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호지세(3) >
[도수연 의원 미적거리는 통평당 수뇌부를 맹비난]
[통일평화당 내분 이대로 괜찮은가?]
[여야 특검정국 돌입 과연 청와대 결정은?]
도수연 의원의 기자회견으로 인해 통일평화당은 쑥대밭이 됐다·
원내대책회의는 당연하게도 그녀를 향한 성토의 장이 됐는데 마침 그녀가 회의 참석을 거부하면서 누구 눈치볼 필요도 없이 전부 그녀를 맹비난했다·
“뭔가 굉장히 큰 착각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데···”
“건방지게 말이야· 좀 떴다고 대우해줬더니 사람 알기를 개똥같이 알고 있다니까!”
“진정합시다· 도수연 의원이 괜히 그랬을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생각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생각은 무슨 생각! 그냥 뜨고 싶어서 그러는거지· 지금 도수연 의원 생각해줄 때가 아니에요! 상황 파악을 못해·”
“누가 상황 파악을 못한다는 거예요! 자기만 성질있는 줄 아나·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거 아니야!”
“어디서 소리를 지르고 있어! 나이도 어린 게 말이야·”
“나이도 어린 게? 어린 게? 말조심해! 말조심하라고!”
원내대책회의는 난장판이 됐다·
통일평화당 유진복 원내대표는 뒷목을 잡고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그 소식을 들은 곽태호 당대표는 당장 도수연 의원을 여의도로 불러 올렸다·
혹시나 계속 연락을 안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다만 무수한 의원들이 몰려와서 자신을 괴롭히는 게 싫다며 조용한 곳에서 만나자고 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여의도 부근 조용한 술집에서 그녀를 만나야 했다·
“거 얼굴 좋구만”
“좋아 보이나요? 한시가 멀다하고 욕설 섞인 전화가 걸려오는데?”
“그래서 안 받고 있잖아?”
뚱한 곽태호 당대표의 물음에 그녀가 피식 웃었다·
“직접 안 받으면 뭐해요? 보좌관 통해서 다 듣고 있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이유나 좀 들어보자고·”
“이유가 어디 있어요? 특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거지· 제가 다른 생각이라도 한다는 거예요?”
곽태호 대표는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면서 말했다·
“도수연 의원 나 곽태호야· 자네를 이 당으로 이끌었던 윤필호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 나였어· 윤필호 대통령이 나더러 뭐라고 했는 줄 알아? 심인안· 심미안이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라지? 난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이라고 했어· 내 앞에서 거짓말 하지 말라고· 뭐 때문에 그래? 이유
가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도수연 의원은 그와 자꾸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말릴 거라고 생각했다·
정치권에 쉬운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곽태호 의원은 늙은 여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그와의 만남을 피하지 않은 건 언제까지 계속 도망다닐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담판을 짓는 순간은 언제고 찾아올 것인데 계속 피해다니기만 한다면 정말 무슨 수작이 있을 거라고 믿을 게 분명하다·
그녀로서 가장 좋은 방향은 당에서 자신을 내치는 거였다·
하지만···
“왜 말이 없어? 혹시 당에서 나가길 바라는 거야? 그래서 지금 자폭하고 있는 거냐고? 왜? 자유행복당에서 깽판치고 오라고 했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게 아니면 이럴 이유가 없잖아? 설마 진짜로 특검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야? 정말 그런 거야?”
“네· 전 특검으로 여야 전부 깨끗이 정리했으면 좋겠어요·”
곽태호 의원은 껄껄 웃었다·
“허허허··· 이거 왜 이래? 도수연이· 이봐 도수연이!”
“왜요?”
“그 장부에 자네 남편 이름 올라가 있잖아? 그런데 무슨 특검이야?”
도수연 의원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너무 놀라서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그걸 보고 곽태호 당대표는 뭘 그리 놀라냐는 듯 말했다·
“여기 이 자리가 그냥 올라온 자리 같아? 개나 소나 이 바닥에 오래 있기만 하면 올라올 수 있는 자리 같아? 아니야 그렇지 않아· 생사를 오가는 도박을 수십 번 하면서 한 번도 지지 않을 정도의 운이 따라야 하고 수백의 도적놈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도 자신을 지킬 정도의 실력
을 가지고 있어야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여기야· 그런 내가 도수연이 네 속을 모를 것 같아?”
“무슨 소리세요? 그 장부에 남편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니?”
