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를 위협하려는 사람들(3) >
영훈이 뒤를 돌아보자 조 의원의 아내가 다가와 주변을 둘러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의사분이신가요?”
“아닙니다· 그냥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 눈가가 항상 짓물러 있었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심장이 안 좋으셨던 거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병원에 계실 때 심장이 안 좋은 분들이 다 그런 걸 보고 괜히 눈가가 짓물러 있고 실핏줄이 눈가로 가늘게 퍼져 있는 분을 보면 심장이 안 좋으
신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건강하시다면 괘념치 말아주세요·”
상을 보면 오장육부가 안 좋은 것이 티가 날 때가 있다·
그렇다고 보는 사람마다 ‘너는 어디가 안 좋고’ ‘너는 어디를 조심해야 하고’ 따위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상으로 보이는 건강의 이상은 대부분 본인들도 알고 있는 데다가 말해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경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심한 증상이 뚜렷이 보임에도 알려주지 않는 이유는 굳이 알려줘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의사도 아닌데 괜히 알려줬다가 어떻게 알았느니 앞으로 내가 뭘 조심하면 되겠느니 따위의 쉴새 없는 질문을 해오면 피곤하기 그지 없다·
그럼에도 조재민 의원의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해준건 상을 봤을 때 건강이 안 좋을망정 말년까지 큰 고생 없이 살 팔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가볍게 말하고 표정을 살피는데 그녀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실은 얼마 전부터 가슴이 답답하기는 했어요· 그래서 혹시 의사분이 아니신가 물어봤죠· 아유 이거 참 병원을 가봐야 하는 건지···”
보아하니 이미 병원을 가봐야 하는거 아닌가 생각했었나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회의원의 아내이니 아마 자신이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별다른 차이는 없었을 것 같다·
“그럼 한 번 가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 주변에 괜찮을 거라면서 늦게 갔다가 많이 안 좋아지신 분들도 몇 분 있었습니다·”
“고마워요· 안 그래도 혹시나 하고 있는 차였는데··· 그런데 아까 들어보니까 현진물산에서 오셨다구요? 명함이라도 하나 받을 수 있을까 싶은데···”
영훈은 얼른 명함을 꺼내 건넸다·
“최영훈이라고 합니다·”
“오늘 고마웠어요·”
그렇게 영훈이 인사하고 나오자 연희가 후다닥 달려왔다·
“세상에··· 관상으로 그런 것도 다 보이는거예요? 말도 안 돼···”
“그리 대단할 건 없습니다· 엄청난게 보인다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사실 급사할 때가 되면 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알고 있지만 지금껏 실제로 본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실제 그런 상황을 맞딱뜨리면 그걸 알아볼 수 있을지 확신은 서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 알아볼 수 있을 거다·
자신은 그걸 알아보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운명을 타고났으니까·
그래도 자신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어쨌든 반응은 나쁘지 않던데요? 표정 보니까 되게 고마워하는 것 같던데?”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일부러 도와준거예요?”
“일단 가서 얘기하죠·”
영훈은 그녀를 데리고 차로 돌아온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재민 의원의 사주를 보니 전형적으로 밖에서는 신사여서 주변사람들에게 칭찬이 자자한 사람인데 집에서는 그렇지 못할 사람입니다· 돈 좀 생기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사서 보낸다거나 비싼 술을 사면서도 집에는 짠돌이처럼 군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게 아내를 미워해서가 아
니라 밖에서 보여지는 자신의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런 겁니다·”
“아···”
“그러다보니 겉으로는 표현을 못해도 평소에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는 스타일이죠· 그래서 누가 아내에게 잘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어떤 일보다 고마움을 가지게 됩니다· 아 그렇다고 어설프게 도와주면 아내를 의심할 수도 있으니까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남에
게 보여지는 이미지를 중시하지만 쉽게 믿지도 않습니다· 참 전형적인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주입니다·”
연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어?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 좀 있는데 그럼 다 그 와이프를 공략하면 되겠네요?”
영훈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조 의원은 가정적인 성격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냥 친구랑 술이 좋아서 밖을 나도는 남자들도 많아요· 다 똑같지 않습니다·”
“어렵네·”
“한 사람의 성격과 인생을 아는게 쉬울 리 있겠습니까· 그냥 그때그때 이해하면 됩니다·”
“그래요· 난 당신이 해설하는거 듣고 내가 해줄 것만 해주면 되니까· 그럼 이제 밥이나 먹으러 가요·”
연희는 슬쩍 영훈의 팔을 잡고 식당으로 이끌었다·
그 기분 좋은 감촉에 영훈도 못 이기는 척 발걸음을 옮겼다·
*
저녁 무렵 창훈과 윤 부장은 광주의 조용한 한정식 집에 미리 도착해 앉아 있었다·
“빈손으로 오기 영 찝찝하네·”
창훈이 양손을 비비며 말하자 윤희찬 부장이 말했다·
“회장님이 어설프게 뇌물 쓰지 말고 능력껏 따오라고 했잖아· 그리고 회장님 친구 분이나 마찬가진데 뇌물이 통하겠어?”
