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호지세(1) >
[차명진 회장 병문안 온 아들 폭행]
[(속보)차명진 회장 아들 두부 손상으로 의식불명]
포털에 연달아 뜨는 속보에 조치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린지 갑자기 차명진이가 멀쩡한 아들을 왜 쥐어 패서 의식불명에까지 이르게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본인이 직접 경찰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동안 방안에서 서성거렸다·
하지만 이후 추가적인 속보는 뜨지 않았고 아들인 차형석 실장이 긴급 수술에 들어갔다는 것 외에 다른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한 그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아직 수사를 끝마치지 못한 상황에서 행여 무슨 테러라도 당하지 않을까 싶어 미리 계약한 사설경호원에게 운전대를 맡겨서 도착한 곳은 을지로였다·
영훈이 근무하고 있는 HS물산 사옥에서 5분도 떨어지지 않은 커피숍이었다·
어지간해서는 이렇게까지 급하게 움직이지 않는 그였지만 격동하는 가슴이 그를 이렇게 급하게 만들었다·
영훈에게 무슨 이야기라도 들어야 조금이라도 진정될 것 같았던 거다·
그런데 영훈은 조치연에게 커피숍에 있지 말고 온김에 식사라도 하자며 근처 한정식집 위치를 알려주었다·
늦은 오후시간이었기에 벌썩 저녁을 하기에는 조금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군말 없이 자리를 옮겼다·
식당에 도착하고 보니 왜 한정식집에서 만나자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조용하고 프라이버시가 잘 보장될 것 같은 구조였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아 물 몇 모금 마셨을 때 문이 열리며 영훈이 들어섰다·
“갑자기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뭐야 왜 온 줄 모르는 거야?”
“계속 회의중이었거든요·”
태국 건으로 인해 특수사업부와 함께 점심도 도시락으로 때우면서 계속 회의를 이어간 영훈이었다·
조치연은 돋보기를 꺼내 자신의 핸드폰을 조작하다가 곧바로 영훈에게 건넸다·
“이거 좀 봐라·”
“잠시만요· 일단 먹을 것 좀 시키구요· 점심은 제대로 챙기고 다니세요?”
“나 돈 많다· 집에 음식 해주는 사람 있어·”
“그럼 다행이구요· 일이 마무리 되는 중이라 끼니도 거르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계시는 게 아닌가 걱정했거든요·”
“죽을 때는 기다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굶어 죽지는 않을 거다· 세상에 굶어 죽는 것만큼 비참한 게 어딨어? 그리고 아직 남은 자식이 있다·”
“그렇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도 있고·”
“그러니 최선을 다해 살다 갈 거니 걱정 하덜 마라·”
“다행이에요·”
영훈은 일단 종업원을 불러 기본 정식 메뉴를 시키고 조치연이 준 핸드폰의 기사를 살폈다·
거의 다 속보형 기사라 기사내용도 부실한 그것들을 쭉 살펴본 영훈은 조치연에게 핸드폰을 돌려주고 물었다·
“이것 때문에 급하게 오신 거예요?”
“넌 뭐 알고 있는 게 있어?”
영훈은 가만히 핸드폰에 시선을 두다가 입을 열었다·
“처음 차형석을 봤을 때 작년부터 내년까지 겁살(劫殺)이 들어와 있더라구요·”
“겁살?”
“네· 겁살은 흉살 중에 가장 안 좋은 것인데 칠살에 양인이 들어와 횡액을 당할 수 있는 살이 끼어 있었어요· 영감님이 차 회장을 검찰에 집어 넣고 죽이려고 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흉살이 그걸 말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흉살이 들어 있었단 말이냐···”
“네· 작년에 괜찮았고 올해 영감님이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복수를 마무리하겠다고 하셔서 그 흉살을 잘 보낼 수도 있겠다 했는데··· 결국 피하지 못했군요·”
“허허···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는 게지?”
