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입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다(4) >
사주에 흉살(凶殺)이 보이긴해도 이렇게까지 이야기해줄 생각은 없었다·
이유는 대개 사이비들이 이 흉살을 거론해서 사주를 보러 온 사람들을 겁주고 돈을 뜯어내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고 싶지 않았던 사주풀이를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많이 격동돼있어 하지 않아도 될 사주까지 말해주었다·
말하기 전에는 될대로 되라는 마음이었지만 막상 말하고 나니 후회가 되었다·
“사주라는 게 항상 맞는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비해 조심하면···”
“어떻게 알았어요?”
세상 싸늘한 그녀의 목소리·
“네?”
“우리 아빠 아픈 거 세상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내 동생 어렸을 때 죽은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알았냐구요·”
“아버지가 편찮으시군요·”
“이봐요!”
그녀의 목소리가 올라가자 영훈은 놀라서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쉿! 조용히 하세요· 누가 듣겠습니다·”
“지금 누가 듣는 게 중요해요? 난···”
“중요합니다· 저에게는·”
그녀는 머리를 쓸어 올리고 잠시 숨을 고르고는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놀라운 침착함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제력을 잃은 것처럼 달려들려고 하더니 잠시후 언제 동요했냐는 듯 안색을 가라앉혔다·
“좋아요· 인정할게요· 그 사주라는 거 솔직히 지금도 믿지 않아요· 어디서 우리 집안 사정을 알아내서 아는척 하려는 것 같지만 그걸 알아낸 것 역시 본인의 실력이겠죠· 그 실력 인정할게요·”
뭔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반응이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녀 다운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본래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그녀가 쉽게 자신의 생각을 바꿀 리 없으니 말이다·
“그렇군요· 그럼 비밀을 지켜주시리라 믿겠습니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강당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무표정하게 시선을 돌리기는 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보면 아직도 마음이 다 가라앉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자제력 하나만큼은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후 시간은 회사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예의와 신입사원으로서 적응을 잘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을 선배가 나와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지루할 수 있는 시간이었음에도 영훈은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로 집중해서 들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해 개인적으로 많은 아쉬움을 안고 살았던 만큼 이런 교육이 그로서는 새롭고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영훈을 남몰래 주시하는 두 인물이 있었다·
*
이틑날부터 교육 강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회사업무에 필요한 기본 지식과 인트라넷 사용법 전산업무 실습 등이었다·
당연히 이 교육을 받고 있는 신입사원들은 기본 지식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있어 무리가 없었지만 영훈은 인트라넷에 관련된 기본 교육 말고는 알아듣는 게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한줄기 동앗줄이 내려오니·
“아저씨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수업 내내 인상을 쓰며 괴로워하는 걸 본 이윤지가 살갑게 다가온 것이다·
물론 저 아저씨라는 단어는 조금 어감이 이상하다고 했지만 나이차이가 너무 나서 차마 누구누구 씨라고 하기 미안하다는 말에 그럼 계속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어? 어· 나 하나도 모르겠어·”
“심리학과라 그러실 거예요· 여기서 B/L이라는건 선하증권이라는 건데요· 이건···”
참으로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무역 용어와 영어에 대해 가정교사처럼 친절히 알려주니 그나마 바보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이 지나고 점심을 먹고 다시 강당에 들어오니 어제처럼 임연희가 따라와 앉았다·
“아주 그냥 좋아 죽던데요?”
“뭐가 말입니까?”
“회사에 일하러 온 게 아니라 연애하러 왔나봐요?”
“아~ 윤지 씨요?”
연희는 잠시 영훈을 빤히 보다가 물었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우리 회사에 입사했어요?”
“말씀 못 들으셨나봐요·”
“뭘요?”
“내가 원해서 입사한 거 아닙니다· 당신 삼촌 되시는 명일금융 사장님께서 현진생명에 이력서를 내보라고 하셨는데 막상 면접을 보니 음··· 이분이 나와 계셨던 거죠·”
영훈은 행여 누가 들을까 조심하며 목소리를 죽이면서도 사장님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될 것 같아 ‘이 분’을 언급할 때 엄지만 들어 올렸다·
“그렇게 되도록 유도한 거 아니구요?”
“뭐 그렇게 믿으시던지· 솔직히 난 여기보다 그냥 현진생명 보험영업 사원으로 옮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을 굳이 억지로 설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연희는 어딘가로 시선을 돌리며 슬쩍 턱짓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저기 저 인간 어때요?”
영훈이 시선을 돌리니 황급히 시선을 돌리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깔끔한 스타일에 매끈하게 잘생긴 청년이다·
“금색 안경을 끼고 와인색 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이요?”
