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프로젝트(1) >
“네? 아니 상무님· 무슨 일인지···”
“너 그 농장에서 팜 나무 나이가 얼마나 됐는지 확인 했어?”
“물론입니다· 전부 5년 이내 쌩쌩한 놈으로다가···”
“이거 아주 허당이네· 야 자원팀에서 확인하니까 20년 넘은 나무들이 허다하다는데? 장 과장 네가 설명해·”
차지열 상무 뒤에 따라온 자원 1팀 장교일 과장이 재빨리 설명을 시작했다·
“약 3천 헥타르는 고 과장 말대로 5년 이내의 어린 나무들인데 나머지 만 2천 헥타르는 20년 넘은 노년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마 고 과장처럼 팜 나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구분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팜 나무라고 다 같은 생산량을 보장하지 않는다·
4~8년 된 팜 나무를 도입기 8~13년 된 나무를 성장기 13~20년 된 나무를 성숙기 20년 이상된 나무를 노년기라고 하는데 가장 많은 생산량이 나오는게 성장기에 있는 나무다·
그리고 성장기의 팜 나무와 노년기의 팜 나무는 생산량이 두 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딴 소리는 됐고· 그래서 만약 이거 계약하면 어떻게 되는거야?”
“원래 기대 매출을 연간 180억으로 보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노년기의 나무가 많을 땐 생산량이 많이 떨어져서 연간 130억 정도로 예상됩니다· 결론적으로 금융비용과 현지 업체 운영비용까지 고려하면 매년 20억 이상의 적자가 예상됩니다·”
돈은 돈대로 써놓고 매년 20억 이상 적자 나는 사업을 할 뻔 했으니 삼도천을 건널 뻔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고 과장은 믿을 수 없는지 더듬거리면서 항변했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작 직접 확인하면서···”
“만 5천 헥타르 다 확인 했어?”
고 과장은 그걸 어떻게 다 확인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차 상무는 한심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너 현지 농장 관리인 없이 혼자 간 적 없지?”
“···”
“농장 관리인이 어린 나무들 있는데만 보여주면서 쑈한건데 거기에 홀랑 넘어가? 주재원이랑 대충 둘러보다가 술 처먹고 놀다 온 거 아니야?”
“절대 아닙니다·”
“이거 접어· 계약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지 돈 넘어간 다음에 발견했으면 너나 나나 한강물 마시면서 온도 체크할 뻔 했다·”
차 상무가 영업팀을 완전히 박살내놓고 돌아간 후 다들 고 과장에게 운이 없었고 악독한 놈들에게 당할 뻔했다며 위로를 건넸지만 이틀이 더 지나자 고 과장은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사표를 쓰고 회사를 나갔다·
뒤숭숭한 회사 분위기와는 반대로 영훈과 연희는 크게 충격받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직장인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대형프랜차이즈 커피숍에 앉아 점심시간의 여유를 즐기다 홀로 자신만의 생각에 잠긴 연희를 힐끔 쳐다봤다·
“뭘 그렇게 생각해요?”
“운일까? 아니면 누가 나한테 몰래카메라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중이었어요·”
“···”
“다음에는 또 누구 목이 날아갈 것 같아요?”
“모르죠·”
“회사 직원들 명부 가져다 드려요?”
“됐습니다·”
“아 태어난 시각을 몰라서 안 되려나?”
“진지하게 얘기하는거 아니죠?”
그녀는 회사 직원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잠시 멍 때리고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뭐 때문이랍니까?”
연희는 영훈의 질문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답했다·
“현지에서 팜 농장에 쓰이는 비료업체를 고 과장의 동생 명의로 인수했다고 해요· 말레이시아에서 우리 회사 상대로 제대로 빨대 꽂으려고 했던 거죠·”
“아이고”
연희는 점심 후 커피를 마시며 한가롭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제 누가 오려나···”
“누가 오든 우리는 노 대리만 붙잡고 있으면 됩니다·”
노형석 대리는 말레이시아 건이 엎어지면서 요즘 우울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마치 쌈짓돈 털어 주식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한 얼굴이랄까?
궁합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입사할 때부터 고 과장 밑에서 배웠는데 그런 상사가 감사실 조사를 받으며 사표를 쓰고 나가니 마음이 말이 아닌 듯했다·
“근데 난 좀 이상해요·”
“뭐가 말입니까?”
