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꺼진 불도 다시 보자(2) >
사흘 뒤 영업 2팀·
영국의 명품 브랜드 Nodri Clare의 성공적인 런칭을 위해 여배우 서가은의 협찬을 이끌어낸 팀원들은 뉴월드 백화점의 입점 계약을 위해 발바닥에 땀나게 뛰는 중이었다·
특히 어제 서가은이 드라마 종방연에 참석하며 들고간 가방이 SNS를 타고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뉴월드 백화점쪽에서도 긍정적인 신호를 보여주고 있었다·
노형석 대리는 크리스마스 전인 12월 5일에 뉴월드 백화점 1층 쥬얼리 브랜드의 입점 계약이 종료될 때 맞춰 들어가겠다고 벼르며 준비중이었다·
이번 입점 계약을 성사시키고 성공적인 매출을 올리고 브랜드를 정착시킨다면 향후 기대 매출은 연 100억여원·
단번에 과장으로 진급하며 영업 2팀의 팀장으로 정식발령을 받을게 분명했다·
그런 팀의 분위기에 맞춰 일에 열중하는데 맞은편 영업 1팀의 사원이 갑자기 탄성을 터뜨렸다·
“우와···”
그리고 그때부터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뭐야? 이거 진짜야?”
영훈도 뭔가 해서 반쯤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는데 옆자리 연희가 슬쩍 소매를 잡는다·
그리고 자신의 화면을 가리켰다·
[현진물산 신영투자증권에서 현진물산 지분 5% 매입]
“아 이것 때문에?”
연희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고는 영훈을 데리고 옥상으로 데리고 갔다·
“이게 다 당신 덕분이에요· 이제 엄마의 부담이 훨씬 줄었거든요·”
“그건 알고 있는데 왜 이렇게 다들 동요하는 겁니까?”
그냥 놀라는게 아니라 다들 수군거리며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특히 팀장급 이상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당신 같은 신입사원들은 신경 쓸 일이 아니지만 임원을 앞두거나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과장급 이상은 이제 누구 라인을 타야 하는지 결정해야 할 시기예요· 그런데 이번 주식 매입으로 엄마의 경영권이 안정화 되면서 기존의 양 전무 라인이나 중립을 지키던 사람들이 동요하게 된거죠·”
“으음···”
영훈이 턱을 괴고 생각에 빠져들자 연희가 물었다·
“혹시 누구 라인을 타야 하는지 고민하는거 아니죠?”
“나도 이제 정규직입니다· 사내 정치에 끼어들 자격 있어요·”
“허···”
연희가 황당한 듯 헛웃음을 터뜨리자 영훈이 자못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과연 차 상무님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하네요·”
“반대로 납작 엎드리려고 하지 않을까요? 이번 일로 운신의 폭이 더 좁아졌을 텐데?”
“내 예상대로면 그래서 더 움직이려고 할 겁니다· 이대로 가다간 앞으로 사장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그럼 그 스스로가 견디질 못할 걸요?”
“뭘 그렇게 못 견딜까요?”
“그냥 그 사람의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이 위에 있는 것 자체가 힘들 겁니다· 어떻게 될지 지켜보면 알겠죠·”
“그건 그렇고 엄마가 혹시 받고 싶은 게 없는지 물어보랬어요· 이걸 고작 정규직으로 올려주는 걸로 퉁칠 수는 없으니까· 보너스는 특별상여금으로 처리하거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처리해줄 수도 있대요·”
아무래도 금액이 적으면 회사돈으로 처리하고 큰 금액을 달라고 하면 개인적으로 줄 모양인 것 같았다·
“됐습니다· 돈은 필요 없어요·”
“우움··· 이럴 것 같아서 생각해놓은 게 있는데· 혹시 이건 어때요? 내 이름으로 된 오피스텔이 몇 군데 있는데 지금 한 군데가 공실이거든요· 그거 쓰실래요?”
“어째 내용이 좀 이상한데 나만 느끼는거 아니죠?”
