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격수(3) >
영훈은 송 회장이 조재민 시장을 만나는 동안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로 주우진 의원의 선거 당시 기사를 보며 생각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예쁜 두 딸과 같이 지역구를 돌며 인사하는 그의 모습은 평택 일대에서 꽤 유명했다고 한다·
특히 두 딸이 한 명은 고대 법대 다른 한 명은 한양대 공대 출신으로 굉장히 똑똑한 데다 미인이라 유세에 함께 나오면 주우진 의원보다 두 딸과 악수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정도라고 했다·
그런 주우진 의원이 갑자기 봉선동 사업권을 걸고 넘어졌다·
지금껏 그 어디서도 문제가 제기된 적 없던 봉선동 아파트 건설을 딱 찍어서 들고 나왔는데 하필 그 시기도 이상했다·
선거기간이었다면 그러려니 할 텐데 총선과 보궐선거가 끝난 이후에 다리를 걸고자 나온 게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웠다·
그럼 애초부터 주우진 의원이 조재민 시장을 노리고 있었다고 볼 수 없던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누군가 주우진 의원에게 조재민 시장의 약점을 제공하고 그의 뒤통수를 후려달라 부탁한 게 틀림없었다·
봉선동 사업에 대해 알고 있는 누군가가 말이다·
그때 딱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군산시청에서 봤던 영민주택 대표·
그 사람과 관련이 되어 있다면 일이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민희 씨 박병호 부장님도 불러줄래요?”
“네·”
잠시 후 박병호 부장이 조금은 의아한 눈빛으로 들어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Nodri Clare 인수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갑작스럽게 또 불렀기 때문이다·
“찾으셨습니까·”
“네· 다름 아니라 혹시 정치인들 정보도 기조실에서 관리하고 있는 게 있나요?”
“정치인들요?”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왜 드라마 같은 거 보면 대기업 미래전략실 같은 데서 정치인들 관리도 하고 그러잖아요· 혹시나 우리 회사도 그런 게 있는지 궁금해서요·”
박 부장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우리 회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진중공업 경영기획실은 상무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일을 했었습니다·”
“아··· 현진중공업에서요?”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회사 기조실은 그룹 핵심인 현진중공업 경영기획실에 비해 많은 게 부족했습니다· 막상 중요한 사람을 만나려고 해도 권한이 부족해서 만나지 못한다거나 일을 진행하지 못한 적도 많았거든요· 그런 일은 대개 우리 대신에 현진중공업 경영기획실에서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아마 정치권
에 관한 정보는 그쪽에서 가지고 있을 겁니다·”
“흐음····”
“주우진 의원이 낸 기사 때문에 그러십니까?”
“맞아요·”
“주우진 의원과 만나고 싶으신 건가요?”
“어색하지 않게 만날 수 있을까요?”
“주우진 의원이 서울대인데 강노식 부사장님이 서울대 출신입니다· 제가 얼핏 듣기로 동문이라고 들었는데 자세한 건 부사장님께 여쭤보시는 게 어떨까요?”
“어? 강노식 실장님이 서울대 출신이에요? 난 연대인 줄 알고 있었네·”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아··· 아니에요·”
전에 양철기 전무 라인이 연대 라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에는 강노식 실장이 양철기 전무 라인이었기에 당연히 연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서울대였나보다·
“제가 부사장실로 연락해볼까요?”
“제가 직접 올라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도움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영훈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부사장실로 올라갔다·
다행스럽게도 강노식 부사장은 자리를 비우지 않았고 바로 만날 수 있었다·
이혼의 고통을 이겨낸 강 부사장은 요 몇 달 새에 얼굴이 그렇게 좋아졌을 수가 없었다·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할까?
“요즘 왜 이렇게 바빠? 회사에서 제일 바쁜 것 같아?”
“저보다 안 바쁜 분들 없습니다· 부사장님이 제일 한가해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하긴 부사장 다니까 일보다 누구 만나는 일이 더 많아· 한가해지긴 한 것 같아· 앉아· 차 마실래?”
“됐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차 마시면 물배 차서 밥도 못 먹을 겁니다·”
“나도 그렇더라· 그래 그냥 인사차라도 한번 오지 않더니 무슨 일로 찾아왔어?”
“조재민 시장 때문에 왔습니다·”
“오늘 그 기사 때문에? 그건 내가 도와줄 일이 없을 건데? 최 상무가 다 컨트롤 했잖아·”
“주우진 의원 때문에요·”
“오늘 기사 낸 국회의원 말이지? 그 사람은 왜?”