“흐흐··· 아직 연기가 부족해· 하지만 숨기고 싶다면 장단은 맞춰주지· 그 장부에 도 의원 남편이 올라가 있어· 특검이 그걸 들추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녀는 부르르 떨었다·
이런 전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녀였다·
곽태호 의원은 불안해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냥 이대로 접자고· 진짜 정치인생 다 걸고 그런 짓을 하고 싶어?”
그녀는 선택의 순간이 왔음을 느꼈다·
호랑이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목을 무는 대신 협상을 걸어온 것이다·
여기서 협상에 응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 테지만 앞으로 이 호랑이의 꼭두각시 인형으로 전락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죽는 것보다 꼭두각시 인형이 되는 게 백번 낫다고 생각하는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후··· 그렇군요· 전 몰랐는데 만약 그렇다면 제 남편이 잘못한 게 맞겠어요·”
“뭐라고?”
곽태호 의원의 표정이 웃는것도 아니고 화내는 것도 아닌 기묘하게 변했다·
“특검으로 그 모든 걸 밝혀내는 게 맞아요· 만약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겠어요·”
마침내 곽태호 의원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런 미친···”
도수연 의원은 그가 미처 화를 내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일어날게요·들어가서 남편에게 물어보고 만약 잘못한 게 있다면 털어놓으라고 말하겠어요· 대표님도 그 걸 원하시는 거죠?”
“···”
“오늘 조언 감사했습니다· 그럼···”
곽태호 의원은 문을 쾅 닫고 나가는 그녀를 보며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는 걸 깨달았다·
협박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다·
그 전에 그녀가 왜 이 짓을 벌였는지 확실히 알아내는 게 먼저였다·
성급하게 그녀를 몰아세웠다가 결국 있는 패를 꺼내 보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던 거다·
그는 침중하게 굳은 표정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
회사로 돌아오는 내내 영훈은 찝찝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분명 뭔가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굳이 시간 내고 사람 써서 알아봐야 싶을까 생각할 정도로 큰 일은 아닌 것 같았고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찝찝한 그런 정도였다·
그런 마음으로 회사로 돌아와서 그런가 연희는 단번에 영훈이 뭔가 불편한 마음인 걸 알아차렸다·
“왜? 나간 일 잘 안 됐어?”
“어? 아니··· 별일은 아니야· 그런데 그건 뭐야?”
연희의 손에는 몇 장으로 된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얼른 영훈의 책상 위에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빠가 그랬잖아· 하남에 가진 땅 굳이 남들처럼 아파트나 올려야겠냐고·”
“올려도 상관없긴 한데 그걸로 크게 득 보려고 하지는 말자는 거였지·”
“그거나 그거나··· 어쨌든 그래서 내가 생각을 좀 해봤어·”
“이게 그거야?”
“응· 한번 봐봐·”
영훈은 일단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고 연희는 소파에 몸을 맡겼다·
제법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니 꽤나 공을 들였음이 분명했다·
한참을 꼼꼼히 읽어내렸던 영훈이 보고서를 덮으며 물었다·
“난 이쪽에 대해 잘 몰라서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감이 안 오긴 해· 그런데 하남이면 멀지 않아?”
“멀다구?”
“응· 서울이랑 가깝지 않잖아·”
연희는 뭘 모른다는 듯 검지를 흔들었다·
“이거 뭘 모르시는구만· 하남이 멀면 골프 치러 전라도엔 왜 가고 충청도엔 왜 가?”
“그거야···”
솔직히 모른다·
골프를 즐기지 않아서 지방은 물론이고 해외까지 가며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건 거기에 가야 하기 때문이지· 그곳에 가야 즐길 수 있는 것· 그곳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면 거리가 먼 건 문제가 되지 않아· 물론 이건 내 생각·”
“그렇긴 한데··· 불편하지는 않을까?”
“뭐가 불편해? 돈 많고 시간 많은 여자들이 하다못해 본인이 운전하는 것도 아니고 기사가 운전해서 올 텐데?”
“아···”
“부잣집 여자들이 얼마나 심심한 거에 미치는지 모르지? 집안일을 하겠어? 애들 숙제 검사를 하겠어? 아니면 직장에 다니길 하겠어? 온갖 취미생활에 왜 매달리는 줄 알아? 심심해서 그래· 심심하니까 모여서 수다 떨고 싶은데 그래도 수준에 맞는 사람이랑 만나고 싶은 마음·”
“그런 거야?”