“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정도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만으로도 횡액을 피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조치연은 착찹한 표정으로 다시금 물을 마셨다·
가슴이 답답한 것이리라·
복수를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죽이려는 마음을 그만 두자 알아서 죽을 자리로 기어 들어가다니···
그의 마음은 뭐라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할 것이다·
결국 그는 음식이 나올 때까지 입을 열지 못하고 복잡한 마음을 달랬다·
그 맛있는 음식들을 앞에 두고도 젓가락만 깨작거리던 그가 물었다·
“너는 이게 천벌이라고 생각하느냐?”
영훈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벌이 맞을 겁니다·”
“그래? 형석이에게 내린 천벌이라는 게지?”
“아니요· 차명진 회장에게 내린 천벌일 겁니다·”
조치연은 살짝 입을 벌리더니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겠지· 자식을 죽인 애비의 심정을 겪게 되는 것이니 그보다 더 큰 벌은 없을 게야·”
“차형석이 죽든 죽지 않든 이제 차 회장은 세상에 나오기 힘들어졌습니다· 세영그룹은 자연스럽게 쪼개질 것이구요·”
“···”
조치연은 고개를 숙이고 젓가락 잡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인 것일까?
영훈은 뭐라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모른 채 지켜만 보았다·
한참동안 눈물을 흘리던 그가 티슈로 눈물을 닦은 다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어 마땅한 녀석이라고 그렇게 욕했는데 어릴 때 모습이 떠올라· 외할아버지라고 웃으며 안기던 녀석의 얼굴이 떠올라· 때려 죽일 놈인데··· 그런데 가슴이 아파·”
“그래서 피가 무서운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런 거겠지··· 그리고 나 역시 천벌을 받는 게야· 돈 없다고 조금만 기다려달라던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겠냐? 없는 사람들 급한 사람들 전부 주머니 쌈짓돈까지 탈탈 털어서 재산을 불렸으니 내가 천벌을 안 받을 수 있겠어? 연화신녀의 말을 들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
을 것인데···”
“지난 일이고 그때는 그 누구도 그런 선택을 쉽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
“알지만 그게 무슨 위안이 되겠어· 후··· 잘 왔네· 궁금하고 정신이 산만했는데 오길 잘했어· 이제 정말 모든 게 끝난 거야·”
“그간 마음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편히 지내세요·”
“알았다· 내가 기운이 빠져서 먼저 일어나야겠다· 나 신경쓰지 말고 마저 먹고 나와라·”
영훈은 그를 따라 일어서는 게 오히려 그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할까봐 순순히 대답했다·
“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래·”
그는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방을 나섰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
도수연 의원은 의원실로 모여드는 같은 당 의원들을 피해 잠시 호텔로 피신한 상태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냐는 물음부터 당장 기자회견 열어서 발언을 취소하라는 협박까지 셀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공격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이 생각해도 선을 넘은 발언이긴 했다·
이런 분란을 유도한 발언이라서 당내 의원들의 반응이 섭섭한 건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큰 폭탄을 터뜨렸음에도 갑자기 튀어나온 차명진 회장의 폭력사건 때문에 자신의 발언이 가려지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당연히 호텔로 보좌하기 위해 따라온 강현수 보좌관이 누군가와 전화를 마치고 나자 도수연 의원이 물었다·
“상황은 어때?”
“일단 여당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입니다· 일단 자신들에게 유리한 발언이기는 하지만 혹시나 다른 속셈이 있지는 않은가 경계하고 있기도 하구요·”
“기사가 가려지잖아· 그게 문제 아니야?”
“차명진 회장의 폭력사건이 조금 충격적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폭력은 폭력이고 정치는 정치입니다· 지금 당장 화제성에서 밀리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안이기에 포털이든 뉴스프로그램이든 의원님의 발언을 집중 조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거지?”
“물론입니다·”
강 보좌관의 말에 그녀는 적잖이 안심했다·
이래서 곁에 유능한 보좌관이 있어야 한다는 걸 그녀는 다시 한번 느꼈다·
“당대표는?”
강 보좌관이 머리를 긁적였다·
곤란하다는 표현이다·
“해당 행위라는 말까지는 안 했지만 지금 사안의 중요성을 너무 모르고 있다고 하면서 의원님의 위기 대처 능력이나 현실인식이 부족함을 문제삼았습니다· 당대표의 이런 발언이 계속 늘어나면 의원님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능력 없는 정치인 프레임이 씌워질 수 있다는 말이지?”
