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당장의 당혹스러움을 떼어두고 생각하면 거래는 거래·
엘릭은 에드워드의 안건을 찬성했고 그것은 다른 7강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체의 51%가 찬성·
그에 더해 에드워드에게 호의적인 몇몇 주주의 의결권 8%·
59%의 찬성으로 안건은 체결됐다·
눈치 빠른 몇몇 주주들이 불만의 기색을 표했으나 목소리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대륙 7강 그들이 하나로 뭉친 상황에 적대적인 스탠스를 드러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에드워드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어냈다·
주주총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고 자리가 끝나자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런 날이었다·
“준비는 마쳤으니 저는 곧장 공정에 들어가렵니다·”
“대체 뭘 만드는 건가?”
“고것은 나중의 즐거움으로 미뤄두시지요·”
에드워드는 의뭉스러운 말과 함께 전선을 떠났다·
무엇을 꾸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상 신경 쓴다고 해봐야 바뀌는 것은 없었기에 엘릭도 신경을 껐다·
애초에 그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은 따로 있었다·
“앞으로 한 달 정도는 전면전이 없을 걸세· 아마 높은 확률로 국지전도 없겠지· 폭풍전야라는 것일세·”
에드워드가 전선을 이탈한 것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였다·
이번 2차 전면전에서 연합은 제국의 숨통을 조이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의 물자가 아슬아슬해질 때까지 방어선을 유지하며 수비적으로 전선을 끌고 가는 것·
3차 전면전 그리고 마지막이 될 황도 공성전은 앞으로 한 달 후에나 있을 이야기였다·
“그러니 슬슬 결정하는 것이 어떤가·”
엘버스는 말했다·
“고향에 다녀오시게· 전쟁이 더욱 격렬해지기 전에·”
이제 위빈을 향한 위협은 카샤로서의 복귀 이후 어느 때보다 줄어든 상태였다·
끝을 보며 격해질 전선보다 티리아는 위빈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
엘릭은 그것을 알았다·
“내 자리를 비워도 되겠나?”
“물론·”
“···부탁 좀 하겠네·”
티리아를 위빈으로 데려가야 할 때다·
*
막사의 숙소였다·
“싫다고 해도 안 되겠지요· 이번은·”
모든 이야기를 들은 티리아는 다만 그리 말했다·
“이미 결정을 마치고 제게 말한 것일 테니까요·”
그녀는 조금은 불만스러운 듯 혹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씁쓸한 기색으로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지요·”
“···미안하오·”
“당연한 일입니다· 전장의 최전선에 계셔야 할 가주가 등 뒤를 신경 쓰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니·”
이해를 말해주는 것은 고마웠다·
이해를 하게 만드는 상황은 미안했다·
엘릭은 티리아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엘릭의 등을 느리게 쓸었다·
“···시간이 많이 없겠지요·”
“한 달 하고도 열흘 정도는 말미가 있을 것이오·”
“그럼····”
꾸물꾸물 티리아가 망설임을 띄웠다·
엘릭은 잠시 의아했으나 이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철도·
시간상 복귀는 열차를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 멀미를 해결하지 못했다·
“푸흡···!”
문득 웃음이 흘러나온 중 티리아가 엘릭의 허리를 꼬집었다·
“···웃지 마십시오·”
그녀의 귀가 붉어졌다·
고개가 가슴팍에 파묻혀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퍽 앙증맞았다·
엄지로 귓불을 쓰니 티리아가 움찔 떨었다·
“간지럽습니다·”
“귀 뒤편을 꾹꾹 누르고 있으면 멀미가 낫는다 들었소· 효과가 있을까 하여서·”
“되었습니다· 홀로 철도를 타고 전선까지도 가본 사람입니다· 돌아가는 길이야 겨우 나흘 정도일 테니 충분히 참을 수 있어요·”
“좋은 좌석을 알아보겠소·”
티리아의 숨이 조금 불편해졌다·
긴장을 한 것인지 몸도 굳어졌다·
그녀는 그 끝에서야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엘릭은 멋쩍게 웃었다·
*
전선을 떠나며 챙길 물건은 그다지 없었다·
엘릭은 그제야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한 번도 이곳에 마음을 주지 않았구나·’
전쟁터에 살았던 세월이 10년인데 또한 이곳에서 죽을 것을 다짐하며 돌아왔는데도 막상 만들어둔 기반이나 쟁여둔 물건 따위가 없는 게 현실이다·
몸은 얄팍한 이성보다 먼저 알았던 것이다·
이곳은 고향이 될수도 마음을 둘 수도 없는 자리라는 것을·
고향은 애초에 티리아의 곁이었다는 것을·
“가주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다날이 군기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엘릭은 빙긋 웃었다·
“고생했네·”
그러고 보니 약속을 했었지·
“이보게·”
“예 옙!”
“돌아가면 봉급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자네에겐 너무 많은 신세를 졌어·”
다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뒤로 리키를 포함한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바라보며 히죽 웃음을 짓기 시작한다·
하여튼 호들갑은 제일이군·
엘릭은 다날의 어깨를 툭툭 치곤 그를 지나쳤다·
역으로 떠나는 마차 앞에 티리아가 곱게 서 있었다·
그 곁에는 이그렛과 제르디아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저도 갈까요? 호 호위! 그래! 제가 호위해드릴게요·”
“가주께서 지켜주실 테니 괜찮습니다·”
“아니이··· 마법사가 더 호위 잘 하는데에···!”
