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바람이 무섭다·
사랑은 전쟁통에서도 피어난다·
여기에 그 두 가지 개념을 아주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잘 들 노네·”
에드워드가 읊조렸다·
그의 시선은 저 멀리 손을 꼭 붙잡은 채 얼굴을 붉히는 남녀를 향하고 있었다·
누구겠는가 카샤와 티리아다·
“비서야·”
“예·”
“여기 전쟁터 맞지?”
“알면서 뭘 물어봅니까·”
“알아서 물어본 거야· 곧장 다음 전투가 일주일 앞으로 찾아왔는데 자기들만 행복한 낙원에 있는 사람들이 보여서·”
에드워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가 됐든 좋게 해결되었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저 둘의 관계 개선은 결정적으로 전쟁의 양상을 바꿀 수 없었다·
에드워드에겐 끔찍한 일이었다·
그는 전쟁이 국지전의 양상을 띠며 길어지길 바란 쪽이었으니까·
‘일정을 앞당겨야 하나?’
다음 정기 주주총회까지 적어도 몇 달은 남았다·
그때라면 이미 전쟁이 다 끝난 때 구상 중인 무기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스러질 것이다·
에드워드는 턱을 쓸었다·
‘이미 설계랑 재료 공수는 끝났어·’
주주들의 허락을 맡은 후 실 제작 및 테스트만 끝낸다면 당장의 전장에서 그 효용을 증명할 자신이 있었다·
에드워드의 눈이 빛났다·
‘작업은 대충 다 쳐놨단 말이지·’
그는 티리아의 허리에 걸려 있는 회초리를 보며 삐뚜름하게 웃었다·
*
“그런데 그 회초리는 왜 계속 들고 다니는 것이오?”
문득 엘릭이 건넨 질문이었다·
티리아는 아 소리를 내곤 회초리를 손에 쥐며 말했다·
“들고 있으니 마음이 평안해지는 기분이 들어서입니다· 왜인지 물어보니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다더군요·”
“호오 마법이라면?”
“진정 마법입니다· 황립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극찬하는 점이라더군요·”
그것은 정말 극적인 효과를 내는 기능이었다·
가만 쥐고만 있어도 자신감 따위가 차올라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희석시킨다·
사고가 조금 더 빠릿빠릿하게 굴러가고 체력 강화 기능이 있는 것인지 평소보다 몸에 힘이 넘치는 기분이 든다·
그런 점을 엘릭에게 설명하니 그가 말했다·
“꽤 기물인가 보오· 한 번 쥐어봐도 되겠소?”
“그러십시오·”
회초리를 건네니 그가 ‘오’하고 작게 탄성을 흘렸다·
“확실히 마법이 흐르고 있군·”
쥐어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걸까·
이젠 그가 검귀 카샤임을 알게 됐으나 이런 일면을 마주할 때면 솟는 어색함이 있었다·
티리아에게 엘릭은 사람을 썰어대는 용병보단 실수가 잦고 웃음이 많은 청년의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묘한 눈으로 바라보니 엘릭이 시선을 눈치채고 멋쩍게 웃었다·
“왜 그러시오?”
“아무것도·”
“그러지 말고 말해보시오· 우리 속에 있는 이야기는 다 하기로 하지 않았소· 또 표정을 보고 오해하는 일이 없어야 할 테니 말이오·”
티리아의 뺨이 작게 붉어졌다·
엘릭이 말하는 것은 서로의 표정이나 겉으로 드러난 말만 보고 오해를 했던 여러 일에 관한 것이었다·
개중 가장 큰 실수가 있었으니 바로 혼인식 날이었다·
-반지를 주고받을 때 가주께선 인상을 찌푸리셨지요·
-···부끄러워서 그랬소· 부인이 너무 아름다워서·
-····
-그 그러는 부인도 돌아온 내 표정만 보고····
-오해할 만한 얼굴 말투였습니다·
-···미안하오·
모든 뒤틀림의 시작이 그것이었다·
그 일을 교훈삼아 속에 있는 말은 다 전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티리아는 말했다·
“아직 가주가 카샤라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특히·”
“아아 그 얘긴가· 그렇다면 다행이오· 사실 살기가 흘러나오면 어쩌나 고민이 많았던 터라·”
“그게 스스로 조절하기 힘든 것입니까?”
“한창 검을 휘두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지· 부인의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오·”
티리아는 대충 수긍했다·
애초에 이런 영역은 그녀가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엘릭이 자신을 배려해 노력해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꺼웠기 때문이다·
문득 설렘이 있어 맞잡은 손에 깍지를 끼니 엘릭의 입꼬리가 삐죽삐죽 솟았다·
그가 조금 더 가까이 붙었다·
이리 체온이나 숨결이 가까워지면 입맞춤의 순간이 떠오른다·
티리아는 솜털이 쭈뼛서는 기분을 느꼈다·
헤픈 얼굴이 될까 괜히 시선을 땅에 박는 중이었다·
“가 가주님 마님?”
다날이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요 며칠간 꼭 저런 조심스러움을 보여왔다·
휙!
티리아는 엘릭과의 거리를 벌렸다·
엘릭의 눈초리가 쏘아졌으나 남들 앞에서 지지고 볶기엔 아직 부끄러움이 더 컸다·
“무슨 일인가?”
