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업 2팀의 사람들(1) >
2박 3일의 오리엔테이션 행사가 끝났다·
조원들은 아쉬워하며 회사에서 만나면 잘해보자며 연락처를 교환했다·
조장인 이윤지의 주도로 단톡방도 개설했다·
영훈은 별 중요하지도 않은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동조하고 자신도 그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이런 상황이 즐겁기 그지 없었다·
산에 있을 때 인터넷으로 게임과 드라마 영화를 보며 나름 즐겁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소통하며 대화를 나누는 건 그것과는 다른 즐거움과 활력을 준다는 걸 깨달았다·
“총각 출근해? 가서 우리딸 만나면 꼭 인사하고·”
“네· 그래야죠·”
주인 아주머니의 안부(?)를 받으며 드디어 시작한 첫 출근·
오리엔테이션에서 교육받은 대로 가장 먼저 인사과에 도착하니 이미 교육 때 봤었던 신입사원들이 긴장된 얼굴로 대기하고 있는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가장 먼저 눈에 띈 이는 커다란 덩치의 장가람 사원이었다·
맞춤 양복점에서 원단 꽤나 들었겠다고 생각이 저절로 드는 이 친구는 역시나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도 땀을 훔치고 있었다·
“오셨어요?”
“일찍 오셨네요·”
“아닙니다· 저도 온지 5분 밖에 안 됩니다· 후우··· 긴장되네요·”
그는 가슴을 누르며 심호흡을 했다·
어떤 곳으로 발령을 받게 될지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되는 것 같다·
“저도 긴장됩니다· 다른 분들은 아직 안 오셨나봐요·”
단톡방에는 오늘 첫 출근에 대한 기대로 아침부터 수다스러웠다·
“박찬기 씨는 벌써 오셔서 사원증 받고 배정받은 곳으로 갔습니다· 화학 1팀이라고 하던데요·”
“아~”
그곳이 뭘 하는 곳인지는 잘 몰랐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척했다·
잠시 후 이윤지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헉헉··· 아직 안 늦었죠?”
“네· 저희도 계속 기다리는 중이에요·”
“후··· 다행이다·”
하얀 블라우스에 무릎 위로 올라오는 검은색 정장치마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인터넷에서만 보던 섹시한 여사원 바로 그 모습이었다·
땀을 닦고 있던 장가람이 말했다·
“들리는 말로는 우리 같이 식사했을 때 말 걸었던 사람 있잖아요? 연희 씨랑 친하다고 했던···”
“네· 왜요?”
윤지가 눈을 반짝인다·
“그 사람 기획조정실로 들어갔대요·”
“헐~ 정말요?”
“네· 임원 중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대요·”
윤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아주 찰나의 순간에 영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가람에게 물었다·
“또 기획조정실에 뽑힌 신입사원이 있어요?”
“그건 못 들었어요·”
“그렇구나···”
윤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길 때 임연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자켓과 하얀 정장 바지가 늘씬한 그녀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그녀는 별다른 말 없이 그저 업무처리에 정신 없는 인사과 직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녀의 모습 때문에 괜히 잡담하고 있던 자신들이 민망했는지 가람과 윤지는 입을 다물었다·
“장가람 씨 철강 1팀입니다·”
“이윤지 씨· IT영업팀입니다·”
그렇게 하나둘씩 사라지고 난 뒤 인사과에 남은 신입사원은 영훈과 연희 둘 뿐이었다·
인사과 오재준 대리는 먼저 임연희에게 사원증을 주며 말했다·
“임연희 씨는 영업 2팀입니다· 자리에 가서 본인 아이디랑 비번 설정하시면 됩니다· 교육시간에 배우셨죠?”
“네·”
연희가 나가자 오 대리가 불렀다·
“그리고 최영훈 씨?”
“네·”
영훈이 급히 다가가니 오 대리가 사원증을 내밀었다·
“영훈 씨도 영업 2팀입니다·”
“네? 아 그럼 같은 팀이···”
당황해서 물어보는데 오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두 분은 영업 2팀으로 배정됐습니다· 혹시 모르는 게 있으면 저기 임연희 씨에게 물어보시고 그래도 모르는게 있으면 선임에게 물어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모르면 상사에게 물어보는 게 아니라 동기인 연희에게 물어보라니···
오 대리는 그것도 불안한지 계속 주의를 줬다·
“엑셀 공부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엑셀 못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다른건 몰라도 엑셀은 완전히 마스터해야 합니다·”
“네· 알겠어요·”
“그리고 영어 공부 열심히 하세요· 특히 무역용어 모르시면 가장 기본인 운송장 하나 작성하기 힘듭니다· 아시겠죠?”
“알겠습니다·”
영훈은 생각보다 걱정이 많은 타입 같다고 물어보려다가 다물었다·
이게 어디 그의 성격 때문일까?
