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주는 피할 수 없다(3) >
아이의 관상은 평범했지만 사주는 조금 특이했다·
사주에 지살과 반안살이 있었는데 지살은 부모와 이별할 가능성이 높으며 반안살은 곧 조상의 덕을 보는 운이 들어 있음을 의미했다·
부모와 이별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가 조상덕을 본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이 아이는 이 집의 자식이 아니거나 아니면 부모 중 어느 누구 한 명과는 핏줄의 연이 닿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는 집을 나가 밖을 떠돌아다니니 이 아이의 아버지가 다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물었는데 그게 맞았던 거다·
“아이 아버지가 하는 일이 어떻게 됩니까?”
그녀는 눈물을 쏟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몰라요· 저도 몰라요·”
“모른다구요? 아이 아버지와 연락이 닿지 않는 겁니까?”
“몰라요· 알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만나면 애를 지우라고 할 거라서···”
“흐음···”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이 아이에게 희망이 생겼음에 영훈은 그리 실망하지 않았다·
“그럼 이름이나 당시 어떤 일을 했었는지나 말해보세요·”
“꼭 아이 아빠를 찾아야 하나요?”
“계속 이렇게 살수는 없지 않습니까?”
“네? 아이 아빠를 찾는다고 해도···”
그녀가 망설이는 이유는 뻔했다·
찾는다고 해도 그 사람이 어떤 도움을 줄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나서 괜히 마음의 상처만 얻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혹시 모르잖아요· 아이를 보고 조금의 도움이라도 주려고 할지·”
그녀는 영훈의 속마음을 모르고 경계심을 가졌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돈을 빌렸고 갚아야 하는 건 맞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요? 은지 아빠를 어떻게 알고 와서 이러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이 이야긴 없었던 걸로 해요·”
“그럼 이 집을 날릴 겁니까?”
“그 그건 아니지만···”
“만약 찾아봐서 어렵게 산다면 굳이 우리도 그 사람에게 돈을 갚아달라고 할 생각이 없습니다· 법적으로 그게 가능하지 않겠죠· 그런데 만약 찾아보니까 미혼에 대기업을 들어가서 굉장히 여유롭게 살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 아이를 위해서라도 양육비를 받아 키우셔야죠·”
“그럼 그쪽은요?”
“저희야 아이 아빠가 돈을 대신 갚아주기를 바라고 있지요· 말했듯이 아이 아빠가 능력이 없어 보인다면 굳이 만나서 대신 갚으라는 말을 하지도 않을 겁니다· 여유가 있어도 갚아주길 원하지 않으면 더 권하지도 않을 생각입니다· 말했듯이 우리야 그냥 강제집행 하면 되니까요·”
사실 이래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건지 잘 몰랐다·
그저 어렵게 사는 모녀가 불쌍해 보였고 이 둘의 삶을 위해서라도 빚을 해결하고 살 방법은 아이 아버지를 찾아주는 것이라고 봤다·
그리고 이게 돈을 빌려준 회사 입장에서도 좋은 것이니까·
그녀가 싫다고 하면 굳이 더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들어온 운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본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사주의 핵심 키워드는 운(運)이다·
결혼할 운 재물이 들어올 운 사고를 당할 운 등등···
결혼할 운이 들어왔다고 다 결혼을 하는 게 아니며 재물이 들어올 운이 있다고 전부 재물이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 운을 현실로 만드는 건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이다·
은지의 초년 사주는 분명 유복한 아이의 그것이지만 엄마인 이주희가 극구 가로막으면 아이는 부모를 따라가는 것이기에 초년의 운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
“이래도 되는 건지···”
“싫다면 하지 마세요· 저도 억지로 권했다가 굳이 일 만들기는 싫으니까요·”
솔직한 심정으로 말한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제야 그녀가 영훈의 소매자락을 붙잡았다·
“말할게요· 그런데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그냥 이름이랑 당시 다니던 대학교 이름 정도니까요·”
“일단 그거라도 알려주세요· 아 혹시··· 아닙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혹시 아이 아빠의 사주를 아느냐고 물어볼 뻔했다·
그렇게 아이 아빠의 이름과 다녔던 대학교를 적어 회사로 오니 경리 여직원이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도대체 어딜 다녀오는 거예요? 양 과장님이 몇 시간 전에 명동에서 내려줬다는데 지금까지 어디서 뭘하고 오셨어요?”
“아 미안해요· 실은 이주희 씨 집에 다시 다녀왔어요·”
“네? 거기를 혼자 다녀오셨다구요?”
“그러면 안 되나요?”
순수한 마음으로 물어보는건데 경리 여직원은 그게 기분이 나빠서 비꼬는 것이라고 느꼈는지 인상을 팍 일그러뜨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때 사장실의 문이 열리며 송병창이 영훈에게 손을 까딱였다·
“일단 들어와·”
영훈이 사장실로 들어가 소파에 차분히 앉으니 송 사장이 맞은편에 앉았다·
죄인을 심문하려는 분위기가 아니라 송 사장의 눈빛에는 잔뜩 의구심이 담겨 있었다·
“보고를 받았는데 이주희 씨 집에 다시 갔다고? 채무액이 얼마나 되지?”
