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이 끝나고···(5) >
총선 하루 전
군산시장 보궐선거를 하루 앞두고 조재민 의원 선거사무소는 선거를 앞둔 긴장감 대신 들뜨고 즐거운 분위기로 물들어 있었다·
이미 자체 조사결과 지지율이 89%를 넘어가는 압도적인 상황이니 그저 빨리 내일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선거사무소에 한 사람이 방문했다·
행색을 보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시내에 나가 돌아다니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행색의 아주머니인데 그런데도 그녀가 조재민 의원을 만날 수 있었던 건 그녀에게서 풍기는 묘한 카리스마 때문이었다·
“조재민 의원님을 만나 뵈려고 왔어요·”
“혹시 만날 약속을 하셨습니까?”
사무소 직원의 물음에 그녀의 대답이 기가 막혔다·
“감히 누구한테 약속했냐 안 했냐 물어요? 강금원 원내대표도 내가 만나자고 하면 만사 제치고 달려오는데· 가서 전해요· 임복희가 왔다고·”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느 간 큰 당직자가 감히 의원에게 보고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당직자의 말을 들은 조재민 의원의 눈이 번쩍 떠졌다·
“임복희라고?”
“네· 그렇게 말했습니다·”
“얼른 모시라고 해·”
조재민 의원은 당직자가 나가고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임복희·
정치권에서는 아주 유명한 점쟁이다·
여당이고 야당이고를 떠나 이 여자가 찍은 정치인은 최소 대권후보에서 대권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이 바닥에 떠도는 소문이었다·
그 소문이 어디까지 맞는지는 몰라도 최소 그녀를 찾는 손님이 부지기수라는 건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군산 바닥을 휘어잡던 강주원 의원이 그녀의 한 마디에 대권의 꿈을 접고 군산 바닥에 눌러앉은 건 너무도 유명한 일화니까·
당신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했다나?
감히 국회의원에게 그런 말을 한 그녀도 웃겼지만 그 한 마디에 꿈을 접은 강 의원도 웃기긴 했다·
하지만 반대로 도대체 어떻기에 엄청난 권력을 잡았던 국회의원들과 재벌들이 그녀의 한 마디에 벌벌 떠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잠시 후 붉은 숄로 상체를 감싼 중년 여인이 들어왔다·
조재민 의원은 그녀를 본 순간 확실히 이 여인이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직감했다·
눈빛부터 달랐다·
분명 크지 않은 눈인데 이상하게도 부리부리하게 느껴지는 저 눈부터가 사람을 압도한다·
“절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고요?”
그녀는 조재민 의원의 물음에 대답 없이 자리에 척 앉고는 씩 웃으며 말한다·
“얼굴이 좋네·”
“네?”
“신령님이 그러시네· 얼굴에 빛이 가득하대·”
“제가요?”
조재민 의원은 속으로 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여인의 다음 말에 웃음을 지웠다·
“어릴 때 어머니가 불공을 많이 드리셨네· 불심이 깊으셨어· 그치?”
어머니는 대학 다닐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어느 종교를 믿고 있었는지는 어느 인터뷰에서도 밝힌 적이 없었다·
숨긴 게 아니라 어머니가 어떤 종교를 믿고 있었는지 물어본 사람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네··· 그러셨죠·”
지금도 기억난다·
아픈 몸을 이끌고 아들을 위해 쉼 없이 산을 오르던 어머니의 모습·
“당시에는 어리석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 공덕 덕분에 앞길이 이렇게 순탄하게 펼쳐진 거야· 어머니에게 평생 감사하고 살아·”
“그럼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 즈음해서 자꾸 꿈에 조 의원님이 나오는 거야· 이상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어지간해서는 손님으로 온 적도 없는 사람이 꿈에 잘 안 나타나거든· 그러다 뉴스 보고 알았어·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이 당신이잖아 글쎄·”
“·······”
“내가 그래서 조 의원님을 아주 유심히 살펴봤어· 그러니까 신령님이 답을 주시더라고·”
그녀는 슬쩍 상체를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우리 의원님이 아주 대단한 분이 되실 거라고 말씀하시는 거야·”
“아··· 그런가요?”
“주변에 인재가 구름처럼 모여들 인물인데 특히 얼마 전에 유방이 장자방을 만나듯 인재를 만났다고 하시네?”