“뇌물이라기보단 너무 빈손으로 와서 민망하니까 그렇지·”
그렇게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중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얼굴이 모습을 보였다·
창훈의 얼굴이 굳어졌다·
“벌써 와 있었네?”
연희가 웃으며 들어오며 말하자 창훈이 말했다·
“실력 좋네·”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 너 너무 자신감이 심하다니까· 일단 앉을까? 상석은 비워둬야겠지?”
창훈의 옆에 영훈이 앉고 맨 끝에 연희가 앉았다·
한쪽 공간은 비워두고 맞은편에 네 명이 주르륵 앉은 모양새가 기묘했다·
창훈은 내심 자신의 옆에 연희가 앉지 않은게 불만인지 콧잔등을 긁으며 불만 어린 말을 내뱉었다·
“거 참 눈치가 부족한 친구네·”
“아 저 말씀하신 건가요?”
영훈이 못 알아들은 척 묻자 그가 말했다·
“그럼 우리 둘 사이에 앉은 사람이 댁 말고 누가 있습니까? 아까 보고도 모르십니까? 결혼 이야기까지 나오는 사이인데···”
연희가 단번에 끼어들었다·
“창훈아 우리 직원한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줄래?”
“아 미안··· 직원 앞에서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했나? 이런 이야기는 우리끼리만 있을 때···”
“··· 그냥 입 다물어줘·”
창훈은 억울한 마음에 뭔가 말하려 했지만 윤 부장이 허벅지를 연신 찔러댔기에 그만 입을 닫았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한동안 지속되기를 5분여가 흘렀을 때 창훈이 더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진짜 이거 하려고 그러는 거야? 우명건설을 이겨보겠다고?”
연희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가 이기지 못할 이유가 있나?”
“혜성기업이 아파트를 몇 개나 지어봤지? 브랜드 들어는 봤어? 난 모르겠는데··· 윤 부장은 혹시 알아?”
“있기는 한데 지방 몇 군데에만 지어져서 아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우리 윤 부장이 그러잖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고·”
“현진건설로 간판 바꾸면서 이제 새롭게 시작해보려고· 아니 그렇게 빡치면 너네도 배 만들면 될 거 아니야? 우리는 아파트 지으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연희의 목소리에 점점 짜증이 담기자 창훈이 움찔한다·
“아니··· 일을 효율적으로 하자는 거지· 혜성기업은 아파트보다는 다른 걸 많이 하지 않았어? 그치?”
윤 부장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혜성기업은 아파트보다는 도로나 항만 같은 정부 발주 공사를 주로 해왔습니다· 사실상 정부 발주 공사로 돈을 벌고 아파트로 돈을 까먹는 행태로 많은 손실을 자초했습니다· 얼마 전에 대규모 미분양 사태도 그렇고·”
“들었지? 아파트보다는 정부 발주 공사를 노려보라고·”
연희는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뭐라 반박을 하려는데 옆에 앉아 있던 영훈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기도 안 찬다는 표정으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걸 보고 자신의 말이 먹힌다고 판단했는지 창훈이 더 이야기를 하려는데 문이 열리고 조재민 의원이 들어왔다·
일행들은 전부 벌떡 일어섰고 조 의원은 자리에 앉으라며 손짓을 했다·
“오셨습니까·”
“앉아요 앉아· 우명건설은 좀 놀랐죠? 미안해요· 내가 미리 말을 못 했어요·”
“하하 손님이 더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괜찮습니다·”
“원래는 그쪽하고만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어차피 따로 만나서 똑같은 이야기를 할 바에는 같이 만나는게 나을 것 같아서 자리를 마련했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조재민 의원이 같이 따라온 보좌관에게 손을 내밀자 놀랍게도 그가 소주병과 소주잔을 꺼냈다·
조 의원은 소주잔을 네 명에게 건네주고 한 명씩 차례로 술을 따라주었다·
그리고 남은 술은 자신의 앞에 있는 음료수 잔에 한 번에 따랐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해서 네 명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을 때 조 의원은 아무 말 없이 단번에 술을 들이켰다·
“아니···”
김창훈이 당황하며 뭐라 하려는데 조재민 의원이 말했다·
“멀리서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자리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내가 국회의원 신분이니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아는데 즐겁게 식사하며 대화하기에는 남들이 흉볼까 무섭습니다· 요즘 정치 옛날과 다른 거 알고 있죠?”
