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바? 부업? 투잡?(4) >
“시세는 현재 시장가인 15500원 합시다· 거절하려면 미리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건을 받아들이시겠다면 여기 연희 씨를 통해 알려주시면 재무팀과 협의를 통해 적당한 시기에 매입하도록 하겠습니다· 더 할 말 있으신가요?”
“···”
“없군요· 알겠습니다· 친척분의 결혼식 축하드립니다· 신부되신 분이 정말 아름다우시더라구요· 진심입니다·”
영훈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연희도 얼결에 따라 일어섰다·
이형준 본부장은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를 두고 호텔을 나와 연희의 차에 타자 그녀가 속사포 쏟아지듯 질문을 쏟아냈다·
“주식을 왜 산다고 했어요? 아니 그것보다 도대체 뭐 때문에 저 인간이 저렇게 놀래요? 설마 우리한테 현재 시장가에 팔거라고 생각해요?”
“거 운전에 집중합시다·”
“아니··· 집중하고 있으니까 천천히 말해봐요· 하나부터 열까지·”
“전에 한번 말했는데 본래 사주를 볼 때 중요한 건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했습니다·”
“맞아요· 그랬죠·”
“그런데 이형준 본부장은 운명보다 성격이 조금 더 중요했습니다·”
“왜요?”
“재벌 3세로 태어났으니 재복이야 말할게 없고 흉살이 들어와 투옥되거나 일찍 죽지 않는 이상 당장 그의 사주로 뭔가 특별한 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연희는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재벌 3세의 사주가 특별하지 않다구요?”
“거 참 재벌 3세 사주가 특별하다는 게 아니라 초년에 큰 사고 없고 중년에 타고난 재복으로 큰 문제 없이 사니 별다를 게 없다는거지 사주 자체가 특별하지 않다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말하지 않았지만 당신만큼이나 기구하기도 해요· 그는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 기구한 사연은 당연히 말해주지 않겠죠?”
“말해야 할게 있다면 말해주지만 지금 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면 당신이 알 자격은 없습니다·”
“알겠어요· 이해했어요· 그럼 계속 얘기해봐요·”
“주식을 사라고 한건 이형준 본부장의 타고난 성향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야심이 많은데다가 욕심이 과하게 많습니다· 관상으로 보면 코 끝이 아래를 덮는 것만 봐도 그의 집착을 알 수 있는데 한 번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상대방을 괴롭힙니다· 어찌보면 잔혹하다고 할 수 있죠·”
“어··· 그런 사람이었어요?”
“섬뜩하죠? 그런 사람의 뺨을 후려갈겼으니·”
연희는 운전대를 잡은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며 긴장감을 쓸어내렸다·
“그래서요?”
“내가 뭘 안다고 우리가 주식을 산다고 했겠습니까? 회사 자금 사정이 안 좋을 수도 있고 살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데도 아까 그런 얘기를 한 건 주식을 가져 와야지만 그와의 관계를 끊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번 만큼은 운명보다 성향이 중요하다고 한 겁니다·”
연희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만약 현재 시세로 주식을 다 매입할 수 있다고 하면 회사에서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다· 나도 잘 모르네요· 회사 유보금이 정확히 얼마나 있을지 모르니까· 그건 그렇고 가장 중요한 거· 아까 그 인간한테 한 이야기는 뭐예요?”
“대략 눈치 채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음··· 일단 말해주기 전에 확답을 하나 받겠습니다·”
“뭔데요?”
“지금 듣는 이야기는 절대로 먼저 입밖에 내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약속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요 엄마가 어떻게 된 상황이냐고 물어보면 일의 진행과정을 설명해야 할 것 아니에요?”
“설명하지 마세요· 만약 그가 이 정도에서 주식을 넘기고 넘어간다면 연희 씨도 그에 대한 일은 묻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긴가요?”
영훈은 별게 다 걱정이라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결과가 중요한거 아닙니까? 우리한테 주식 넘겨준다고 하면 받을지 안 받을지 위에서 결정할 문제고 인수하라는 말을 안 해주면 감사한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했는지 설명해야 하잖아요?”
“모른다고 하세요· 그냥 내가 알아서 했다고·”
“하··· 엄마가 그럼 알겠다고 하면서 넘어가겠어요?”
