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업 2팀의 사람들(2) >
“사장님이 지시한 일이라구요?”
“네·”
“사장님이 제가 사주 보는 걸 알고 계십니까?”
“아니요· 그냥 사람을 잘 본다고 하니까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잘 보는지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지도 궁금하시대요· 내가 가진 패가 뭔지 알아야 베팅을 하든 죽든 할 수 있는 거겠죠?”
연희가 대답을 마친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둘은 표정을 바로하고 영업팀으로 향했다·
“오~ 신입!”
영업 2팀은 11층 오른편에서 중앙 가까운 곳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연희와 영훈이 들어오는걸 보자 직원들이 반색하는 게 한눈에 보였다·
“어! 여기야· 여기·”
“뭐야 두 명이야? 우리는 하난데?”
“이거 너무 차별인데?”
윤희는 직원들의 소란한 말소리에도 전혀 거리낌없이 영업 2팀이라고 쓰인 곳의 가장 상석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영업 2팀에서 일하게 된 임연희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최영훈이라고 합니다·”
“응 반가워· 나 고일주 과장이야· 이런 미인이 우리 팀에 들어오다니 눈부시네· 응? 흐흐··· 형석아· 자리 좀 알려주고 전산실 불렀지? 프로그램 세팅 좀 해주라고 해·”
“알겠습니다·”
“일단 인사들 해· 여기는 노형석 대리라고···”
고일주 과장이라는 사람은 키가 작지만 탄탄한 체격으로 조금 과장하면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샘을 닮았다·
그리고 고 과장의 말에 연희와 영훈의 자리를 알려주고 전산실에 전화를 거는 노형석 대리는 반대로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연희를 보고 첫눈에 반했는지 연신 연희를 힐끔거렸다·
성격이 오만하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이쁘긴 하지···
그리고 자리에 없는 사람은 이은성 사원으로 작년에 입사했으며 현재 출장을 나가 있다고 했다·
“고 과장아 잠깐 나와봐·”
전산이 세팅되는 동안 연희와 영훈이 자리에 앉아 분위기를 익히고 있을 때 영업 1팀의 김승규 과장이 고일주 과장을 슬쩍 부른다·
김승규 과장과 고일주 과장이 복사실 안 탕비실로 들어서니 담소를 나누고 있던 직원들이 자리를 비켜준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김승규 과장이 고일주 과장에게 넌지시 말했다·
“야 저 미스코리아는 뭐고? 저 폭탄은 뭐야?”
“나도 사진으로 봐서 저 정도로 이쁠지는 몰랐는데 굉장하네· 왜 홍보팀이나 비서실에 안 넣고 우리팀에 넣었지? 이해가 안 가는데?”
보통 저렇게 외모가 뛰어나거나 하면 회사 이미지를 위해 비서실이나 홍보팀으로 배정하는 경향이 많은데 하필 회사에서도 제일 빡센 영업팀으로 보내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거다·
영업을 하다 보면 접대를 하거나 받을 때도 많고 거친 말이 오가는 경우도 있기에 저렇게 뛰어난 외모의 여자 신입이 들어오면 무척 난감하다·
괜히 술자리에서 바이어가 취해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기도 하니까·
미인이 있음으로 해서 협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고 과장은 지금까지 여자와 같이 일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런 경험이 없었다·
“스펙은 어때?”
“빵빵해· 스펙으로는 홍보팀에 있기 아까울 수는 있는데 일단 물어봐야지· 영업을 지원해서 온건지 말이야·”
“딴건 몰라도 출근할 맛 나겠는데? 너 아침에 눈이 번쩍번쩍 떠지겠다· 이제 알람도 안 맞추는거 아니냐?”
“그럴거면 네가 데리고 갈래?”
“아니 난 싫어· 쟤 데리고 있으면 어디 술이라도 마음껏 마시겠냐?”
“새끼 밝히기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저 폭탄이다· 아직까지 자기소개서도 보여주지 않아·”
입사가 결정되고 미리 각 팀에 어떤 신입사원이 배정될지 통보를 해주었는데 어떤 자료도 없는 신입이 배정돼 그때부터 노심초사했던 고 과장이었다·
그런데 배정된 이후에 어느 대학에서 뭘 배웠는지 자격증은 뭐가 있는지도 안 알려주니 자기소개서라도 달라 했는데 그것도 까여버린 거다·
단순히 이 정도라면 그냥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을 텐데 모르는 게 많으니 이해하라는(?) 잘 가르쳐보라는 이상한 지시가 함께 내려온 신입이라 영락없이 폭탄이 되버린 상황·
상사의 기본 언어인 영어도 못한다는 말에 처음에는 농담인 줄만 알았었다·
“인사과에서? 뭐라면서 안 보내줘?”
“밝힐 수 없대· 이거 뭐냐?”
김승규 과장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란다·
“뭐야 그거? 로얄패밀리야?”
“로얄패밀린데 왜 여기로 보내? 실적도 개판인데·”
“그것도 그렇지·”
영업 2팀이 현진물산 최하의 영업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게 벌써 3분기째였다·
이러다가 곧 목이 달아날 것 같아 전전긍긍하던 고일주 과장에게 최영훈은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민 과장이 입을 꾹 다물고 있어· 몸 사리기로는 우리회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그 인간이 입 꾹 다물고 있는거 보면···”
“뭐가 있기는 있는거네·”
“그렇지· 그런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단 말이야·”
고일주 과장이 그렇게 김승규 과장과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영훈도 열심히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마침 노형석 대리가 전화를 받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연희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아까 저쪽 과장님이 우리 과장님 데리고 커피 마시러 가던데 무슨 일일까요?”
