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를 위협하려는 사람들(6) >
강주원 의원의 다음 총선이 위험하다는 건 몇몇 여당 의원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했다·
우선 지금까지 너무 오래 군산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이번 만큼은 공천이 힘들지 않을까 하는게 일부 여당 의원들의 생각이었다·
다만 그건 일부의 예상이고 정론은 아니었기에 조재민 의원은 다음 총선에도 강주원 의원이 당연히 당선이 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기업 비서실 직원이라는 자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강주원 의원이 다음 총선에서 당선되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었다·
특히 정치적으로 강주원 의원 계파의 한 축을 담당하는 조재민 의원에게 있어 이 이야기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사실인가?”
“대기업에서 정치에 관심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여의도에서 모르는 정보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죠·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테니까요·”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네· 다음 총선까지 현진건설에서 특별히 의원님께 뭘 원하는 바는 없습니다· 솔직히 봉선동의 아파트 시공을 우리쪽으로 밀어주셨으면 하는 바는 있지만 안 되더라도 의원님을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최소한 우리가 드린 것 이상은 해주시겠죠·”
“맞네· 이번에 들어가는 수많은 사업 중에 현진건설로 몇 개 정도는 밀어줄 수 있어· 사람들은 아파트를 어느 기업에서 짓는지 관심 있어도 지나가면서 흔히 볼수 있는 빌딩을 어느 건설회사에서 지었는지는 관심이 없거든· 그래서 편히 밀어줄 수 있는 거지·”
“그거면 됩니다·”
영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조재민 의원은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강 의원이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아예 선거에 나오지 못하거나 나온다 하더라도 떨어질게 확실하다면···
아니 저렇게 확신하는 걸 보니 아예 공천을 받지 못하는게 확실했다·
그렇다면 엄청나게 중요한 정보를 준 셈이다·
“자네 말에 따르면 이건 저울이 맞지 않지·”
정보를 얻지 못했다면 저울이 기울어지지 않을지 몰라도 이 정보를 들은 이상 하나씩 주고 받았다고 하기는 어려웠음이리라·
조 의원의 말에 영훈이 미소 지었다·
“의원님과 현진물산이 처음으로 만났으니 기념으로 선물 하나 드린겁니다·”
“부담스러운 선물을 받았군·”
영훈은 어깨를 으쓱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 늦었으니 저희는 이만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군· 오늘 즐거웠네· 내 강주원 의원에게는 잘 말해주지·”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응? 자네를 버릇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아무리 다음 총선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 양반 화나게 해서 좋을 것 없어·”
“그분이 화를 내실 것 같습니까?”
“그럼?”
“아까 그렇게 자리를 박차고 나간 후에 대소를 터뜨리셨을 겁니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으니까요· 아마 저를 멍청한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버스터미널을 가지고 어떻게 홍보할지 구상하고 계실 겁니다·”
조재민 의원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단하군· 자네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강주원 의원에 대해 굉장히 깊게 알아봤군·”
말을 하면서 조 의원의 가슴 속에 잔은 파동이 일고 있었다·
강주원 의원에 대해서도 이렇게 잘 알고 있는데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알고 있을지 두려우면서도 그 능력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군산은 태어나서 처음 오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필 밤에 와서 바닷가 풍경 한번 못 보는군요·”
“내일 아침에 보면 되지 않는가?”
“아침에는 바로 광주로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참 안타깝습니다·”
영훈의 뜬금없는 말에 조 의원은 신경을 집중했다·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뭐가 말인가?”
“오면서 기사를 보니까 군산의 자살률이 급증했다고 하더군요·”
“경제가 무너지면서 일어나는 참담한 상황이지·”
“하필 이럴 때 군산 시장님이 선거법 위반으로 시장직을 잃었다고 하고··· 참 공교로운 상황입니다·”
“응? 그래 안타까운 상황이지·”
“이런 군산을 일으킬 사람이 있을지··· 오늘 홍어는 잘 먹었습니다· 저울에 홍어 값은 올려주실 수 있으시죠?”
“이를 말인가?”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영훈은 그렇게만 말하고 연희와 함께 식당을 떠났다·
하지만 조재민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 모습에 김시원 보좌관이 다가와 물었다·
“안 가십니까?”
“자네 나랑 몇 년째지?”
“올해가 3년째입니다·”
“내년이 4년차 들어가는구만·”
“그렇습니다·”
“내년에도 내가 광주 갑에 출마한다면 당선이 될 수 있을까?”
“당연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의원님이 딱 버티고 계신데 누가 광주 갑에 들어오려고 하겠습니까? 공천 문제 없습니다·”
조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공천으로 올라올 다른 인재도 안 보이고 일단 공천만 되면 당선이야 문제없을 거야· 그래서 중앙에서는 깃발만 꽂으면 무조건 당선되는 지역의 정치인 정도로 평가하겠지· 국민들도 마찬가지겠고·”
“그건 그렇지만 이곳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당장 의원님도 처음에 공천 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기억하시지 않습니까?”
