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입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다(1) >
면접을 마치고 돌아온 영훈은 왠지 모를 기대감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남들처럼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자 했는데 어쩌다 현진물산이라는 대기업에 덜컥 입사하게 됐으니 인생의 목표에 한발짝 다가선 느낌이었다·
이제 남들처럼 월급을 꾸준히 모아 대출껴서 작은 집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여자를 만난다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팔자는 아주 못돼 처먹어서 사주에 나무가 있는 여자를 만나면 자신의 화기(火氣)를 키워 신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었다·
여자도 함부로 만날 수 없는 팔자인 거다·
어쨌든 그렇게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 정장을 입은 채 집 근처에서 홀로 삼겹살에 맥주를 마시며 자신도 직장인이 된 기분을 만끽했다·
그렇게 알딸딸하게 고시원에 들어가니 입구에 주인 아주머니가 나와 인사한다·
“총각 오늘 면접 본다더니 잘 됐어?”
“네· 잘 된 거 같아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에휴 이번에는 좀 진득하니 버텨봐· 사람이 끈기가 있어야 해· 회사 다니다 말고 한 달만에 그만두는게 뭐야·”
주인 아주머니는 아침에 꼬박꼬박 출근하다가 요 며칠 회사를 안 나가니 바로 회사를 관뒀냐고 물어왔었다·
본래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성격인 건 관상에도 나와 있기에 영훈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회사를 관두고 다른 회사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었다·
그때부터 눈만 마주치면 회사는 알아보고 있냐고 물어왔다·
이번에 면접 합격되면서 아주머니의 참견인지 걱정인지 알쏭달쏭한 간섭을 안 받아도 될 것 같으니 그것도 좋다고 생각됐다·
“이제 열심히 다녀야죠·”
“그런데 회사는 어디야? 그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건실한데 다녀야 하지 않겠어?”
이렇게 궁금한게 많은 아줌마가 나이도 안 물어봤을 리 없었다·
첫날에 어지간한 호구조사는 마쳤다고나 할까?
“안 그래도 이번 회사는 나름 괜찮은 회사예요·”
“그래? 어딘데?”
“현진물산이요·”
“현진물산?”
주인 아주머니는 화들짝 놀라더니 재차 따지듯이 물었다·
“그··· 현진물산 말하는거야? 대기업? 엄청 큰?”
“네· 오늘 을지로에 있는 본사가서 면접 보고 왔어요·”
한참 멍하니 영훈을 바라보던 주인 아주머니는 재차 물었다·
“뭐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거기 들어가기 엄청 힘들다던데?”
“에이~ 그렇지는 않을걸요? 물론 저같은 경우야 워낙 배운게 없으니까 힘들지만 현진그룹이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거대 재벌그룹도 아니고 그냥 십대 그룹 안에 들어가는 수준이라던데·”
주인 아주머니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십대 그룹이 어디야! 거기가 얼마나 큰데!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거기 지원하려면 대학도 엄청 좋아야 하고 영어도 엄청 잘해야 한다던데?”
영훈은 슬슬 아주머니가 왜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되기 시작했다·
관상으로 보면 자신과 관계도 없는 사람이 땅을 샀다고 배가 아플 만큼 욕심이 과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운이 좋았어요· 뭐 제가 입사하면 안 되는 건가요?”
그제야 아주머니는 자신이 과하게 흥분했음을 깨달았는지 황급히 시선을 돌린다·
“그 그게 아니고··· 요즘 워낙 학벌도 속이고 직장도 속이고 그렇잖아·”
“제가 아주머니한테 직장 속여서 뭐하겠어요· 아주머니 제가 좋은 직장 구하면 고시원비 싸게 내려주실 거예요?”
“그건 아니지·”
“그러니까요· 제가 뭐하러 직장을 속여요·”
“내 딸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거 아니야?”
“네? 하하하!”
영훈은 한참 웃다가 손을 흔들었다·
“아이고 됐습니다· 아주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전~혀 그런 일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현진물산 다니면 우리 딸도 보게 되겠네?”
“거기 다녀요?”
