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주는 피할 수 없다(1) >
다음날 회사로 출근한 영훈은 작은 사무실에서 터줏대감처럼 껌을 딱딱 씹으며 자신을 반기는 경리 여직원에게 가장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일하게 된 최영훈이라고···”
“알고 있구요· 일은 저기 저분한테 배우실 거예요·”
경리 여직원은 영훈의 뒤를 힐긋 보며 가리켰다·
영훈이 뒤로 돌아보니 무언가 탐탁치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남성을 볼 수 있었다·
나이는 영훈과 비슷해 보였는데 키는 앉아 있음에도 길쭉한 다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길쭉한 얼굴형에 날카로운 눈빛을 보면 딱 채권추심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닐까 생각될만큼 이 직업에 잘 어울려보였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일하게 된 신인사원 최영훈이라고 합니다·”
“신입사원은 아니고 일종의··· 뭐라더라? 인턴? 뭐 그런 거라던데? 맞지?”
바로 대뜸 반말을 한다·
“네· 석달 동안 고정급으로 일하다가···”
“됐어· 네가 돈을 어떻게 받는지는 내 알바 아니고 어쨌든 반가워· 난 양태평이다·”
불쑥 손을 딱 내미니 영훈도 악수를 받았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보니까 나보다 1살 어리던데 말 놔도 되지?”
“그럼요· 저도 그게 편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편하다기보다는 신선했다·
절에 있을 때 주지 스님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자 스님이었을 때는 반 농담으로 ‘스님 예불하러 가세요?’ ‘스님 식사는 하셨어요?’라는 말을 들었고 청소년기에 접어들자 아예 말을 놓는 사람이 없었다·
스님을 따라서 부처를 모실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고 주지 스님도 그걸 원치 않았기에 어렸을 때 호기심에 몇 번 스님을 따라 했던 걸 제외하면 예불에 참여했던 역사도 별로 없었음에도 다들 자신에게 말을 놓지 않았었다·
몇몇 불자들이 주지 스님이 밖에서 실수(?)로 얻은 자식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자신을 스님과 동등하게 대우해줬던 거였다·
그래서 자신에게 이렇게 다짜고짜 반말을 내뱉는 상황 자체가 재미있게 느껴졌다·
“일단 따라와· 가면서 이야기하자고· 윤 대리 나 오늘 일산 갔다가 포천 갈거야·”
“그래서 안 온다는 말이죠?”
경리 여직원인 윤 대리의 대답에 양태평이 씨익 웃는다·
“일찍 끝나면 일찍 들어올게·”
여직원은 대답 대신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양태평은 영훈을 데리고 빌딩을 나서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이름을 듣고 보통 ‘아 졸라 태평한 인간이겠구나’ 이런 예상들을 하더라고· 만약 그렇다면 그건 실수야· 나처럼 부지런하고 꼼꼼한 인간도 드물거든· 커피 마시나?”
“네? 네· 마십니다·”
“하긴 뭐 담배도 아니고 요즘 커피 안 마시는 사람 없지· 혹시 담배는 해?”
“담배는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기긴 했어· 딱 보니까 얼굴에 고생이 없네· 집이 부자야?”
“아닙니다 부자·”
양태평은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인 스타벅스의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서며 말했다·
“나한테 거짓말 할 생각 하지 마· 내가 관상을 좀 볼 줄 알거든?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테이크아웃으로다가· 아메리카노 괜찮지? 혹시 라떼 같은 거 좋아해?”
“아닙니다· 커피는 아메리카노죠·”
“뭘 아네· 어쨌든 어설픈 거짓말은 안 통해· 여기서 일하면 허구헌날 듣는 게 거짓말이거든· 내일 된다· 모레 된다· 돈이 없다· 먹고 죽을래도 없다· 전~부 거짓말이야· 그러다보니까 이제는 딱! 딱 보면 견적이 나오거든· 고생 한번 안 해봤지?”
양태평은 그렇게 말하면서 영훈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거짓말 아닙니다· 정말 부자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장 라인을 타고 들어와?”
“그냥 아는 분이 소개시켜줘서 어쩌다 오게 됐습니다· 원래 살던 곳은 경남 고성쪽에서 살다가 이번에 처음 서울로 올라오게 됐는···”
양태평은 영훈의 말을 끊었다·
“경남 고성? 공룡이 유명한 그 고성?”
“네· 공룡이 유명한 곳이긴 하죠·”
“완~전히 시골 촌···에서 왔네·”
촌뜨기라고 하려다가 만게 분명했다·
“맞습니다· 촌이죠·”
“그런데 어째 사투리가 하나도 없네?”
영훈은 주지 스님이 사투리를 쓰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려다가 스님 이야기를 꺼내면 더 이상하게 볼 것 같아 대충 둘러댔다·
“집에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흐음···”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혼자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나온 커피를 가지고 공용주차장에 도착해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만나러 갈 사람은 작년 초에 천만 원을 빌렸다 갚지 않은 아줌마야· 원금은 120만원 상환했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야 할 원금은 880만 원인 거지·”
“이자는 얼마나 상환했습니까?”
“그걸 알아서 뭐하게?”
“네?”
“이자만 천만 원 넘게 갚았으면 그걸로 퉁치게?”