“이상한 생각하지 말구요· 돈도 싫다 하고 고시원에서 살고 있으니까 그렇죠· 나중에 대출 받아서 집 얻을 때 나가면 되잖아요· 정규직 됐다고 바로 은행에서 몇 억 대출해주는거 아니니까·”
사실 고시원이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통화를 마음대로 할 수 있나 통풍이 안 돼서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고 짐 놓을 곳도 없어 한쪽 구석에 산처럼 쌓아놔서 들어가면 서 있을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주는것도 아니고 그냥 빌려 쓰는 것이니 나쁠 건 없다·
게다가 이 정도는 영훈이 욕심을 부려서 얻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좋습니다·”
씨익 입가에 호선을 그리는 영훈을 보고 연희도 안심했는지 웃었다·
“다행이에요·”
둘이 영업 2팀으로 내려오니 노형석 대리가 말했다·
“연희 씨 인천 송도에서 서가은 씨가 화보 촬영한다고 하는데 가서 샘플 좀 주면서 전속계약 슬쩍 흘려줘요· 내가 본사 쪽이랑 얘기해서 어셉트 받았어요· 1년 계약에 10억 선에서 가능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영훈 씨는 샘플 많으니까 연희 씨 도와서 같이 다녀오고· 아 영훈 씨 이제 운전면허 준비 좀 해야 하지 않아?”
운전면허 역시 사회생활의 기본이 아니던가?
당연히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단지 끌고 다닐 차가 없었기에 준비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회사에서 업무용 차를 쓸 일이 생기니 이제는 빨리 면허를 따야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난 은성 씨랑 외부 미팅 좀 다녀올게· 수고들 하고 있어·”
노 대리가 은성을 데리고 나가자 연희가 슬쩍 물어본다·
“인천이면 혜성기업이 있는 곳인데 혹시 한번 가볼래요? 마침 대표가 어제 입국했다고 하는데·”
영훈은 생각지도 못하게 오피스텔 하나를 빌린 덕분에 기분이 좋아서 쿨하게 승낙했다·
“그럽시다· 어려운 것도 아닌데···”
영훈과 연희는 서가은에게 보여줄 샘플을 챙겨 회사를 나섰다·
*
“뭐야? 300억? 꼴랑 300억에 그걸 다 받아와?”
양진철 전무는 믿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장 형제의 난이 벌어진거나 다름 없는 상황에서 수익에 목숨을 거는 금융회사가 시장가 그대로 주식을 넘긴다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5%의 주식이 어딜 가냐에 따라 현진물산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기에 상황만 잘 맞아 떨어지면 300억이 1000억으로 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재무팀 오재식 상무를 단독으로 만날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날 결정한 것 같습니다·”
소식을 듣자마자 양 전무의 방에 찾아온 차지열 상무는 뒤통수를 후드려 맞은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송 사장이 이형준 본부장 목을 쥐고 있다고 했지? 그게 뭔지 알 수 없나?”
“전무님께서도 알아보시지 않았습니까?”
이미 비서실쪽에 심어둔 사람으로 알아보지 않았냐는 물음이었다·
차 상무가 아직 양 전무를 완전히 믿지 않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오해하지 마 이 친구야· 난 순수하게 물어본 거라고·”
“죄송합니다· 제가 좀 예민했네요· 재무팀 오 상무도 어떻게 해서 이 거래를 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는 눈치입니다·”
“오호 재무팀에도 끈이 있었어?”
“그게 뭐 중요하겠습니까·”
“그렇지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이제 어떡할 건가?”
“그래 봤자 송 사장님이 직접 확보한 게 아닙니다· 현진물산이 자사주 매입한 셈이니까요· 송 사장의 실책이 나오면 대표이사 해임 건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송 사장에 붙는 임원이 많아지지 않겠어?”
“송 사장이 부임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이란 자기 밥그릇이 걸린 일에 그 어떤 동물보다 예민하죠· 상황이 변하는 걸 보여주면 언제든지 말을 갈아탈 사람들입니다·”
양 전무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고 없음을 떠나 송 사장에 대한 적의를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기 때문이다·
“이형준 본부장하고 전에 만났다고 했지? 다시 한번 약속 잡을 수 있나?”
차 상무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마 거절하려고 할 텐데요?”
