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이 끝나고···(1) >
“어? 안녕하세요?”
“어머!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여기서 뵐 줄이야·”
연희도 영훈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그녀를 알아보곤 바로 인사한다·
문숙은 연희의 옷을 만지며 감탄했다·
“연희는 어쩜 그렇게 예뻐? 옷도 너무 예쁘다· 여기서 산 거야?”
“여기는 아니고 청담동 매장에서 산 거예요· 그런데 여기 입점한 브랜드 옷이라서 여기서도 살 수 있을 거예요·”
“우리 딸도 이런 옷 좀 입고 다니지 걔는 하여튼 남자 같은 옷만 입고 다녀서 큰일이야· 엄마는 잘 계시고?”
“그럼요· 요즘 정신없어요·”
“그래 정신없을 만하지· 최 상무는 잘 지냈어요?”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미르 밧찬이 그 뒤에 최 상무가 참 인상적인 사람이라고 하더라구요· 둘이 무슨 이야기를 했기에 그래요? 그 사람 자존심도 강하고 자국인에 대한 자부심도 강해서 어지간하면 없는 자리에서 칭찬을 하지는 않거든요· 항상 추켜세우는 사람은 인도인이고 자랑하는 건 인도 기업이니까요·”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그의 그런 성정은 이미 사주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모르고 있었던 척 했다·
“내가 종종 그의 아내를 만나기 위해 방문할 때면 당신에 대해 스치듯이 물어보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남편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도 최 상무를 궁금해 하더라구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영훈이 쑥쓰러워하는데 연희가 물었다·
“아주머니는 어떤 거 보러 오셨어요?”
“난 옷 몇 개랑 가방 악세서리 몇 개? 호호··· 너무 많지?”
“오늘 엄청 많이 쓰시겠는데요?”
“실은 얼마 있다가 남편이 있는 인도에 가야 하거든· 그래서 가기 전에 선물을 좀 사려구 우리 딸 줄 것도 사고 아미르 밧찬네 부부 선물도 사고· 그리고 우리 아들 알지?”
“네· 우명그룹 다닌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인도 대사관에서 만났을 때 들었다·
“그래 맞아· 이번에 우리 아들이 결혼하게 됐어·”
“어머! 축하드려요~”
“호호 고마워· 그래서 우리 며늘아기 될 애한테 옷 하나 해주려구·”
그러면서 자신의 옆에 있는 여자의 손을 슬며시 끌어온다·
이십대 중반의 여자였는데 다소곳하게 앉아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어머~ 이분이···?”
연희가 놀라니 문숙이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며느리 될 아이야· 인사해· 내 가장 친한 친구가 현진물산 사장이라고 말했지? 그 친구 딸이야·”
“안녕하세요· 오민영이에요· 전 아직 학생이에요·”
“안녕하세요· 저 임연희라고 해요· 여기는 내 남자친구구요· 둘 다 현진물산에서 일하고 있어요· 학생이요? 어떤 쪽 공부하시는데요?”
“미술 전공했어요·”
“어머 잘 어울리네요·”
연희는 그렇게까지 말하고는 문숙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주머니 너~무 스윗하시다·”
“호호~ 스윗은 무슨··· 그냥 내가 사주고 싶었는데 우리 나이대 물건은 잘 알아도 젊은 애들 취향은 잘 모르겠어· 우리 딸은 너처럼 이렇게 하늘하늘 예쁜 옷을 즐겨 입는 게 아니라서 나도 보는 눈이 없을까봐 쉽게 고르지를 못하겠다니까· 그래서 직접 데리고 왔지· 자기꺼 자기가 고르면 본인도 좋고 나도 고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고·”
“아주머니 오늘 돈 많이 쓰시겠네요?”
“돈은 네가 더 쓰지 않겠어? 너랑 나랑 스케일이 다르다 얘·”
사실 연희는 전에 엄마 친구로 봤기 때문에 애써 다정하게 말을 섞고는 있었지만 내심 놀라고 있었다·
엄마에게 문숙에 대해 잘 듣지 못했기에 그녀가 어느 정도로 부자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백화점 VIP파티에 참석한 걸 보면 남편이 공무원임에도 상당한 재력가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1년에 최소 2억 이상 구매한 VIP가 아니면 오늘 자리에는 참석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럼 즐거운 쇼핑 되세요·”
“그래 너도 많이 사 가렴~”
“네·”
그렇게 연희가 고개를 돌리니 영훈이 멀리서 다가오는 모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욱한 연희가 영훈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어 왜요?”