“네·”
“저 사람이 왜요?”
“그냥 궁금해서요·”
“관상으로 보면 대략 나오긴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관상과 사주를 같이 봐야 정확하죠·”
연희가 고개를 돌려 영훈을 바라보았다·
“관상이요? 어제는 그런 말 없었잖아요·”
“말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말했듯이 관상만 가지고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어요·”
“그럼 내 관상은 어땠는데요?”
“말하지 않을 겁니다·”
연희의 미간이 확 찌그러진다·
“왜요?”
“당신에 대한 이야기는 다 했습니다· 상에 대한 설명도 어제 한 이야기에 다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더 알려 하지 마세요·”
영훈의 단호한 대답이 생각 밖이었는지 살짝 입을 씰룩였다·
그녀 나름대로 불만족스러운 표정인 것 같았다·
연희는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럼 저 남자에 대해서나 말해주세요·”
“싫습니다· 내가 이럴까봐 사주를 본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겁니다·”
“방금 전에는 봐줄 것처럼 말했잖아요· 관상만 보면 확실하지 않다느니 하면서·”
“그냥 그렇다는거지 봐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좋아요· 저 사람을 정확히 파악해내면 앞으로 당신을 의심하지 않을게요·”
“진짜입니까?”
“난 약속하면 지켜요·”
그녀의 성격을 생각할 때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
“1991년 12월 4일 아침 7시 10분이요·”
영훈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내 나름대로 정보력을 동원한 거예요·”
“그 정보력을 어떻게 동원했길래 태어난 시각까지 알아낸 겁니까? FBI도 힘들 것 같은데?”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요· 어쨌든 말해봐요· 저 사람 어떻냐구요·”
영훈은 손가락을 톡톡 두들기며 계산하다가 말했다·
“당신이랑 비슷한데 좀 다릅니다·”
“어떻게요?”
“재복이 있기는 한데 당신처럼 강하지 않아요· 대신 부모와 연이 깊어서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네요·”
임연희의 눈동자가 떨린다·
“우리 집이 화목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순간 영훈은 자신이 실수 했음을 깨달았다·
어제 사주를 봐주다 그녀가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말을 하다 말았다는 걸 이제야 떠올린 것이다·
“음···”
“말 돌리지 말고 끝까지 말해봐요·”
영훈은 이왕 꺼낸 이야기 끝까지 해주기로 했다·
“정확한 건 당신 아버지의 사주를 봐야 해요· 안 되면 어머니라도· 하지만 대개 당신처럼 재성이 고립된 사주를 타고 나면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죠· 당신이 유학을 다녀왔던 것 그것도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아서 헤어질 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계속 돈 문제와 재산 문제로 골치를 썩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알겠어요· 아까 하던 저 사람에 대한 이야기 계속 해봐요·”
“총명하고 사리분별이 분명하며 명예욕이 강합니다· 특히 눈치가 빠르고 좋은 것과 싫은 것의 구분이 명확해 자신의 마음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으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한참 영훈을 보다가 재차 물었다·
“그게 다예요?”
자신에게 있었던 나쁜 이야기는 없냐는 물음이었다·
“당신 사주를 당신이 직접 듣는 것이기 때문에 흉살에 대해 말해주었던 거지 남에 대한 흉살은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은 초년에 흉살이 낀 경우고 저쪽은 말년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닙니다·”
“어째서요?”
“어째서긴요· 사주가 그러니까요· 물론 타고난 성정이 그 연유가 된다고 유추할 수 있겠네요·”
“타고난 성격? 좋은 것과 싫은 것의 구분이 명확해 마음대로 안 되면 스트레스 받는다는 거요?”
“그건 사주에 나온 건데 저 사람 관상이 더 정확히 얘기해주는 것 같아요·”
“어떤 부분으로요?”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반짝인다·
“본래 그리 안 좋은 상은 아닙니다· 다만 타고나기를 재복과 명예욕을 타고 나서 회사 생활을 해도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텐데 광대가 약하고 상이 앞으로 기울어져 있어 인덕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화는 같이 피하려 해도 복은 혼자 누리려고 하니 사람이 따르지 않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이라고 할까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언젠가 크게 뒤통수를 맞을 상입니다·”
연희는 영훈의 말이 끝나자마자 코웃음을 쳤다·
“내 저 새끼 저럴줄 알았지· 그러니까 한 마디로 가까이하면 안 될 놈이라는 거죠?”
“아니 뭐···”
그리고 나서 나오는 말이 걸작이다·
“당신 사람 좀 보네· 인정·”
< 신입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다(4)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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