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호지세(2) >
곽태호 당대표가 장용성 의원의 절규를 듣고 있는 그 시각·
도수연 의원 역시 강형수 보좌관의 검찰 발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게 사실이야?”
“네· 본격적으로 수사가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일단 검찰이 기자에게 흘리고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스가 검찰에서 나온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안인가요?”
강형수 보좌관으로서는 그게 얼마나 그녀를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이슈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중요해 보이는 정보라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사색이 된 도수연 의원을 보면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그 장부에 도 의원의 아주 중요한 비밀이 담겨 있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후···”
그녀는 대답 없이 머리를 쓸어올리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최영훈 상무의 말을 듣고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황에서 갑자기 이런 식의 뒤통수를 맞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누가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최영훈 상무의 모략인 것인지 그녀는 그걸 알 수 없었다·
입술을 깨문 그녀가 강현수 보좌관에게 말했다·
“잠깐 나가 있어봐·”
“알겠습니다·”
강 보좌관을 내보낸 그녀가 영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 후에 최영훈 상무가 전화를 받자 그녀가 흥분한 어조로 쏘아붙였다·
[여보세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방금 검찰에서 새로운 장부에 대한 이야기를 흘렸어요· 날 기만한 거예요?”
[네? 새로운 장부요?]
“그렇다니까요! 지금 어쩌자는 거예요? 기자들 다 불러놨는데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
[알겠어요· 일단 진정하시고 내가 한번 알아볼 테니까 기자회견은 그대로 하세요·]
최영훈 상무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도 정말 모르는 일인 것 같았다·
도수연 의원은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진짜 해결할 수 있는 거예요? 확실한 거죠?”
[네· 검사님하고 직접 대화해서 풀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쪽에서도 아마 부담스러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럼 전 최영훈 상무 믿고 일 진행해요?”
[네· 기자회견 잘 하세요·]
“알겠어요·”
전화를 끊은 도수연 의원이 강현수 보좌관을 불렀다·
“들어와!”
“네·”
“기자회견은 예정대로 진행할 거야· 동요하지 말고 이번에 나온 검찰쪽 기사는 무시해·”
“특검을 주장하는데 있어서 이번 검찰쪽 이슈는 의원님의 주장을 더 뒷받침하게 될 겁니다· 오히려 이번 이슈를 꺼내는 게···”
“아니! 그 이슈는 꺼내지 않을 거야· 철저히 무시해·”
강현수는 혹시나 해서 꺼내봤는데 도 의원의 반응을 보고 확신했다·
“혹시··· 검찰쪽 이슈가 의원님과 관련이 있다면 기자회견은 취소하는 게 좋습니다· 엎질러진 물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알아· 이미 처리했어·”
“처리하셨다구요?”
“그래·”
강 보좌관은 단호한 그녀의 대답에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가 나가고 도수연 의원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마치 전투를 앞둔 병사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방을 나섰다·
*
영훈은 도수연 의원의 전화를 끊고 나서 바로 김상철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회의중인지 누굴 조사중인 건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초조해진 영훈은 바로 옷을 챙기고 방을 나섰다·
“잠깐 나갔다가 올게요·”
영훈은 곧바로 차를 몰아 동부지검이 있는 송파동으로 향했다·
동부지검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 연락을 받지 않고 있던 김상철 검사는 영훈이 주차장에 막 차를 대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그는 영훈이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 주차장으로 달려나왔다·
“미안합니다· 참고인 조사중이어서요·”
그는 영훈의 차에 타서 가쁜 숨을 내쉬었다·
“하필 타이밍이 안 좋았네요·”
“그런데 여기까지 왜···?”
“검찰에서 추가 장부 이야기를 흘렸다고 하던데 검사님이 흘린 겁니까?”
“아 네· 제가 기자들에게 슬쩍 흘렸습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잘했다는 듯 말하다가 심각한 영훈의 얼굴을 보자 슬그머니 어깨가 내려갔다·
“하아··· 왜 그러셨어요?”
“아니 도수연 의원이 특검 이야기를 꺼냈더라구요· 당연히 당내에서 집중포화를 받고 있길래 잘 됐다는 생각에 장작을 하나 던질까 했습니다· 뭐 잘못된 건가요?”
“저한테 말이라도 해주시지·”
“왜 그런데요?”