여기까지 듣고 나니 조재민 의원은 속으로 감탄하고야 말았다·
현진물산 최영훈 상무를 만난 것은 실로 그 스스로가 생각해도 기가 찬 인연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 의원은 절대 내색하지 않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원래 정치를 하게 되면 많은 사람이 도와주고자 하는 법이죠· 제가 인덕이 부족하지 않아 재주 있는 분들이 많이 도와주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개소리하지 말라는 듯 비웃는다·
“조 의원님 내 앞에서는 허세 부리지 말아요· 강금원 원내대표 민구상 당 대표 저기 통일평화당 사선 오선 한 중진 의원들 전부 나한테는 거짓말 안 해· 왜 거짓말 안 할까? 거짓말하면 신령님이 좋아하지 않으시거든·”
“········”
말도 안 되는 소리도 저렇게 당당하게 하면 뭔가 있어 보이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미 지금까지 정치판에 굴러오면서 저 여자에 대한 소문을 꽤 많이 들었으니 그녀의 말이 아주 헛소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신령님이 그러셔· 유방이 장자방을 얻었는데 소하를 얻지 못했다고·”
“소하요?”
“우리 조 의원님 내가 왜 찾아왔을 거라고 생각해?”
이놈의 점쟁이들은 신을 받자마자 존댓말을 하면 죽는다고 배운 건지 하여간에 혓바닥들이 전부 반토막이다·
욱하고 올라온 화를 살포시 억누르고 말했다·
“글쎄요· 짐작이 잘 안 되는군요·”
“내가 당신 대통령 만들어주려고·”
“네?”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
허풍도 적당히 쳐야 어울려줄 만한데 대통령은 과해도 너무 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유를 모르겠네요· 왜 직접 찾아와서 이러시는지····”
“점쟁이가 복채 받는 거 말고 관심 있을 게 뭐가 있어?”
이런저런 핑계로 말을 돌렸다면 오히려 더 믿음이 안 갔을거다·
“그럼 제가 복채 드려야 합니까?”
“당연하지· 복채는 신령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올려야 해·”
그것도 선불이란다·
갈수록 기가 찬다·
“그런데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럼· 지금 전화 걸어서 물어봐· 아까 내가 언급한 사람들 아무나 잡고 물어봐서 임복희한테 점을 보려고 하는데 믿을 만한 사람인지 순 뻥쟁이에 사기꾼인지 물어보라고· 얼른·”
“·······”
“조 의원님 정치하려면 뻔뻔해야 해· 내가 전화하라고 할 때 바로 해야지· 그래도 그릇이 크니까 뻔뻔하지 못한 게 오히려 더 득이 될 것 같기는 하네·”
그녀는 피식 웃더니 바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강 대표님 나 임복희야· 응 다른 건 아니고 오늘 내가 조재민 의원 좀 만나러 왔어· 우리 조 의원 잘 좀 봐줘요· 내가 봤을 때 크게 될 분이야· 응 같이 있지· 잠깐만·”
그녀는 조 의원에게 받으라며 핸드폰을 건넸다·
조 의원은 얼떨떨한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조 의원?]
강금원 원내대표다·
설마 했는데 정말 강 대표와 전화통화까지 이렇게 편히 하는 사이일 줄이야····
“네 대표님·”
[임 씨가 자네를 좋게 봤나 봐? 잘해보라고· 안 그래도 자네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야· 내일 선거 잘 치르고 언제 서울 올라와서 당선축하주나 한번 쏴·]
“물론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 잘 잡아봐· 그 여자 기가 막히게 신통하거든· 그런데 돈 욕심이 좀 많아· 그게 단점이지만 그래서 뒤끝도 없어·]
“잘 알겠습니다·”
[고생해·]
강 대표는 그렇게 말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설마 해서 다시 번호를 살펴보니 정말 강 대표 핸드폰 번호가 맞았다·
임복희는 기다렸다는 듯 가방에서 계좌번호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천만 원이에요·”
조재민 의원은 순간 벌떡 일어날 뻔했다·
해봐야 백만 원 정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천만 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르다니····
그런데 뭐 하고 있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그녈 보고 있자니 왠지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국 은행 앱을 통해 종이에 적힌 계좌번호로 돈을 보냈다·
“보냈습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방에서 사진 하나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고는 말했다·
“신령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조 의원님은 배짱도 있고 그릇도 큰데 주변에 사람이 부족하시대· 그러면서 여기 이 사람이 조 의원님 옆에 있으면 골치 아픈 일은 앓던 이를 빼듯 시원해지고 험난한 일은 조자룡이 백만 대군을 돌파하듯 뚫어낼 거라고 말씀하셨어·”
“이 사람은 누굽니까?”
