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격(2) >
강다은에 대한 찌라시 정보는 증권가가 아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흔한 찌라시로 여겨졌지만 몇몇 사람들의 증언(?)이 더해져 급격히 확산됐다·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닐까요?”
천보윤 의원의 아들 승모는 핸드폰을 부여 잡고 덜덜 떨었다·
지금 그는 살아생전 이렇게 행복할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난데 없는 찌라시 하나가 그의 행복을 깨뜨리려고 하니 덜컥 겁이 난 거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딴 찌라시 내가 처리할 수 있어요·”
오히려 나이가 어린 다은이 불안해하는 승모를 달랬다·
그녀는 당황스러우면서도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
일이 잘못될까봐 걱정스러운 마음도 컸지만 핸드폰을 들고 안절부절 못하는 승모의 모습이 그녀를 더욱 당황하게 했다·
남자 연예인 임필·
이제 막 스타 반열에 올라선 그는 천사 같은 미소로 여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그런 남자와 연애를 했다는 말이 승모의 마음을 어떻게 만들지 그녀는 걱정스러웠다·
게다가 오래 사귀었으면 억울하지도 않을 텐데 그 임필이라는 남자는 잘생긴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 눈이 굉장히 높았다·
다은이의 미모가 평균적인 여자들에 비해 상당히 예쁜 편이라고해도 어디 여자 연예인들과 비교할 수 있을까·
허구헌날 여자 아이돌과 여배우들 속에 치여 사는 임필이 보기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다은은 자신의 짝으로 부족해 보였는지 만날 때면 항상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댔었다·
그 모습이 꼴보기 싫었던 다은은 그와 연락을 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헤어졌는데 당시 만났을 때 몇 개 찍지도 않았던 사진 중 하나가 유출까지 된 것이다·
“···”
승모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며 핸드폰을 쳐다 본다·
그 모습에 다은은 더욱 가슴이 조여왔다·
혹시나 자신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는데 그렇다고 그걸 대놓고 물어보기도 뭐한 상황이었다·
따지고 보면 억울하기도 했다·
이 나이에 연애 경험 한두 번 있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 나이까지 연애 한 번 못해본 승모가 특이할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억울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낼 만큼 바보는 아니었기에 그녀는 승모의 눈치를 보며 작은오빠에게 당장 이 상황을 해결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초조하게 답장을 기다리는 그 때 승모가 벌떡 일어났다·
깜짝 놀라는 다은에게 그가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네? 어쩌려구요?”
“집에 들어가요· 나도 나대로 한번 알아볼 테니까·”
처음 보는 단호한 승모의 태도에 다은은 더욱 가슴이 철렁했다·
행여 뭐라도 알아보다가 괜히 더 오해해서 이 결혼이 깨지는 건 아닌가 싶었던 거다·
“그러지 말고···”
“아니요· 나도 알아볼 테니까 일단 집에 들어가요·”
말을 제대로 꺼내지도 못하게 만드는 그를 보며 다은은 입술을 깨물었다·
“알았어요·”
다은은 분명히 느꼈다·
어딘가 모르게 조금은 냉랭해진 승모의 눈빛·
실망한 게 분명했다·
억울했지만 일단 더이상 언급하지 않고 그와 헤어진 다은은 곧장 오성전자로 향했다·
어차피 자기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기에 사람들 눈에 띄지는 않았다·
오성전자 사옥 주차장에 들어온 그녀의 차에 기다리고 있던 대성이 주변을 살피고 재빠르게 올라탔다·
“어떻게 됐어?”
근래 본적이 없을 만큼 굳어진 여동생의 표정에 대성도 난감해졌다·
“일단 알아보는 중이야·”
“지금까지 알아보지 않고 뭐 한 거야!”
“소리지르지 마· 우리 애들은 노는 줄 알아? 인터넷에 퍼진 거 추적해서 연락하는데 한두 시간에 다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이거 아무래도 이상해·”
“뭐가 이상한데?”