“뻔한거죠· 당신이랑 나 때문에·”
영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나 때문에 고민되는 건 이해가 가는데 당신 때문에 고민할 게 있습니까?”
“음··· 혹시 모르죠· 내가 사장 딸이라는 걸 알고 있을지·”
“그걸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까? 인사과에서는 다들 알던데?”
“인사과는 알 수밖에 없고 다른데는 모르는 게 정상이에요· 알리지를 않았으니까· 다만 아무리 조심해도 말이 밖에 새는 걸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어요· 어차피 양준기 걔 입이 그렇게 무거운 편도 아니라서 아마 한 달도 안 돼 내 어릴적 별명까지 알려질 게 뻔해요·”
“어릴적 별명이 뭐였습니까?”
“얼음공주·”
“크흡···”
영훈은 웃음이 터지려는 걸 재빨리 틀어막았다·
연희의 눈빛이 서늘해진다·
“왜요?”
“굉장히 잘 어울려서요· 어린 나이에도 작명 솜씨가··· 깜짝 놀랐습니다·”
“쓸데없는 이야긴 그만하고 우리팀 매출내역이나 회의자료 살펴보세요· 혹시 복사기 다룰 줄은 아세요?”
“아니요·”
“후··· 이따가 점심 먹고 와서 쉬는 시간에 알려드릴게요· 아마 처음에는 복사하는 일이 주가 될 거예요· 영어를 못하니까 전화 받는 건 나중에 할 것 같고·”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많이 들었으니까요· 아빠··· 하여튼 많이 들었어요·”
“네···”
영훈은 괜히 미안해서 고개를 돌리고 보던 것에 집중하는데 연희가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내가 결혼에 진짜 실패할까요?”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두꺼운 서류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영훈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노 대리는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었고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주에 칼이 있다고 다 살인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본성을 잘 알고 노력한다면 검사나 경찰이 될 것이고 짐승처럼 막 산다면 살인자가 되는 거니까·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기질을 잘 알고 다스리려 노력하면 대범하고 카리스마 있는 기질로 바뀔 수도 있겠죠· 정해진 사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면 난 여기에 있을 수도 없을 겁니다·”
“당신의 정해진 사주는 무엇이었는데요?”
“비밀입니다·”
연희는 다시 침묵하며 회의자료를 살펴보다가 또 말을 걸어왔다·
“그럼 좋은 남자를 만나면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건가요? 이를테면 궁합이 잘 맞는다던가···”
영훈은 다시 주변을 살펴보고는 속삭이듯 대답했다·
“좋은 인연은 찾는다고 막 찾아지는 게 아닙니다· 말했듯이 본인을 변화시켜야 좋은 인연이 찾아오는 겁니다· 당신 사주의 문제는 운이 없어서 나쁜 남자를 만날 확률이 높은게 아니라 당신이 좋은 관계를 끊어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
연희는 대답이 없었다·
슬쩍 돌아보니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다시 물었다·
“그럼 부모 중 하나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 그건 어떻게 피해갈 수 있죠?”
“피할 수 없습니다·”
“네? 방금 사주는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잖아요·”
“흉살은 다릅니다· 직업이나 재산은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지만 죽음을 피하는걸 뭘 어떻게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내가 모르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전 그런 방법은 알지 못합니다· 만약 흉살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가 생긴다는 건 무슨 뜻이죠?”
“당신이나 당신 주변이 죽거나 다칠 수 있다는 말이죠·”
연희는 긴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전에 아버지가 아프다고 했는데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걸 보니 아버지가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당신이 사기꾼이길 바래야겠군요·”
“그게 마음 편하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감돌 때 고일주 과장이 자리로 돌아왔고 때마침 통화하러 나갔던 노형석 대리도 돌아왔다·
노 대리는 고 과장에게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갔다·
“과장님 런던에서 연락이 왔는···”
노 대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고 과장의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야! 너 인마 내가 그거 드랍하라고 몇 번을 말했어! 인도네시아에 집중하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거 분명히 한국에서 먹힙니다·”
“한국에서 먹히기 전에 내가 부장님한테 욕을 먹겠다· 아주 한 바가지 먹겠지·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드랍해· 그리고 오늘 쟤들 데리고 회식 할거니까 그렇게 알고·”
“알겠습니다·”
노 대리가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노 대리의 모습을 보고 있던 영훈의 옆구리를 연희가 푹 찔렀다·
“뭐해요?”
“아 네·”
노 대리가 자신이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불쾌할 수도 있음을 인지하자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연희가 슬쩍 자리로 돌아가는 노 대리를 확인하고 카톡 개인메시지를 보내왔다·
[왜 그래요? 뭐 있어요?]
[아닙니다]
[저도 좀 알죠]
[알 필요 없습니다]
[(화난 이모티콘)]
귀여운 캐릭터가 성질을 내는 이모티콘을 보내왔지만 영훈은 신경쓰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연희는 그런 영훈을 힐끔거렸다·
< 영업 2팀의 사람들(2)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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