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지도 못한 첫 직장(1) >
한적한 오후 산새가 지저귀는 이름 모를 절의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 없었다·
부처님이 모셔진 대웅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암자에서 평화로운 절의 풍경을 한가롭게 바라보던 주지 스님은 앞에 앉아 있는 서른이 좀 넘은 남자에게 말했다·
“그래 마음은 정했고?”
“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주지 스님은 평온한 얼굴의 영훈을 지그시 바라보다 물었다·
“뭐 하고 살지는 생각해 봤어?”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인연 가는 대로 살아보려고 합니다·”
“고생이 많을 건데?”
“속세에 살면서 고생을 안 하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주지 스님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한창때 나이를 이런 재미없는 곳에서 썩게 만들었다· 아마 죽어 뼛가루가 바람에 날려도 너에 대한 미안함은 가시질 않을 게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나가려고 마음만 먹었으면 더 일찍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제 게으름 때문에 지금에 와서야 마음먹은 건데요· 잘 먹고 잘 놀았습니다·”
“후회하지 않겠니?”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할 마음 편한 백수 생활을 10년이나 했는데 후회가 있겠습니까?”
영훈은 진정으로 후회하지 않았다·
이 고리타분한 절에 갇혀 있었음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의외로 현대문물의 힘이 컸다·
한창 혈기가 들끓었을 때 절정의 인기를 구가한 스타크래프트가 발을 붙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고 스타크래프트가 질릴 무렵 이어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마음을 다잡게 도와주었다·
가끔 컴퓨터 성능이 떨어진다며 새걸로 사달라는 투정 아닌 투정만 부려주면 주지 스님은 젊은날을 절에 갇혀 사는 자신이 안타까워 없는 돈에도 컴퓨터를 새것으로 사다 주었다·
사실 마음속 욕심을 다스릴 수 있겠다고 느껴진 건 이십대 중반 무렵이었다·
그런데도 그 때 못나간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TV와 인터넷이 아닌 진짜 세상을 마주하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
다스릴 수 있겠다고 확신했는데 혹시나 그 생각이 틀린 것일까봐 감히 주지 스님에게 떠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잘 지킬 수 있겠니?”
“네·”
주지 스님은 그럼에도 걱정하고 있었다·
영훈은 무당이 될 팔자를 타고 났다·
주지 스님은 영순 엄마에게 모든 걸 말하지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진실은 말해주었다·
영훈이 세상을 어지럽힐 만큼 용하면서도 악한 점쟁이가 될 거라는 것·
어렸을 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걸 말이다·
상대방의 손을 잡으면 체온 이외에 기이한 온도가 느껴졌다·
어릴 때는 그것이 뭔지 몰랐다가 나중에 가서야 알았다·
그 사람이 태어난 날의 시각을 뜻하는 것이라는 걸·
이것만 해도 기함할 일인데 이상하게 마음만 먹으면 사람의 기분이나 걱정이 뭔지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의 능력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그걸 알고부터였다·
그렇기에 어린 나이에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하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았고 스님의 말씀을 따르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끔 노력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미 수백번 말했지만 네 재주로 점을 봐주고 이익을 챙겨선 절대 안 된다·”
“알고 있습니다·”
타고난 사주팔자는 고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무당이 되지 않으려 일부러 사주와 관상을 배웠다·
일종의 액땜이었다·
점쟁이가 될 팔자에 전혀 다른 인생을 살려고 하면 사고가 생긴다거나 신이 내려오는 일명 신병이 걸릴 테니까·
사주를 봐주고 복채를 챙겨서는 안 된다는 건 다른 맥락이다·
진짜 점쟁이가 되면 신이 들어올 것이기에·
타고난 사주팔자에 따라 역학을 배웠지만 진짜 점잼이가 되면 사주팔자에 내재된 본성이 튀어나와 사람을 해칠 것이다·
이제는 그 누구보다 자신의 사주를 잘 알고 있었다·
“네가 배운 것이라고는 그것뿐인데 험한 세상에서 뭘 하면서 먹고 살려고 하누?”
