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빨을 드러낸 대가(2) >
여수시 여서동에 위치한 한 룸싸롱·
여수시 도시시설사업단장인 오정규 단장은 옆에 앉은 룸싸롱 여종업원의 엉덩이를 쓰다듬다가 잠시 내보내고는 말했다·
“내가 참 우리 강 사장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여자도 아니고 남자가 요로코롬 세심할 수가 있는가?”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막말로 요새 집 하나 구하는 게 얼마나 힘듭니까?”
“내 말이 그 말 아닌가·”
“결혼을 하고 싶어도 집이 한두 푼이라야 결혼을 하지요· 젊은 사람들이 집 걱정 안 하고 결혼해야 애도 많이 낳고 인구가 늘 것 아닙니까? 대한민국 모든 문제의 근원은 전부 부동산입니다 부동산·”
오정규 단장은 무릎을 쳤다·
“그게 정답이여!”
“조카님이 결혼하신다는데 제가 도와드리지 않으면 누가 도와드립니까·”
“근디 말이여· 우리 조카님이 낮은 층은 그렇게 싫다고 하드만· 온갖 사람들 지나가다가 한 번씩 쳐다본다고· 하긴 나도 그런 적이 있응께· 젊은 처녀 총각들한테는 거시기하긴 혀·”
강윤기는 쌍욕이 올라오는 걸 간신히 삼켰다·
만흥지구 택지개발 사업을 따내기 위해 수많은 곳에 돈을 찔러줘야 했다·
공사비만 수천억에 달하는 거대 사업에 고작 얼마의 돈만 찔러줘서 일이 진행될 리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돈 그것은 바로 부동산 아니겠는가?
국가에서 개발하는 택지지구에 들어서는 아파트·
그곳에 당첨만 된다면 그 이익은 지방이라고 해도 상당할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공무원인 사업 관계자들이 미쳤다고 직접 준공 분양되는 아파트에 청약을 넣을까·
당연히 타인 명의로 당첨을 해주겠다고 슬쩍 찔러보자 오정규 단장은 단박에 받아들였다·
오정규 단장과는 이미 알고 지낸 지 10년도 더 된 사이다·
그간 수많은 성의표시(?)와 대가가 오고 간 사이였지만 만흥지구에 들어서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게 해주겠다는 약속까지 해주고서 이번 사업을 따낼 수 있었다·
그것만 해도 충분할 것이건만 대놓고 로얄층을 달라고까지 하니 속된말로 빡이 칠 수밖에····
“물론이죠· 좋은 층으로 챙기겠습니다·”
“나중에 문제 생기는 일은 없지?”
“그럼요· 제가 언제 문제 생기게 하는 거 봤습니까?”
“으잉~ 그려 그려···· 흐흐흐··· 바쁘지? 얼렁 가 봐·”
이제 볼일 끝났으면 얼른 가라는 말이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가씨를 다시 부르는 그를 보며 강윤기 사장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방을 빠져나갔다·
밖에 잠시 나가있던 여종업원이 다시 들어오고 그녀와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낸지 10분 정도가 흘렀을 때 벌컥 문이 열렸다·
“뭐 뭐여!”
“안녕하십니까· 좋은 시간 보내시는데 방해드려 송구스럽지만 잠깐 대화 좀 합시다· 아가씨는 잠깐 나가 있을까?”
“·······”
“아 제 소개를 안 드렸군요· 전 우명건설 주택사업본부 윤희찬이라고 합니다· 어린 나이지만 부장 달고 있으니 그래도 단장님과 같은 자리에 앉을 자격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 그런데 아직 안 나갔니?”
여종업원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나가는 여종업원을 부르지도 못한 오정규 단장은 허겁지겁 녹차를 마시며 겨우 흔들리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우 우명건설 직원분이 어떻게 여까지 오셨소?”
“여수가 어떤 지역입니까?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도시에다가 그림같이 아름다운 관광지 아닙니까? 그런 곳에서 대단위 택지지구를 개발한다는데 우리 우명건설이 어려운 여수시를 위해 한 몫 거드는 게 어떤가 하는 마음에 직접 내려왔습니다·”
“우명건설에서? 아따 우명에서 뭐 먹을 게 있다고 숟가락을 얹어 분다요? 동네 아들 코 묻은 돈 빼앗는 거 맹키로?”
“말씀드렸잖습니까? 우명건설에서 여수시의 발전을 위해 한 팔 거들기로 했다고요· 솔직하게 말해봅시다· 어디 지방이나 전전하는 코딱지만 한 건설사가 분양하는 아파트에 사람이 몰리겠습니까 아니면 우명건설에서 지은 아파트에 사람이 몰리겠습니까? 딱 견적 안 나오세요?”