“내가 만나보지· 다리만 놔 줘·”
차 상무는 여전히 인상을 풀지 않았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이형준 본부장과 짝짝꿍이 맞아 해결해 버리면 영락없이 자신은 능력 없는 사람으로 찍힐 테니까·
임지은 사장이 현재 자신을 보는 시선에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을 눈치챘기에 결코 흠잡힐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제가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 사람아! 아직 정신을 못차렸어!”
느닷없는 호통에 차 상무가 흠칫 놀라니 양 전무는 속사포처럼 몰아붙였다·
“이대로 지켜만 볼거야? 그래서 그 자리에 제대로 붙어있을 것 같아? 나나 자네나 이 자리까지 올랐으면 칼 끝에 서 있는 거야· 임지은 사장 라인 탔으면 목숨 걸고 일이 되게 해야지 어디 자기 목 걸지 않고 반정에 성공한 이가 있었어? 잘 생각해· 반정을 성공시켜 공신이 될지 아니면 박쥐처럼 눈치만 보다가 목 잘리고 나가서 치킨집이나 차릴지·”
“죄송합니다· 연락 한 번 해보겠습니다·”
양 전무는 차 상무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나직이 말했다·
“차 상무 자네 나 알잖아· 내가 언제 내 새끼 내친적 있어? 난 한 배 탄 내 새끼는 절대 버리지 않아·”
자신의 둥지 아래로 들어오라는 말·
양 전무는 반정에 성공해도 넌 내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차 상무는 일단 반발심을 내리 눌렀다·
지금 중요한 건 송 사장이 무슨 짓을 해서 이형준 본부장의 목을 쥐었는지를 알아내는 일이니까·
*
혜성기업에 도착해 사장실로 향하는 건 쉬웠다·
이미 혜성기업 내부에서도 현진물산에 인수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에 현진물산에서 사람이 왔다고 하니 무사통과처럼 사장실로 인도 됐으니까·
“안녕하십니까· 사장인 구도욱입니다· 현진물산에서 오셨다구요?”
영훈은 비서실에서 만들어준 명함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현진물산 비서실 소속인 최영훈이라고 합니다· 인수를 결정하기 전에 최고 경영자인 구도욱 사장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비서실 임연희입니다·”
“비서실에서 오셨다구요?”
구도욱 사장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일단 자리를 권했다·
기업 인수를 결정하기 위해서 회계장부부터 까보며 난리를 쳐야 정상인데 비서실 사람들이 왜 온 것인지 의아했던 거다·
“사장님께서는 구도욱 사장님의 경영철학과 앞으로의 비전을 듣고 결정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내 자리를 그대로 유지시켜주겠다는 말인가요?”
“그것도 같이 결정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구도욱 사장은 뭔가 이상했지만 그렇다고 하니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영훈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무려 한 시간 가량의 강의(?) 후 영훈과 연희는 구 사장과 작은 구내식당에서 식사까지 하고 화기애애하게 헤어졌다·
연희는 운전대를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회사 직원들 얼굴 봤죠? 다들 잔뜩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다니던데· 그리고 구내식당 식단이 그게 뭔지··· 영훈 씨는 어떻게 봤어요?”
영훈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물었다·
“전에 구도욱 사장 생년월일이라고 줬던거 제대로 확인한 겁니까?”
“네? 왜요?”
“이상한데··· 사주가 맞지 않아요·”
“사주가 맞지 않다뇨?”
“생년월일을 잘못 준 것 같다구요·”
“어? 맞을 건데? 잠시만요·”
연희는 어디론가 전화하며 구도욱 사장의 생년월일을 다시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얼마후 그녀에게 연락이 도착했다·
“맞다는데요? 생년월일 두 번 세 번 확인했대요·”
“그럴 리가 없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데요?”
“이 사주는 사업에 어려움은 있을지 몰라도 결코 망할 사주가 아닙니다·”
“아니 뭐 지금도 망한 건 아니니까···”
“그 정도가 아니에요· 재복으로 따지면 당신보다 더 한 사람입니다· 빈손으로 일가를 이룰 사주예요· 재신(財神)이 돌봐주는 사주입니다·”
< 꺼진 불도 다시 보자(2)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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