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입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다(2) >
두 시간 정도 버스가 달려서 도착한 곳은 경기도 양평의 교육센터였다·
넓은 녹지로 둘러싸인 이곳은 상당히 깔끔하고 세련된 건물들로 신인사원으로 하여금 저절로 자부심이 들게 만들었다·
수십 명의 신입사원들은 각자 트렁크를 끌고 교육장 직원의 지시를 받아 대강당으로 입장했다·
[현진물산 입사를 축하합나다]
[더 멀리 더 크게! 꿈을 키워라!]
영훈은 대강당에 걸린 플랜카드를 보며 진짜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실감이 들었다·
“일단 조를 짜겠습니다! 순서대로 이름이 호명된 분들은 8명씩 한 조가 됩니다· 강당 왼쪽 끝부터 둥글게 모여주시면 됩니다· 호명되신 분들은 나와주세요· 성우진 씨!”
그렇게 8명씩 조가 짜여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영훈으로서는 사실 혼자 교육을 받는 게 편했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게 서로 협력해가는 거라는 걸 자각하곤 편히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버스를 탈때도 이름을 가장 마지막에 부르더니 조를 짤때도 가장 마지막에 불려졌다·
“최영훈 씨!”
“네·”
영훈이 트렁크를 끌고 자신의 조에 끼니 다 합쳐서 사람이 7명 밖에 되지 않았다·
“마지막 조는 사람이 부족해서 7명이 한 조가 됩니다· 대신 한 명이 빠진만큼 간식을 더 많이 먹게 되니 좋으시죠?”
“하하하!”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는 직원의 농담에 조원들이 다들 웃는다·
영훈은 별로 웃기지 않았지만 아웃사이더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그럼 이제 각 조별로 조장을 뽑아주세요· 어떤 방식이든 상관 없습니다·”
순간 숨막히는 정적이 조원들 사이에 흘렀다·
영훈은 당연히 나설 생각이 없다·
다른 이유를 제쳐두고 일단 뭘 알아야 조장이 되지 않겠는가?
그 사이 현진물산이 뭘 하는 회사라는 정도는 알아 왔지만 그래도 경영이나 경제 회계 수출 관련 해서 아는 지식이 전혀 없었다·
버스를 타기 전에 인사과 직원이 높은 점수를 받을수록 좋다고 했는데 그렇다는건 분명 각 개인마다 점수를 매긴다는 것이고 영훈에게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일단 있는 듯 없는 듯 상황을 살피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데 조장이 되고자 나서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영훈은 조원들을 찬찬히 살폈다·
남자는 자신 포함 3명에 여자 4명·
딱 봐도 자기가 나이가 가장 많아 보였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다가오는데 네 명의 여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원래 조장은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하는 거 아닌가요? 우리 서열정리 한번 어때요?”
아뿔사··· 이렇게 빨리 선수를 칠 줄이야·
영훈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원래 조장이 가장 허드렛일을 많이 해야 하잖아요· 막내가 하는 거 아니예요?”
인터넷에서 나이 많은 복학생이 조별 과제를 할 때 그렇게 말하며 조장을 피한다는 댓글 하나가 떠오른 건 천만 다행이었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그럼 그럴까요?”
“그게 좋겠습니다·”
누가 봐도 이중에 가장 연장자는 영훈이었다·
그래서 연장자인 영훈이 그렇게 말하니 다들 수긍하며 넘어갔다·
이래서 대한민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는가보다·
“그럼 생년월일 한번씩 부르죠· 혹시 이중에 오리엔테이션때 생일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영훈의 말에 다들 머리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생년월일을 불렀다·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자신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이가 92년생이었으니 이건 완전 늙다리가 된 기분이었다·
조장에 당첨된 이는 올해 스물다섯살인 이윤지로 생긴 것도 굉장히 귀엽고 예쁘게 생겨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타입이었다·
“어··· 제가 가장 어린 것 같네요· 95년생이고 3월 26일이 생일입니다· 히히··· 저 그런데 잘하지 못해도 이해 부탁드려요· 이런거 처음이라··· 헤헤·”
“그럼요·”
“상관없어요·”
“자 박수!”
짝짝짝!