“이해하고 있습니다·”
연희가 얼른 대답하니 조 의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각자 그 소주 한 잔씩 마시고 딱 한 번씩만 말하고 깔끔하게 일어섭시다· 내가 벌주로 가장 많이 마셨으니 먼저 말하겠습니다· 시공사 선정에 있어서 내가 개입할 수도 없고 도움을 줄 수도 없습니다· 자 하고 싶은 말 하나씩 하고 일어납시다·”
결국 그냥 돌려보내기 그래서 한 번씩 하고 싶은 말을 할 기회를 준다는 뜻이었다·
낭패한 얼굴을 한 창훈이 일단 윤 부장에게 시선을 돌리니 그도 방법이 없다는 듯 가장 먼저 소주를 들이키고는 말했다·
“아파트는 부동산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가치가 바로 부동산이죠· 우명건설의 브랜드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시공능력 하나만 봐주시면 바랄게 없습니다·”
“오직 실력만 봐달라· 좋은 이야기군요· 알겠습니다·”
창훈은 시선을 연희와 영훈에게 돌렸다·
이제 너희 차례라는 뜻이었다·
당연히 최영훈 과장이라는 사람이 마실줄 알았는데 연희가 먼저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입을 열었다·
“저 대신에 여기 최 과장이 이야기를 할 겁니다· 그럼 두 번 말할 수 있는 건가요?”
조 의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것 말 되는군요· 그런데 연희 양이 현진그룹 자제분으로 알고 있는데··· 전권은 다른 분이 가지고 있었군요· 재밌습니다·”
연희의 말에 놀란 사람은 조 의원 뿐만이 아니었다·
그저 연희를 보좌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했던 창훈이나 윤 부장도 놀란 얼굴로 연희와 영훈을 번갈아 보았다·
연희는 이제 너희 차례라는 듯 창훈을 바라보았다·
창훈이 잠시 숨을 가다듬고 소주를 마신뒤 말했다·
“아버지께서 의원님께 안부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말 편히 해주십시오· 어릴 때 몇 번이나 뵙지 않았습니까·”
“허허 좋아· 그렇게 하지· 나야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하게· 이렇게 장성한 아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다 부러워· 자식 교육 참 잘 시켰구만·”
“저도 의원님께서 건강하신 것 뵀으니 할 일을 다 한 것 같습니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는 듯 창훈은 자세를 바로했다·
연희는 창훈과 조 의원과의 대화를 듣고 바짝 긴장했다·
대한민국에 학연 지연 혈연보다 더 큰 힘이 어디 있을까?
창훈이 언급한 말엔 단순히 친분을 과시하는 것 이상의 힘이 있었다·
조 의원 역시 창훈의 이야기에 대답은 잘 해주었지만 기분이 상했는지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자신에 대한 압박으로 느껴졌음이리라·
이제 조 의원이 영훈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는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는데 영훈은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듯 소주잔을 앞으로 밀었다·
“응?”
“제가 원래 안주 없이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조 의원의 이마에 굵은 금이 그어졌다·
“무슨 뜻인가요? 더 할 이야가 없다고 해석해도 됩니까?”
“의원님께서 일이 공정하게 처리될거라고 하셨는데 더 할 이야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집이 더덕구이가 유명하다는데 잘 먹고 올라가겠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옆의 연희 양은 당신에게 짐을 넘겼는데 그렇게 쉽게 기회를 포기할 셈인가요?”
방금 전에 어떤 힘도 쓰지 못할 거라고 해놓고 딴소리를 한다·
그런데 영훈의 대답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상상을 벗어났다·
“네 그리고 그깟 아파트 시공사 선정에 떨어지면 어떻습니까·”
“뭐라구요?”
“일을 하다 보면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에 아파트가 지어지는 곳이 봉선동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건 중요한게 아닐 겁니다·”
이쯤 되니 조 의원도 호기심이 강하게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뭐가 중요한가요?”
“낮에 의원님을 만나고 저녁까지 기다리면서 심심해서 기사를 보다보니 군산버스터미널이 낙후돼서 지역 주민들이 많이 불편하다는 걸 봤습니다· 그런데 의원님께서 예산을 많이 못 타서 현대화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 맞습니까?”
“그러고 있기는 합니다· 공사대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지요· 그런데··· 설마 그걸 하겠다는 말입니까?”
“대규모 초고가 아파트 단지를 짓는 게 서민들에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어차피 돈 있는 사람들에게나 좋은 일이지· 하지만 새롭게 태어난 현진건설이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조재민 의원은 감탄했는지 입을 벌리고 한참 동안 영훈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더덕구이가 괜찮기는 하지만 최고의 안주로는 홍어 만한 게 없지· 혹시 홍어 먹을 줄 아나?”
그는 어느새 반말을 하고 있었다·
“없어서 못 먹습니다·”
“내 최고의 홍어집을 알고 있지· 자리 한번 만들 테니 시간 내 보게·”
< 미래를 위협하려는 사람들(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