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상치 못한 가지 하나(2) >
“이 자리에 없는데 괜히 없는 말 하시는건 아니죠? 주희가 정말 뜰까요?”
인기라는 건 곧 사주로 말하면 도화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도화살이라고 하면 남자를 홀리고 다니는 안 좋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옛날 사람들의 구시대적인 생각이고 여자든 남자든 어느 정도 도화살이 있으면 좋다·
도화라는 건 꼭 사주에서만 보이는게 아니라 얼굴에서도 보여야 진짜 도화라고 할 수 있는데 눈과 눈꼬리인 어미와 간문에서 볼 수 있다·
주희라는 여자는 지금은 비록 힘들다고 해도 코가 작지만 동그랗고 복스러운 형상이라 돈이 많이 모이고 도화살이 강해 인기가 많을 상이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예서가 도화살이 약하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녀가 뜨지 못한 이유는 도화살이 약해서가 아니라 초창기 작품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걸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냥 소싯적에 드라마 좀 봤던 사람 입장에서 매력있어 보이는 것 뿐입니다· 큰 의미 두지 마세요·”
서가은은 이상하게 영훈이 대답을 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답을 하기 전에 연희의 눈치를 살짝 본다든가 하면서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눈치하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았는데 영훈의 그런 모습이 자꾸 궁금한걸 묻고 싶게 만들었다·
“전에도 느꼈지만 감이 좋으신 것 같아서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예서가 원하는 이미지가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따지려고 하는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영훈은 갸웃하면서 되물었다·
“후배를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를 하겠는데 그 이유까지 묻는 연유가 있습니까?”
“예서가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열심히는 하는데 이상하게 잘 풀리지 않았어요· 개인적으로 친해지면서 조금이라도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인데 본인은 죽어라 노력하는데 안 되니까 옆에서 보기가 안타까워서 그래요·”
“으음··· 그렇군요· 그런데 이유라고 해봐야 특별할 건 없습니다· 예서 씨 같은 경우는 뭐랄까 귀엽고 보호해주고 싶은 이미지거든요·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가 아닙니다· 대신 아까 주희 씨라고 했나요? 저분은 단아하고 선명한 이미지라서 우리 회사 이미지와 잘 맞겠다 싶은 것 뿐입니
다· 물론 아직 신인분이라 우리 모델로 채택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네요·”
가은은 실망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군요· 어쩔 수 없죠· 그런데 현진건설이라는 데는 처음 들어보는데 어떤 곳인가요?”
이번에는 연희가 대신 대답했다·
“예전에는 혜성기업이라는 작은 건설회사였는데 현진그룹이 인수하면서 같은 식구가 됐어요· 앞으로 고급 주거 단지를 지어나갈건데 그에 걸맞는 모델을 찾고 있어서 가은 씨를 다시 찾았던거예요·”
“어느 정도로 고급 주거 단지를 짓길래··· 궁금하네요·”
“지금 현진건설을 홍보할 팜플렛 만들고 있으니까 나중에 나오면 보내드릴게요·”
“네· 자세한 계약관련 내용은 실장 오빠하고 논의하면 될 거예요·”
영훈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하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Nodri Clare 오픈 런칭 행사 때 참석하시죠?”
“그럼요· 그게 계약사항에 포함된 일정이잖아요·”
“그럼 그 때 뵙겠습니다·”
영훈은 그렇게 자리를 빠져나와 박 실장에게 대략적인 내용을 전달했다·
어차피 영훈과 연희는 서가은이 전속모델이 될 수 있도록 도와만 주는 역할이지 계약에 관련된 사항은 현진물산 봉선동 TFT팀이나 현진건설에서 할 일이었다·
그렇게 박 실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한참이나 더 지났을 때 연희가 가은과 같이 나왔다·
그새 얼마나 친해진건지 아예 서로 팔짱까지 끼고 있었는데 마침 둘이 동갑이라 말을 놓기로 했단다·
그리고 뜬금없는 이야기를 한다·
“가은이가 부탁이 있대요·”
영훈이 영문도 모르고 가은을 바라보자 그녀가 다가와 말했다·
“오늘 저녁 같이 하실래요?”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해서 급히 연희를 보았다·
그런데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얼른 승낙하라는 눈치를 주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혼자요?”
“하핫 아니요· 연희 씨랑 같이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녁에 뵐게요·”
그렇게 이상한 분위기로 사무실을 나오니 연희가 운전석에 앉으며 재잘대기 시작했다·
“가은이가 전에 영훈 씨가 지갑 골라줄 때 완전 놀랐었대요· 어쩜 자기 스타일을 그렇게 잘 아냐면서· 만약 지금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심쿵했을거라고 하던데요?”