“자네는 이리 오시게·”
제르디아가 이그렛의 뒷덜미를 잡아 티라아에게서 떼어냈다·
그러곤 엘릭을 바라보며 말했다·
“왔군·”
“···잠시만 자리를 비우겠소· 잘 부탁하오·”
“편히 쉬다 오시게·”
그대로 제르디아가 떠나갔다·
“부이이이인!!!”
이그렛이 바둥거렸으나 외침도 금방 멀어졌다·
엘릭은 티리아와 단둘이 남아 서로를 바라봤다·
“그럼 가실까요·”
“그러지·”
손은 잡고 마차에 올라 그렇게 두 사람은 잠시 전쟁터를 떠났다·
*
치이이이익―!
하고 열차가 증기를 뿜을 때마다 티리아는 흠칫거렸다·
횟수로는 이번이 세 번째 탑승일 텐데 엘릭이 아는 첫 탑승과 그리 달라진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리 기대시오·”
“···실례 좀 하겠습니다·”
엘릭은 티리아를 안아 등을 쓸어줬다·
그리하며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봤다·
내도록 엘릭은 생각했다·
그리 떠난 곳에서 다시 환영받을 수 있을까·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위빈의 사람들이 이전처럼 자신을 대할 수 있을까·
조금은 겁이 났다·
그러지 않으려 했건만 속은 진정을 모르고 지끈거렸다·
하여 길게 숨이 삐져나오는 중 티리아가 손을 맞잡아 왔다·
“···괜찮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위로라도 하려는 듯 안색이 안 좋은 중에도 미소를 지어온다·
엘릭은 그런 배려가 고마웠다·
‘···그래·’
나쁜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모든 것은 닥치고 난 이후에 생각해도 될 일이다·
그들이 자신을 이전처럼 보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살아가면 그만인 일이다·
혼자가 아니지 않나·
곁에는 티리아가 있었다·
치이이이익―!
그렇게 위빈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린 순간 가장 먼저 본 것은 붙잡던 티리아를 버려두고 떠났던 그 자리다·
엘릭은 대뜸 차가웠던 말이 생각나 말했다·
“···그날은 미안했소·”
“또 그러십니까· 되었으니 다시는 그러지 마십시오·”
열차에서 내린 티리아는 어느덧 기색을 회복한 채였다·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녀는 팔짱을 껴왔다·
“가지요· 저녁은 저택에서 먹어야 하니·”
“알겠소·”
엘릭은 어색하게 웃었다·
곧장 마차가 줄지어있는 자리를 찾았고 그곳에서부터 저택으로 향했다·
마차 창밖으로 눈에 담기는 것은 위빈의 풍경이었다·
‘바뀌지 않았구나·’
여름이 한창이다·
역시 전쟁터와는 다른 한적함이 이곳 땅에 따스하게 내려앉아 있다·
볕이 조금 따가워 눈을 찌푸리니 저 멀리 푸른 밭이 보인다·
설레는 감정과 동시에 불안함은 또 빼꼼 고개를 치켜든다·
순간 밭에서 일하던 마을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입술이 뻐끔 달싹이고 눈은 크게 뜨였다·
엘릭은 고개를 돌렸다·
차마 다음을 볼 용기가 생기지 않아서였다·
하나 영원히 외면할 수는 없는 법·
이곳에 온 이상 결국은 마주해야 했다·
마차는 포트먼가로 돌아왔다·
“내리시지요·”
티리아가 먼저 내려 손을 뻗었다·
부인에게 받는 에스코트라니 그리도 불안해 보였던 걸까·
엘릭은 쓰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고 내렸다·
그 순간이었다·
“도련니이이임!!!”
“아이고 이제야 오시네!”
“영주니임―!”
왁자지껄하게 외침이 울린다·
엘릭은 숨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있었다·
알디오 하녀장 베론을 포함한 가문의 사용인들이·
또 옆 영지에서 찾아온 뤼튼과 식당의 바트가·
외의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엘릭의 표정이 멍해졌다·
티리아는 말했다·
“미리 연락을 넣어두었는데 이리 준비한 것 같습니다·”
그들이 달려온다·
뤼튼이 어깨동무를 했고 알디오가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호들갑을 떨며 “대체 어쩌자고 그렇게 가셨습니까!” 호통을 친다·
울먹이는 사람도 더러 보였다·
당황을 밀어내고 차오른 것은 짜르르 속을 울리는 감동이었다·
아 이 사람들은 나를 나로 보는구나·
내가 그리도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귀가 되어 있건만 그런 사실이 알려졌건만 중요치 않구나·
‘나는····’
이곳에서만큼은 여전히 엘릭 포트먼이구나·
“핫····”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엘릭은 겨우 숨을 삼키고 말했다·
“···미안하네· 다녀왔네·”
결국 불안해 했던 것은 자신뿐이었단 사실이 우습게 다가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