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운(大運)이 충돌하다(1) >
“네· 좋은 아침입니다·”
“흐흐 그래· 좋은 아침이지· 아침에 출근하는데 뭐 불편한 건 없었어?”
“네 없었습니다·”
“아침은 먹었고? 안 먹었으면 뭐 샌드위치라도 배달 시켜줄까? 요즘 배달 안 되는게 없어요· 샌드위치 커피 팥빙수 이런것들도 배달 된다니까· 세상 너무 좋아졌어·”
신입사원이 뭐 했다고 점심시간도 아니고 오전부터 샌드위치를 배달시켜주겠다는데 연희도 당황하며 손을 흔들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침 간단히 먹고 와서요·”
“그래? 배고프면 얘기해· 회의실 세팅은 여기 영훈이에게 맡기고 연희 씨는 앉아 있지 그래·”
“아닙니다· 회의 준비 다 끝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 하지마· 영훈이한테 다 맡기라고·”
이때 영훈이 나섰다·
“과장님 방금 그 얘기는 잡스러운 허드렛일은 전부 제가 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뭐?”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건가 해서요·”
고일주 과장은 뭐 이런 새끼가 있나 싶어 혼내려다가 연희를 보고는 멈칫했다·
“연희 씨는 나가 있을까? 이 친구랑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연희는 영훈의 무표정한 표정을 보아하니 좋게좋게 넘어가기는 글렀음을 알았다·
“과장님 저랑 먼저 이야기 좀···”
“어?”
“따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지금요·”
“크흠··· 그래? 너 나가봐·”
영훈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회의실을 나가니 연희가 회의실 문을 닫고 말했다·
“혹시 제 어머니 이야기 듣고 저한테 잘 해주시는 건가요?”
“어? 하하하 아유 미리 말하지 그랬어· 앞으로 뭐 필요한 게 있으면···”
“아니요· 다른 대우를 원하는 건 아닙니다· 사장님도 그걸 원치 않으니까 말씀 안 하셨던거구요·”
“그런가?”
“네· 그러니까 아까 같은 상황은 저를 더욱 난처하게 한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큼큼· 그래· 알겠어·”
“그리고 최영훈 사원 사장님이 직접 뽑으신 거 아시죠?”
“어? 어··· 듣긴 했었지·”
“업무적으로만 평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업무 외적인 일로 잡음이 생기는 거 사장님이 좋아하실 것 같지 않거든요·”
이 정도까지만 말해도 고일주 과장은 알아들었다·
사장이 직접 뽑은 인재를 업무 외적인 사사로운 일로 문제를 만들면 고 과장에 대한 평가가 좋지 못할 걸 생각하라는 말이었으니까·
다만 고 과장은 그렇게 스마트하게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내가 지금 저 신입한테 쩔쩔매야 한다는 말인가?”
연희는 난감함을 느꼈다·
고 과장의 성격을 봤을 때 지금은 곱게 넘어간다고 해도 저 꽉막힌 영훈과 언젠가는 또 부딪힐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주제넘은 말을 한 것 같네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과장님께서 알아서 하실 문제인데· 못 들은걸로 해주세요·”
연희가 이렇게 나오니 오히려 고 과장이 당황한다·
로얄패밀리를 대하는 직장인의 제 1원칙은 절대 로얄패밀리가 사과하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
콧대가 롯데타워보다 높은 로얄패밀리가 사과하는 순간 그 상황을 만든 대상은 평생 로얄패밀리의 미움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건 어느 기업을 떠나 불문율과도 같은 것·
당연히 고 과장은 당황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말할 건 아니야· 주제넘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지· 다만 그냥 내 생각이 이렇다는 거였어·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아 그리고 최영훈이는 나도 잘 주시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나 굉장히 냉철한 사람이야· 업무와 업무 외적인건 칼같이 가려내거든·”
“감사합니다·”
연희는 좋게 풀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고 과장이 인상을 쓸때는 고작 이런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는 게 짜증났지만 번뜩이며 떠오른 영훈의 말에 생각을 달리했다·
성격 바꾸지 못하면 앞으로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한다는 말이 요즘 그녀의 신경을 계속 쓰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회의실을 나온 고 과장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영훈을 못 마땅하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이내 대범한 척 영훈에게 말했다·
“아까는 좀 오해가 있었지? 그런 뜻은 아니었으니까 크게 신경쓰지 마·”
“알겠습니다·”
“우리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일에만 집중하자고· 응?”
“네·”
그런데 고 과장이 영훈의 어깨를 두드려주다가 갑자기 손을 쓰윽 잡으며 물었다·
“혹시 사장님하고 깊은 관계인가?”
“저 말입니까?”
“응 그래· 편히 얘기해·”
영훈은 사실대로 이야기하려고 하다가 인사과 오 대리의 말이 떠올랐다·
너무 진실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말·
“실은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사장님이 아주 모르는 분은 아니십니다·”
“아 정말?”
고 과장의 눈이 휘둥그레하게 떠진다·
“인사과도 모르는 비밀이라··· 과장님만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뭐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데?”