“네·”
“해결책은?”
“일단 호랑이 등에 올라탔습니다· 여기서 호랑이를 길들이겠다거나 호랑이와 대화를 하겠다고 나서는 건 죽자는 이야기밖에 안 됩니다·”
“둘 중 하나가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한다는 건데··· 반격할 이슈가 있을까?”
“계속 강경발언으로 실책을 유도하는 것 말고는···”
그도 딱히 별다른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럴 만한 게 너무 준비 없이 시작한 일이었고 거대 야당과 그 당에 속한 일개 의원과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선빵을 날렸기에 그 충격으로 주도권을 잡긴 했는데 그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선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기자회견을 해야겠어·”
강현수 보좌관은 그녀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정신 못차리게 계속 펀치를 날리시겠다는 거죠?”
“맞아· 내가 기자회견을 하면 당 수뇌부는 대응전략을 짤 테고 일부 성급한 의원들이 돌출 행동을 할 거야·”
“알겠습니다· 바로 기자들 모으겠습니다· 장소는 이 호텔로 할까요?”
“그러지 뭐· 최대한 빨리· 난 준비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강현수 보좌관은 다시 핸드폰을 들며 방을 나갔고 그녀는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주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
통일평화당 곽태호 의원은 갑작스런 문자에 화들짝 놀랐다·
[도수연 의원이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 한다고 합니다·]
장용성 의원에게서 온 문자 내용은 짧았지만 그 파급력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장용성 의원은 신호가 한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뭐야? 갑자기 무슨 기자회견이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기자들한테 들은 내용이고 앞으로 30분 뒤에 열린다고 하는데 지금 여의도 기자들 전부 프레지던트 호텔로 달려갔습니다·]
“도수연이는?”
[연락 안 됩니다· 전화기는 꺼져있고 보좌관은 딱 잡아 뗍니다· 자기도 무슨 일인지 모른다고·]
“지랄하네· 강··· 누구야? 걔 도수연이가 옆에 두고 있는·”
[강현수 보좌관한테 연락한 겁니다·]
“그 새끼도 모른다고 했다고? 이것들이 진짜···”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진짜 특검을 주장하려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이 상황에 당을 깨자는 거야? 뭐야?”
[초선 의원들은 벌써부터 동요하고 있습니다· 만약 기자회견에서 진짜 특검을 주장하면서 여기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뒤가 구리다고 몰아붙이면 초선 의원들도 동참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러면 안 되지!”
곽태호 의원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화낼 상대가 장용성 의원이 아닌 걸 알기에 그는 다시금 말했다·
“아 미안· 내가 장 의원에게 화낸 건 아니야·”
[아유 그럼요· 알고 있습니다· 의원님처럼 저도 지금 당황스럽고 화나고 그렇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 프레지던트 호텔로 달려갈까요?]
곽태호 의원은 잠시 고민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기자회견장을 뒤엎고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러냐고 그녀를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뭘 달려가? 그러지 말고 일단 뭐라고 지껄이는지 한번 보자고·”
[그냥 보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제까짓게 어쩔거야? 진짜 특검 주장한다고 특검이 될 거라고 보는 거야? 여당에서는? 좋다고 받아들일 것 같아?”
여당도 조치연의 비리 장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무리 여당 친화적인 특별검사가 지정된다고 해도 어디까지 친화적으로 수사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특검을 해야 하는지 그냥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하는지 판단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저렇게 스피커를 몰아주면 여당에서는 특검을 하는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안 돼· 죽어도 안 되는 거야· 지가 뭔데 특검이니 뭐니 나불거리고 있어? 건방지게···”
[알겠습니다· 그럼 지켜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수고하고···”
그렇게 전화를 끝마치려는데 갑자기 장용성 의원의 화들짝 놀란 목소리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대표닙!]
“왜 또?”
[방금 문자가 왔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장부 말고 또 다른 장부가 있다는 이야기가 검찰로부터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이거 진짜 특검 가면 다 죽을 수 있습니다!]
거의 비명처럼 들리는 장 의원의 목소리에 곽태호 당대표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 기호지세(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