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의 승전으로 한창 사기가 올라 있는 어느 날·
에드워드가 계획했던 주주총회가 시작됐다·
그것은 연합 내 아르민 왕국의 영토 와이트 공작저의 대연회장에서 개최된 축제였다·
“아····”
티리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와이트 공작저의 거대한 화원이었다·
엘릭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이리 감탄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기에·
“참 커다랗지 않소?”
“···예 비단 커다란 것뿐만 아닙니다· 이곳에 피어있는 꽃들은 모두가 다른 기후 다른 토양을 필요로 하는 희귀종들입니다· 이걸 어떻게····”
“마법을 이용했다고 하더구려·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이곳의 관리 한 달에 쓰이는 돈이 위빈의 일 년 재정보다 많다 들었소·”
티리아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질린 얼굴이었다·
“···돈 낭비도 이런 돈 낭비가·”
“뭐 부자들 취미라는 것이겠지·”
말하며 엘릭은 제 허리춤까지 길게 솟아올라 있던 노란 꽃을 톡 건드렸다·
꽃잎이 말려 움츠러들었다·
앙증맞게 오므라드는 것에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어 엘릭은 중얼거렸다·
“···부인 같구려·”
“예?”
“건들면 톡 움츠러들어 버리는 것이 뭔가··· 음·”
엘릭은 얼굴을 붉혔다·
말하고 나니 뒤늦게 수치심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왜 여인을 꽃에 빗대는 일이 왜인지 가벼운 사내의 그것으로만 느껴지지 않던가·
“아무것도 아니오·”
뒤늦게 말을 줄였지만 티리아는 이미 그 말을 다 들은 듯했다·
“···칭찬을 하다 마시는 겁니까·”
“영 낯부끄러운 소리를 한 듯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녀가 꽃으로 시선을 돌렸다·
목소리가 조금 들뜬 것은 착각일까·
“가장 좋아하는 꽃입니다· 위빈의 온화한 날씨에서는 자생하지 못해 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티리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최근은 그랬다·
그녀는 무표정했던 과거를 지우려는 듯 표정으로 감정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엘릭은 옛날 일을 떠올렸다·
혼인식 날의 그녀를 보며 느꼈던 몇몇 감정이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금 가슴을 적시는 것이었다·
티리아의 옅은 파스텔 톤은 신기루의 신비로움이었다·
현실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맑아 손을 뻗으면 흩어질 것 같은 착각을 자아낼 때가 있는데 그때면 홀로 선명히 붉은 입술이 안도를 주었다·
그것이 체리를 떼어둔 것처럼 붉어 티리아에게 생기라 할 것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그런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엘릭은 저 입술이 참 말캉하다는 것을 알았다·
정보가 열기로 화했다·
달리 말해 더워졌다·
‘···썩을 화원·’
왜 이렇게 더운지 모를 일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물음에 엘릭은 말을 돌렸다·
“그 그냥 무슨 꽃인지 궁금해서 그렇소· 이름이나 꽃말 같은 거·”
“마지르니 남부의 고원에서 바위틈에 피는 꽃입니다·”
“꽃말은 무엇이오?”
묻자 티리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뺨이 잠시 붉어졌다가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엘릭이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가 말했다·
“···비밀입니다· 이제 가지요· 슬슬 주주총회를 준비해야 하니·”
엘릭은 종종걸음으로 출구를 향하는 티리아의 뒷모습을 멍하니 봤다·
도통 알 수 없는 행동에 고개가 기울어져 꺾였다·
그런 엘릭이 모르는 사실 하나·
마지르니의 꽃말은 ‘약속된 재회’였다·
*
오늘도 두 사람을 꾸민 것은 다날이었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이제 더 이상 다날이 여장을 한 채로 두 사람을 단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중 엘릭은 다날과 설영 기사단의 정체를 티리아에게 말했다·
본디 그들이 서부의 사신이라 불리던 암살자였다는 것도 그들을 거둬들여 여러 일을 맡겼다는 것도·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고맙네·”
“···예·”
티리아와 다날은 아주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본디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렇지 않나·
아직도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수다를 떨던 여인의 모습을 기억하는데 그가 사실 수염이 듬성듬성 올라와 있는 아저씨라니·
이전처럼 보는 것이 더 힘든 것이다·
여하튼 단장은 오늘도 잘 마무리됐다·
“부인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네·”
“눈빛으로 말하고 계십니다·”
“무표정일세·”
“···믿겠습니다·”
티리아는 답하지 않고 방을 떠나 엘릭과 합류했다·
엘릭은 싱긋 웃으며 티리아의 손을 잡았다·
“오늘도 어여쁘시오·”
“···예·”
“응? 왜 그러시오?”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서 가지요·”
어색함을 털어낸 것은 금방이었다·
연회장에 도착하니 화려한 풍경에 넋이 빠진 까닭이었다·
“아 부 부인!”
