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하지 못한 화살(7) >
주췬은 잠시 영훈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거짓이 있다면 반드시 밝혀내겠다는 듯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노려보았지만 영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나한테도 들리는 귀가 있고 보이는 눈이 있네·”
그저 두 눈과 두 귀가 달렸다고 강조하는 건 아닐 터였다·
분명 중앙정치에도 그의 눈과 귀가 되어줄 만한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겠지만 영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방금 주 대표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사업은 돈을 잃고 끝나지만 정치는 자신과 가족의 목숨까지 위협당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돈이라는 것도 회사에서는 굉장히 중요시하기에 어느 하나 확실하지 않으면 쉽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데이터는 객관적이어야 하고 주관적인 의견은 데이
터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내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말이군·”
“아니면 누가 주 대표님의 눈과 귀를 가리지 않았을까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하나?”
그 바이바이허라는 여자는 타고난 상 자체가 빈천했다·
상이 빈천하다고 돈을 못 버는건 아니다·
코가 두툼하고 탱탱하며 위로 솟아 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엄청난데 그러면서도 코가 계단처럼 각이 져 있으니 그 마음 씀씀이가 독하기 그지 없다·
독하고 집요하게 돈을 탐하는 데다 가진 재산을 푸는 여자도 아니니 재산은 풍족할 게다·
또 피부 관리를 잘했는지 피부에 윤기는 돌았지만 눈썹 사이의 인당과 코의 뿌리가 되는 산근이 죽어 있다·
인당과 산근이 죽어 있으니 본인 스스로 무엇을 이루기보다 남들에 기대어 사는 팔자인데 거기에 돈 욕심이 하늘을 찌르니 가까이 있다가는 언제 재산을 홀랑 뺏길지 알 수 없는 상이다·
게다가 눈이 깊지 못해 지혜가 없으니 가벼운 이야기는 나눌 수 있을지 몰라도 크고 무거운 이야기는 나눌 수 없다·
이런 상이 중국 최고 권력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권력가와 긴밀한 사이다?
이 여자는 그 권력가가 단순히 즐기는 여인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 권력가를 도와준다거나 그 권력을 같이 나눌 그릇이 되지 못한다·
“말씀드렸듯이 사람을 잘 보는 편입니다· 아까 그 여성분과 몇 번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말투와 행동을 자세히 살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아하고 손놀림이 가벼웠지만 자세히 살피면 끊임없이 우리와 주 대표님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 만한 위치에 있다면 눈치를 살필 이유가 없
었을 텐데도 말이지요· 주 대표님이 일부러 잃어주는 것도 모를 만큼 판단력이 빠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최고 권력가와 긴밀한 사이가 될 수 있다? 중국 최고 권력가들이 그렇게 허술하다고 생각하기 힘드네요· 다만···”
“다만?”
“타고난 매력이 있으니 남자를 잘 홀릴 것 같기는 합니다· 사람을 쉽게 믿게 만들 것 같으니 쓰임새는 많은 여자겠네요·”
“아무리 사람을 잘 본다고 해도 앉은 자리에서 자네처럼 확정짓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네·”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한 거였습니다· 믿지 못하면서 뒤돌아서면 괜히 찝찝한거 아닙니까?”
주췬은 순간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분명 이 청년이 그런식으로 말했는데 자신이 재촉했으니 할 말이 없긴 했다·
하지만 이 억울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설마 이런 황당한 소리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좋은 분 같다거나 불순한 마음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따위의 조언을 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가도 너무 간 내용이었다·
“허··· 이렇게 당황스러운 경우는 정말 오랜만이군”
아들의 상태를 단번에 파악한 능력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한번 물어본 거였는데 오히려 걱정만 한 짐을 가슴에 얹혀놓게 생겼다·
“도와드릴 일은 이제 끝인 겁니까?”
천연덕스럽게 묻는 영훈을 보고 주췬은 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자네는 걱정이 되지도 않나?”
“당연히 걱정됩니다·”
사실 걱정이 되는건 아니다·
상을 보고자 하면 본능적으로 봐야 할 부분이 눈에 들어 온다·
그렇기에 자신이 본 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걱정이 안 된다고 하면 너무 사기꾼 같아서 차마 사실대로 말하지는 못했다·
“걱정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제 느낌을 그대로 가감 없이 전하는게 주 대표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제가 전한 내용을 가지고 주 대표님께서 가져갈 부분은 가져가시고 쳐낼 부분은 쳐내서 필요한 부부만 쓰실게 아닙니까?”