“그럼· 부잣집 남자들도 패턴은 다르지만 똑같잖아· 비슷한 수준과 어울리고 싶으니까 재미도 있고 운동도 되면서 돈 없으면 필드에 쉽게 못 나가는 골프를 주로 치는 것처럼· 여자들도 마찬가지인 거지·”
“흐음··· 그렇게 들으니 괜찮아 보인다·”
“그렇지?”
“그런데 비용이··· 조금 드네?”
보고서에 올라온 복합 디자인 센터의 건축비는 무려 3천억 원·
“백화점보다 덜 드는 건데?”
연희는 어깨를 으쓱이며 별거 아닌 듯 말한다·
또 저렇게 들으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해서 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건설쪽 관계자들이랑 미팅 잡아보자·”
“오케이· 그건 그렇고 이제 말해봐· 뭔데 아까부터 표정이 그랬어?”
“아··· 김상철 검사를 만나고 왔는데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다른 생각?”
“응· 정치쪽으로 빠질 수 있다는 걸 알아서 그런지 본인이 길을 열려고 하는 것 같아·”
“우리쪽에 불리한 건가?”
“배신할 사람이라서 걱정하는 게 아니라 꼼꼼하지 못하고 사람을 살필 줄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래·”
“실수할 수도 있다는 거네?”
“응· 그래서 걱정이 되는 건데 모르지· 올해 크게 걱정할 만한 구설수는 없거든· 일단 기다려보자고·”
영훈은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고 태국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천보윤 의원이 만남을 청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자정에 가까워져 오는 늦은 밤· 천 의원은 영훈에게 한강 둔치에서 만남을 청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뭔가 일이 있겠거니 하는 마음에 연희의 뾰로통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나갔는데 역시나 짐작이 맞았다·
천보윤 의원의 차를 찾아 뒷자석 문을 열고 앉으니 자못 심각한 표정의 그가 한숨을 쉬며 반겼던 거다·
“미안해· 이 시간에 불러서·”
“아닙니다·”
“아니긴··· 아직 신혼인데 이 시간에 남편 불러내는 사람을 어느 여자가 좋아하겠어? 나중에 자네 와이프한테 선물이라도 해줘야겠어·”
“괜찮습니다· 부족한 거 없이 자라서 어지간한 선물은 받고 좋아하지도 않아요· 그것보다 무슨 일 있습니까?”
“흐음···”
천 의원은 한숨을 쉬며 입을 오물거리다가 한참이 흘러서야 입을 열었다·
“민구상 당대표가 나한테 압박을 넣고 있어·”
“어떤···?”
“내가 이번 수사팀에 힘을 쓸 수 있다는 걸 아는지 나한테 장부 이야기를 하는 거야· 이거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판에 이상한 파리가 꼬였어· 어떻게 그 장부를 알고 있을까?”
“뭐라고 합니까?”
“법조인에 대한 비리가 담긴 장부가 있는데 지금 수사팀이 그걸 덮으려고 한다더군·”
“덮지 말고 끝까지 수사하도록 해달라고 합니까?”
“맞아· 이거 이상하게 꼬였어· 도수연이가 특검 이야기를 꺼내서 야당을 자중지란에 빠지게 하는 걸 보고 무릎을 쳤다네· 정말 기가 막힌 한 수였다고 말이야· 그런데 우리쪽에서 진짜 그걸 받으려고 할 줄은 몰랐어· 그것도 당대표가·”
“이유가 있겠네요?”
“그렇지· 문제는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고·”
“안 됩니다· 일이 커지는 건 물론이고 도수연 의원의 처리가 곤란해집니다·”
“알고 있네· 그래서 문제야· 이걸 어찌 하면 좋을까?”
“민구상 의원이 왜 저러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제가 만나보겠습니다·”
“자네가? 민 대표를? 만나서 어쩌려고?”
“이야기를 해봐야죠· 무슨 이유 때문인지·”
“흐음··· 내가 일단 자연스럽게 자리를 마련해보지· 그런데 말이야··· 이상한 이야기를 했어·”
“네? 무슨···?”
“당을 위해서 꼭 해줘야만 하는 일이라고 했단 말이지· 당을 위해서··· 누군가와 거래를 했단 말인데···”
“당을 걱정하는 겁니까? 그를 걱정하는 겁니까?”
“둘 다· 그리고 민구상 대표의 지원 없이 내가 대선경선에서 1위를 한다는 보장이 없어· 그는 나의 가장 절친한 동반자이자 후원자니까·”
천재일우의 기회·
천보윤 의원은 자신에게 내려온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 기호지세(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