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업 2팀의 사람들(3) >
“자 우리의 새로운 식구들 잘 해봅시다· 건배!”
“건배!”
회식은 회사 근처 삼겹살집이었다·
삼겹살···
스님도 한 번 고기를 맛보면 그 맛을 잊어버리기 힘든 법인데 스님이 될 생각도 없는 영훈이 1년에 몇 번 못 먹는 고기를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냄새만 맡아도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라 영훈은 상사들이 점심 안 먹었냐고 놀랄만큼 흡입해댔다·
“천천히 먹어 천천히···”
지방 출장을 갔다가 막 도착한 이은성 사원은 말끔하게 생긴 청년으로 나이는 영훈보다 1살이 어리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중요한 건 나이보다 직급과 경험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감히 맞먹을 생각은 하지 않는 영훈이었다·
지금 영훈은 이런 작은 회식자리에 참석해서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있었다·
중간에 연희가 ‘그렇게 재밌어요?’라고 물어볼 만큼 말이다·
드라마나 웹툰에서 보던 직장인들의 생활 그것도 대기업 직원으로 갖는 첫 회식에 감개가 무량하고 속세를 떠나 절에 있던 외로운 시간이 보상받는 기분까지 들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다섯명의 팀원중 유일하게 목에 사원증을 걸고 있었다·
“그런데 연희 씨는 왜 영업에 지원했나?”
얼큰하게 술이 오른 고일주 과장이 묻는다·
“상사의 꽃은 영업이니까요· 남들은 회사의 얼굴이 되라고 하지만 전 회사의 얼굴이 아닌 회사의 손발 머리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야~ 배짱이나 야심이 장난 아닌데? 자 한잔해·”
연희는 술도 센지 지금까지 넙죽넙죽 잘도 받아 마시면서도 꽂꽂한 허리가 단 한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고 과장은 연희가 술 마시는 걸 보고 나서 영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근데··· 난 자네가 너무 궁금해· 인사과에서 정보를 하나도 안 주네· 그래 학교에서는 뭘 배웠고 특기는 뭐야? 영어를 하나도 못한다는데 맞아?”
언젠가 이런 시간이 올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퇴근하기 전 인사과 직원이 최신 업데이트해준 정보들을 쭉 나열했다·
“충북에 있는 태평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영어를 못하는건 맞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태평대학교? 그런 데가 있었나?”
고 과장이 당황하며 노 대리와 이은성 사원의 눈치를 보았지만 그 둘이라고 알 리가 없었다·
오 대리가 전국의 대학을 뒤지고 뒤져 최근에 개설됐고 아직 졸업생이 얼마 없는 심리학과를 찾아 소개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졸업증명서를 떼지 않는 이상 걸릴 리가 없다면서 자신하던 그 모습을 보면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다·
“네· 규모는 작지만 나름 평가가 좋은 학교입니다· 취업률도 좋구요·”
“그런데 왜 상사에 지원했나? 심리학과면 다른 회사를 지원할법한데?”
“뻔해서요·”
“뻔하다고?”
“심리학을 전공하면 보통 아동심리나 입시쪽 또는 트라우마가 많은 직종의 심리상담 쪽으로 진로를 정하거나 부전공을 공부해 다른 쪽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한때는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었구요· 그런데 마침 현진물산 입사 공고를 보고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시나 인사과 직원이 알려준 내용이다·
“오호~ 그래서?”
“전혀 모르는 미지의 세계라서 그저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는데 면접에서 잘 봐주셨습니다·”
“그래? 면접에서 잘 봐줬어? 그랬구만·”
고 과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영훈은 그가 내심 면접을 본 그 인간들 정신상태가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걸 확신했다·
“영어 공부 필수인데 잘 따라잡을 수 있겠어?”