그 또한 맞는 말이다·
“그렇지·”
“지금 잠시 언짢으신 기분은 시간이 지나면 곧 가라앉을 겁니다· 남은건 주 대표님의 결정 뿐이죠· 아 그런데 양쯔엉 씨는 언제 연결해주실건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저야 한가롭게 하얼빈을 여행해도 상관없지만 서울에서 밤낮없이 퇴근도 못하며 고생하는 동료를 생각하면 일단 정
지된 광산은 돌리고 봐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연희의 긴 통역이 끝나자 주췬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거 정말 못 당하겠구만· 양쯔엉은 내가 곧 연결시켜주지·”
“그 전달자에 관한 부분은···?”
“아 그거? 돈이 필요한 사람이면 제가 스스로 사람을 구해 오겠지·”
어제 말했던 것과 상황이 달라졌을 리 없다·
그저 주췬의 마음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럼···?”
“내가 연락해 놓을테니 숙소에서 기다리게·”
그제야 마음을 놓은 영훈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감사합니다·”
“아들이 한국으로 유학을 가면 이제 현진물산과 자주 연락하게 되겠군·”
“직원들이 최고의 유학 프로그램을 제공할 겁니다· 물론 현진물산과 주 대표님이 앞으로도 더욱 끈끈한 관계가 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자네들이 실수하지 않는다면 우리 관계야 문제 될 게 없겠지·”
이번 광산 문제의 실수를 언급한 것 같으면서도 영훈의 조언에 관해서 경고한 것 같기도 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할 땐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명심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음··· 맞는 말일세· 만약 말이네·”
“네?”
“만약 자네 말이 맞는다면 자네 회사가 중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도와주겠다는데 거절할 필요가 있을까·
영훈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지만 연희는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환희에 가득차서 연신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주췬의 집에서 나와 차량에 올라탄 연희는 환호성을 질렀다·
“앗싸! 대박!”
강 실장은 궁금한걸 지금까지 억지로 참다가 일단 운전대를 잡고 차를 출발시키면서 질문을 토해냈다·
“어떻게 됐어? 주췬이 양쯔엉과 연결시켜 준대? 전달자는?”
연희가 조수석에서 신나게 열변을 토했다·
“어제랑 완전히 달라졌어요· 어제는 시큰둥하더니 오늘은 양쯔엉이 계속 돈을 받기 위해서라면 새로운 전달자를 마련할 거라고 단정짓더라구요· 일단 숙소에 가서 기다리면 연락을 주기로 했어요· 표정도 많이 부드러워졌고 말투도 더 세심하게 하는걸 보니까 완전히 우리한테 마음을
연 것 같아요·”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연희는 순간 대답을 해주지 못하고 슬쩍 뒷좌석에 앉은 영훈의 눈치를 보았다·
영훈은 곧바로 말했다·
“그냥 조언 몇 가지 해줬습니다·”
“그 조언이 내가 들으면 안 되는 건가?”
“죄송하지만 주췬과 그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는 서로 다른 곳에서 꺼내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회사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바이어와의 약속을 지키는건 영업사원의 기본 철칙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강 실장으로서는 더 캐낼 명분이 없어졌다·
밖에서 아줌마와 재미없는 유학 이야기로 지루한 시간을 보낼 때 그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더는 물어볼 수 없었다·
“크흠 그럼 어쩔 수 없겠고 이제 편히 쉬기만 하면 되겠군· 양쯔엉을 소개시켜주면 최 과장도 같이 갈 건가?”
“아닙니다· 그건 실장님께서 맡아서 처리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자신을 서포트하기 위해 왔다고는 하지만 진짜 회사로 돌아가서 최 과장 서포트 잘 하고 왔다고 보고할 수는 없는 법이다·
뭐라도 손에 하나 쥐고 돌아가야 강 실장 어깨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겠는가?
양쯔엉 문제까지 자신이 손 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강 실장은 영훈의 대답이 흡족했는지 잔잔히 미소지으며 운전에 집중했다·
*
영훈 일행을 내보낸 주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서재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금고를 열어 수십 다발의 현금 뭉치 중에 두 개를 꺼내고는 다시 아까 마작을 하던 곳으로 갔다·
“어머? 다시 오신 거예요?”
주췬은 웃으며 돈 뭉치를 내려놓고 말했다·
“사업 이야기가 일찍 끝나서 마침 할 것도 없고 다시 왔습니다· 앉아도 되지요?”