“만나고 싶어서요·”
“직접? 쉽게 생각하지 마· 조재민 시장을 노리고 있는데 HS그룹 핵심 관계자인 네가 만나면 진짜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하고 더 달려들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둘 수도 없어서요·”
“왜?”
“조 시장 이미지에 흠집이 생기면 우리도 좋지 않습니다·”
강노식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회장님이랑 네가 조 시장을 밀고 있으니 이미지에 흠집 가면 우리도 손해이긴 하지·”
“그리고 봉선동 사업에 흠집을 내서 회사 이미지에도 흠집이 생기면 나중에 국가가 발주하는 사업에서 큰 손해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깊게 생각하지 마· 사람들 그렇게 세심하게 기억하지 않아· 알잖아?”
“그래도 우리가 정경유착 그룹으로 인식이 박히는 건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직접 만나서 어쩌게?”
“대화를 나눠봐야죠·”
“안 통할 텐데?”
“안 통할 거라고 보십니까?”
영훈이 빙그레 웃자 강노식 부사장이 인상을 찌푸린다·
“까먹고 있었네· 따지고 보면 예전에 네가 날 양 전무에게서 돌아서게 만든 게 더 말이 안 되긴 했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다고 최 상무한테 충고를 하려고 했어·”
“절 도와주려고 하신 건데요·”
강노식 부사장은 민망한 표정으로 손을 젓더니 말했다·
“어떻게 도와주면 돼?”
“서울대 동문이시라면서요? 박병호 부장에게 들었습니다·”
“맞아· 자리 마련해줘?”
“가능하다면요·”
“동문이기는 한데··· 국회의원 돼서 어찌나 거들먹거리는지 내가 말 한번 안 붙였거든· 연락하면 꽤 놀랄 거야·”
“그럼 득의만만해할 수 있겠네요·”
“흐흐··· 그렇겠지· 우리가 발등에 불 떨어져서 자존심 굽혀가며 연락하는 거니 아주 통쾌해할 거야·”
씁쓸한 강 부사장의 얼굴·
진짜 연락하기 싫어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부탁드립니다·”
“기다려봐·”
강 부사장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오랜만이다· 다른 건 아니고 너 우진이 연락처 알지? 주우진이· 그래 84학번 주우진· 국회의원 말이야· 갑자기 왜는··· 연락처 문자로 좀 찍어줘 봐· 새끼 국회의원 연락처 민감한 거 내가 모르겠냐? 시끄럽고 빨리 보내줘· 응·”
전화를 끊은 강 부사장이 말했다·
“동문회 부회장이야· 아마 내가 우진이 연락처를 왜 물었는지 궁금해서 미쳐버리고 있을걸?”
“발이 넓으신 분이네요?”
“응· 그런데 이 새끼가 좀 골때리는 놈이야·”
“어떻게 골때리는 분입니까?”
“동문회 부회장인데 서울대 출신이 아니거든·”
“네?”
“서울대 법학과라고 속이고 4년을 학교 다닌 놈이야· 그런데 나중에 서울대 아닌 거 뽀록났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동문회를 나오고 그러다가 결국 동문회 부회장까지 하고 있어·”
“와··· 대단하신 분이네요·”
“학벌만 속였지 딱히 우리한테 피해준 것도 없고 사람이 워낙 좋아서 누구 하나 이놈 싫어하는 놈이 없었어· 그래서 동문회 부회장도 하고 지금도 누군가 무슨 일 생기면 가장 먼저 이놈을 찾아· 언제 한번 소개시켜줄게·”
“기대되네요·”
그때 강 부사장은 문자로 도착된 번호를 보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주 의원 반가워· 나 강노식이야· 갑자기 연락해서 놀랐나? 놀라기는 우리가 더 놀랐지· 오늘 저녁 어때?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는데· 에헤이~ 빼지 말자고· 적어도 우리한테 주 의원을 도울 수 있는 기회라도 줘야지· 그럼그럼~ 오케이· 거기서 보자고·”
강 부사장이 전화를 끊자 영훈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회삿일에 감사하고 말게 어딨나? 그런데 이 녀석 원래 학교 다닐 때부터 성격이 보통 아니었어· 지는 거 싫어하고 어찌나 까탈스러운지 말도 못 해· 말 한마디 잘못하면 크게 고생할 수 있으니까 조심하고·”
“알겠습니다·”
“후··· 어떻게? 같이 가?”
