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하지 못한 화살(1) >
조깅을 마친 조재민 의원은 때마침 걸려오는 전화를 보고 고민에 잠겼다·
잠시 발신자를 쳐다보다 언제 고심했냐는 듯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의원님·”
[어제 잘 들어갔나? 술 많이 마셨던거 아니야?]
“의원님 들어가시고 그 어린놈 버릇 좀 고쳐주느라고 잠시 지체하다 바로 들어갔습니다·”
[그랬어? 너무 뭐라고 하지 마· 젊으니까 객기에 그럴 수도 있지]
“아무리 객기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단단히 주의 줬습니다·”
[그러다 마음 상해서 괜히 했던 말 돌리는거 아니야?]
조 의원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최영훈 과장이 했던 말 때문에 이런 반응이 나올 것 같다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한치도 틀리지 않게 반응하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생각이 없는 놈 같지는 않던데요? 제가 다시 한번 연락해볼까요?”
[아니야· 그래 그 정도로 생각이 없지는 않겠지·]
“그럴 겁니다· 안심하십시오· 아 요즘 대하 철인데 소주에 대하구이 어떻습니까?”
[좋지!]
“그럼 자리 한번 마련해 보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조 의원은 김시원 보좌관에게 말했다·
“내년 총선 공천 마감이 언제쯤 될까?”
“아마 2월 말에서 3월 초쯤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석달 정도인가?”
“그쯤일 것 같습니다·”
“석달이라··· 그 정도만 버티면 일단 하나는 안고 갈 수 있다는 말이지?”
김 보좌관은 경악한 채로 물었다·
“혹시 버스터미널을 공약으로 낼 생각이십니까?”
김시원 보좌관은 아직 강주원 의원이 내년 총선에서 떨어질거라는 건 모르고 있었다·
“일단 상황을 보자고· 요즘 여의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고 하니까 잘 체크해·”
“알겠습니다· 확실하게 체크하도록 하겠습니다·”
조 의원은 서두르지 않았다·
이런 때일수록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아침에 콩나물국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영훈과 연희는 광주의 한 호텔 로비에서 느긋하게 모닝커피를 하고 있었다·
“커피가 영 맛이 없네요· 맛이 뭐 이래?”
영훈이 인상을 쓰며 투덜거리자 연희가 귀엽다는 듯 미소지었다·
“원래 호텔 커피는 맛이 없어요· 5성급 최고급 호텔에서 파는 커피도 그냥 먹을만 하다는 정도? 그래서 내가 차를 마시는 거예요·”
평소 식사를 하고 난 이후에는 언제나 커피를 즐기던 그녀가 왠일로 커피 대신에 아침부터 차를 마시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미리 말해주지 그랬습니까?”
“음식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잖아요? 의외로 호텔 커피가 당신 입맛에 맞을 수도 있으니까· 다른 거 시켜드릴까요?”
“됐습니다· 어차피 잠 깨려고 마시는 건데요· 그나저나 그 핸드폰은 그만 내려놓지 그래요? 목 디스크 걸립니다·”
연희는 장이 시작되는 9시부터 계속 주식시장을 체크하고 있었다·
“신경이 쓰여서 그래요· 어차피 주식이야 오르고 내리는게 당연한건데 예상한 것 이상으로 시장이 반응하면 회사를 운영하는데도 큰 차질이 오거든요· 주주들도 이 사태를 그냥 지켜보지 않을 테고··· 어쩌면 회장님이 직접 사태의 원인을 알아본다며 경영에 참여하려고 하실지도 몰라
요·”
결국 연희가 걱정하는 건 단순 실적 악화가 아닌 이걸 빌미로 회장이 경영 간섭을 해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는 걱정이지만 영훈은 맛없는 커피를 다시 입에 가져가며 신경을 껐다·
어차피 자신이 신경 쓴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영훈으로서는 그 유연탄에 관한 일보다 조재민 의원에 관한 일이 더 신경 쓰였다·
그때 호텔 입구에 굳은 얼굴로 들어오는 고승현 부장이 보였다·
“여깁니다!”
영훈이 손을 흔들자 그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방은?”
“잡았습니다· 올라가시죠· 식사는 하셨습니까?”
“오면서 대충 김밥으로 때웠어· 아침에 그 사람 또 만났다며?”
“결과는 올라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미리 예약한 방으로 올라가자 고 부장은 가지고 온 가방을 풀며 말했다·
“우명건설에서 나왔었다고?”
“주택영업본부장이라는 김창훈 상무와 그 비서가 내려왔었습니다·”
“내용은 내가 전달받은 게 전부고?”