“우리 쪽에서 연락해서 적당히 돈주고 처리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돈을 원하지 않아· 아예 연락 자체를 안 받으려고 한다고·”
“하아···”
그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다은이도 모르지 않았다·
애초부터 자신의 결혼을 깨기 위해 짜여진 각본이라는 것·
대성은 일단 그녀를 진정시키고자 했다·
“야 저 지랄해봤자 우리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 며칠 시끄럽겠지만 어차피 금방 잦아들어· 너 결혼하는데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상황이 곤란하게 되기는 했어도 다은의 결혼이 정말 깨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대성이었다·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어차피 오성의 눈치를 보지 않는 언론이 없고 오성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정치인도 없다·
야당 쪽에서 이걸 빌미로 천보윤 의원을 깎아내리려고 하겠지만 오성의 여식이 엮여 있는 일이기에 일정 이상의 선을 넘지도 못할 것이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에서의 오성그룹 영향력이다·
하지만 다은은 대성과 생각이 달랐다·
“결혼은 문제 없을 수 있겠지! 그런데 승모 씨가 실망했잖아·”
“뭐? 인마 그게 뭐가 중요해· 그리고 그 나이에 연애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딨어?”
“나도 알아· 그런데 어디 사람 마음이 그래? 나도 새것인 줄 안 가방이 누가 썼다고 알게되면 쓰기 싫어져· 하물며 처음 산 명품가방이 알고 보니까 중고인 걸 알게 돼 봐· 실망하는 게 당연한 거야·”
“이게 지금 명품가방에 갖다 댈 일이야?”
“다른 남자라면 이딴 거 신경도 안 써· 여느 재벌집 아들이면 어차피 중간에 이혼하면 돼· 누가 흉 보지도 않고 아무도 날 신경쓰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아니잖아· 일단 결혼하면 최소 5년 동안은 이혼 꿈도 못 꿔· 게다가 5년 지난다고 끝도 아니야· 사람들은 우리가 진짜 사랑해서 결혼
했는지 계속 신경쓸 거고 이혼이라도 했다간 죽을 때까지 입방아에 오를 거야·”
“그거야 그렇지만···”
“나 결혼 생활 동안 행복하고 싶어· 그러니까 그동안 나한테 감옥처럼 살라는 거 아니면 당장 해결해·”
“알았어· 해결할 테니까 진정해·”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는 동생의 기세에 찔끔한 대성은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함을 깨달았다·
*
“요즘 너무 자주 찾는 것 같아서 민망합니다만 뉴스 보셨죠?”
무슨 일만 생기면 쪼르르 달려오게 되는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대성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영훈은 다급히 물어오는 대성에게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과자 한 조각을 집어 먹으며 물었다·
“그 정도는 알아서 처리할 수 있으시잖아요?”
무시하거나 비꼬는 게 아니라 진짜 그렇게 생각해서 묻는 거였다·
오성이 괜히 오성인가?
영훈은 고작 이 정도 일로 자신을 찾아오는 대성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심하기는 해도 어리석거나 선후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알아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소란스럽기야 하겠지만 우리 직원들 능력이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이틀이면 저 짓거리 한 새끼들 다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다 소용없습니다·”
“왜요?”
“누가 한 짓인지 뻔히 아니까요· 형이 한 짓일 거예요· 이미 돈 먹이고 꼬리도 깔끔히 잘랐을 겁니다· 뭐 형이 아니면 형수가 했을 수도 있구요· 누가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네요·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보다 일을 정리하는 게 중요하죠·”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일을 정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형을 몰아내는 겁니다·”
이번에는 흥미가 돌았다·
“지금요?”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최일곤 사장에게 대행을 맡겼습니다· 아시다시피 최일곤 사장은 저와 손을 잡은 사람이라 그룹이 사실상 제 손에 들어온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긴 한데··· 오성그룹 계열사 지분을 옮기는 작업은 부회장님의 허락 없이는 힘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 여기까지 찾아온 겁니다· 아버지의 허락이 필요한 일은 맞는데 아버지가 최일곤 사장에게 대행을 맡기신 걸 보면 말은 하지 않았어도 은근히 제가 일을 처리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움직이지 않는 게 아버지 뜻을 읽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영훈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아직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생각을 제법 읽어 내린다·
“그래서요?”
“전 제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어디 보통 일입니까? 한번 움직이면 다시 되돌리는 건 힘듭니다· 아버지의 뜻이 맞다면 그룹 사장단과 전략실을 움직여서 지분 이동을 시킬 생각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그러하지만 대놓고 둘째를 밀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그 명분을 형인지 형수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 둘이 제공한 겁니다·”
“아까 강 실장님이 말하지 않았던가요? 꼬리를 남기지 않았을 거라고?”
“법정에 세울 거 아닙니다· 우린 사기업이니까요· 법정에만 세우지 못할 뿐 정황증거만으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다은이의 결혼에 훼방놓은 건 그룹의 미래에 제동을 건 짓이고 동생의 미래를 망친 겁니다· 용서할 수 없는 행태예요· 이걸로 사장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
다·”
“결국 아버지의 허락이 필요한데··· 나더러 가서 한번 떠봐 달라?”