그 다음 조장을 뽑았으니 자기소개가 빠질수 없었다·
당연히 영훈도 자기소개 때 간략하게 지방대에 심리학과를 나왔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다들 지방대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인지 정확하게 어느 대학을 나왔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윤지가 심리학과를 나왔다는 말에 말을 붙였다·
“그런데 심리학이면 보통 뭐 배워요? 저도 심리학 부전공으로 들으려고 했었는데 너무 바빠서 못 들었거든요· 재밌을거 같아·”
“네? 아 뭐···”
조원들은 심리학과가 합격했다는 사실이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잡스런 질문을 해댔는데 예전에 봤었던 심리학책 내용을 적당히 읊어가며 상황을 모면했다·
이후 각 조들은 자기 조의 이름과 구호 따위를 만드는 시간을 보냈다·
정말 이 따위 것들을 왜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영훈은 이런 시간이 회사원이 되기 위한 절차라고 생각하며 나름 충실히 임했다·
자기 소개시간에 가장 인상적인 친구는 92년생 남자인 박찬기라는 사원으로 고대 경영학과 출신에 영어나 각종 스펙이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그런 박찬기도 조원들이 대단하다고 칭찬할 때 겸손해하며 다른 조의 조원을 가리키고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저기 저 분 보이죠? 저분이 면접 최고 점수 받았다고 하는데 컬럼비아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이래요· 저는 저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와··· 대단한 사람이네·”
영훈은 박찬기가 가리킨 사람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 마침 딱 시선을 마주치고 말았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시선이 마주쳤음에도 영훈은 자신을 바라보는 게 아닌 다른 조원을 보는 거겠거니 생각하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사원은 92년생인 남자로 덩치는 송병창 사장보다 옆으로 더 컸다·
에어컨이 빵빵 틀어져 있는 강당에서도 땀을 흘리는 걸 보면 다이어트가 절실해 보이는 친구였는데 이름이 장가람이라고 했다·
이름이랑 외모랑 참 안 어울리긴 했다·
인상 깊은 이유는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연신 눈동자를 돌리며 조원들을 살폈다·
왠지 자신보다 사람을 대하는게 더 어려운 듯 한 모습에 괜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 다음 친구는 93년생인 임연희·
그녀는 속세(?)에 내려와 실제로 본 여자 중 가장 예쁘게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정도 미모라면 회사에 입사하지 말고 연예인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는데 내성적인 건지 도도한 건지 말이 많지 않았고 진행요원의 가벼운 농담에도 미소 한번 보여준 적 없었다·
자기 소개를 할 때도 아주 짧막한 한 문장으로 자신을 표현했을 뿐이다·
“임연희에요· 어렸을 때 유학갔다 와서 잘 모르는 게 많습니다·”
이게 끝·
그리고 다음으로 인상깊은 친구가 바로 막내인 이윤지였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연신 웃으며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그녀는 영훈에게도 서슴없이 아저씨(?)라고 부르며 친해지려 했다·
성인 여자라고는 절에 불공을 드리러 찾아오는 나이 지긋한 불자들밖에 없었기에 영훈으로서는 확 부담스럽고 자신도 모르게 경직됨을 느꼈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남중‧남고를 나와 처음 여자와 대화해 본 대학생 마냥 설레는 것이 아무래도 그녀를 가까이 하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럼 식당으로 이동하겠습니다· 1조부터 순서대로 식사할게요!”
자기 소개가 끝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사는 어찌나 잘 나오는지 이게 대기업이고 이래서 다들 대기업 대기업 노래를 부르는구나하고 알 것 같았다·
식사를 끝내고 다른 조원들이 커피를 마신다며 카페테리아로 갈 때 영훈은 슬쩍 빠져 강당으로 향했다·
아웃사이더가 되길 자처한 게 아니라 왠지 말을 많이 섞다 보면 약점(?)이 들킬까 괜히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이곳 시스템에 익숙해진 다음에 천천히 친해지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인사과 직원의 경고를 계속 머릿속에 떠올리며 조심하고 있었던 거다·
강당에는 먼저 식사를 끝내고 후식까지 끝낸 신입사원들이 각자 자신들의 자리에 모여 앉아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영훈은 머쓱하게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는데 누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누군가 해서 보니 임연희다·
“어? 커피 안 드세요?”
눈이 마주친 김에 그냥 물어본 것인데···
“삼촌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네?”
“사람을 잘 보신다면서요·”
이건 뭔 상황인지···
“삼촌이라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명일금융 송병창 사장님· 그분이 우리 삼촌이에요·”
“그러시군요·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왜···?”
주변을 슬쩍 돌아보고 행여 누가 들을까 속삭이며 물으니 그녀의 대답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전 어떤 사람 같아요?”
무심한 그녀의 표정·
마치 용의자를 심문하는 형사처럼 모든걸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을 보면 도대체 무슨 얘기가 하고 싶어서 이러나 싶기도 했다·
“아니 다짜고짜 이러시면 당황스럽습니다· 제가 무슨 점쟁이라도···”
그녀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말을 끊었다·
“사주를 그렇게 잘 보신다면서요? 아닌가요?”
머리를 망치로 얻어 맞은 느낌이 이럴까?
순간 말문이 막혔다·
< 신입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다(2) > 끝
ⓒ 영완(映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