고 부장에게 내용을 전달한 사람은 연희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우명건설 회장님과의 인맥으로 밀어보려고 시도했는데 잘 안 된 상황입니다·”
“잘 안 됐다고? 그걸 어떻게 단정해?”
연희는 대답 대신 영훈에게 시선을 돌렸다·
영훈은 고 부장이 자리에 앉자 다른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회사 사정이 많이 안 좋습니까?”
“안 좋긴 하지· 그런데 회사가 정말 휘청일 정도는 아니야· 상황이 애매해·”
“자세히 좀요·”
“유연탄 광산 사업은 우리 혼자 한 사업이 아니야· 중국에 진출하려면 기본적으로 중국 자본이 같이 들어가지 않고서는 일이 되기 힘들어· 이번 사업 역시 중국 회사와 합작으로 들어간 거지· 이걸 중단시킨다고 해보자고· 우리만 망하겠어?”
“중국 현지 업체도 견디기 힘들겠군요·”
“당연하지· 이거 오래 안 가· 기껏해야 석달에서 길면 반년 정도? 반년이면 현지 업체 나자빠지지 않으면 다행인데 과연 그때까지 시간을 끌까 싶어·”
“그럼 이거 손댄 사람은 현지업체와 그리 긴밀한 관계가 있는 사람은 아니겠군요·”
“아마 공산당 간부가 손을 썼겠지· 그것도 무척 힘이 있는 사람이· 어쨌든 아무리 힘이 있다고 해도 자국 기업을 쓰러지게 할 리 없어· 그럼 대충 시늉만 하다 끝낼거라는 건데··· 문제는 당장 생산만 못한다는게 아니야·”
“그럼요?”
“동네 구멍가게에서 물건 파는 것도 아니고 설마 우리가 판매처도 안 잡아놓았을까? 당장 다음 달 인천항에 유연탄 20만 톤 떨궈야 해·”
“발등에 불 떨어진 상황이군요·”
“그렇지· 그래서 어제부터 영업부 전 직원이 유연탄 구하기 위해서 발바닥에 땀나게 뛰기 시작했어·”
“흐음··· 일단 구하기만 하면 큰 문제는 아니라는 거네요?”
“그래 그래서 애매하다는 거야· 연희 씨는 아마 현진중공업이 경영에 개입할까봐 걱정하겠지?”
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 방금 전에도 그 얘기를 하는 중이었어요·”
“사실 요게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야· 주식하락은 어쩌면 기회가 될 수 있어· 반등의 기회만 잘 포착하면 자사주 매입으로 경영권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거든· 대신 주식이 반등하지 못하면 헛돈 쓰는 거지만·”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영훈의 물음에 고 부장이 인상을 썼다·
“차지열 상무가 뛰고 있기는 한데 사장님이나 홍 실장도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차 상무가 아닐까 의심하는 중이야·”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움직이고 있다?”
“이번 사업을 만든 키맨이 그였거든· 그 대신 다른 사람이 움직이면 중국에서 이번 사업이 진짜 문제가 있었다고 의심할지도 몰라· 꽌시가 중요한 중국이기 때문에 모든걸 서류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없어·”
“골치 아픈 상황이네요· 그냥 방치할 수도 없고 쉽사리 손을 댈수도 없는···”
“맞아·”
“흠···”
영훈은 상황이 진행되는 걸 보면서 확실히 코발트 광산 인수를 포기한게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현진물산을 노리는 자들이 이토록 공격적이고 저돌적이라면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이제 고승현 부장이 물었다·
“여기 상황은 어때?”
“여러 상황에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와중에 군산 버스터미널 때문에 군산에 다녀온 이야기도 들으셨죠?”
“그래·”
“군산에 도착하니 강주원 의원이 나와 있었습니다·”
“강주원 의원? 그 늙은 여우가?”
고 부장은 기대어린 얼굴로 상체를 확 앞으로 당겼지만 이내 이어진 영훈의 말에 실망어린 얼굴로 바뀌었다·
“그는 버스터미널로 봉선동 사업권을 우리한테 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후··· 그렇겠지· 그래서?”
“군산 버스터미널 현대화에 대한 메신저가 조재민 의원이라서 그냥 버스터미널 현대화 사업 공고가 나오면 우리가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손해액이 상당할걸?”
“감수해야죠·”
고 부장은 인상을 썼지만 결코 이렇게 손해볼 일만 할 영훈이 아니라는 생각에 재차 물었다·
“메신저 체면은 세워줬네? 그럼?”
“결론적으로 보면 봉선동 아파트 시공 사업권은 우리가 받을 것 같습니다·”
“진짜?”
“네·”
“와! 대박!”