“아닙니다· 저 혼자 만나겠습니다·”
“그래· 괜히 내가 후달리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괜히 국회의원 잘못 건드렸다가 뒤에 올 후폭풍을 걱정하는 그였다·
“지금부터 출발해야 늦지 않을 것 같아요·”
“어 가봐· 약속장소는 문자로 보내줄게·”
영훈은 부사장실을 나와 곧바로 차를 타고 평택으로 출발했다·
혹시나 차가 막혀 약속시간에 늦기라도 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는데 생각보다 통행량이 원활해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올 수 있었다·
약속장소는 의외로 서민적인 김치찌개집이었는데 안에 들어가니 그래도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방이 있었다·
일찍 도착해서 나쁠 건 없으니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기다리는데 약속 시간을 훌쩍 넘어 1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다·
종업원이 중간중간 들락거리며 언제 주문하는지 눈치를 주는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먼저 시켰다·
그래도 맛집이기는 한 건지 밥 한 공기 뚝딱하며 배부르게 먹는 와중에 문이 열리고 주우진 의원이 들어섰다·
먼저 음식을 먹고 있는 영훈의 모습에 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오셨습니까·”
“자네는 누군가?”
“반갑습니다· HS물산 기획조정실 최영훈 상무라고 합니다·”
영훈은 명함 하나 꺼내주고는 악수를 청했다·
주우진 의원은 기분 나쁘다는 티를 팍팍 내려는지 명함도 받지 않고 영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영훈은 오히려 빙긋 웃으며 말했다·
“팔 떨어지겠습니다 의원님·”
“크흠····”
그는 억지로 악수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반쯤 사라진 찌개를 보고는 말했다·
“인내심이 부족한가 보군·”
“제가 다른 건 다 참아도 허기는 못 참아서요·”
“강노식이는 어디 가고 자네가 왔나?”
“사실 의원님을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저희 부사장님이 아니라 저였습니다·”
“어째서?”
“이유는 짐작하시지 않으십니까?”
“말 돌리지 말고 정확하게 이야기하게· 난 쓸데없이 빙빙 돌리는 사람을 싫어한다네·”
“봉선동 사업 말입니다· 저희는 조재민 시장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의원님이 그런 오해를 하셔서 언론에 알리시니 회사로서는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두고 볼 수 없으면?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영훈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협박하다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대화로 오해를 풀어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세금 꼬박꼬박 내는 시민으로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에게 잘못된 사실관계를 정정하고 싶어 대화를 청하는 건 문제없지 않습니까?”
“그럼 말해보게· 들어나 보지·”
“말씀드렸듯이 저희는 조재민 시장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게 끝인가?”
“그럼 뭐가 더 있어야 하는 건가요?”
“조 시장과 아무 관계가 없음을 증명하는 증거도 없이?”
“없다는 걸 어떻게 증명합니까? 그럼 시장님은 저희가 조 시장과 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가지고 계십니까?”
주우진 의원은 대답 없이 영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고작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날 불러냈다 이건가?”
“고작이라뇨? 오해를 풀고 싶었을 뿐입니다·”
“실망스럽군· 한심해· 강노식도 그렇고 자네는 뭐··· 말할 것도 없군·”
“아 그리고 추가로 한 가지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
“언론에 더이상 HS그룹을 가지고 부정적으로 거론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증거도 없이 그렇게 몰아세우면 열심히 기업을 운영하는 회사 입장에서 무척 곤란하니까요·”
“또 협박인가?”
“무슨 말만 하면 다 협박으로 받아들이시는군요· 그저 부탁드리는 겁니다·”
“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야· 불의를 보고 넘어갈 수는 없지·”
“도대체 우리 회사가 국민들에게 무슨 피해를 줬다고 이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쓰러져가는 군산 시민들을 위해 조선소까지 인수해서 살려 보겠다고 밤낮없이 일하는 우리입니다·”
“흥! 뭔가 떨어지는 게 있으니 인수했겠지· 군산조선소? 두고 봐· 조 시장은 물론이고 자네들 회사 내가 그냥 두지 않을 거야· 알겠나? 그리고 다음에는 이런 의미 없는 만남 청하지 말게·”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방을 나갔다·
영훈은 나가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밥 한공기를 추가해 배부르게 저녁을 마치곤 느긋한 발걸음으로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차에 타서 박병호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팅은 끝났습니까?]
“네 한 가지만 부탁드릴게요·”
[말씀하세요·]
“주우진 의원이 이번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됐나요?”
[정확하지는 않은데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경기도 지역에서 압도적 당선은 사실상 힘드니까요·]
“그럼 혹시··· 선거 과정에서 부정적인 요소가 있었는지 한번 알아봐 주실래요?”
[뭐 발견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그냥 한번 찾아봐 주세요· 혹시 모르는 거니까·”
[알겠습니다·]
영훈은 전화를 끊고 차를 출발시켰다·
< 저격수(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