“그래· 우리 딸이 거기 다녀· 얼마나 똑똑한데·”
“그렇구나· 일주일 뒤에 출근하니까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회사가 크니까 못 만날수도 있고· 그럼 들어갈게요·”
영훈은 떨떠름해하는 아주머니를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삼겹살 냄새가 짙게 밴 정장을 벗어 놓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데 불현듯 주인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정말 자신이 아주머니의 딸을 염두에 두어서 거짓말을 했다고 말한 것일지 아니면 그저 배가 아파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세상이 참 각박하다는 것이었다·
욕할 수는 없다·
평생 자신의 딸이 얼마나 공부에 매달려 고생하며 살아왔는지 옆에서 지켜봐왔는데 시골에서 올라온 별거 없는 청년이 자신의 딸이 그렇게 어렵게 입사한 회사에 덜컥 합격했다니 딸의 고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을 수 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한 걸 주인 아주머니를 탓해서 무엇할까·
그저 괜히 주인 아주머니 딸과 엮여서 오해받을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 사이 정장과 와이셔츠 넥타이 양말 등 필요한 옷을 몇 벌 더 사고 유튜브나 핸드폰 앱을 통해 영어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영어를 못한다고 자신있게(?) 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건 아니니까·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만큼 훨씬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동대문에서 싸게 산 작은 트렁크를 끌고 회사 앞에 도착하니 이미 수십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영훈은 대충 눈치를 보다가 버스를 기다리는 줄로 보이는 곳에 다가가 섰는데 누군가 출석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조윤희 씨!”
“김은중 씨!”
“강경훈 씨!”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불려지고 가장 마지막 영훈이 그토록 기다리던 이름이 불려졌다·
“최영훈 씨!”
“네!”
영훈이 큰 소리로 대답하며 손을 들었다·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주변의 사람들이 돌아보았지만 영훈은 주변의 회사원들과 같은 일원이 된 것이 기뻐서 그 시선이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후다닥 달려와 말을 걸었다·
“최영훈 씨?”
고개를 돌려보니 면접날에 봤었던 그 사람이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잠깐 저 좀 볼까요?”
뭔가 둘만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처럼 보이자 영훈도 되묻지 않고 바로 따라갔다·
그런데 영훈이 인사과 직원과 둘이서 은밀히 사라지자 주변 신입사원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졌다·
“뭐야? 인사과 직원 아닌가? 왜 데리고 가?”
“맞아요· 인사과 저분 면접날에 잠깐 봤었어요· 그런데 저렇게 따로 불러내서 이야기를 해야 할게 있나?”
“혹시 지금 따라간 사람이 백이 엄청난 사람 아닐까요?”
“오~ 그럴 듯 하다·”
그렇게 뒤에서 무슨 이야기들이 오가는 지도 모르고 영훈은 오 대리에게서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을 듣는 중이었다·
“절대 다른 사람 앞에서 사장님께 따로 면접을 봐서 들어왔다는 티를 내서는 안 됩니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했을 때 영훈씨는 필요 이상으로 솔직하신 것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신에 대해 적당히 부풀릴 줄 모른다는 말입니다· 혹시 이번 오티에 가서 동기들이 예전에 어느 대학을 나왔고 무슨 공부를 했냐고 물을 때 산속에서 철학 공부했다고 말할 건 아니시죠?”
이 부분은 오기 전부터 신경이 쓰였던 부분이기도 했다·
분명 솔직하게 말하면 이상한 놈이 될 테고 그렇다고 거짓을 하자니 이미 이력서에 다 나와 있기에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거 절대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네·”
“유학은 다녀온적 없고 대학은 지방대라고만 말씀하시고 절대 대학 이름은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저 너희는 알 것 없다는 듯이 미소만 보이세요·”
“알겠습니다·”
“뭘 배웠냐고 물어보면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하세요· 본인 장기이니 이 부분에서 우리가 걱정할 일은 없겠죠?”
영훈은 내심 웃음이 나왔지만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좋아요· 중요한 건 이겁니다· 절대 사장님 얼굴에 먹칠하시면 안 된다는 것· 의심받을 정보를 제공하지 말 것· 오티에서 너무 튀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생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돌아가서 동기들이 인사과 직원과 무슨 대화를 나눴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이것도 일종의 시험인가?
날카로운 눈빛이 어디 어떻게 대답하는지 보겠다는게 훤히 보였다·
“이력서에 주민번호를 잘못 적어서 수정했다고 말하죠 뭐···”
“나쁘지 않군요· 못 믿고 계속 질문해오면 회사 통장을 만들 때 주민번호가 막혀서 은행에서 통장개설이 불가능했다고 첨언하는것도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보세요·”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온 영훈을 못 마땅하게 바라보는 신입사원이 있었다·
‘뭐지? 왜 인사과에서 따로 불러내? 송 사장 라인인가?’
그렇게 의심하는 이는 양철기 전무의 둘째 아들인 양준기었다·
이번 공채 서류전형에서부터 두각을 나타냈었고 면접에서 압도적인 1등을 받은 그는 이미 경계해야 할 사원들과 가까이해야 할 사원들을 전부 파악하고 있었는데 저 해맑은 표정의 사원은 명단에 없었다·
그리고 송은채 사장이 은밀히 신입사원 하나를 공채로 뽑았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아마도 저 사람이 송 사장의 픽이 분명했다·
‘주의해서 봐야겠어’
양준기의 경계해야 할 리스트에 한 명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 신입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다(1) > 끝
ⓒ 영완(映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