연희도 영훈의 지금 발언은 처음 듣는 것이기에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조 의원을 만나고 온 뒤에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겨 있어 차마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묻지 못했던 거다·
고 부장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다가 영훈의 얼굴이 계속 굳어있는 걸 보고 흥분했던 감정을 누르며 물었다·
“왜? 뭐 문제 있는거야?”
“솔직히 전 봉선동 사업권 대신 다른 걸 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알고 보니 광주광역시에서는 지역 발전을 위해 꽤 많은 사업을 진행하는 중이었고 그중에 몇 개를 줄 생각이었던 것 같거든요·”
“정말?”
고 부장은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도대체 요 며칠 사이에 얼마나 만났다고 조재민 의원을 그렇게 구워삶았는지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가 그의 정치 생활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이야기야?”
“이름 모를 지역구 정치인 생활을 하기보다 큰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것 같거든요· 군산 시장에 도전할 것 같습니다·”
“군산 시장? 거기 사정 안 좋잖아?”
국내 조선업의 대장격이라고 할 수 있는 무진중공업이 중국발 조선업 불황 때 군산조선소 가동을 중지시켰다·
이후 군산 경제는 침몰했고 수많은 실업자와 부동산 가격 하락 그리고 자살률이 치솟았다·
군산 경기는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약 그 안 좋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허··· 그게 말이 돼?”
“그러니까 만약이요·”
고 부장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다마 침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단박에 전국구 톱스타로 떠오르겠지·”
“그럴까요?”
“지금 경기도지사가 대권 후보까지 떠오를 정도로 대단해졌지만 예전에는 그렇게 알아주는 사람이 아니었어· 그러다 파산지경에 이른 성남의 시장이 된 이후에 성남을 일으켜 세우면서 떴거든· 사람들은 정치인은 혐오해도 능력 있는 행정가는 좋아하지·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
다는게 희한하네· 원래부터 야심이 있던 사람이었나? 내가 알기로 이번 군산 보궐선거에서 강주원 의원이 밀어주는 사람으로 후보를 낸다고 알고 있는데?”
“강 의원은 이번 총선 이후에 정치권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겁니다·”
이번에는 고 부장이 진심으로 놀랐는지 입을 떡 벌리고 영훈을 바라보았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이유는 묻지 마시고 어쨌든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와··· 기가 막힌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군· 그럼 이 이야기도 조 의원 귀에 들어갔겠네?”
“네·”
“그렇군· 그래서 이렇게 쉽게 마음을 돌릴 수 있었겠어· 보스가 날라간다고 하니 이제 자신을 위로 이끌어줄 사람이 없어진 셈이겠지· 그런데 쉽게 믿던가?”
“쉽게 믿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꼼꼼한 사람입니다· 당연히 이제부터 제가 말했던 내용이 맞는지 계속 확인하면서 움직이겠죠·”
“잠깐 잠깐··· 그러니까 뭐야? 조재민 의원이 봉선동 사업권을 주겠다는 건 그냥 주겠다는 뜻이 아니었다는 거네?”
그제야 고 부장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했다·
“맞습니다· 조 의원은 봉선동 사업권을 줄 테니 군산을 일으켜 세워달라고 요청한 겁니다· 그로서는 일종의 승부수를 던진 셈이죠·”
영훈이 이 사업을 받아왔으면서도 계속 얼굴이 좋지 않았던 이유가 이거였다·
“씨발··· 이거 받아야 하는거야?”
“안 받아도 됩니다· 현진건설이 간판을 바꿔 단 기념으로 군산 시민들을 위해 버스터미널을 현대화 해줬다는 뉴스 한번 내주고 깔끔히 물러나면 되니까요· 돈은 좀 깨지겠지만 말이죠·”
“그게 끝인가?”
“앞으로 조 의원이 현진그룹을 신뢰하지 못할 거라는 정도?”
“최 과장의 결론은 뭐야?”
영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방법이 있다면 찾아주는 게 이익이긴 합니다· 말씀하셨던 대로 우리가 조 의원을 키워주게 된다면···”
“대권 주자 급 정치인을 키워준 회사가 된다는 건 굉장한 메리트지·”
“게다가 우리는 어려운 지역 경제를 살린 회사로 국민에게 좋은 인상을 주게 되겠죠·”
“방법이 문제네·”
“맞습니다·”
고 부장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간단한 방법이 있기는 한데···”
“네?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무진중공업이 가동 중단시킨 군산조선소· 그거 다시 돌리면 되기는 할 거야· 당장 수천 명의 인력이 투입돼야 하고 협력사도 일이 돌기 시작하겠지·”
“그럼···?”
“군산조선소 그거 우리가 털어먹을 수 있을까?”
< 피하지 못한 화살(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