“현재 880만원이 남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음··· 양 과장에게 듣기론 더 나올 구석이 아니라서 강제집행 절차 들어가면 된다고 들었어· 맞나?”
“맞습니다·”
“그럼 왜 간거야?”
영훈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싶었던 거다·
아이의 관상을 보건데 앞으로도 그렇게 빌어먹을 팔자 같지 않아 혹시 진짜 아빠가 있는지 그게 아니라면 도움을 받을 조상이랑 연결된 끈이 있는지 알아 보려고 갔다고 하면 완전히 상또라이처럼 보일 게 뻔하다·
사주를 유명한 철학원 뺨치게 잘본다고 할수도 있지만 이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만약 말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온갖 잡스런 인물들까지 자기의 사주를 봐달라고 아우성을 쳐댈 것이다·
그토록 벗어나려 했는데 그 오랜 세월 노력한 게 전부 헛수고가 될 테니 절대 관상이나 사주 따위의 이유를 대서는 안 된다·
영훈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상담을 해주러 갔습니다·”
“상담?”
“네· 어렵게 살고 있어서 뭐 도와줄 게 있을까 싶어서였죠·”
“하···”
미친놈을 보는 표정·
영훈도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전 다른건 몰라도 개인상담을 통해 대상자의 심리를 안정시키는데 자신 있는 편입니다· 물론 이게 채권 회수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면 불필요한 일이겠죠·”
“그건 아니다?”
송 사장의 눈빛에도 다시 흥미로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네· 역시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지금 키우고 있는 아이의 아버지가 현재 아버지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이 아빠를 좀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게 되겠어?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이렇게 주변 사람 찾아내서 돈 달라고 하는 세상이 아닌데?”
“알고 있습니다· 아이 아빠한테 억지로 돈을 받아낼 생각은 없으니까요· 아예 돈 달라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을 겁니다·”
“그럼?”
“그저 보려는 겁니다· 아이 아빠가 어떻게 반응할지· 여유가 있다면 도와주려 하겠고 없다면 모른척 하겠죠·”
담담한 영훈의 표정에 송 사장의 얼굴에도 곤혹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도대체 이 새끼 정체가 뭔지 싶었던 거다·
영훈은 괴상한 표정의 송 사장에게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전 이번 일을 끝으로 회사를 그만두겠습니다·”
“왜? 일이 안 맞나?”
“솔직히 말해서 너무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장난이 아니라 정말 잘 맞을 것 같았다·
본래 사주에 재물이 들어있는 사람이 빚도 많이 질 확률이 높다·
반대로 말하면 큰 빚을 지는 사람은 그만큼 큰 빚도 잘 갚을 재운을 타고 난다는 말이다·
사주에 재물이 없는 사람은 빚을 져도 작게 지고 평생 큰 돈을 만지지도 못한다·
그럼 왜 누구는 재물을 얻고 누구는 빚만 얻어갈까?
성장과정에서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다른 법이다·
똑같이 사주에 칼이 들어도 성장과정에 문제가 없이 잘 풀린다면 검사나 경찰이 되는 것이고 잘 안 풀리면 살인자가 되는 법이니까·
딱 보면 이 사람이 갚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견적이 바로바로 나오는데 세상 이보다 더 잘맞는 일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너무 잘 맞아서 문제다·
아무리 돈을 빌린 사람들에게 다시 회수하는 일이지만 현재 충분히 갚을 능력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재정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쥐어짜내 돈을 갚게 하는 게 이 일이다·
그렇게 돈을 벌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하다 돈 버는 맛이 들려서 자신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
“잘 맞는데 왜 그만두게?”
“때로는 잘 맞는 일도 그만 두어야 하는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따위 개소리를 지껄였다면 송 사장은 버럭 화를 내며 쌍욕을 퍼부었겠지만 영훈이 스님(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이었다고 생각하기에 찝찝한 마음으로 승낙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일단 일을 시작했으니 딱 한 달만 일해봐· 이왕 손을 댔으니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건 얻어야 나중에 어디 가서 이런 일 좀 해봤다고 가오라도 세우지·”
이유가 황당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네요· 알겠습니다· 이번 달까지 일해보겠습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일을 정리하고 송 사장이 영훈에게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사람을 찾아봤을 때 딱 이틀이 지나 지은 아빠의 종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러난 지은 아빠의 정체는 놀라웠다·
“백순데?”
송 사장은 보고서를 들고 황당한 얼굴로 영훈을 돌아보았다·
“그런가요?”
“어· 그런데 이 인간 아버지가 강남에 건물을 세 개나 가지고 있다· 이 인간 앞으로도 하나가 올라가 있네·”
커피를 들고 온 윤 대리가 허탈한 표정으로 툭 내뱉는다·
“아빠가 건물을 세 개나 가지고 있으면 나라도 백수짓 하지·”
맞는 말이다·
< 사주는 피할 수 없다(3)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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