그는 주차장 구석에 세워진 마티즈에 몸을 구겨 넣으며 영훈에게 조수석에 타라고 손짓하곤 말을 이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건 딱 하나야· 원금을 받아내는 것· 이자도 받아낼 수 있으면 땡큐지· 가능하다면 말이야·”
“그렇군요·”
“돈 빌려준 사람은 애가 타는데 빌린 사람은 뻔뻔하게 안 갚겠다는 게 우리가 만날 사람들이야·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잘 생각해야 돼· 우리가 무슨 쌍팔년도 사채업자인 줄 알면 안 된다고· 신입 중에 꼭 그런 인간들이 있어요· 우리가 무슨 악의 근원이라고 착각하는 것들 말이야· 넌 아니지?”
“아닙니다·”
“말은 다들 그렇게 하더라· 여기 계약서 있으니까 가는 동안 잘 살펴봐·”
그렇게 양태평은 일산으로 차를 출발시켰고 영훈은 계약서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직 그 금융기관이나 누구에게서도 돈을 빌려본 적 없던 영훈이었기에 이런 계약서는 굉장히 흥미롭기도 했었던 것이다·
“서일저축은행? TV에서 본 것 같은데·”
“맞아· 서민들을 대상으로 대출 많이 나가는 데야· 소득 대비 비교적 승인금액이 커서 많이들 거기서 빌려·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서일저축은행 고객들이고·”
“아···”
“이번에 가서 또 돈 없다고 하면 법원에서 강제집행 명령 받을 예정이다· 그런데 모든 채권자들한테 전부 법의 힘을 빌리려고 하면 또 돈이 들어요· 채권자가 우리만 있는 게 아니면 또 채권자들끼리 얼마 없는 돈을 가지고 내가 더 가지겠다고 경합을 벌여야 하니까 이게 또 골치 아프거든· 가장 최선은 뭐겠어?”
“서로 좋게좋게 돈을 갚는 거?”
“그렇지· 우리 일은 그거야· 추심팀이 가서 최대한 상환을 유도하는 거고 그게 안되면 법조치를 하는거지· 그런데 그렇다고 계속 오냐오냐 기다려주면 어떻게 되겠어? 다른 채권자들이 다 달려들어서 뼛조각 하나 안 남겠지?”
“그렇겠네요·”
“정보력이 핵심이야· 눈치도 빨라야겠지· 결국 이거야 이거·”
양태평은 검지를 세워 머리에 갖다 대며 강조했다·
“이게 서 있어야 한다고· 날을 바짝 세우지 않으면 이 짓도 못 해먹는다· 알겠지?”
“네·”
“하이고~ 내가 언제 나갈지도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 열나게 가르쳐줘도 될지 모르겠다·”
듣는 사람 대놓고 무안주는 말이건만 그는 전혀 영훈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영훈도 어차피 경험삼아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양태평의 말이 오히려 더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1시간 정도 운전해서 도착한 곳은 일산에서 조금 벗어나 논밭이 펼쳐진 지역의 마을이었다·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이 주택은 현재 모습만 봐도 이 집 주인이 돈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게 만들었다·
양태평은 위협적으로 문을 쾅쾅 두드렸다·
아마도 집 주인이 괜히 겁먹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이것도 일종의 추심 스킬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누구세요?”
안에서 들리는 힘없는 여자의 목소리·
“명일금융에서 나왔습니다· 문 좀 열어주시죠·”
“네···”
조금 망설이는 듯 했지만 바로 문이 열렸다·
나이는 생각보다 젊어 아마 서른 중반 정도로 보였지만 화장기 하나 없이 푸석푸석한 얼굴에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다·
전형적인 희망 하나 없이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얼굴이다·
조금 의외인 건 지금보다 조금 더 젊고 눈에 생기가 가득했던 시절이라면 주변에서 꽤나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거라는 점?
양승태는 아주머니를 지나쳐 망설임 하나 없이 휘적휘적 걸어가더니 마루에 턱 앉았다·
“일단 앉으세요· 왜 왔는지는 아시죠?”
“네···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어렵습니다· 어려워요· 이미 시간을 많이 드렸잖습니까· 계속 다음달에 된다고 하고 또 다음달에 된다고 하고··· 저저번달에는 근 한 달간 연락도 안 받으시고 잠수였다가 이번달에 꼭 갚겠다고 하셨는데 또 어기셨잖아요· 이번에는 더 시간을 드릴수가 없어요· 오늘 원금 이자 일부분이라도 상환하셔야 합니다·”
“드리고 싶어도 드릴 돈이 없어요·”
“이러면 저희도 기다려 드릴 수가 없어요· 강제집행 신청하면 하나 남은 이 집도 넘어가는 거 아시죠?”
“제발 이 집은 안 됩니다· 이거 없으면 우리애랑 저희는 갈데도 없어요·”
애원하는 그녀를 양태평은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그가 보기에도 도저히 돈이 나올 구멍이 없어 보였던 것 같다·
“후··· 어쩔 수 없겠네요· 일단 회사에는 상환 어렵다고 보고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한 달만 더 기다려주세요· 애기 아빠가 다음 달에는 어느 정도 드릴 수 있을 거예요·”
“이제는 제 권한을 벗어났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아주머니는 양태평이 찬바람을 뿌리며 일어서자 옆에 가만히 서있던 영훈의 손을 붙잡으며 애원했다·
하지만 영훈이라고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대신 갚아준다고 할 수도 없으니 그냥 갈 수밖에·
그런데 이때 또 하나의 손이 영훈의 팔을 붙잡았다·
“도와주세요·”
이제 초등학교에나 들어갔을까?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엄마를 따라 눈물을 흘렸다·
“야! 거기서 뭐해?”
갑자기 다리를 땅에 딱 붙이고 움직이지 않는 영훈을 향해 양태평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영훈은 태평의 고함소리를 듣고도 여우에 홀린 것처럼 그 여자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 사주는 피할 수 없다(1)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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