“넘어갈 겁니다· 자꾸 하기 싫은거 시키면 회사 나갈려니까·”
연희는 어이가 없는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세우고는 빽 소리 질렀다·
“무슨 퇴사한다는 소리를 그렇게 가볍게 해요?”
“회사는 직원들 짜른다는 소리는 쉽게 하면서 직원이 나간다는 소리는 쉽게 좀 하면 안 됩니까?”
연희는 움찔하다가 기어가듯 중얼거렸다·
“요즘 세상이 변해서 회사에서 직원들 쉽게 못 짤라요·”
“나 아직 인턴입니다· 정규직 아니에요·”
“그 말 빨리 정규직으로 해달라는 소리로 들리는건 저의 착각인가요? 난 왜 그렇게 들리죠?”
“기분 탓입니다·”
“진짜 나갈거예요?”
“그거야 당신 하기 나름이죠·”
“와~ 이걸 나한테 돌린다구요?”
“그래서 약속 하실겁니까? 안 하실겁니까?”
“할게요·”
또 이러니 저러니 꼬투리를 잡을 줄 알았는데 불만이 가득한 표정임에도 재빨리 대답한다·
“좋습니다· 전에도 얘기했겠지만 사람은 혼자 사는게 아니기 때문에 본인 사주뿐만 아니라 주변인의 사주 역시 중요합니다· 특히 금수저로 태어난 당신 같은 사람들은 부모 사주가 굉장히 중요하죠·”
“그 금수저 이야기는 그만하면 안 될까요? 꼭 내가 죄 지은 것 같잖아요?”
“그냥 받아들이세요· 누구는 못 생기게 태어나고 누구는 똑똑하지 못하게 태어납니다· TV 예능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못 생겼다 멍청하다 놀리는데 그깟 금수저로 태어났다고 하는 걸로 상처를 받으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살겠습니까·”
연희는 뭐라 항변하려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그게 뭐가 대수라고··· 계속하세요·”
“세상에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처럼 재복 인복 처복 자식복 등등 다 가지고 타고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재벌들 역시 마찬가지죠· 이세준 부회장은 자식복이 없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사주에 자식이 없는 사람입니다·”
연희는 너무도 충격적인 이야기에 몰던 차를 다시 길가에 세우고 물었다·
“이세준 부회장 아래에 아들 하나 딸이 둘이나 있어요· 그런데 자식 복이 없다뇨?”
“자식복이 없는 사람들은 의외로 꽤 많습니다· 자식이 불효하거나 단명해도 자식복이 없는 것이며 아예 자식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그게 재벌 2세라 놀라는 거지만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럼 이형준 그 인간이 이세준 부회장의 자식이 아니라는 건가요?”
“간혹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남편은 사주에 자식이 하나 있는데 아내는 사주에 자식이 셋이 있을 때 그럴때는 자식이 셋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남편이 사주에 자식이 아예 없을때도 간혹 아이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 궁합이 아주 좋다면 말이죠· 그래서 쉽사리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데 이세준 부회장과 이형준 본부장의 생김새가 너무도 달랐습니다·”
연희는 간혹 이런 개막장 집안의 이야기를 가끔 들어 왔기에 충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영훈이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건 조금 신기하긴 했다·
“아··· 이해했어요·”
“표정을 보아하니 이미 알고 있더군요· 아마 내가 제시한 조건을 따를 겁니다·”
“확신해요? 이미 그가 알고 있었다는거?”
“내가 한 말이 헛소리라고 확신했으면 그 상황에서 그렇게 조용히 넘어가겠습니까?”
“어? 듣고 보니 그렇네요? 만약 경찰이라도 불렀으면 어쩔 뻔했어요?”
“조용히는 있지 않더라도 경찰은 못 부릅니다· 만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다만 이렇게 쉽게 보내진 않겠죠· 어쨌거나 이제 내가 할 일은 다했습니다· 전 인사과에서 연락만 기다리면 되는 거겠죠?”
“정규직 전환 연락 말하는거죠?”
“당연한거 아닙니까?”
연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차를 출발시켰다·
“이형준이 나중에 다른 말 하면 어떻게 하려고 생각중이에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말했듯이 욕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거든요· 결코 자신의 지위가 흔들릴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건드려봤자 이득 볼 것도 없을테고· 아 전 저기 전철역에서 세워주세요·”
“집까지 태워 줄게요·”
“괜찮습니다· 갈데가 있어서요·”
“어디요?”
