가 있었다·
제르디아는 그의 모습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검제 놈아·’
씨앗 하나는 참 우월한 놈으로 찾았구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엘하다크 마히르는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
카샤는 능히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재능이었다·
‘고작 한 달이다·’
암만 먹지도 자지도 않는 언데드와 쉬지 않고 싸웠다지만 고작 한 달 만에 계위를 뚫었다·
뚫다 못해 그것을 안정시켰다·
이는 경이적인 일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저 아이가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다섯 제왕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아니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시대는 검제와 카샤만을 기억했을 것이다·
두려움 질시 자괴감 따위의 감정은 없었다·
그런 것들은 생사의 굴레를 역행하는 순간 모두 던져버렸다·
제르디아는 그저 지극한 만족감만을 느꼈다·
복수·
오로지 복수를 위한다면 그는 무엇보다 강력한 검이 되어 검제에게 날아들 테니·
“축하한다· 너는 완성되었다·”
“끝이오?”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끝이다·”
“별것 없구려·”
카샤가 납도했다·
그의 눈은 깊게 가라앉아 붉은 안광만을 밝히고 있었다·
‘별것 없다니·’
이만큼 별일이 또 없을 텐데·
하기야 재능은 가진 주인에게는 그 위대함이 잘 와닿지 않는 법이다·
스스로를 질시할 수는 없음으로·
“후우····”
제르디아는 그의 숨소리에서 피냄새를 느꼈다·
맥동하는 근육에서 살기를 느꼈다·
문득 차오르는 긴장감을 억눌렀다·
그리하고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이제 가자꾸나· 마침 소식이 들어왔다·”
“소식?”
“전면전이다·”
“꽤 길었군·”
“내 기다림보다 길었을까·”
제르디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왼팔을 어깨 아래가 휑하게 비어있었다·
그런 것이 아랑곳 않고 제르디아는 말했다·
“부탁하마·”
제발 검제의 멱을 따주기를·
그에 카샤는 나지막이 답했다·
“부탁하지 않아도 되오· 누구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그의 목을 딸 것이니·”
카샤가 돌아섰다·
살기와 증오 그리고 허무만이 그의 목소리에 남아있었다·
그는 더 잃을 것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