“도수연 의원이 집중포화를 받은 건 일부러 그런 겁니다·”
“일부러요?”
“네· 도수연은 특검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럼요?”
“당을 쪼개고 싶은 겁니다·”
김상철 검사는 입을 떡 벌렸다·
“당을 쪼개요?”
“네· 분란을 만들려고 일부러 특검 이야기를 꺼냈는데 거기에 진짜 장작을 넣으시면 여당에서 특검을 안 받을 수 없게 돼요· 그러면 검찰 내부에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건···”
솔직히 김상철 검사 또한 법조인들의 치부가 담긴 세 번째 장부를 수사하는 건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그걸 자신의 손도 아니고 남의 손에 수사를 맡긴다는 건 검찰 내부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올 게 뻔했다·
특히 안 그래도 검찰 내부에서 이번 조치연 수사팀을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그들이 찾아낸 새로운 장부를 특검에 내다 바치는걸 보게 되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은 정치쪽으로 빠지게 된다고 해도 함께 수사를 진행했던 사람들은 엄청난 피해를 볼 것이다·
“조치연 씨는 어제 일어났던 차명진 회장의 폭행의 결과 때문에 이제 마음의 빚을 털었어요·”
“정말요?”
“네· 저 역시 비슷합니다·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이 조사로 과연 법조계가 바뀔까 싶기도 해요·”
“그렇군요·”
“지금까지 한 것만으로도 검사님이 가져가야 할 건 다 가져갔으니 이쯤에서 접는 게 어떨까 합니다·”
“저는 그만 둘 수 있어도 윗선에서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저와 윗선은 수사한 목적이 달라요· 아시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수사를 적당히 마무리하면 검찰총장을 비롯해서 총장라인은 알아서 옷을 벗을 겁니다·”
“정말인가요?”
“네·”
김상철 검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도 솔직히 눈치를 많이 보기는 합니다· 다들 조사를 하기는 하는데 이래도 되나 싶은지 계속 물어보랍니다· 하하하! 뭘 자꾸 물어보라는지···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저도 참 여러모로 몹쓸짓 하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차명진 회장이 저렇게 되기도 했
고 사실 이제 세영그룹도 끝장난 마당에 장부 가지고 더 파고들어가는 것도 뭐하긴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다행이군요·”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뭘 말인가요?”
“세영그룹이요· 저들이 가진 미디어는 쉽게 건들지 못하기도 하고 먹을 게 없기도 하지만 세영개발은 알짜배기 아닙니까? 이미 한경리조트를 헐값에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래도 아직 세영개발에는 많은 자산이 남아 있습니다·”
“알고 있기는 한데 별로 관심 없습니다·”
“가지고자 하면 다 가질 수 있을 텐데요?”
“관심 없어요· 그보다 검사님이 진짜 궁금해하는 건 그게 아닐 텐데요?”
김상철 검사는 멋쩍게 웃었다·
“하하 속물이라 어쩔 수 없네요· 전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수사를 적당히 마무리하게 되면 분명 언론이나 국민들이 수사가 미진했다는 말이 나올 겁니다·”
“그렇겠죠·”
“그때 분연히 떨치고 나오세요·”
“아··· 지금 수사를 종결하는 게 외부의 압력인 것처럼요?”
“네· 그럼 검사님은 정의로운 행동가가 될 것이고 정계에선 검사님의 이미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질 겁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말이죠?”
“맞습니다· 사실 검사님은 어느 쪽이든 상관 없으시잖아요?”
그는 묘한 눈빛으로 영훈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참 특이하네요· 낳아준 엄마도 잘 모르는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진짜 속을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 같습니다·”
“제가 원래 사람을 좀 잘 봅니다·”
“하하 돗자리 까셔도 되겠네요· 어쨌든 잘 알겠습니다· 언론에 새어나간 장부 이야기는 제가 알아서 수습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훈은 차에서 내린 뒤 다시 검찰청으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수연 의원을 도와주기 위해 장부 이야기를 흘렸다?
그는 그렇게 결정력이 빠른 사람이 아니다·
조심스럽지만 끈질긴 사람이 그인데 도수연 의원이 그 이야기를 했다고 갑자기 기자를 불러서 언론에 흘렸다는 건 그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그의 성향과 맞으려면 이미 미리부터 세 번째 장부를 흘릴 타이밍을 계속 잡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왜?