영훈이 번쩍 놀라 쳐다보자 연희가 심통난 표정으로 말했다·
“모델 옷 보라고 데리고 왔는데 얼굴이랑 몸매 보느라 정신없는 것 같아서요·”
“아··· 그게 아니라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요·”
“무슨 생각이요?”
영훈은 연희의 귀에 입을 가져다대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우리 뒤에 있던 여자··· 미술쪽에 있을 상이 아닌 것 같아서요·”
연희는 뾰로통했던 표정을 풀고 눈을 빛내며 속삭였다·
아무래도 재미난 장난감을 찾은 어린아이처럼 흥미가 생겼나보다·
“그것도 얼굴로 보여요? 아 이러지 말고 자리를 옮길까요?”
“그럽시다·”
연희는 영훈을 데리고 다른 음식을 찾는 것처럼 자리를 슬쩍 피했다가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서 주변을 살핀 후 말했다·
“말해봐요·”
“으음··· 일단 사주를 보면 정확해질 텐데 일단 상만 보면 냉정하고 정확한 사람 같아요· 귓불이 없고 살이 없는데다가 눈보다 낮아서 학문적으로 대성할 사람이 아닙니다·”
“어? 아까 학생이라고 했잖아요?”
“미술 전공으로 학사나 석사 따위를 받으려는 건지 아니면 다른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부를 하려면 미술이 아닌 쪽을 공부할 확률이 높고 해도 그리 좋은 성취를 얻지 못할 상이라는 거죠· 그리고 일월각이라고 불리는 이마 양쪽이 실하지 못해요· 부모 복이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주머니가 상대쪽 집안을 보지 않고 결혼을 생각하는 거겠네요?”
“아마도? 그런데 아까 그 아주머니 성격이 참 좋아요·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자라서 곤란을 겪었던 적도 많지 않았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주머니 귀가 얇을 거라는 말이에요?”
“네· 뭐 우리 일 아니니까 신경 끕시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할 정도면 돈도 상당히 많을 거고 조금 손해를 본다고 해도 그게 다 저 여자의 복 아니겠어요?”
“속아서 결혼한 거면 나중에 아주머니가 얼마나 속상하시겠어요?”
“연희씨 집안의 차이가 나서 뭘 얼마나 손해를 볼 것 같아요? 원래 집안의 복은 초년을 넘어가지 못하는 법입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중년이 되면 어떤 부모를 만났든 결국 자신의 복은 자신이 만들어가기 때문이에요·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은 집안을 만난 것보다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럼 저 여자가 좋은 복을 가졌나요?”
“하하 상만 보고 어떻게 다 알겠어요? 사주를 봐야지· 우린 신경 끄고 옷이나 봅시다· 솔직히 오기 전에는 별 기대 안 했는데 와서 보니까 좋네요· 이래서 돈 많은 게 좋은 건가 봅니다·”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핑거푸드는 영훈의 입에 딱 맞았다·
이런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으며 명품을 입은 모델들을 보고 있자니 그저 빈손으로 간다고 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연희는 영훈의 말을 듣고 괜히 신경쓰는 것 같았지만 영훈은 아예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그렇게 모델들의 워킹이 거의 끝나갈 때쯤 그랜드 백화점 송은진 실장이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며 은근히 판매를 독려하는 게 눈에 보였다·
연희도 송 실장과 몇 마디 대화를 하며 이것저것 골라대는데 솔직히 영훈은 무엇을 사는지도 잘 몰랐다·
그저 옆에서 고래를 끄덕이며 ‘그거 괜찮던데요?’ ‘연희 씨랑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따위의 맞장구나 쳐주었다·
그렇게 쇼핑을 마무리할 때 정문숙과 그녀의 며느리 될 여자가 양손에 쇼핑백 몇 개를 들고 다가왔다·
“많이 샀어?”
“하하 아직 고민중이에요·”
“그래? 우린 이만 가려구·”
그때 오십대 중반 쯤 되는 여자가 와인을 들고 가다가 순간적으로 발을 접질려 휘청였다·
“어머! 괜찮아요?”