“그 사이야 그런 이야기까지 나눴습니까? 절친이 된 것 같은데?”
“히힛 내가 회사 사장 딸이라고 했거든요· 아무래도 회사 직원의 신분이면 상하관계가 되지 않겠어요? 솔직히 영훈 씨 앞이라서 그렇지 나 어디가서 꿀리는 사람 아니에요·”
“누가 꿀린다고 얘기 했습니까?”
“하여튼 그렇다구요· 그러니까 일단 내가 누군지 딱! 보여줬죠· ‘나 원래 사장 딸인데 바닥부터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완전 놀라면서 더 편해 하더라구요· 왜 그렇거든요· 돈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돈 걱정을 못해요· 괜히 잘난척하고 우는 소리 한다
고· 근데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이거든요· 그래서 사람을 만나도 어쩔 수 없이 비슷한 조건의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구요·”
“뭐 하여튼 그래서요?”
연희는 씨익 미소지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가은이가 남자를 만나고 있는데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대요· 근데 영훈 씨가 가은이 앞에서 딱 보고 기가 막히게 취향을 맞춰 버렸잖아요? 오늘도 얼굴만 슬쩍 보고 이미지가 어쩌고 하면서 단번에 결정 내버리고··· 사실 광고회사에서 모델 결정할 때 인지도가 없는 상태라
면 그렇게 쉽게 판단하지 못하거든요· 또 그 이유가 그럴 듯 하니까···”
“그래서 나더러 남자친구를 봐달랍니까?”
“네· 그냥 취소할까요?”
말로는 저렇게 해도 애처러운 눈빛을 보내며 도움 한번 주는게 어떠냐고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봐주는건 어렵지 않은데 어떻게 설명하시려구요?”
“당연히 영훈 씨가 사주나 관상을 본다는 것 같은 말은 할 수 없죠·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식으로만 가볍게 말해주면 돼요· 들어보니까 나름 고민이 많을 것 같은게 연예계에 있다 보면 워낙 사기꾼들도 많고 그렇잖아요· 남자를 쉽게 못 믿는 거죠·”
“뭐 하는 남자랍니까?”
“벤처 기업가래요·”
“벤처 기업가요?”
한 때는 모든 이들이 우러러 봤고 또 한때는 모든 이들이 사기꾼처럼 봤던 직업이 벤처 기업가가 아니던가?
한창 IT기업 열풍이 일다가 꺼지고 나서 자신이 벤처 기업가라고 으스대는 사람들도 많이 사라졌다고 알고 있는데 여기서 그 벤처 기업가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영훈은 벤처의 ‘ㅂ’도 모를 만큼 IT에 대해서는 아는게 쥐뿔도 없었다·
아는 거라고는 게임을 설치하고 실행 시키는 정도?
“생년월일은요?”
“혹시 물어보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안 물어봤어요· 대신 어느 회사인지 알아냈죠· 그것만 알면 대표 생년월일 알아내는 거야 일도 아니니까·”
요런건 철저해서 좋다·
“그런데 아까 김예서 씨가 우리 이미지와 안 맞는다고 했잖아요?”
“아 그거요? 왜요?”
“딱 보니까 그게 끝이 아닌 것 같더라구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못하는 느낌?”
이제는 붙어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표정까지 캐치하는 것 같았다·
“아··· 안타까워서요· 개인적으로 김예서라는 배우 좋아했거든요·”
“그랬어요? 못 떠서 안타까웠던 거예요?”
“네 초창기 때 작품을 잘못 골라서 더 뜨지 못하고 가라앉아버렸어요· 소속사가 멍청했던건지 아니면 본인이 그런 선택을 한건지 참 안타깝더라구요·”
“어? 초창기 작품이 뭐였는데요?”
“제목은 나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게 노출이 좀 심한 작품이었어요·”
“그래요? 요즘 노출 있는 작품으로 데뷔해서도 잘 되는 배우들 많은데?”
“다릅니다· 전에 양철기 전무 사건 때 말했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관상을 보고 있다고· 예서 씨 같은 경우는 남자들로 하여금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귀여운 스타일이에요· 하얗고 둥근 얼굴에 처진 눈꼬리와 반달 같은 이마 등등··· 관상학적으로 보면 여러 이유
가 있는데 복잡하니까 그냥 그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어쨌든 그런 매력 자체가 바로 장점이에요· 그런데 그런 장점을 타고 나서 노출이 심한 작품에 출연하면 그대로 그 장점이 날아가버리는 겁니다·”
연희는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너무한거 아니에요? 노출 좀 했다고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나?”
