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주는 피할 수 없다(2) >
양태평은 황당함에 다시 되돌아가 영훈의 팔을 확 잽아챘다·
그제야 영훈은 정신이 돌아왔는지 자신의 실책을 눈치채곤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 미안합니다· 갑자기 딴 생각이 나서요·”
“뭔 소리야? 이 상황에 다른 생각이 나다니· 어쨌든 빨리 가자· 저기 이주희 씨 이렇게 막 붙잡으셔도 소용 없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영훈은 태평의 성화에 이끌리듯 차에 올라탔다·
당연하게도 태평은 영훈을 향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너 뭐하는 거야 인마!”
“미안합니다·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서···”
“무슨 생각으로 일하는 거지? 하나만 물어보자· 군대는 다녀왔어? 이건 뭐 거의 관심병사 수준인데?”
“군대는 안 다녀왔습니다·”
초등학교만 다니고 절에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했으니 군대는 자연스럽게 면제가 되었다·
“그래? 잘 안 다녀왔네· 그 정신으로 군대 갔다간 여럿 엿 먹였을 거다· 자살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 너 내가 가면서 회사에 내려줄 테니까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라· 사장님한테는 내가 얘기해놓을거야·”
태평은 그렇게 말하고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영훈은 뭐라 항변하려다가 그냥 참기로 했다·
얼마 후 화가 조금 가라앉았는지 태평은 명동역 앞에 차를 세우고 차분하게 말했다·
“오면서 찬찬히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이 일하고 잘 안 맞는 것 같아· 잘 생각해보라고· 일 못하겠으면 내가 잘 이야기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가 봐·”
영훈은 자신을 내려주고 멀어져가는 차를 잠시 바라보다가 바로 핸드폰으로 대중교통을 검색했다·
그리고 길찾기 노선에 나와있는 대중교통 노선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방금 전에 다녀온 이주희 집이 목적지였다·
전철을 타고 대화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한참 들어가 다시 아까 그 집에 도착했다·
영훈은 대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아까처럼 이주희가 어두운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어머··· 이번 한달 더 여유를 주기로 하신 건가요?”
이주희가 반색하며 물었다·
영훈은 잠시 고민했다·
아까 그 자신의 팔을 붙잡던 여자아이의 얼굴을 봤을 때 자신의 어릴 때가 생각났다·
6살 때 영순 엄마와 헤어졌던 그 순간이 떠올랐던 건 왜였을까?
참으로 공교롭고 얄궂은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 어릴 때 영순 엄마와 살던 곳을 찾아와 운명을 바꾸어준 주지 스님의 모습이 지금 자신과 겹쳐 보였다·
섣부르게 나서도 되는 것일까?
내가 손대지 않아도 결국 만나게 될 인연일 수 있는데 억지로 엮으려 드는 건 아닐까?
이렇게 하나 둘 다른 사람의 인생에 참견하다가 결국 무당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 피하려고 청춘을 온전히 버렸건만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운명인 건가?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지만 못 봤으면 모르되 알게 된 이상 모른척 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이왕 일을 시작했으니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돈을 회수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다시 돌아왔다·
“그건 아니고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네··· 잠깐 들어오세요·”
영훈은 아까 태평이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방 안에서 빼꼼하게 얼굴을 내미는 은지와 눈이 마주쳤다·
역시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여자아이의 상(相)은 일반적으로 보면 엄청 대단하거나 범상치 않은 상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 중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상이었는데 문제는 현재 이 가정의 형편에 맞지 않는 상을 하고 있다는 거였다·
관상은 보통 초년운 중년운 말년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여자아이의 상을 봤을 때 초년운이 굉장히 강하게 보였다·
여자아이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다 쓰러져가는 이런 집구석에서 초년의 운이 굉장히 좋게 태어나다니 말이다·
간혹 그런 경우가 있기는 하다·
아주 좋은 사주를 타고 났는데 부모의 현재 상황이 좋지 않아 그 좋은 운을 다 누리지 못하는 경우·
많지는 않지만 더러 그런 경우가 있기에 이번에도 그런가 생각했다·
그래서 태평의 차를 타고 돌아오며 계약서에 붙은 주민등록등본을 바탕으로 년(年)‧월(月)‧일(日)을 알아내고 아까 손을 잡을 때 느꼈던 온도로 태어난 시각(時)을 유추했다·
사주는 네 개의 기둥(四住)을 말하는 것으로 년‧월‧일‧시에 해당하는 각 두 글자가 모두 합해서 여덟 글자가 나와야 제대로 해석이 가능했다·
태어난 시각을 모르면 제대로 된 사주 해석이 나올 수 없는데 영훈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능력으로 태어난 시각을 유추할 수 있기에 생일만 알면 사주를 물어보지 않아도 파악이 가능했다·
“뭐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주희는 영훈의 손에 들린 계약서 복사본을 흘깃 바라보았다·
답답한 그녀 마음이 읽혀지는 것 같았다·
“당장 갚으라고 찾아온 건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영훈은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명동에서 홀로 이곳까지 오면서 곰곰히 이주희와 그녀의 딸인 조은지의 사주를 계산해보았다·
이주희의 사주는 기구한 인생 바로 그것이었다·
사주에 돈도 없고 학업도 인연이 없으며 남편복도 없는 지지리 복도 없는 팔자라고 해야 할까?
처음 이주희를 봤을 때 그녀의 상도 그리 복이 있어 보이는 상이 아니었기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마가 좁고 끝이 뾰족해 초년운도 따르지 않고 재복도 없으며 눈썹도 희미해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도 없어 보였다·
젊었을적 미인이라는 말을 듣기는 했을지 몰라도 가난하게 사는 게 이해가 되는 상이었고 사주를 봐도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조은지의 사주를 보니 기가 막혔다·
관상에서 본 것처럼 초년의 사주 역시 무척 좋았던거다·
보통 유년기의 사주는 잘 보지 않는다·
개인의 운은 가정의 운에 영향받고 가정의 운은 국운에 영향받는다·
개인이 아무리 잘나봤자 전쟁이 나거나 imf처럼 국가에 큰 위기가 오면 휘청일 수밖에 없다·
어쨌든 그렇기에 유년기의 어린아이는 부모를 따라가기 때문에 볼 필요가 없는 것인데···
하나만 그랬으면 모르겠는데 사주 뿐만 아니라 관상까지 같으니 뭔가 이상한 건 분명했다·
그래서 영훈은 자신의 눈치를 보는 이주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아이의 아빠가 뭘 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 원래는 배를 타는데 보증을 서줬던 남편 친구를 잡으러 가서···”
사정을 듣긴 했었다·
평범한 가정인 이집이 왜 어려운 사정이 됐는지·
남편이 돈을 벌어오지 않으니 계속 빚을 지다가 이리된 거였다·
집을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은지 3년도 넘었다던가?
영훈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다른 분이요·”
“네?”
영훈은 자신이 메고 온 가방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뭐라고 적고는 그녀에게 내밀었다·
옆에서 듣고 있는 조은지가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은지의 진짜 아빠에 대해 물어본 겁니다·]
이주희는 영훈이 내민 수첩을 들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사시나무 떨 듯 떨기 시작했다·
“그걸 어떻게···”
역시나 생각이 맞았다·
< 사주는 피할 수 없다(2)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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