손에 들린 와인잔이 엎어지고 하필 그 와인이 문숙의 며느리에게 엎질러졌다·
“아이고 이를 어째···”
하필 코트도 하얀색이었는데 한쪽 면이 보기 싫게 얼룩져버렸다·
오민영의 얼굴은 일그러졌지만 이내 침착하게 대응했다·
“괜찮아요· 세탁 맡기면 돼요·”
“미안해서 어떻게 해요? 세탁비는 내가 줄게요·”
실수로 와인을 엎지른 오십대 여자는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꺼내 내민다·
“금액이 너무 커요·”
“괜찮아요· 내가 미안해서 그래·”
놀랍게도 수표는 백만 원 짜리였다·
그녀는 미안함도 미안함이지만 사람도 많은데 자신이 실수해서 이목을 모은 것에 더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받는다 안 받는다 몇 번 실랑이를 하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받는데 그때 그녀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머리에 가려서 아래만 보였던 귀가 위쪽이 드러난 순간 영훈은 흠칫 놀랐다·
이때 백화점 담당자가 다가와 오늘 판매가 안 된 옷 한 개를 서비스로 드리겠다고 하며 대신 사과했다·
옷 하나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것이기에 오민영은 놀라워 하면서도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 백화점 직원을 따라나섰다·
문숙은 이런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나마 일이 잘 처리돼서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다· 그래도 세탁비에 옷도 하나 얻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괜히 며느리 데리고 왔다가 미안해질 뻔했잖아·”
“그러게요· 얼마나 다행이에요·”
연희가 웃으며 그녀를 달랠 때 영훈이 말했다·
“혹시 며느님 되실 분은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네? 우리 민영이요?”
“네·”
다른 사람의 일에 그것도 혼사에 섣부르게 끼어드는 일은 삼가야 하는 걸 모를 영훈이 아니기에 연희는 놀라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우리 아들이···”
“으음··· 미술 전공하는 건 맞는 건가요?”
“왜 그걸 물어요?”
“오해하지는 마세요· 그냥 어디서 본 것 같아서 그럽니다·”
“어디서 봤기에 그래요?”
“아닙니다· 제가 착각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저기 말을 잘 해줘야···”
“아니요 확실하지 않은 걸 꺼내면 서로 기분이 안 좋을 겁니다· 말을 꺼내는 것도 실례인 상황이라서요·”
도대체 어디서 봤기에 말을 꺼내는 것도 실례라는 것일까?
이렇게 되니 문숙은 더욱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말을 했으면 끝까지 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말씀드렸듯이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남의 인생을 결론지을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혹시··· 그녀가 어느 대학에서 공부하는지 그리고 생년월일만 알려 주시면 제가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기업 상무가 혹시 몰라 신원을 확인해보겠다고 하니 문숙으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문숙도 그녀를 잘 모른다는데 있었다·
“생년월일? 그건 지금 나도 모르는데···”
“지금 안 보내주셔도 됩니다· 나중에 알게 되시면 연희 씨 통해서 문자로 보내주시면 확인해보겠습니다· 아 혹시나 직접 물어보는 실수를 하시면 안 됩니다· 모른척 하세요·”
“그 그럴게요·”
문숙은 떨리는 가슴을 내리 누르고 심호흡을 하며 애써 진정하려고 힘썼다·
직위로 보나 연희와의 관계로 보나 장난으로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으니 아무 이유없이 저러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조금 있다가 민영이 가방 하나를 더 가지고 왔고 문숙은 애써 미소를 보이며 그녀를 데리고 백화점을 빠져 나갔다·
영훈은 역시나 양 손 가득 쇼핑백을 든 연희에게서 백을 받아 쥐며 백화점을 나와 차에 짐을 실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아까까지만 해도 남의 일이니까 신경 끄자면서요?”
“신경 끄려고 했는데 내가 상을 제대로 못 봤습니다·”
“네? 왜요?”
“머리가 귀 위쪽을 가리고 있어서 못 봤는데 아까 머리를 넘기면서 확인할 수 있었어요· 좋지 않은 상이에요·”
“네? 어떻게요?”
“그저 귀에 살이 없고 볼이 없으면 감정보다 이성에 충실한 사람일 뿐인데 귀 위쪽인 이각이 뾰족하고 날이 서 있습니다· 관상에서 귀는 마음을 뜻해요· 마음에 날이 서 있는 여자예요·”
“날이 서 있다구요?”
“본래 관상은 어느 한 곳만을 보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여러 부분을 같이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데 이각이 날이 서 있으니 그녀의 눈도 다시 봐야 해요· 본래 눈이 크면 보기에는 예쁘지만 마음이 약하고 정기가 약하다고 보는데 귀와 같이 보니 물고기 눈(魚眼)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어안은 흉폭하고 사나워
요·”
“뭐예요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싸이코패스?”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결코 좋은 상은 아닙니다· 혹시 아는 형사 있어요?”
“생년월일은 사주를 보려는 게 아니었어요?”
“허··· 이 사람은 사주를 봐야 하는 게 아니라 범죄이력부터 조회해야 할 사람이에요·”
< 총선이 끝나고···(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