“모라고라? 무슨 그런 그짓부렁을··· 나도 대굴빡이 안 돌아가는 사람이 아니여· 여까지 왔으니께 딱 까고 얘기해 보쇼· 뭐 땀시 그란다요? 원하는 게 있으니께 그런 거 아니오?”
“없습니다· 그냥 우리가 이번 사업 참여할 수 있게 해주시면 됩니다· 싫으시면 어쩔 수 없고요·”
“어쩔 수 없으면?”
“그냥 포기할 겁니다· 평양감사도 지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고 하지 않아요? 선의로 도와주겠다는데 단장님이 싫다고 했으니 어쩌겠습니까? 손 털고 나가는 수밖에· 우리 주민들이 좀 아쉬울 뿐이겠죠· 많이 아쉬울 거야·”
윤 부장의 태연한 말투에 오정규 단장이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아따 당황스러워 디져불겄네· 그래서? 내가 안 된다고 하면 나 오정규가 우명건설을 제꼈다고 소문이라도 내시게?”
“우리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그런 예수님 같은 사람들 아닙니다· 좋은 일은 널리 알려야죠· 시장님한테도 알리고 주민들한테도 알리고····”
우명건설이 참여한다는 소식에 가장 기뻐할 사람은 아마 이곳 여수시장일 게 분명했다·
만약 우명건설이 스스로 참여한다는 제안을 했는데 도시시설사업단장이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내 모가지도 날리고? 아따 겁나게 무섭네잉·”
“그런데 궁금하네요? 단장님은 왜 싫어하는 겁니까? 다른 데서는 우리가 참여한다고 하면 두 손을 꼬옥 잡고 죽은 조상님이 돌아온 것처럼 눈물을 흘리시던데· 제발 집값 좀 올려달라면서요· 막말로 우리가 서울에서나 누가 잘났냐고 싸워대지 이런 시골까지 내려와서 찬밥 취급이나 당
할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신기하네?”
“그 그거야····”
“영민주택 사장이 돈다발이라도 드린다고 했습니까?”
오 단장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따 뭔 개소리여!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는가?”
윤 부장은 귓구멍을 후비며 말했다·
“아니면 아니지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귀청 떨어지겠네· 그런데 왜 그런 일 많잖아요? 까놓고 말해서 돈 봉투 안겨주고 일감 따오는 거 대한민국에서 우리보다 잘하는 곳 몇 없지· 따지고 보면 우리가 원조 아닌가?”
“·······”
황당한 소리에 오 단장이 눈만 꿈뻑했다·
윤 부장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쌍팔년도 이후로 돈 봉투보다 다른 쪽으로 많이 도움을 주고는 했는데 이를테면 개발지역 주변 땅을 저렴하게 살 수 있게 해준다거나 아니면 친척 명의로 청약을 넣으면 당첨을 시켜준다거나····”
이때 오 단장이 움찔하는 걸 보고 그가 빙그레 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 그거였어요? 별거 아니네· 이렇게 합시다· 우리도 하나 당첨시켜드릴게· 말했듯이 영민주택 아파트보다는 우명건설 아파트가 훨씬 비싸지· 안 그래요?”
“거참 궁금해 디져불겄네· 도대체 뭐 땀시 그러는지····”
확실히 아파트 하나 당첨시켜준다는 소리에 오 단장의 목소리가 확 줄었다·
그걸 보고 윤 부장이 짜증이 난다는 듯 쇳소리를 냈다·
평소 김창훈 상무 옆에서 화 한번 내지 않던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 씨··· 이유를 왜 알려고 그래요? 단장님이 뭐 경찰이야? 아니면 검찰이야? 주민들 좋고 시장님 좋은 일 아니에요? 아니 왜 도와준다고 해도 이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보지?”
“아니··· 찜찜하니까 그냥 궁금시려워서 그러쟤·”
“뭐 어떻게 해 그럼? 하지 말까요? 지금 당장 시장님한테 달려가서 우리 안 한다고 할까요?”
오 단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윤 부장 팔을 황급히 붙잡았다·
“아유아유 알겄으니까 그만 하드라고·”
“그럼 나 해요?”
방금 전 빽 소리를 질렀던 오 단장은 백팔십도가 달라진 모습으로 말했다·
“천하의 우명건설이 나서겠다는데 어느 누가 반대하겄능가? 해부러! 나가 팍팍 밀어불 것잉게·”
“나 오정규 단장님 믿어도 되는 거죠?”
“그렇당께!”
“그럼 저 다시 올라갑니다· 올라가서 정식으로 사업제안서 보낼 테니까 그 전까지 확실하게 처리 좀 해주세요· 그리고 이상한 날파리들 달려드는 거 정리 좀 해주시고·”
“날파리? 3500세대를 혼자 해불게?”
“그럼 그 꼬딱지만 한 걸 나눕니까? 우리가 도움주러 왔다니까 진짜 기부천사인 줄 아시나?”
