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회사 지원(2) >
현진물산 인사과의 분위기는 무척 좋지 않았다·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오재준 대리의 항변에 인사과 민홍기 과장도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렇다고 항변이라도 할 거야? 네가 전무님한테 올라가서 서류 통과 못 시키겠다고 할 거냐고?”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솔직한 말로 SKY 대학 출신들도 서류통과 못하는 애들 수두룩 합니다· 누구는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채우려고 좆빠지게 토익공부하고 논문에 봉사활동까지 하는데 저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너무하지· 너무하고 말고·”
“그럼 전무님께···”
“뭘 전무님께야? 이거 어디서 내려왔는지 몰라서 그래? 사장님이 다이렉트로 우리한테 꽂은 거잖아· 그런데 전무님한테 말하면 전무님이 뭐라고 할 것 같아?”
“···”
오 대리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흥분해서 과장님한테 밀어붙인 것인데 다시 생각해보니 말이 안되는 일임을 자각한 것이다·
현재 현진물산의 주인은 송은채 사장으로 본래 송은채 사장의 남편이었던 임지훈 사장이 몸이 안 좋아져서 투병하자 대신 사장직을 맡고 있었다·
말기신부전증이 심하게 온 터라 임지훈 사장이 다시 돌아올 거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기에 앞으로 송은채 사장이 회사를 운영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임지훈 사장과 송은채 사장 둘이서만 회사 지분의 40% 이상을 가지고 있어 경영권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도 많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송은채 사장이 생명에 입사 지원한 이력서를 물산으로 가지고 오라고 지시했을 때 인사과에서는 누가 낙하산으로 올지 내심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낙하산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했다·
“혹시 우리 인사과의 충성심을 시험하려는 의도가 아닐까요?”
오재준 대리의 의심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니 오 대리의 의심이 더 일리가 있었는지 민홍기 과장이 바로 반응한다·
“우리를? 왜?”
“아무리 사장님이 대권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양철기 전무님의 힘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오 대리는 민 과장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어투인 ‘그건 그렇지’에 욱하고 올라왔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사장님께서 과장님이 양 전무님 라인인지 확인하려고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양 전무님 라인은 연대 라인이잖아· 우리 회사에서 그거 모르는 사람 있나?”
“그래도 사장님 입장에서는 확실히 알고 싶을 수도 있죠·”
“그건 그래· 어쨌든 일단 전무님께 보고하지 말고 통과 시켜· 참 이럴 때 보면 우리 회사가 입사시험이 없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건가?”
“이번에 면접을 직접 보신다고 하셨으니까 면접에서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잠깐 사장님께서 이력서 상태를 알고도 통과시키려는 게 맞을까? 아니면? 면접에서 이력서 보시고 깜짝 놀라서 나 부르면 그때는 너나 나나 좆되는 거야·”
“설마···”
“씨발 으슬으슬하다·”
민 과장은 오한이 든 듯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단 확인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민 과장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시려구요?”
“사장님께 다시 확인해봐야겠어· 이건 사장님의 말을 거역하려는 게 아니라 다시 체크하는 거야· 문제될 게 없다고·”
말은 오 대리에게 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하는 다짐이라는 걸 오 대리도 느끼고 있었다·
이력서를 들고 한참 방황하던 민 과장은 결국 사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뭔데?”
민홍기 과장은 입사 후 사장과 독대를 해본적이 딱 한 번 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지금 굉장히 긴장하고 있었고 그런 그의 긴장이 송 사장에게도 충분히 전달되고 있었다·
“말씀하셨던 최영훈이라는 친구에 대해 말씀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최영훈? 그게 누구지?”
민 과장은 속으로 안 찾아왔으면 좆될뻔했음을 깨달았다·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면서도 다행이라고 안도하며 재빨리 대답했다·
“전에 현진생명에 입사할 지원자를···”
“아~ 알겠어· 기억났어· 그래 왜?”
“이력서를 보니까 조금 이상해서 그렇습니다· 여기 사진하고 이름 주소 외에는 기록된 것들이 없어서···”
민 과장은 이력서를 송 사장에게 내밀었다·
송은채 사장은 민 과장이 내민 이력서를 보기 전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다가 실제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백지와도 같은 이력서를 보고 나서야 문제점을 깨달았다·
“어머· 하하하하!”
너무 황당해서일까?
송은채 사장은 이력서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민 과장은 따라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가 한참 뒤 송 사장이 웃음을 그치고 나서야 물었다·
“이 친구가 맞는 겁니까?”
“응 맞아· 이 친구가 맞을 거야· 주소도 경남 고성 맞네·”
영훈은 고시원에 차마 전입신고를 할 수 없었기에 본래 살던 곳인 경남 고성 주소를 그대로 썼던 거다·
“그럼 이대로 통과시킬까요?”