허바이바이는 이게 웬 떡이냐는 듯 말했다·
“그럼요· 우리야 셋이 하는 것보다 넷이 하는게 훨씬 더 재밌으니까요·”
주췬은 그녀의 눈빛에 탐욕이 깃드는 걸 보면서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분명 그녀가 돈을 좋아하는 것도 알았고 일부러 그녀를 이곳으로 초대해 그녀의 환심을 사고자 마작으로 돈을 잃어주려고 마음먹었었다·
자신은 그게 현명하게 그녀의 마음을 얻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찬찬히 그녀를 다시 살펴보니 ‘과연 저렇게 속물적인 여자를 한쩡 국무원 부총리가 곁에 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시작된 마작에서 주췬은 여전히 돈을 잃었다·
50만 위안이 고작 두 시간만에 날아갔음에도 주췬의 표정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또 다시 두 손을 든 주췬은 말했다·
“이거 오늘은 영 운이 좋지 않은가 봅니다·”
“그렇군· 오늘 손에 패가 안 들어오나봐?”
같이 자리한 남자 중 하나가 말했다·
주췬은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돈을 많이 잃어서 그런지 오늘은 기분이 영 좋지 않네요· 이만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그 그러지·”
“딴 돈은 모두 챙겨가십시오·”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 때문인지 세 명의 사람들은 급히 돈을 챙기고 일어났다·
그런데 주췬이 허바이바이에게 말했다·
“잠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자리에 앉는게 어떻습니까?”
“네?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건가요? 혹시 내가 너무 많이 따서 배가 아픈건 아니죠?”
“돈이야 있으면서도 없는 것이고 마작은 제가 자리를 주선한 것이니 고작 그것 때문에 대면하자는 말을 하겠습니까?”
“뭐 그럼···”
허바이바이가 자리에 앉자 나머지 남자들은 급히 자리를 떴다·
주췬은 남자들이 사라지자 열심히 자신의 눈치를 보는 그녀에게 말했다·
“저번주에 북경에서 상무위원회 위원들이 모여 긴밀히 회의를 했다고 하는데 혹시 무슨 일로 모였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네?”
“제가 오늘 보인 정성이면 이정도 질문은 할 수 있다고 보는데 아닙니까?”
주췬이 슬쩍 미소를 보이자 그녀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손톱을 매만졌다·
“어쩐지 그래서 오늘 그렇게 운이 없으셨군요·”
“성의도 없이 얻고자만 하면 도둑놈 심보가 아닙니까?”
“호호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녀는 주췬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미국 무역분쟁 대응 때문에 모인 걸로 알아요· 주 대표님이 관여하고 있는 곡물에 관한 부분도 같이 의논한 것 같은데 정확한건 물어보지 않았어요· 혹시··· 정확한 내용까지 알고 싶은가요?”
그녀가 은근하게 물어볼 때 주췬은 상체를 뒤로 젖히며 잠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묘한 긴장에 허바이바이가 미간을 찌푸릴 때 주췬이 탁자 밑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대로 그녀의 다리를 찍어버렸다·
“아아악!”
철철 흐르는 피가 낭자해진 그녀의 다리에는 손바닥만한 칼이 꽃혀 있었다·
주췬은 비명을 지르는 그녀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언제고 내가 노는 판에서 손장난을 하는 사람들에게 쓰던 칼인데 오늘 손이 아닌 다리에 꽂아보기는 처음이군·”
“왜··· 당신 이게 무슨···”
주췬이 그녀의 머리끄덩이를 잡으며 말했다·
“한쩡 국무원 부총리가 저번주에 뭘 했는지는 몰라도 같은 상무위원회 위원인 왕후닝이 저번주에 광동성에 계속 있었다는건 알고 있지· 그가 없이 상무위원회가 긴밀한 회동을 한다고? 감히 내 돈을 공짜로 먹으려고 들어?”
그녀의 눈빛에 절망감이 감돌았다·
“미 미안해요· 원래 그러려던게 아니라··· 제발 살려주세요·”
“내가 왜? 날 속이려 들고 내 돈을 쳐먹은 네년을 왜 살려줘야 하지?”
“시키는대로 다 할게요· 정말이에요·”
피범벅이 되어 가는 다리를 부여 잡은 그녀가 처절하게 주췬의 소매를 붙잡았다·
“정말 시키는 대로 다 할 수 있어? 난 거짓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믿어주세요·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그래?”
주췬은 그녀의 머리를 놓으며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상체를 뒤로 기대며 느긋하게 말했다·
“딸이 있다고?”
“네? 네···”
“다리 치료하고 딸이랑 같이 이곳으로 짐을 옮겨· 마침 내 딸과 나이가 비슷하니 친구가 되겠군·”
허바이바이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그가 뭘 원하는지 대략 짐작이 갔다·
“딸을 인질로 잡겠다는 거군요·”
“인질일지 정말 친한 친구가 될지는 알 수 없지· 다리를 치료하고 북경으로 가· 그리고 내가 시키는대로 해·”
주췬은 영훈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여자다·
쓰임새는 자신이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 피하지 못한 화살(7)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