조치연의 목적이 차명진인 걸 몰랐을 리도 없고 적당히 사태가 마무리되는 국면이라는 것도 몰랐을 리 없는데···
누군가 그의 옆에서 바람을 넣는 사람이 있는 게 분명했다·
영훈은 그게 신경쓰였다·
그 사람이 누군지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니까·
*
김상철 검사는 검찰청으로 돌아온 뒤 인상을 팍 찌푸리며 앉았다·
그리고 한참 고민하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어 나야· 잠깐 나 좀 보자고· 응 그래· 바로 나갈게·”
그는 곧장 다시 주차장으로 나가다가 멈칫하고는 아까 최영훈 상무가 주차했던 자리를 힐끔거렸다·
최영훈 상무의 차가 없어진 걸 확인한 후 그는 다시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차에 올랐다·
혹시나 검찰청 외부에서라도 마주칠까 싶어 계속 주변을 두리번 거린 그는 올림픽대로를 타고 미사리의 한 카페에 들어섰다·
“여깁니다·”
누군가가 김상철 검사를 향해 손을 흔든다·
김상철 검사는 손을 흔든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급히 걸어가 앉고는 말했다·
“미안한데 접어야 할 것 같아요·”
“예? 그게 무슨 말이세요?”
김상철 검사의 앞에 앉은 사람은 이제 갓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입고 있는 옷이나 분위기가 상당한 재력을 소유한 듯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얼굴도 말끔하게 잘생겨 누가 보더라도 호감형이리고 생각할 인상이었다·
“이유는 묻지 마세요· 장부의 존재는 그냥 잊는 게 좋을 겁니다·”
젊은 남자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리고는 김상철 검사를 힐난했다·
“뭐하는 겁니까? 사람 가지고 장난해요? 우리가 우습게 보입니까?”
“처음부터 어려울 수 있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이러면 다음 공천에 검사님을 올려드리기 어렵습니다·”
김상철 검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협박이 아니라 사실을 말씀드린 겁니다· 분명 우리를 도와줄 수 있다고···”
“결과적으로는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될 겁니다·”
“뭐라구요?”
“당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될 겁니다· 그렇게 진행될 거예요· 그러니 더는 날 채근하지 마세요· 그리고 당대표에게 전해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렇게 말한 김상철 검사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자 자리에 남아 있던 젊은 남자가 대략 10분 정도 더 자리를 지키다가 움직였다·
그가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성북동의 한 저택·
저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예전 임복희를 찾아와 손주 사주를 봤던 여당의 당대표인 민구상이었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후덕한 인상의 그는 남자가 들어오자마자 물었다·
“어서오게· 뭐라고 하던가?”
젊은 남자는 여당의 당대표 앞에서 털썩 앉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말을 바꾸더군요· 안 될 것 같다고··· 이제 어쩔 겁니까?”
민구상 대표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로서는 방법이 없네· 장부가 나오지 않는 이상 신하은 판사의 마음을 움직일 도리가 없어·”
“이거 왜 이러세요? 아니 여기나 저기나 왜 이렇게 약속들을 안 지키지?”
“말이 심하군·”
“심한 건 대표님이시죠· 당대표 만들어드렸으면 뭐가 좀 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가는 것만 있고 오는 게 없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호구짓 한 겁니까?”
민구상 대표는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지만 입을 열지는 못했다·
그의 말이 꼭 틀린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품속에서 안경 닦이를 꺼내 안경을 닦으며 말했다·
“신하은 판사 마음을 못 돌리면 다음 대선에서 우리 그룹 지원은 없습니다· 뭐 당대표까지 하셨으니 이제 욕심 없으시면 어쩔 수 없고··· 욕심 없으시잖아요? 그쵸?”
대통령 욕심 없는 정치인이 어디 있을까?
민구상 대표는 입술을 깨물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기다려보게· 내 방도를 마련할 것이니·”
“그럼 전 대표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재수 없는 김상철 검사는 이제 대표님이 상대하세요· 내가 지랑 대화한다고 나랑 맞먹을려고 든다니까? 미쳐가지고··· 알겠죠?”
민 대표는 대답 없이 몸을 일으켰다·
대답을 하지 않는 것 정도가 그가 지금 세울 수 있는 자존심이었다·
< 기호지세(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