“사지 멀쩡한데 먹고 살 일이 없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세상 그리 만만한게 아니다·”
주지 스님은 작은 탁자 서랍에서 종이 쪼가리를 꺼내 영훈에게 넘겨주었다·
종이에는 달랑 핸드폰 번호 하나가 적혀 있었다·
“이게 뭡니까?”
“윤 보살 알지?”
윤 보살이라면 매년 절에 가장 많은 시주를 하는 사람이었다·
타고나기를 지역 유지의 딸로 태어나 유복한 삶을 사는 그녀였지만 항상 자식들 문제로 애를 태우며 절을 자주 찾았다·
“그럼요· 알죠·”
“윤 보살이 소개해준 사람이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데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연락처를 받아놨다·”
“네?”
설마 주지 스님이 자신의 직장까지 생각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기에 영훈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평소에 워낙 세속에 관한 일은 언급도 안 하시는 분이었으니까·
물론 그게 다 자신 때문임은 알고 있었다·
혹여 마음을 다잡고 있는 자신의 마음이 흔들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리라·
“서울이라고 하더라· 가서 만나 봐라·”
더군다나 서울이란다·
“서울이요? 무섭지 않으십니까? 세상사 온갖 유혹이 서울에 다 몰려 있을 것인데·”
“네 청춘을 온전히 운명을 피하는데 썼다· 나가서도 계속 피하기만 할 생각이냐?”
“그건 그렇습니다·”
영훈도 무덤덤하게 받은 종이를 승복 바지에 쑤셔 넣었다·
주지 스님은 영훈이 입은 옷을 훑어 보다가 말했다·
“옷도 사 입어라·”
“설마 이 옷으로 면접보러 가겠습니까? 저 애 아닙니다·”
“허허··· 맞구나· 이제 아이가 아닌 것을··· 이제 가라·”
영훈은 주지 스님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나 절을 올렸다·
묵묵히 절을 받는 주지 스님에게 영훈은 짧게 감사의 말을 올렸다·
“그동안 사람 만들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내가 많이 미안하다·”
영훈은 붉어진 눈을 들킬까 얼른 암자에서 나와 속옷 몇가지와 그동안 스님이 챙겨준 통장 하나를 들고 산을 내려왔다·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가서 핸드폰을 개통했다·
예전에 ‘남들 다 갖는 핸드폰 나는 왜 못 가지나?’ 하면서 하나 개통한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 전화 올데도 없고 핸드폰 게임보단 PC게임을 더 좋아해 1년도 못 쓰고 중고나라에 판 경험이 었었다·
그렇기에 새 핸드폰을 개통했어도 엄청나게 기쁘거나 감격스러운 건 아니었다·
그저 ‘이제 정말 속세인이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을뿐·
KTX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을 때가 밤 10시·
서울에 가면 꼭 들러보고 싶었던 동대문 시장에 가서 적당히 캐쥬얼한 옷과 회사 다닐 정장을 샀다·
승복을 입고 정장을 산다고 했을 때 점원이 놀라던 눈빛이 참으로 웃겼는데···
혼자 삼겹살과 소주로 늦은 저녁의 행복감을 누리고 근처 모텔에서 잔 후 다음날 고시원을 구해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지 스님이 주신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누구요? 아··· 그래요? 알겠어요· 그럼 일단 오시겠어요? 여기가 명동인데···”
명동은 쇼핑의 천국이라던데 무슨 회사가 있을까 생각하며 문자에 찍힌 주소로 갔을 때 따닥따닥 붙은 건물들 사이로 명일빌딩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가··· 4층이라고 했는데···”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건물의 좁은 계단을 타고 뚜벅뚜벅 올라가니 4층에는 딱 하나의 회사만이 영훈을 반기고 있었다·
[명일금융]
아무리 세상을 처음 경험하는 영훈이라고는 하지만 지금껏 TV와 인터넷으로 경험한 지식이 있으니 눈앞의 회사가 무슨 회사일지 딱 봐도 견적이 나왔다·
“대부업체라··· 윤 보살이 어떤 회사를 운영하는 지는 잘 모르셨나 보구나· 그런데 참으로 운명이란 게 얄궂구나· 날 시험하기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이 있을까·”
영훈은 잠깐 숨을 고르다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 생각지도 못한 첫 직장(1)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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