“사장님과 가까운 분이 저한테 큰 도움을 받으셔서···”
“아~ 은인처럼 생각하는 건가?”
“네· 맞습니다· 이건 오직 연희 씨 정도만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둘이 같은 부서에 왔구만· 그래 그래· 이제야 알겠어· 하여튼 뭐 힘든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고 과장은 자리에서 돌아온 후 입을 씰룩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희가 왜 그렇게 영훈을 비호했는지 알았다는 표정이 분명했다·
영훈은 내심 웃음을 참기 어려웠지만 꾹 참고 아까 손을 잡을때의 그 느낌을 기억했다·
그리고 어차피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니 고 과장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았다·
30여분 후 바로 아침회의·
노트북으로 회의록 작성은 연희가 하고 노 대리는 회의자료를 가지고 브리핑했다·
“현재 나르힘푸난이 소유한 농장의 면적인 만 5천 헥타르로 국내 자원개발업체가 소유한 농장 규모 대비 60% 수준입니다· 나르힘푸난이 원하는 가격대는 약 5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시세는 어때?”
“톤당 2137링킷트(말레이시아 화폐단위로 한화 약 61만 원)로 올해 내내 가격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세계자연기금인 WWF(World Wildlife Fund)도 2020년까지 세계 팜유 수요가 현재보다 약 2배 정도 증가할 거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판매처는?”
“바이오 오일에 대한 수요는 계속 상승중입니다· 자원팀에서 확보한 루트만으로도 충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분은 어느 정도나 가져올 수 있어?”
“90%까지는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일단 만나봐야 알 것 같습니다·”
“주재원 나가 있지?”
“네·”
“통역 섭외해서 바로 출발해· 결과 가지고 와· 알겠어?”
고일주 과장은 눈썹을 꾹꾹 눌렀다·
이 사업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한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누가 알고 있냐?”
“아직 조용합니다만 삼강물산에서 눈독을 들인다는 말이 있어서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주재원이랑 통화하면서 체크하겠습니다·”
“은성이는 노 대리 옆에서 서포트하고 연희랑 영훈이는 노 대리가 바쁘니까 OJT는 힘들거든? 그러니까 신입사원 대상 실무교육에 집중하면서 노 대리 오면 은성이랑 같이 서포트할 준비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회의를 끝내려고 할 때 연희가 입을 열었다·
“과장님 노 대리님께서 출장갔다 오실 때까지 영업 2팀에서 드랍한 아이템을 살피면서 공부해도 될까요?”
“좋지· 연희 씨가 봐서 괜찮다 싶으면 디벨롭 해봐도 괜찮겠고 말이야· 기대가 돼·”
고 과장은 연희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주며 회의실을 나갔다·
연희는 고 과장이 격려할 때 순간 움찔하기도 했지만 이내 차분하게 영훈과 회의실을 정리했다·
회의실에서 빈 음료수 병과 자료를 들고 나오니 고 과장이 말했다·
“본부장님께서 부르시니까 가봐· 신입직원 면담이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난 인천 출장갔다가 5시는 돼야 들어올거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주에 은성이 생일이니까 센스있게 팀에서 선물 뭘 할지 준비해봐· 그리고 지금까지는 은성이가 이렇게 팀원들 경조사 챙겼으니까 앞으로 자네가 챙기도록 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고 과장은 그 정도 일 시키는 정도는 괜찮지 않냐는 듯 눈을 찡긋 거린다·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래 팀원들 각종 기념일이랑 연락처는 은성이 책상에 가면 있으니까 그거 보고 확인하면 돼·”
“알겠습니다·”
영훈은 이은성 사원의 자리로 가서 슬쩍 팀원들 전원의 생일을 확인하고 나가려다가 멈칫했다·
아무래도 계산을 잘못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계산을 하곤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된통 걸려버렸다·
하필 걸려도 이런 곳에 걸릴 줄이야···
영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영훈을 기다리고 있던 연희는 영훈 뒤에 따라 오는 사람이 없는지 슬쩍 살피곤 아주 작은 쪽지 하나를 건넸다·
“뭡니까?”
“뭐겠어요?”
영훈이 쪽지를 펴보니 1963년 6월 7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차지열 상무님?”
영훈이 주변을 살피며 물어보니 연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생일을 모르니 관상만 가지고 판단해야 해서 조금 난감하던 차였는데 연희의 이런 센스는 나쁘지 않았다·
“고맙군요·”
“그런데 아까 고 과장님이 뭐라고 하시던데·”
“별거 아닙니다·”
“비밀 참 많으시네요·”
연희가 새침하게 고개를 돌릴 때 영훈이 주변에 누가 오는지 살펴보곤 물었다·
“저기···”
“네?”
“혹시 부서 옮기는 거 가능합니까?”
“왜요?”
“우리 부서 망할 것 같아서요·”
연희는 너무 놀라 목소리를 쥐어짜듯 죽이면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뭐 있어요?”
“어··· 아닙니다· 농담입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영훈은 갑자기 딴청을 피웠지만 연희는 그가 실없는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 대운(大運)이 충돌하다(1)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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