영훈이 연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궁금해합니까? 누가 보면 여자친군줄 알겠는데요?”
“할말이 없게 만드시네· 알겠어요· 내려줄게요·”
그렇게 영훈은 연희 차에서 내리곤 털레털레 지하철 역안으로 들어갔다·
며칠 전부터 극장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영훈의 발걸음에는 설레임이 가득했다·
*
“너 어떻게 된 거야? 결혼식 갔다왔다면서 왜 말이 없어?”
송 사장의 물음에 연희는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다·
“몰라 엄마· 할 건 하고 왔으니까 더 이상은 묻지 마·”
“왜? 잘 안 됐니?”
차라리 잘 안 됐으면 하소연을 하든 회사를 포기하자고 하든 할텐데 차마 입을 뗄 수 없으니 연희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잘 안 된건 아니야· 이형준 본부장 만나서 영훈 씨가 이야기 잘 했어·”
“너는 뭐하고?”
“난 빠져 있었지·”
“둘이서만 이야기하게 뒀다고?”
“괜찮아· 영훈 씨가 무슨 애도 아니고··· 그리고 물어보니까 알아서 잘 해결했대·”
연희는 본인이 말하면서도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었다·
“둘이 잘 해결했다고? 진짜?”
“응·”
“그래? 알겠어· 그럼···”
연희는 자기가 한 개소리보다 그걸 빠르게 수긍하는 엄마의 모습이 더 황당했다·
“진짜 알겠는거지?”
“네 삼촌도 그랬단다· 돈을 어떻게 받아왔냐고 물으니까 그냥 알아서 좋은 방향으로 잘 해결해서 받아왔다고 했다는거야· 내가 말했지? 얼마나 황당하게 일을 했는지· 그런데 둘이 잘 해결했다고 하니 뭘 하긴 했겠지· 알겠어· 쉬어라·”
“우··· 난 요즘 내가 바보가 된 거 같아·”
연희는 얼른 씻고 자고 싶다는 생각에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송 사장은 연희의 뒷 모습을 지켜보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신영투자증권 이형준 본부장 상황 지켜봐요· 다른 움직임이 있으면 보고하고·”
송 사장은 이상하게 이번 일이 쉽게 마무리 될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강남의 한 일식집·
“아이고 반갑습니다· 여기 앉으시죠· 오늘 결혼식은 잘 치르셨습니까?”
차지열 상무는 어두운 얼굴로 들어서는 이형준 본부장을 보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별거 아닐 거라고 여기곤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사촌 결혼식이라 제가 뭘 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자고 한 이유가 뭐죠?”
그의 눈빛에서 보이는 적대감에 차 상무는 양손을 저으며 오해하지 말라는 말투로 말했다·
“본부장님께서 우려하시는 것 때문에 뵙자고 한 건 아닙니다· 본부장님의 생각을 적극 찬성하는 쪽이니까요·”
“혜성기업 인수를 찬성한다구요?”
“솔직히 혜성기업은 이제 쭉정이 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관심있는건 신영에서 가지고 있는 현진물산의 주식입니다·”
“우리라··· 상무님이 말하는 우리가 어디입니까?”
“그야 현진물산의 주인 아니겠습니까?”
이형준 본부장은 차 상무의 애매한 대답에 팔짱을 끼고 가만히 노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뭘 말씀하시는 건지···”
“됐습니다· 오늘 자리는 큰 의미가 없겠어요·”
형준이 식사도 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 차 상무는 당황했다·
“제가 모르는 상황이 있는 겁니까?”
“모르는 걸 보면 앞으로도 당신은 알 수 없게 되겠군요· 송 사장이 다른건 몰라도 입은 무거워 다행입니다· 아니면 당신을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어쨌든 둘 다 내가 당신을 신뢰할만한 이유가 되지 못하겠군요·”
한 마디로 차 상무를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해버린 이 본부장은 그를 싸늘하게 바라보곤 나가버렸다·
차 상무는 뒤통수를 맞은 듯 그 자리에서 얼어 붙었다·
< 알바? 부업? 투잡?(4)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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