“네·”
“본인이 물어보시죠?”
“무섭습니다·”
영훈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웃길 거라는 건 인정합니다만 그래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네요· 아버지는 오성그룹 총수입니다· 태어나서 자상한 미소 한번 보여준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큰아들 뒤통수를 치고 나한테 그룹을 물려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떨리지 않으면 그게 사람이 아닌
거 아닙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어요·”
“그러니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쩌면 잘된 건지도 모릅니다·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정리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처음 당신이 생각했던 대로···”
“그럴 수도 있겠군요· 좋습니다· 지금 오성병원에 계시던가요?”
“네·”
“시간 내서 한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일은 잘 마무리할 수 있겠어요? 동생분이 꽤 난감할 것 같은데·”
“최선을 다해 봐야죠·”
대성은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동생의 안쓰러운 모습을 보고 이번 사태가 오히려 기회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당연히 여동생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 아니었다·
*
청담동의 한 디자인업체 앞에 도착한 승모는 건물 앞에서 침만 꿀꺽 삼킨 채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생활 내내 활력소가 되어주었던 그녀·
감히 좋아한다고 말 한번 해보지 못했지만 승모에게 그녀는 지금도 쉽지 않은 존재였다·
잠시 숨을 고른 승모는 마음을 굳게 먹고 건물로 들어갔다·
“유미야·”
“왔어?”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어주는 그녀·
그런에 이상하게 예전과 같은 떨림은 느껴지지 않는 승모였다·
그래서일까·
승모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처음 떨리던 마음은 이야기를 하는 내내 가라앉았고 그녀의 눈을 마주보고 있음에도 크게 설레지 않았다·
“나 도와줄 거지?”
같은 학교 디자인학부 출신이었던 승모의 친구 송유미는 그의 어깨를 툭 때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런데 내가 만들어주는 건 문제가 아닌데 또 다른 증거가 나오면 곤란하지 않아?”
“어차피 시간만 끌면 돼· 오성 애들이 알아서 처리할 거야·”
“그럼 뭐··· usb 줘 봐·”
“여기·”
유미는 승모에게서 받은 사진 중에 예전에 자신과 같이 찍었던 걸 선택했다·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그녀와 단둘이 찍은 사진·
“이거면 되겠다· 이 때 너랑 나랑 둘이서 갔잖아· 나 아니면 아무도 모르고· 여기서 내 사진을 지우고 네 와이프 될 사람 얼굴로 바꿀게·”
그녀가 미술관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구했던 표·
같이 가자고 말하기 어찌나 어려웠는지 지금도 그때의 떨림이 기억날 정도였다·
“그래·”
유미는 포토샵을 이용해 능숙하게 자신의 얼굴을 다은의 얼굴로 바꿔나갔다·
작업을 하면서 뒤를 슬쩍 돌아본 유미는 안절부절못하는 승모를 보고 물었다·
“그런데 너 되게 의외다·”
“응? 왜?”
“난 너가 이렇게 빨리 결혼할 줄은 몰랐거든·”
“아···”
“여자친구 많이 좋아해?”
“어?”
당황하는 승모를 보며 유미가 피식 웃었다·
“뭘 놀라고 그래? 결혼할 여자잖아·”
“그렇지·”
“학교 다니는 내내 공부만 하고 가끔 게임만 하던 너여서 결혼은 한참 뒤에나 할 줄 알았는데 우리 중에서 네가 가장 먼저 결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어?”
“어? 그건···”
“그냥 집안끼리 그렇게 된 거야? 역시 그렇구나· 그럼 이거 보고 크게 실망하지는 않겠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승모가 황급히 말했다·
“아니야· 내가 먼저 사귀자고 했어·”
“정말? 너 이 여자 진짜 좋아하는 거였어?”
깜짝 놀라는 유미에게 승모가 말했다·
“어 많이 좋아해· 그리고 실망 안 했어· 지금 내가 좋아하니까· 내가 이걸 지우려고 하는 건 결혼이 깨질까봐서가 아니라 이거 때문에 여자친구가 슬퍼할까 봐 그래· 그래서 빨리 지우려고·”
“그렇구나· 그래· 보기 좋다·”
유미의 대답과 동시에 승모는 아주 조금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었던 감정 하나가 사르륵 사라짐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승모는 처음으로 유미 앞에서 자연스럽게 웃었다·
“고마워· 그리고 이왕이면 예쁘게 나오게 해줘·”
< 반격(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