“모를 리가 있나· 잊을 수가 없지· 그런데 내가 아직 젊어서 그런가? 누가 내 마음속에 불을 질러넣는구만·”
이제 막 50에 다다른 조재민 의원은 국회의원치고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다만 광주에서 국회의원을 4년 더 하고 났을 때 지금 상황보다 나아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까 그 청년 말씀이십니까?”
“통찰력이 있는 청년이야· 상대가 무얼 원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어내려· 그런 친구가 도대체 왜 군산으로 가라고 하는 걸까?”
“군산 말씀입니까? 군산에는 강주원 의원님이 계시는데···”
“아니아니 국회의원이 아니라 시장을 언급했어· 아무 생각 없이 언급한게 아닐 텐데 도통 그 청년의 생각을 읽을 수 없어·”
“군산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굳이 이미지 손상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요?”
“반대로 그 고난을 뚫고 일어났을 때 내 입지는 어떻게 될까?”
“···”
김시원 보좌관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아마 그렇게만 된다면 단번에 전국구 인재로 발돋움하게 될 거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이후 입을 열었다·
“현진물산에서 군산에 무얼 하겠다는 걸까요?”
“나도 모르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어떤게 말입니까?”
“저울의 추가 기울어져 있단 말이야·”
“네?”
“뭔가 묵직한 걸 하나 올려줘야 균형이 맞을 텐데··· 고민스럽군·”
조재민 의원은 사색에 잠긴 채 소주를 들이켰다·
아무래도 이 밤이 깊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군산의 호텔에서 짐을 풀고 나서 바로 잠을 청하긴 그래서 호텔 앞 포장마차에 앉았다·
평소 다니는 고급 호텔이 아니라 실망하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연희는 방 곳곳에 배인 냄새와 좁고 추운 욕실 때문에 한바탕 투덜거렸지만 소주 한 잔 마시고 얌전해졌다·
로얄패밀리로 자랐으니 말만 호텔인 이곳 모텔이 마음에 찰 리 없는게 당연했다·
“아까 배고파서 혼났어요·”
그녀는 소주에 국수를 호로록거리며 연신 젓가락을 놀렸다·
홍어를 본래 못 먹어서 아까 그 자리에서 수육만 깔짝거리다가 말았다고 했다·
“여기서 많이 먹어요·”
“그런데 강··· 의원이 어떻기에 아까 그런 거예요?”
연희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고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사주를 보니 평소에 그의 적이 얼마나 많은지 알겠더군요· 내년은 그가 뿌린 업이 다시 거두어질 시기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내년부터 크게 낭패를 겪을 겁니다·”
“그럼 조 의원에게 아까 마지막에 했던 말은 뭐 때문이었어요? 갑자기 군산 시장이라니?”
“그의 성향은 정치인이 맞습니다· 정치를 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성격과 잘 맞는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그의 운은 조금 다릅니다·”
“성격은 정치와 맞지만 운이 다르다는거죠?”
“맞습니다· 그는 행정가를 해야 운이 몰려드는 사람입니다·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여왕벌과 같다고 할까요? 시장이나 장관처럼 한 조직을 이끄는 장이 되면 가만있어도 주변의 인재들이 모여들어 그를 떠받칠 사주입니다· 반대로 개인 혼자이거나 조직의 하부에서 위에서 내려준 명령에
따라 열심히 일하는 것은 그의 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 그럼 그를 위해서 조언해준 셈이군요?”
영훈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꼭 그를 위해서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그가 잘 되면 우리와의 관계도 계속 지속될 테니까요· 그리고 그는 야심이 꽤 대단한 사람입니다· 결코 지역구 정치인으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에요·”
요 근래 정치기사를 탐독하다 보니 예산 총선 보궐선거 지역구 따위의 정치 언어들도 입에 붙었다·
“헐··· 아예 정치권에 대권을 노릴 수 있는 주자를 하나 포섭해놓은 셈이군요?”
“대권은 또 다릅니다· 대통령이 될 사주까지는 아니에요· 하지만 아니면 어떻습니까? 그처럼 좋은 운을 타고난 이가 한창 어려운 곳의 시장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쁠 게 없을 겁니다·”
“그건 그래요· 아까 군산의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말에 가슴이 아팠거든요·”
“오호~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합니까?”
“나라고 그런 생각을 안 하는게 아니에요· 단지 내가 가지고 싶은게 우선이었을 뿐이지· 그것도 당신이 내 사주를 말해준 다음부터 많이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것 참 다행이군요· 안 그래도 당신 상이 조금씩이지만 변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네? 정말요?”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많이 웃으면 눈가에 주름이 생깁니다· 천진하고 환하게 웃을수록 주름이 예쁘게 지는데 그런 주름을 가진 이들은 여자면 좋은 남편을 만나고 남자면 바람둥이일 확률이 높지요·”
“남자는 왜 그래요? 그런데 결국 웃음이 많은 남자는 바람둥이일 확률이 높다는 말이네요?”
