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리아의 외침이 쩌렁쩌렁 울리는 순간, 엘릭은 멍해졌다·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 사고는 얼어붙었고 입은 말조차 지어내지 못한 채 벌어진 채였다·
단언 처음이었다·
티리아가 이렇게 큰 목소리를 극명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언제나 처져있던 눈꼬리가 위로 솟아 있었다·
얼굴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으며 고인 눈물 탓에 눈가가 붉게 달아올라 번들거리고 있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실제로 목소리는 물기로 젖어 있었다·
당황이 차오름은 당연했고 그보다 일단 진정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엘릭이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잠까····”
“매번 그렇습니다! 가주는 어른스러운 척을 하면서 생각하는 수준은 어린애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말해야 아는 건데 가주는 꼭 혼자 감내하는 게 어른스러운 줄 압니다!”
“부····”
“책임감도 없습니다! 가주는 책임감보다 자기 자존심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이기적입니까? 배려심이란 게 없는 겁니까?!”
“····”
“생각이 없으면 의논이라도 하란 말입니다! 머리가 나쁘면 그걸 인정이라도 좀 하란 말입니다!”
그녀는 막무가내로 말을 내뱉었다·
엘릭은 말이 속에 푹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수치심이었고 죄스러움이었으며 또한 야속함이었다·
엘릭은 본인이 그리 머리가 좋지 않음을 알았다·
그런 탓에 그녀가 홀로 10년을 지새게 했음을 알았다·
그녀가 분노함은 이해했다·
하나 사람의 감정이 이성적일 수는 없는 법이다·
이번만큼은 티리아를 위한 일이었다·
엘릭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일은 위빈과의 연을 끊는 것이었다·
그걸 알 사람이 충분히 그런 추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이리 매몰차게 말해오니 울컥하는 기분이 드는 것 아니겠나·
엘릭은 그녀의 말대로 철들지 못한 사람이었다·
“부인도 다를 것 없지 않소!”
엘릭은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그에 티리아가 응수했다·
“제가 뭐가 같습니까!”
“매번 무표정하기만 했잖소! 나는 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좀처럼 알 수 없었단 말이오!”
토해지는 것은 불만이었다·
뭐라도 그녀의 야속함을 꼬집고 싶은데 당장 상황에 떠오르는 것들이 몇 없어 일단 떠오르는 대로 지르고 본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평소 두르던 무정함이었다·
“매번 부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고 했소! 부인이 차라리 불만을 말해주길 언제나 바랐소!”
하지만 티리아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차오른 감정을 어찌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걸 떠나서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차오른 울분이 너무 많았다·
“제가 어떻게 불만을 말합니까! 가주는 10년이나 절 내버려 두고 떠나있던 사람이잖습니까! 또 떠날까 봐 매번 불안했단 말입니다!”
“난 부인이 10년이나 기다릴 줄 몰랐소!”
“모른다고 뭐가 해결됩니까!”
“해결되는 건 없지! 그래서 지금이라도 해결하려 했던 것 아니오! 내 남은 재산은 전부 부인의 몫이 될 것이었소!”
“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두 사람은 그랬다·
솔직하지 못했다·
공통적으로 속에 있는 고민을 상대방에게 말하는 법을 모르며 자의적인 판단에 의거해 대화보다 결론을 먼저 내리는 편이었다·
그렇게 닮은 사람이었으나 성향의 차이가 있었다·
한쪽은 독선적이고 다른 쪽은 수동적이었다·
그것이 이런 골의 시작이었다·
“부인 의사가 어쨌든 난 그걸 부인에게 줄 것이오! 내가 그렇게 정했으니까!”
“저는 받을 생각 없습니다! 돈 따위를 바랐으면 가주를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왜 멍청한 말만 합니까!”
“멍청하다는 말 좀 그만하시오! 부인도 멍청하게 여기까지 오지 않았소!”
“가주가 멍청하게 구니까 멍청한 짓을 따라 한 겁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소! 대체 내가 어떻게 했어야 됐단 말이오?!”
이제야 그것이 풀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유일한 방법이 시도되는 데에 정확히 10년 하고도 반년의 시간을 썼다·
“말하셨어야지요! 고민은 저한테 가장 먼저 말했어야지요!”
“못하오!”
“왜입니까!”
엘릭은 수치심에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좋아하게 됐으니까!”
덜컥 티리아의 어깨가 들썩였다·
얼굴 위로 독기 사이에 당황이 스며들었다·
일순 침묵이 일었고 허망하게 티리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스····”
“좋아하게 됐소! 같이 있다 보니 계속 눈으로 쫓게 됐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면 미칠 것 같았고 혹시 미움받으면 어쩌나 전전긍긍했소! 그래서 말 못했소! 미움받기 싫어서!”