“이건 그저 심리적인 문제일 뿐이에요· 짜장면을 먹을 생각에 중국집을 갔는데 칼국수만 팔고 있으면 손님은 실망합니다· 칼국수가 맛있건 아니건 말이에요· 애초부터 남자들은 김예서 씨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기대심리를 가지고 보다가 노출이 심한 작품을 보고 실망을 하게 되
고 자연스럽게 그녀와 비슷한 다른 연예인을 좋아하게 되는 겁니다·”
“아직 순수함을 간직한 다른 중국집으로 말이죠?”
“맞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작품을 선택해야 하는 겁니다· 무작정 들어왔다고 아무거나 막 하면 훨씬 더 잘 될 수 있는 사람도 날개가 꺾이고 마는 거죠· 만약 아까 주희 씨 같은 사람이 그런 작품에 출연했다면 별다른 이미지 손상없이 계속
좋은 작품이 들어올 겁니다·”
연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 어렵네···”
“맞습니다· 나도 이걸 이십대 초반에서야 깨달았으니 일반 사람들은 어려운게 당연한 겁니다·”
“그 때 알았으면 예서 씨가 그 작품 출연한다고 했을 때 말리고 싶었겠네요?”
“마음이야 굴뚝 같았죠· 그래서 생전 처음으로 기사에 댓글도 달았었습니다· ‘안 돼~~~!’라고요·”
“하하하하! 왠지 그때의 영훈 씨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렇게 수다를 떨면서 회사에 도착한 영훈과 연희는 홍승대 실장에게 간단히 결과를 보고했다·
이후 영훈은 다시 강의를 받으러 갔다가 6시가 돼서 칼퇴근한 연희의 차를 타고 강남으로 향했다·
연희는 가는 중에 그동안 파악했던 가은의 남자친구에 대해 줄줄이 설명해댔다·
간략히 말하면 서울공대와 대학원 박사 과정을 거친 엘리트 출신 사업가로 반도체 설계 회사를 설립한지 이제 1년이 조금 안 됐다고 했다·
잘 되면 세계를 선도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업종이라고 했던가?
삼호전자가 몇 십조를 투입해가면서 키워가려는 분야가 바로 그 분야라고 덧붙였다·
어느새 청담동의 한 레스토랑에 들어선 영훈과 연희는 미리 도착해 있는 가은과 의외로 조금 평범해 보이는 듯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정중하게 일어나서 인사하는 그는 미남이라고는 할 수 없었고 체격도 호리호리해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서가은이 손해본다고 말할 것 같았다·
“네 반갑습니다·”
영훈은 그와 악수하고 자리에 앉았다·
연희도 그와 인사하며 잠시 가은과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 영훈은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오면서 연희에게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청담동 쪽에서는 연예인들이 자주 오기 때문에 여기 오는 손님들은 연예인이라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그래서 남자친구를 보여주는데 큰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일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영훈은 조금은 긴장한 채 연희를 살피는 가은을 보고 확신했다·
애초부터 그녀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게 아니었다는 걸 말이다·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자신이 출연할 작품부터 광고 하나까지 자신이 모두 결정하는 그녀가 만난지 몇 번 안 된 사람에게 남자친구를 보여주며 어떤 사람인지 봐달라고 한다?
핑계다·
가은은 이미 이 남자를 자신의 남자로 점찍어 놓은게 확실했다·
어떤 의미로는 감탄이 나왔다·
이런 식으로 내조를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벤처 기업을 운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굉장히 머리가 좋으신가 봅니다?”
영훈이 묻자 그가 쑥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냥 좌충우돌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모로 많이 부족합니다·”
이때 가은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왜~ 당신 회사 기술이 최고라면서? 아직 투자를 못 받아서 그런거지·”
“투자요?”
영훈은 속으로 ‘올타쿠나!’를 외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연희는 만나자마자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걸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영훈이 하는 일이기에 잠자코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는 그런데···”
“말씀드려· 기업하시는 분들이시잖아·”
가은이 부추기자 그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반도체 설계라는게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과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해도 돈이 없으면 회사를 유지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몇몇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유치중입니다·”
본래 이 남자의 사주가 별로였다면 적당히 웃어 넘기며 자리를 모면했을 테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가만히 있는데 금덩이가 스스로 날아와 안기는 격이었다·
“그럼 회사 정보를 좀 얻을 수 있을까요?”
화색으로 변한 가은을 보며 영훈은 과연 이 복덩이를 송은채 사장이 어떻게 다룰지 궁금해졌다·
돈이 부족하다고 포기할까?
아니면 자신을 한번 더 믿고 베팅을 던질까?
< 예상치 못한 가지 하나(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