다 송 사장이 직접 뽑은 신입이 사고 치면 사장님에게 피해가 돌아올까 염려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걸 보면 확실히 송 사장이 한 달의 기한을 줬다는 걸 인사과 직원들은 모르고 있는 게 확실했다·
한 달만 있다가 나갈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이렇게 이것저것 알려주며 초조해하지도 않을 테니까·
“혹시 본인이 감당하지 못할 사고를 치면 나한테라도 연락을 하던지 찾아오세요· 사장님 귀에 당신이 사고 친 내용이 다이렉트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이제 끝인가요?”
“후··· 네· 끝이에요· 가보세요·”
“그런데 질문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임연희 씨는 뭡니까? 사장님 딸이라면서요? 저랑 같은 부서에 일하도록 하는 건 이유가 있는 겁니까?”
순간 인사과 전체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눈을 꿈뻑이던 오 대리를 대신해서 지금까지 계속 자신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던 인사과 과장이 나섰다·
“어떻게 알았어?”
“따님 분께서 직접 말씀하시던데요?”
민 과장은 얼마 없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다시 물었다·
“당신 말고 아는 사람 있나?”
“그 연희 씨 친구라는··· 누구더라? 안경끼고 홀쪽하게 생긴 사람 있지 않습니까?”
“양준기? 그 친구 말고·”
“없습니다·”
“임연희가 왜 자네 앞에서 사장님 딸이라고 밝혔지?”
영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인사과 직원들은 발끈했지만 민홍기 과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원래 우리 회사에 입사하려고 준비중이었어 그러다 당신이 들어온거지· 마침 잘 됐다 생각해서 사장님이 연희 씨와 같이 영업팀으로 배속시켰어· 사장님이 당신을 계속 지켜볼 수는 없는 일이잖아·”
“그럼 절 평가할 사람이 같은 신입사원이라는 건가요?”
민 과장이 코웃음을 쳤다·
“건방 떨지마· 자네에 대한 평가는 임원이 하는 거야· 대신 업무에 필요한 지식이 부족한 자네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도움을 줄거야· 임연희씨 말고 그럴 수 있는 신입사원이 어디 있겠어? 다들 본인 살기도 힘들텐데· 그래서 임연희씨가 옆에서 도와주면서 주관적인 견해를 사장님에게 전달하겠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나?”
“네· 알겠습니다·”
맞는 말이긴 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을 보이려 애쓰는 신입사원에게 도와달라 말하는 건 열심히 달리는 사람 발목을 잡는 것과 같으니까·
이런 평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사장 딸 말고 누가 있을까·
어쨌거나 결론은 주관적인 평가는 연희가 업무적인 평가는 임원이 내린다는 말이다·
“알면 됐어· 나가 봐·”
영훈이 고개를 숙이고 나가자 오 대리가 황당한 얼굴로 인사과 문을 가리키고는 영훈 특유의 무덤덤한 말투를 흉내냈다·
“방금 보셨습니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완전히 미친거 아닙니까?”
“그건 맞는데··· 일단 계속 지켜봐· 사고 치지 않게·”
“사장님께 보고하실 겁니까? 임연희씨가 스스로 밝혔다구요?”
“아니 그 어린 나이에 혼자 유학가서 코넬대 경제학과 수석으로 나온 애다· 똑똑한 애니까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양 전무님 아들이 이미 임연희가 사장님 따님인거 알고 있는데 그 비밀이 얼마나 가겠어? 길어야 한 달일걸? 어쨌거나 간만에 우리 고 과장 회사생활 익사이팅해지겠구만· 얼굴 보는 재미가 생기겠어·”
민 과장은 빡빡한 영업팀에서 과연 연희와 영훈을 데리고 어떤 재밌는 상황을 만들어낼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인사과를 나오니 연희가 사원증을 손에 쥐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가는 김에 같이 가는게 좋잖아요· 인사 받는 사람도 두 번 인사하지 않게· 그런데 무슨 말을 그렇게 오래 했어요?”
“왜 같은 부서에 배치했냐고 물었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당신이 내가 업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라고 하던데요?”
“뭔가 잘못 알고 있으시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연희는 살포시 인상을 쓰며 돌아보았다·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감시할 생각이잖아요?”
“그랬는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연희의 어정쩡한 대답을 마지막으로 침묵이 이어졌고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금 트러블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엄청난 미인인지라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 둘만 있게 되니 괜히 싱숭생숭했다·
그런데 연희가 층수를 누르고 문이 닫히자 입을 열었다·
“해줄 일이 하나 있어요”
“벌써부터 업무지시를 내리는 겁니까?”
“맞아요·”
엄밀히 말하면 같은 신입사원 주제에 일을 준다고 하니 황당하기 그지 없었지만 임연희는 신입사원 이전에 사장의 딸이었다·
어쩌면 송 사장이 자신을 채용한 이유도 단순히 실적을 잘 올리라는 뜻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뭘 해주면 됩니까?”
“영업팀 윤성우 부장과 본부장인 차지열 상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세요· 추가로 알려드리면 이건 내가 아니라 엄마가 지시한 거예요·”
< 영업 2팀의 사람들(1)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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