“아니 노 대리가 건드린 그 Nodri Clare라는 브랜드· 솔직히 잘 모르겠거든요·”
영훈도 Nodri Clare라는 브랜드를 보고 어떤 좋은 느낌을 받았던 건 아니다·
솔직히 명품 브랜드는 개뿔도 모르는 그였기에 봐도 모르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연희도 잘 모르겠다는 말에 살짝 뜨끔했다·
“그래요? 그럴 리가 없는데···”
대운이 들어온 노 대리가 만진 사업이다·
현재 노 대리가 들어선 대운 정도면 그냥 가다가 넘어져도 돈을 줍는 정도의 운이다·
영훈은 잘 모르겠다는 연희의 안목이 의심스러웠다·
“뭐예요? 날 못 믿겠다는 거예요?”
“아니 뭐···”
연희의 위아래를 훑는 영훈의 눈빛·
대한민국에서 10대 그룹에 속하는 재벌 가문 출신이 바로 그녀다·
하지만 아무리 재벌 티를 내고 싶어도 직장인 신분에 온갖 명품을 걸치고 출근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연희는 영훈의 무시하는 눈빛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안 꾸미고 다녀서 이렇지 나 장난 아니에요· 내가 소싯적에는 학교앞에 남자애들 줄서고 길거리 캐스팅에··· 됐어요· 말해 뭐하나· 어이가 없어서 정말···”
“큼큼··· 아닙니다· 어쨌든 브랜드가 많이 부족합니까?”
“많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에요· 디자인도 독특하고 가죽의 패턴도 보면 볼수록 눈을 끌기도 하는데 이걸 임원들에게 설득하려면 데이터로 설명할 수 있어야한단 말이죠· 그런데 아직 영국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는 정도는 아니라서 매출로 접근하면 얻어 맞을게 분명하고··· 하여튼 뭔가 애매하다고 해야 하나?”
“애매하다··· 그럼 노 대리님한테 한번 들어보죠· 전에 고 과장님한테 이거 무조건 먹힌다고 했잖습니까·”
“그러니까 참 신기하죠? 그 자신감이 왜 보고서에 없었을까·”
연희의 궁금함은 사무실에 들어와서 노 대리에게 묻자 해결할 수 있었다·
노 대리는 고 과장 때문에 보류됐던 자신의 아이템을 파고 드는 연희가 고마운지 오랜만에 화색을 띄며 대답했다·
“그거? 내 감이지·”
물론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했지만 노 대리는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요즘 영국의 젊은 애들이 여기에 꽂혔거든· 그거 알아? 명품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연령층이 어딜거 같아? 30대? 40대? 50대? 아니야· 바로 20대거든· 웃기지? 걔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명품을 살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아니야· 20대 명품 소비율이 전체 대비 40% 가까이 돼· 돈이 썩어나서 명품을 사는게 아니라 한푼두푼 모아서 명품을 사려고 하거든·”
영훈은 전혀 몰랐던 세계의 일이라서 그런지 노 대리의 설명이 흥미롭게 들렸다·
“그렇군요·”
“영국도 비슷해· 그리고 그런 애들 사이에서 요즘 이게 인기란 말이야·”
연희도 명품 브랜드라면 상당히 관심이 많았기에 노 대리의 사업이 점점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럼 이건 20대를 타게팅으로 삼은 거네요?”
“정확히 말하면 20대에서 30대를 노리고 있어· 그리고 그건 Nodri Clare의 사업방향이기도 하고· 아 그리고 이번에 새로운 라인이 나왔는데 내가 보여줄게·”
신난 노 대리가 Nodri Clare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뭔가를 찾는걸 보고 연희는 못 참고 물었다·
“그러니까 독점계약이 가능한건 맞아요? 우리한테 주겠대요?”
“아니· 얘기가 오가는 와중에 무산됐지· 고 과장님이 보류 시켰잖아· 그런데 Nodri Clare의 아시아 마케팅 본부장과 미팅까지는 잡아놨었어· 결국 못하긴 했지만·”
“그럼 약속을 깨서 실망했겠네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아시아 시장에 관심이 많은건 맞아· 특히 한국은·”
“왜 그렇게 생각해요?”
“Nodri Clare의 유일한 약점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역사가 짧다는 거거든· 역사가 일천한 브랜드가 단기간에 큰 명성을 얻기 위해선 스타 마케팅보다 좋은게 없지·”
연희는 손가락을 튕겼다·
“한류스타?”
“맞아·”
연희는 긍정적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일리가 있네요· 그런데 입점할 백화점은 이야기가 됐어요?”
노형석 대리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 그게 문제야· 국내 대형 백화점 셋 다 듣보 브랜드라고 거부했거든·”
“네? 그럼···”
“그래· 가지고 와도 팔데가 없다는 게 문제지· 명품 브랜드 가져와 놓고 아울렛에 떨이로 팔 수는 없잖아· 고 과장님도 그래서 깐 거고·”
연희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영훈에게 고개를 돌렸고 영훈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 첫 프로젝트(1)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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