엘릭은 홧김에 감정을 토해냈다·
티리아는 울먹였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의 말은 너무나 바랐던 말임과 동시에 끝까지 야속한 말이었다·
“가주만 좋아했던 게 아닙니다! 말했잖습니까! 저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걸 말했는데도 가주는 떠나갔습니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안 잊혀집니다!!!”
목소리가 갈라질 정도의 외침이었다·
엘릭이 멍해졌다·
“지난 10년을 못 잊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못 잊었는데 함께 한 추억이 있는 지금은 어떻게 잊으란 말입니까!”
티리아는 흐느끼듯 말을 더해냈다·
그쯤의 그녀는 진을 다 뺀 듯 어깨를 늘어트렸다·
“···고작 하루를 못 잊어 10년을 기다렸습니다· 한데 반년을 가주와 살았습니다· 이제부터 이걸 어떻게 잊으란 말입니까? 가주가 없는 두 달이 그렇게 괴로웠는데 저는 얼마나 더 괴로워야 합니까?”
엘릭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다만 티리아의 감정만이 표현을 통해 절절히 전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무거운 감정이었다·
직감이 이르러 엘릭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깊이의 마음이었다·
“제가 먼저 좋아했단 말입니다····”
티리아가 콩 엘릭의 가슴팍에 머리를 박았다·
이윽고 주먹이 그의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안간힘을 다해 때리는 것인지 어깨부터 크게 흔들리는 움직임이었다·
“제가 훨씬 먼저 좋아했는데···! 그래서 기다린 건데···!”
엘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죄스러운 마음이 샘솟았다·
그래야 할 것만 같았고 실제로 그랬기에·
문득 시야에 들어온 티리아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언제나 우아하던 그녀는 엘릭이 생전 생각지도 못한 망가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나 너랑 결혼할래!
엘릭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뇌 내에 조각나 떠오르는 정보는 어느 날의 기억 얼굴 말들을 현재의 그녀와 조합해나가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맞물렸다·
“···아·”
그것은 엘릭도 잊고 지냈던 어느 과거의 파편이었다·
너무나 흐릿해져 있던 기억이 기시감을 재료로 다시 한번 선명해지려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임이 분명한데 맞물림은 확신을 말했다·
그것이 엘릭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그 순간 엘릭은 무엇도 할 수 없었다·
“흐으으····”
모든 감정을 토해낸 티리아는 진이 빠진 듯 엘릭에게 기대 그를 끌어안았다·
엘릭은 혼란스러움에 빠져 있으면서도 떠오른 확신에 더듬더듬 손을 들었다·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정말 그 아이가 티리아라면 그렇다면·
고작 그 하루로 인해 티리아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렇게 살아왔단 말인가·
그 무게를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어서 속이 찌부러지기 시작했다·
‘왜?’
왜 그런 것인가·
질문을 하는 일도 불가능했다·
티리아가 그 답을 할 수 없는 상태였으므로·
“끄흐으····”
티리아가 더욱 강하게 엘릭을 끌어안았다·
영영 울음을 그칠 수 없을 사람처럼 서럽게 우는 게 그리도 처량할 수 없었다·
엘릭은 어안이 벙벙한 중 더듬더듬 그녀를 마주 안았다·
가슴팍이 젖어 드는 게 확실히 느껴지는 어느 순간 엘릭은 그녀와 같은 울상을 하고 있었다·
왜인지 입술이 멋대로 움직였다·
“미 미안하오····”
우선 그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
한창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이던 두 사람이 어느새 껴안은 채로 숨을 죽이는 중 건물 뒤편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몇 사람이 있었다·
에드워드 다날 이그렛이었다·
“아····”
이그렛이 휘청였다·
깜짝 놀란 다날이 그녀를 부축했다·
이그렛은 붉어진 얼굴로 히죽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나 이제 죽어도 좋아····”
다날은 최대한 속에 이는 경멸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힘썼다·
다만 ‘이제 두 사람이 화해했으니 나는 살아남는 게 아닐까?’ 따위의 생각을 떠올렸다·
그런 중 에드워드는 허탈함에 빠져 있었다·
‘저렇게 끝이야?’
저러고 화해하는 건가?
고작 언성 몇 번 높였다고 말 몇 마디 주고받았다고 서로 끌어안으면서 배알꼴리는 장면을 만드는 건가?
문득 떠오른 생각은 그랬다·
‘저러고 끝낼 거면 진작에 말 좀 나눠봤으면 되는 거 아냐?’
에드워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스쳐 지나가는 것은 지난 몇 달 간 했던 마음고생이었다·
티리아가 서부에 오는 순간부터 에드워드는 카샤와 티리아를 어찌 중재해야 할지를 매 순간 고민했다·
혹여 상황이 잘못되었을 경우 불똥이 튈까 눈시울이 다 뜨거워졌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내가 했던 걱정은? 고민은? 나는 대체 뭘 위해서?’
안타깝게도 답해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