“강윤기라고 광주에서 작은 건설회사 하는 사람이야· 쓰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인데 우리 조 의원님이 어떻게 쓸지는 알아서 결정해· 종종 물어볼 게 있을 때 찾아와·”
그녀는 주소가 적힌 명함 하나를 탁자에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 몇 마디로 천만 원을 받아내는 그녀의 카리스마가 놀랍기도 하고 이 상황에 동조한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그러죠·”
“그리고··· 그 장자방이 누구야?”
“네? 왜 그러십니까?”
“궁금하니까· 내가 점쟁이이기는 해도 모든 걸 다 알지는 못해· 다 알았으면 매주 로또 맞고 떵떵거리면서 살지 뭐하러 다리 아프게 여기까지 와?”
“회사원입니다·”
“직장인?”
“네·”
“언제 자리 한번 잡아봐· 내가 그 사람 제대로 봐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녀가 나가고 나자 조 의원은 황당한 웃음을 짓고는 사진 속 남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천만 원 까짓거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이 건설회사 사장이라는 사람이 그녀에게 어떤 로비를 해서 자신에게 추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강금원 원내대표까지 움직여서 추천했다면 그 점쟁이의 말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흥미가 동했다·
조재민 의원은 보좌관을 불러 말했다·
“여기 이 사람 알아봐· 뭐 하는 인간인지 이상한 놈은 아닌지 말이야·”
“알겠습니다·”
조만간 서울에 있는 최 상무를 한번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서울 시내의 한 고급 일식집·
인당 20만 원이 넘는 고급 일식집이었지만 이상하게 영훈은 비슷한 가격대의 소고기를 먹는 것에 비해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고승현 상무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호노다 세쿠는 이 집 음식이 마음에 드는지 연신 감탄사를 뱉어댔다·
아무래도 고급 스시는 자신의 입맛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고승현 상무가 말했다·
“호노다 씨도 아는 것처럼 우리가 이번에 해주조선해양을 인수하게 됐어요· 듣기로는 미쓰이 상선도 LNG선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아직 어떤 움직임을 보인 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어떠십니까?”
“뭐가 어떠냐는 말인가요?”
그는 제법 유창한 한국말로 되물었다·
“해주조선해양이면 세계에서 손꼽는 기술력을 가진 회사예요· 적당한 가격대에 발주할 용의가 있냐는 물음이었습니다·”
호노다 세쿠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국 상사인들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저돌적인 영업은 분명 일본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미안하지만 본사에서는 아직 외국에 LNG선을 발주할 계획이 없습니다·”
“미쓰비시 중공업에 LNG추진 페리선을 2척 발주한 건 미쓰비시 중공업의 기술력을 올려주려는 계획 아닙니까? 지금 당장 발주해도 최소 2년 후에나 인도받을 텐데 언제까지 느긋하게 기다리실 생각인가요? LNG 운송 시장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될 게 걱정되지 않는 겁니까?”
“본사에서 다 생각이 있지 않겠어요? 어떤 의도로 나와 만나려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만 번지수가 틀렸습니다· 전 그런 큰 프로젝트에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본사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어요·”
“허허··· 이것 참····”
“다만 아까 말씀하신 적당한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주신다면 본사에 보고해볼 수는 있습니다· 어느 정도를 생각하십니까?”
고승현 상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2370억입니다· 17만m³(입방미터)급 대형 선박으로 이 정도 가격이면····”
호노다 세쿠는 고 상무의 말을 끊었다·
“상무님 2300억이면 굳이 급하지 않은 본사에 제가 제시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닙니다· 전 본사에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빙그레 웃는 그에게 가만히 음식을 음미하고 있던 영훈이 말했다·
“그래요? 그럼 그만두세요· 여기 음식이 마음에 드시는 것 같으니 편히 드시고요· 상무님도 그만 하세요· 어차피 살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까·”
“어? 어 그래·”
고 상무는 당황하면서도 꺼내놓았던 홍보용 선박 자료를 그대로 가방에 집어넣었다·
흔들리는 호노다의 눈빛·
“최영훈 상무님이라고 하셨나요? 제가 듣기로는 해주조선해양에서 이번 HS물산의 인수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전혀 급하지 않은 것 같군요?”
영훈은 호노다 세쿠를 빤히 보다가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봐요 호노다 세쿠 씨·”
“네?”
“개수작 부리지 마세요·”
“이 이게 무슨····”
순간 호노다는 물론이고 고승현 상무까지 깜짝 놀랐다·
영훈은 얼빠진 표정의 호노다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요? 강일후 사장을 부추기면 우리가 급해서 떨이로라도 팔 거라고 생각했나요? 강 사장은 얼마를 먹기로 했어요? 한 척당 한··· 삼십 억 되나?”
고승현 상무는 놀라서 손을 가늘게 떠는 호노다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 총선이 끝나고···(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