“사주라는게 옛날에 만들어졌으니 남녀에 대한 설명이 현대와 차이가 있지만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는 내용은 동일합니다· 옛말에 나이 마흔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다 자신의 마음 씀씀이가 얼굴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흠··· 어디가 바뀌었지?”
영훈은 거울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살피는 연희를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
쾅쾅쾅!
“영훈 씨! 문 좀 열어봐요!”
영훈은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어기적거리며 문을 열었다·
“뭡니까?”
“큰일났어요! 아···”
상의는 안 입은 채 아랫도리를 대충 이불로 감싸고 나온 영훈을 보며 연희는 얼굴을 돌렸다·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심장이 뛰는 와중 영훈이 아직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뭔데 아침부터 그렇게 문을 두드리고 그래요?”
“전화를 안 받으니까 그렇죠·”
연희는 고개를 돌린 채로 버럭 소리 질렀다·
“아··· 급한 일입니까?”
“네···”
“잠깐만 있어봐요· 나 옷 좀 입고 문 열어 줄 테니까 그때 말해요·”
영훈이 다시 들어가 옷을 챙겨 입고 대충 세수를 마치자마자 문을 열어주니 아직 상기된 얼굴의 연희가 후다닥 들어오며 말했다·
“큰일났어요· 우리가 흑룡강성에서 유연탄 광산을 채굴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게 이제 채굴을 앞두고 막 일을 시작하려는 시점에 중국 정부에서 개발진행 과정을 문제로 걸고 나섰어요· 현재 작업은 중단됐고 해당 내용이 증권시장에 퍼진 상황이에요·”
“지금 몇 십니까?”
“7시 20분이요· 이제 1시간 40분이 지나면 주식시장이 열리는데 오늘 폭락할 건 기정사실일 것 같아요·”
동시호가가 뭔지 모르는 영훈은 그저 귓등으로 흘리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걸 물었다·
“손해가 그렇게 큽니까?”
“정확한 건 모르겠어요· 일단 고승현 부장님이 내려오신대요·”
“고 부장님이요?”
“이곳 상황 브리핑하니까 사업 주관하는 고 부장이 직접 내려와서 상황을 들어보고 싶대요· 그리고 고 부장님한테 본사에서 돌아가는 상황 들으면 될 것 같아요·”
“음···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그런데 좀 미안하네· 내가 이번 사업 해주고 싶었는데·”
연희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많이 도와준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이 큰 사업을 할 때는 당연히 실패할 것도 예상해야 하는 거예요· 이 정도면 실패도 아니고·”
“정작 원하는 일 말고 다른 일만 물어왔잖습니까· 그리고 아파트가 아닌거니까 실패가 맞습니다·”
이때 전화가 울렸다·
어제 그 번호다·
“안녕하십니까· 조재민 의원님 보좌관입니다· 혹시 오늘 아침에 미팅 가능하십니까?”
“네 가능합니다·”
“오동근린공원에서 뵙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연희가 물었다·
“또 만나쟤요? 왜요?”
“모르겠습니다· 만나봐야 알 것 같습니다·”
“어제랑 또 딴소리 하는건 아니겠죠?”
“모르죠·”
빠르게 준비를 끝내고 보좌관이 말한 오동근린공원이라는 곳에 도착해 주차하고 전화하니 바로 보좌관이 달려왔다·
“의원님은 저쪽에서 조깅하고 계십니다·”
“네· 오랜만에 운동 좀 하겠네요·”
영훈은 자켓을 연희에게 주고 천천히 뛰어갔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조재민 의원을 볼 수 있었다·
“헉··· 헉··· 왔군”
“아침부터 조깅이라니 정말 자기관리에 철저하십니다·”
“자네 주변에는 이런 사람 없나?”
생각해보니 아직 주변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다·
“한번 알아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이 이른 시간에 갑자기 보자고 하신 연유가 있으십니까?”
“후···”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저 멀리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제 말이야 군산 시장에 대해서 말했잖아?”
“그랬죠·”
“그곳의 시장이 되려면 능력이 참 좋아야 할 테지?”
영훈은 순간 박수를 칠 뻔했다·
마치 오늘 새로 태어난 것처럼 조 의원의 눈빛이 강렬했다·
그의 야심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강렬한 유혹을 느낄 줄이야···
“시장이야 아무나 될 수 있지요· 하지만 망해가는 군산을 일으키려면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드는 추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재민 의원은 잠시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풀다가 말했다·
“안 되는 일도 되게 하라··· 그렇군· 맞는 말이야· 좋아 나도 저울에 선물 하나 올리지· 이제는 저울이 내 쪽으로 기울었네·”
영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곧 하나 올려놓겠습니다·”
“기대하지·”
그는 웃으며 영훈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할 이야기는 끝났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봉선동 아파트 시공사 선정은 이제 현진건설로 굳어졌다·
< 미래를 위협하려는 사람들(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