송은채 사장은 잠시 고민했다·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 이 정도 인물일지는 몰랐던 거다·
아무리 자신이 사장이라고 해도 이런 인물을 면접장에서 보고 오케이를 줬다간 임원진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얘 면접날에 나한테 데리고 와· 다른 데 알리지는 말고·”
민 과장은 송 사장의 어투에서 단호함을 읽었다·
이 사안은 절대 인사과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될 비밀이 되었다·
“알겠습니다· 이 친구에 관한 내용은 인사과를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그럼 구관(舊館) 5층이 괜찮을까요?”
양철기 전무가 있는 곳에 신관이었고 면접을 볼 장소도 신관(新館)이었으니 민 과장은 아예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말이었다·
“그거 좋네·”
송은채 사장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
영훈은 서류전형을 통과해 면접에 오라는 문자에도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보험영업사원을 구하는데 설마 서류에서 탈락시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생 농사를 짓고 살던 정 보살도 나이 쉰을 넘어 보험영업을 시작했는데 자신이 떨어질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다만 면접을 오후 5시에 오라고 한 게 조금 의아했을 뿐이었다·
“면접을 뭘 이렇게 늦게 봐·”
의아했지만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전에 동대문에서 샀던 정장을 자신의 사이즈에 맞게 수선할 뿐이었다·
그렇게 서류합격 문자가 온지 사흘 뒤 종로구 을지로에 위치한 현진그룹 본사 건물에 도착했다·
“와···”
이렇게 큰 건물이라니·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대형빌딩을 앞에 두고 보니 산 속 절에서 평생 살았던 삶이 속세와 너무 달랐다는 자각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었다·
보무도 당당하게 본사 건물에 들어서니 TV에서만 봤던 보안요원들과 아름다운 안내원이 눈에 들어왔다·
영훈은 당당하게 걸어가 말했다·
“면접을 보러 왔습니다·”
그런데 면접을 보러 왔다는 말에 안내하는 여직원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면접이요? 지금요?”
“네· 5시까지 오라고 했는데요·”
“뭔가 착오가 있지 않으실까요? 면접은 오전 9시부터 시작이었는데요· 그리고 이곳이 아니라 저쪽 신관으로···”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장난을 친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 때 누가 후다닥 다가왔다·
“혹시 최영훈 씨?”
고개를 돌려보니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목에 걸린 사원증을 보니 이곳의 직원이 틀림없었다·
“네 맞습니다· 면접을 보러 왔는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절 따라오시죠·”
“네·”
그렇게 그 남자를 따라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안내데스크의 여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자신을 상대로 사기를 치거나 할 것 같지는 않았기에 잠자코 따라갔다·
건물 5층에 내려 어딘가로 깊숙이 들어가는데 이상하게 이 층은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지나가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여깁니다· 면접을 보실 분은 한 분입니다· 사장님 되시니 언행에 주의 부탁드립니다· 행운을 빕니다·”
남자는 영훈에게 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런데 사장이라니··· 뭔가 착오가 생겼다는 건 확실했다·
“감사합니다·”
영훈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중년의 여성이 허리를 곧게 세우고 자신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뭔가 예상했던 그림과 달랐지만 일단 면접에 들어가면 어찌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최영훈이라고 합니다·”
“앉으세요·”
그녀가 자신의 앞에 딱 하나 있는 의자를 향해 턱짓했다·
영훈이 조심스럽게 앉으니 그녀가 물었다·
“눈치 채셨겠지만 지금 면접 분위기가 이상하죠?”
“네· 사장님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명일금융 송병창 사장의 소개로 당신을 따로 불렀어요·”
“아··· 그렇게 된 거군요·”
“먼저 말하고 싶은 건 이건 현진생명 면접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 회사는 현진물산이고 당신은 현진물산 입사 공채 면접을 보는 중입니다· 송 사장이 당신의 능력을 좋게 봐서 따로 면접 자리를 만든 거니까 부담가지지 말아요· 우리 회사에서 당신의 능력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면 생명사로 보낼테니까요· 제법 실력이 좋은 곳으로 보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보험회사 영업사원을 하려 했던 이유는 자신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이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각종 자격증과 어학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진물산이 뭘 하는 회사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적어도 이런 대기업에 취업하려면 상당한 스펙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제가 가능한 건가요? 전 이력서에 썼다시피 아무것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따로 면접 자리를 만든 거예요· 자 이제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면접 시작할게요· 뭘 잘하세요?”
“네?”
“자기 소개서를 보니 평생 절에서 공부하셨다구요· 남들이 학교에서 국영수와 토익에 인생을 걸었을 때 그냥 놀고만 있었다면 회사에서 당신을 뽑을 이유가 없잖아요·”
송병창 사장이 칭찬을 과하게 했었나보다·
고맙기는 한데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묘하게 자존심을 긁는 말임에도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괜시리 자리가 불편해졌다·
“자기 소개서를 보니 좋은 회사원이 되고 싶다고 하던데요? 그러니 어필해봐요· 당신이 다른 지원자들보다 뭐가 더 뛰어난지·”
뭐라고 대답할까 하다가 굳이 억지로 지어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을 잘 봅니다·”
“사람을 잘 본다?”
“네· 사람을 많이 잘 보는 편입니다·”
< 두 번째 회사 지원(2)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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