고 과장은 미련을 못 버리는지 다시 질문한다·
혹시 자신의 생각과 다르니 퇴사를 고려해보겠다는 말을 해줬으면 하는 것 같았다·
“자는 시간 줄이고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크흠· 그래· 노력이 중요하지· 무역실무도 공부해야 할거야· 회사에서 하는 신입사원 대상 교육 잘 배워둬· 노 대리랑 OJT(직장 내 교육훈련) 할 때도 집중해서 잘 하고·”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모르는 거 있으면 여기 노 대리한테 물어보고 노 대리 없으면 여기 이은성 사원한테 질문해· 모르면 질문해야 해· 괜히 혼자서 처리하려다가 일 만들지 말고·”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해보자·”
“네 잘 해봐요·”
이은성 사원은 영훈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 때문인지 조금 난감해하는 눈빛이다·
이후 회사생활에 필요한 팁 따위를 전수하는 시간을 갖다가 자연스럽게 회사 업무 문제가 나왔다·
고 과장은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회사에서 자원개발산업에 주력하고 있는 거 알지? 좋은 기회야· 부장님이 밀어주는 사업이라고· 이거 잘되면 너나 나나 이은성까지도 앞길에 아스팔트 깔아주는 사업이야· 집중해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인도네시아 언제 갈거야? 나르힘푸난 맞나? 그 인간 지금 눈이 벌게서 돈 만들러 다니는데 다른 데서 채가기 전에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해· 이거 놓치면 팜 농장 못 구한다고·”
“네· 출장 품의 올리겠습니다·”
노 대리는 입을 달싹이며 뭐라 입을 열려 했지만 이내 다물고 술을 들이켰다·
고 과장은 그런 노 대리가 마음에 안 드는지 살짝 인상을 쓰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마누라가 기다리고 있으니 이만 일어난다· 우리애 학교에서 상받았다고 케잌 사서 들어오라는데 술이나 먹고 있을 순 없지· 처녀 총각들은 더 마시고 일어나·”
“아닙니다·”
“됐어· 더 마셔· 여기 법인카드 있으니까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고· 일어서지 마· 앉아·”
고일주 과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쿨하게 휘적휘적 가게를 나갔다·
노 대리는 고 과장이 떠나는걸 보고 연희와 영훈에게 말했다·
“원래 저러신 분이니까 이해해· 회식 자리를 그렇게 좋아하는 분이 아니셔서·”
“그렇군요·”
“우리 과장님이 겉으로는 욱하고 말이 심할때도 있는데 그래도 정이 많으신 분이시거든· 좋으신 분이야·”
“네· 그런데 인도네이아 팜농장은 뭐하는 사업입니까?”
영훈이 묻자 노 대리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기름야자 열매를 쪄서 압축시키면 나오는 기름을 팜 오일이라고 하는데 일종의 식량자원산업이라고 할 수 있어· 인도네시아 경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우리 회사 뿐만 아니라 많은 회사들이 팜 농장을 운영하고 있기도 해· 그런데 2018년도부터 인도네시아에서 환경문제 때문에 새로운 팜농장 개발을 3년간 금지시켰거든· 그래서 새로운 농장 설립이 불가능한데 거기 엄청 큰 농장을 운영하는 현지기업주 하나가 큰 빚을 졌다는 소문이 돌았어·”
“그 농장을 사려고 하는 건가요?”
“그런거지·”
“그럼 런던의 사업은 뭡니까?”
“어? 그거··· 별거 아니야·”
노 대리는 말을 얼버무리며 입을 닫아버렸다·
이은성은 그저 노 대리의 술잔에 술을 따라줄뿐이었지만 씁쓸해하는 그의 표정을 보면 뭔가 있기는 한 것 같았다·
그렇게 뜨뜨미지근한 회식을 끝내고 큰길로 나가는데 노 대리가 먼저 손을 흔든다·
“난 지하철로 간다· 내일 보자고· 최영훈이라고 했지? 모르는 거 많다고 기죽지 말고 우리 앞으로 잘해보자·”
노 대리가 악수를 건넨다·
웬 떡이냐 싶어 얼른 악수를 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들어가세요·”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는 노 대리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다·
이때 이은성 사원이 영훈에게 말했다·
“영훈 씨는 집이 어디세요?”
“저는 동대문 쪽입니다·”
“그럼 지하철?”
“네·”
“근데 왜 노 대리님이랑 같이 안 갔어요?”
“같이 타고 가면 왠지 어색할 것 같아서요· 서먹서먹하기도 하고·”
“하하 그렇긴 하죠· 그럼 이제···?”
어서 가라는 눈빛·
어차피 가려는 마음이었는데 왠지 저 눈빛을 보니 연희에게 한 잔 더를 권할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든지 말든지 상관하고 싶지 않아 인사를 하고 지하철로 가려는데 연희가 이은성에게 물었다·
“선배님은 어디로 가세요?”
“네? 아 저는···”
이은성이 버벅이자 연희가 재빨리 선수친다·
“전 늦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택시를 잡는다·
역시나 자신의 눈에 안 맞는 사람이면 대화조차 잘 이어가지 않으려고 하는 저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겠다·
불쌍한 이은성을 뒤로 하고 지하철에 몸을 맡기는데 연희로부터 전화가 왔다·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전화입니까?”
“누가 보고 싶어서 전화했겠어요? 내일 오전에 임원 면담 있으니까 알려주려구요·”
“임원 면담이요?”
“부서 발령 받으면 임원이랑 만나서 차 한잔 하면서 인사하는 거예요· 요식행사라 별 의미는 없는 건데 우리는 아니잖아요· 그쵸?”
그렇다·
송 사장님이 지시한 내용이 있었으니·
“내일 만날 임원이 누구입니까?”
“영업본부장 차지열 상무요· 눈치가 보통 아니니까 조심하세요·”
< 영업 2팀의 사람들(3)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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