이그렛이 가장 먼저 둘을 반겼다·
팔을 휘적휘적 저으며 환한 미소 짓는 그녀의 곁엔 성자 하임베르크와 마왕 제르디아가 있었다·
티리아는 아직 그들이 어색했다·
대륙에서 가장 강한 이들 그리 불리는 이들이 자신에게 저리 호의적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서 오시게·”
제르디아가 신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임에 티리아는 마주 인사를 건넸다·
엘릭이 그녀를 자리에 앉혔고 대화가 시작했다·
엘릭이 서두를 열었다·
“아직 시작은 멀었소?”
“10분 정도가 남았네·”
“거 빨리 끝내면 좋을 텐데·”
“급히 마음먹지 마시게· 부인께서는 이런 자리가 처음일 것 아닌가·”
“···저는 괜찮습니다·”
티리아가 답하자 제르디아가 싱긋 웃었다·
“그리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좋구려· 이야기는 들었네· 이 친구를 찾아 동부 끝에서 왔다지·”
티리아의 얼굴이 붉어지자 제르디아가 말을 더했다·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그는 세간에서 알려진 망자의 왕이라는 칭호와 다르게 평범하게 말이 많은 노인이라는 것이다·
“내 젊을 적이 생각나는구먼· 왕비는 참 고운 여인이었지· 성격이 조금 사나워 내가 과음을 하는 날이면 그렇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그 모습조차 아름다운 여인이었다네·”
“아····”
탄식은 나자크를 알기에 내뱉은 것이었다·
그곳에 살아있는 자는 없으니 제르디아는 떠난 부인을 그리워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엘릭이 덧붙이는 말만 아니라면 분명 그랬을 터였다·
“나자크의 왕비는 아직 잘 있소· 레이스가 되어 왕성을 떠다니오·”
오소소―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왕성을 떠다니는 희끄무레한 유령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티리아가 바짝 굳자 하임베르크가 말했다·
“성불이 필요하오?”
“선 넘지 마시게·”
제르디아가 말을 일축했다·
와중 이그렛은 티리아의 옆자리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그런 일이 끝난 것은 정확히 10분 뒤였다·
빠바밤!
오케스트라가 곡조를 바꿨다·
“회장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연회장의 정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걸어 나오는 것은 허리를 곧게 편 채로 자신감 가득한 미소를 짓는 에드워드였다·
그가 단상 위로 올라갔다·
조명이 그를 내리쬐었다·
“우선 여러분! 오늘 이리 자리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EW의 에드워드 와이트입니다!”
짝짝짝!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중 티리아는 묘한 어색함을 느꼈다·
그가 똑바로 서 있는 것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기억 속의 그가 언제나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던 터라 어쩔 수 없었다·
와중에도 에드워드의 연설은 계속됐다·
“정기 총회가 몇 달이 남은 시점이지만 이리 실례를 무릅쓰고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 아시겠지요! 서부 전쟁의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지독한 역사가 드디어 종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에드워드는 찬찬히 역사를 읊었다·
와중 티리아는 그의 말에서 명확한 목적성을 느꼈다·
‘희생자에 초점을 맞추고 계시구나·’
그는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을 연신 언급했다·
희생자의 가족이 얼마나 슬퍼하는지를 언급했고 전쟁으로 궁핍한 삶을 살게 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언급했다·
전쟁에 대한 적의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유는 이내 밝혀졌다·
“···하여 저는 하루라도 더 빨리 더 적은 희생으로 전쟁을 끝낼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평화협정은 불가했지요·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할까· 답은 정해져 있던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진중하게 가라앉았다·
티리아는 긴장을 품었다·
그가 총회에 앞서 했던 일들을 알기에 그가 노리는 것이 분명함을 기억하기에·
“전쟁을 하루빨리 종식시킬 힘을 얻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었다·
드르륵―
“소개합니다!”
에드워드 뒤로 거대한 커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걷어지며 드러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질적인 생김새를 가진 어떤 물건의 설계도였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기병입니다! 전열의 최전선에서 피와 살을 튀기며 인간이 죽어 나갈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하나의 지형을 두고 사흘 밤낮을 싸우는 미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전쟁은 효율화되고 간소화될 테니까요!”
그는 직사각형의 몸체 위로 기다란 바퀴가 달린 물체를 그리 명명했다·
“전차! 종전의 상징이 될 무기입니다!”
말의 끝을 맺음과 동시에 공간에 침묵이 감돌았다·
누구도 저 설계를 그리고 에드워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7강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게 뭐야?”
그나마 에드워드와 가장 가까운 이그렛조차 ‘전차’라는 물건이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구동하는지와 왜 전쟁을 끝낼 도구가 되는지 중 무엇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명백한 이질감·
그리고 황당무계함이 공간을 휩쓸었다·
에드워드는 싱긋 웃었다·
그 모든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또한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사실 처음부터 당신들 의견은 중요치 않았다는 듯이·
그는 어떤 설명도 더하지 않고 다만 통보했다·
“자 그럼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