티리아는 큼큼 헛기침을 한 후에 물었다·
다날은 영혼이 빠진 눈으로 잠시 두 사람을 흘기다가 말했다·
“금공께서 찾으십니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티리아의 시선이 엘릭을 향했다·
그는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찾아가 보지·”
그렇게 두 사람이 이동했다·
*
금공은 성채 내의 큰 방 하나를 통째로 개조해 개인 집무실로 쓰고 있었다·
그의 방에 들어선 엘릭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다른 손님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 앗! 오셨!”
“오 왔는가·”
이그렛과 제르디아였다·
그 곁에는 지그시 웃고 있는 성자 하임베르크도 있었다·
진영에 있는 7강을 모두 모은 것이다·
혹 전황에 큰 변동이라도 있던 것인가?
걱정이 살포시 치솟는 중 에드워드가 입장했다·
“아! 다 오셨습니까!”
그는 엘버스를 대동한 채였다·
엘릭은 물었다·
“대체 무슨 일로 사람을 이리 다 모아온 건가·”
“으하핫 일단 차부터 드시지요·”
짝짝!
에드워드가 손뼉을 치자 그의 직원들이 거대한 탁 위로 디저트를 세팅했다·
그 순간 티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왜 그러시오?”
“가주 그 비스킷입니다·”
속닥거리며 반가워하는 티리아의 말에 엘릭은 비스킷을 뚫어지게 쳐다 봤다·
그러고서야 눈치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왕실 파티시에?”
위빈이 속한 페르딘의 왕실 파티시에·
연회에서 봤던 그의 제과였다·
엘릭은 놀란 마음으로 에드워드를 바라봤다·
돌아오는 것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였다·
“페르딘 쪽에서 모셔 왔습니다· 국왕 폐하께서 ‘포트먼 남작의 일인데 당연 도와야지!’ 하면서 꼭 생색 좀 내시덥니다·”
아 하기야 그쪽에서도 이제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됐을 테지·
조금은 곤란했다·
‘조용히 살긴 글렀군·’
전장터에서 구르다 보니 알게 되는 것이 있었다·
7강이라는 이름이 전장에서 얻는 위상이나 국가 경쟁력에서 차지하는 비중 따위의 것들이었다·
페르딘의 국왕은 절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행동은 고등 귀족 작위 수여나 혼인으로 묶은 계약 정도겠지·
어쩌면 일면식이 있는 왕녀를 들이밀 가능성이 높다·
아니 왕녀 쪽이 더 확실하겠다·
본디 권력을 쥔 것들은 힘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우군으로 존재하길 바라는 법이니·
불편한 일을 굳이 감내하는 것은 엘릭의 성향에 맞지 않았다·
혹여 전쟁이 끝나고 돌아간다면 그와 관에 왕을 알현해야 할 듯하다·
‘···하는 김에·’
파티시에도 받아 갈까·
엘릭은 흐뭇한 얼굴로 비스킷을 깨작대는 티리아를 바라봤다·
먹는 일에 그리 큰 관심이 없는 그녀가 이 비스킷만큼은 참으로 좋아하니 가까운 곳에 파티시에를 두고 싶었다·
죄의식도 없이 약탈을 계획하는 엘릭의 속내를 다른 사람들이 알 리는 없었다·
분위기는 찬찬히 풀리고 있었다·
“오 이것 참 맛있구나· 내 다과에 놀라워하는 일은 60년 만이야·”
“형제님 조금만 싸가도 되겠습니까? 교단의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은데·”
“웃기고 있네· 창녀들한테 나눠줄 거면서·”
“자매님들도 퍽이나 좋아하실 듯하군요·”
“우웩·”
그 한가운데 에드워드는 살살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자 그럼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시선이 그에게로 몰렸다·
엘릭은 옆에 앉아있던 엘버스에게 물었다·
“대체 뭘 하려고 저러는 건가?”
“일단 보시게·”
엘버스는 장난스러운 태도였다·
뭔가 일이 일어나기는 한다는 건데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려나 싶어 보니 에드워드가 말했다·
“긴급 주주 총회를 실시하려 합니다·”
그가 힘 있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총회입니다· 날짜는 일주일 뒤 2차 전면전에서 나흘 뒤 그날의 총회에서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죠·”
에드워드의 입가에 빵긋 미소가 떠올랐다·
직후였다·
쿵!
그가 무릎을 꿇었다·
저리 자주 무릎을 꿇으니 관절이 남아날 리가 없을 듯한데·
엘릭이 잡생각이나 떠올리는 중 그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살려주십쇼· 저 좀 도와주세요·”
“뭘?”
“제안할 안건에 동의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섭섭지 않게 사례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무슨 안건인지도 말하지 않고 대뜸 동의해달라 하니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엘릭의 입장에서도 그랬고 티리아가 생각하기에도 그런 일이었다·
에드워드를 잘 모르기에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주주 총회 안건이 우리에게 동의받는다고 끝날 일인가?”
에드워드는 고개를 들며 환한 미소로 답했다·
“예 끝납니다· 여러분들 지분에 제 것까지 다 모으면 51%인지라·”
금공 에드워드 와이트·
그가 궁극적으로 바란 구도가 이런 것이었다·
“이 불쌍한 놈 하나 돕는답시고 도와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비즈니스보다 깊은 유대 관계를 형성해 그들의 도움만으로 회사의 운영 방침을 좌지우지하는 것·
소수의 의견에만 귀를 기울여도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
“여러분께도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다른 말로 외부 자원을 끌어들여 만든 EW를 독재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