“크흠··· 미안혀·”
윤희찬 부장은 오 단장을 빤히 보다가 그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단장님 우리 이거 확실하게 합시다· 우리 단장님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아오신 인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눈치도 보고 챙겨도 줘야 하는 거··· 그거 인정해드릴게요· 받은 게 있으면 챙겨주는 게 도리지· 그런데 그중에 영민주택은 끼어 있으면 안 됩니다·”
“영민주택이 그짝한테 겁나게 큰 실수를 했는가보네잉?”
“그건 묻지 마시고· 정리 잘 해주실 수 있죠?”
“아이고~ 걱정 말드라고·”
“그럼 믿고 올라갑니다·”
윤희찬 부장은 그에게 허리를 90도로 꾸벅 숙이고는 룸을 나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수신자는 당연하게도 김창훈 상무였다·
“나야·”
[어· 얘기 잘 됐어?]
“강윤기가 길을 잘 들여놨더라· 주고받는 게 거리낌이 없어· 아파트 하나 주기로 하고 마무리했다· 알아서 정리할 거야·”
[믿을 만해 보여?]
“뇌물 받고 사업자 몰아주려는 인간이 믿을 만하면 얼마나 믿을 만하겠냐? 믿을 만해서 접근한 게 아니라 접근한 뒤에 일을 실패하지 않게 만드는 게 중요한 거지·”
[하여간 잘난 척은····]
“인도에서 아직 연락은 없고?”
[아직··· 최영훈 상무가 허튼소리는 하지 않겠지?]
“그러지 않기를 빌어야지·”
[야 아까는 일을 실패하지 않게 만드는 게 중요한 거라며?]
“그것도 우리가 상대 머리 위에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지· 최 상무는 우리 머리 위에서 놀고 있잖아· 그럴 때는 가만히 순종하면서 처분을 기다리는 것뿐이야· 너는 이번 일이 생경할지 모르겠지만 원래 직장인 인생이 그래· 열심히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거·”
[어째 들으라는 듯이 말한다?]
“상황이 그렇다는 거지· 뭐 네가 듣고 찔렸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너는 언제까지 직장인일 것 같아? 너 내가 우리 형 제끼면 개국공신이야·]
“아무렴요· 내가 그거 하나 바라보고 주말에도 아빠 기다리는 토끼 같은 자식들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이러고 있는 거 아니냐·”
[너 나한테 잘해야 한다· 알지?]
“아이고 나만큼 하는 사람 찾아봐· 어디 있나·”
[하하하! 그건 그래·]
“끊자· 나 운전해야 해·”
윤희찬 부장은 전화를 끊으며 룸싸롱 앞에 대놓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지금 서울로 출발하면 아마도 새벽에나 도착할 듯 싶다·
벌써부터 피곤이 몰려오는 게 느껴졌다·
*
전화를 끊은 창훈은 저녁이 한창 차려지고 있을 부엌으로 가기 위해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서 있는 도훈을 보고 멈칫 굳어버렸다·
“퇴근했었어?”
“어? 어··· 형은 언제 왔어?”
“나 방금 왔지· 저녁 먹으려고?”
“응·”
“뭐가 그렇게 좋은 일이 있는 거야? 안에서 신나게 통화하던데?”
“들었어?”
“그냥 웃는 소리가 막 들리길래·”
창훈은 싸늘한 공기가 자신을 에워싸는 느낌을 받았다·
“별거 아니야· 윤 부장이 인도 건 잘 마무리하는 것 같아서· 요즘 내가 뭐 하면 되는 일이 없었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좀 잘 풀리는 것 같아서·”
“좋은 일이네· 그런데 요즘 너 여자 안 만나냐? 엄마가 걱정하던데?”
순간 창훈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치솟는 격동을 애써 누른 창훈이 말했다·
“엄마는 내가 언제 말했는데 아직도 연희랑 약속 한번 안 잡아주는지 몰라·”
“여자가 한둘이냐? 얼른 골라서 결혼해·”
“그래야지·”
“혹시 아직도 옛날 여자 못 잊는 건 아니지?”
“옛날 여자? 옛날 여자 누구?”
“왜··· 니들이 경기상고 여신이라고 그렇게 찬양하던··· 이름이 뭐더라?”
“아~ 지원이? 잊었지· 언제 일인데·”
“그럼 다행이고· 먼저 내려가· 난 씻고 내려갈 테니까·”
도훈은 창훈을 의미심장한 미소로 바라보고는 그를 지나쳐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창훈은 이를 악물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그래 저 악마새끼라면··· 진짜 기억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긴 복도를 가로질러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던 창훈은 이내 표정을 풀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부엌으로 내려갔다·
< 이빨을 드러낸 대가(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