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맞춰지는 퍼즐조각(5) >
영훈은 세영의 뒤에 서있는 민희를 보며 그녀가 어떻게 비서실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 알았다·
“아 네· 안녕하세요· 혹시 저 찾아오셨나요?”
“네· 조재민 의원님께서 군산 버스터미널 조감도를 요청하셔서 문의드리려고 왔는데요·”
군산 버스터미널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직 회사에 몇 없다·
그런데 의원실에서 홍보팀에 조감도를 요청하니 당황스러웠을 테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을 바로 찾아왔을까?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절 찾아왔어요?”
“의원님 보좌관이 최영훈 씨가 알 거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아··· 알겠어요· 일단 안에 들어가 계실래요?”
“네·”
세영이 회의실에 들어가자 민희가 급하게 다가와 말했다·
“죄송합니다· 말씀드리고 들여보냈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괜찮아요·”
민희는 웃으며 괜찮다는 영훈의 말에도 표정이 어두웠다·
영훈 뒤에 서있는 불편한 표정의 연희가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따라 미니스커트에 풀메이크업까지 대놓고 신경 쓴 티가 나는 세영 때문에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영훈이 세영을 따라서 회의실에 들어가자 그녀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앉으세요· 정확히 그쪽에서 뭐라고 하던가요?”
일어섰다가 앉을 때 짧은 치마와 다리가 영훈의 시선을 끌었다·
“아 네· 군산 고속버스터미널에 대한 조감도를 최대한 빨리 받아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정확히 어떻게요? 어떤 디자인 컨셉을 원한다거나 완공시기라던가 어떤 문구를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 따위의 이야기는 없었습니까?”
세영은 순간 당황했다·
솔직히 전화를 받고 최영훈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잘됐다는 생각에 얼른 비서실로 올라갈 생각밖에 없었다·
평상시라면 이런 실수는 결코 하지 않았을 텐데 아직 영훈이 고시원에 있을 때의 어수룩한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에 일적인 문제에 집중하지 못했던거다·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미안해요·”
“음··· 일단 알겠어요· 조감도 관련해서는 내가 봉선동 TFT에 전달할 테니까 기다리도록 하시구요· 봉성동 시공사 사업권 홍보쪽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광주쪽 언론사 통해서 기사 위주로 나가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도 반응이 좋아서 오히려 우명건설보다 더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은 것 같다·
솔직히 이건 영훈이 어떻게 마케팅을 하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이 분야는 고승현 부장이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시민들의 반응이며 이게 조 의원에게 어떤 이익으로 돌아오느냐다·
그리고 군산 버스터미널을 조재민 의원이 원했다는 건 이걸 자기가 가지겠다는 뜻이다·
왜?
강주원 의원에게 주는게 아니라면 주지 않아도 될 만한 상황이 생겼다는 뜻이고 그건 곧 강 의원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말이다·
“네· 현진건설 쪽 마케팅 직원들과 같이 협업하면서 하는 거라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여러 가지로 많이 배우는 중이에요·”
“배울게 많다니 다행입니다· 아 아까 기다리라고 한 건 취소할게요· 조재민 의원실과는 내가 연락할 테니까 이제 조감도 관련해서는 신경쓰지 마세요· 아무래도 내가 직접 연락하는게 나을 것 같으니까·”
“알겠어요·”
“고생했어요·”
영훈이 일어나자 세영이 따라 일어나더니 슬쩍 물었다·
“저기··· 그런데 아까 그 여직원 분하고는 많이 친하신가봐요?”
“연희 씨요?”
“네·”
“뭐··· 친한 편이죠·”
아직 고백만 안 했을 뿐이지 사귀는 거나 다름없는 사이지만 인터넷으로 연애를 배울 적에 사내연애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배웠다·
“아~ 그러시구나· 언제 한번 식사나 같이 해요· 잠시지만 가족처럼 지냈던 사인데···”
영훈은 평소였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승낙했을게 분명했지만 이번 만큼은 왠지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글쎄요· 제가 요즘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럼···”
괜히 더 말을 걸기 전에 후다닥 나왔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딱 마주치는 연희와의 시선·
아무래도 방금 전의 선택이 훌륭했던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무슨 이야기 했어요?”
“조 의원실에서 군산 버스터미널 조감도를 요청했나봐요· 나한테 연락하면 될 건데···”
“그래요? 왜 그랬지?”
“물어보면 알겠죠· 그런데 눈빛이 왜 그럽니까?”
“아니에요·”
사실 연희는 아까 세영이 인사하는 와중에 빠르게 자신을 스캔하는 눈빛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눈빛이 그냥 예뻐서 쳐다본 게 아님은 그 동안의 숱한 견제와 질투를 받아오던 경험으로 알았다· 게다가 남자를 유혹해보겠다고 작정하고 온 차림새까지·
눈치를 보니 이 남자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럼 난 잠시 15층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네·”
연희는 대답을 하는둥 마는둥하며 회의실에서 나와 민희와 인사하고 비서실을 나가는 세영에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
영훈은 15층을 비상구를 통해 계단으로 내려가며 조재민 의원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최 과장님·]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그럼요·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우리 홍보팀에 터미널 조감도를 요청하셨다구요?”
[의원님께서 상당히 놀라셨습니다· 어떻게 그런 정보를 미리 알고 계셨는지 말이에요·]
뭐가 걸리긴 했나본데 궁금했지만 차마 그게 뭐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그럼 터미널을 가지고 공약에 쓰시려고 하신다는 거죠?”
[네· 그래서 저는 미리 준비하고 있는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전화만 하면 바로 받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이거 곤란하게 해드린 것 같아서 참 죄송스럽네요·]
“아닙니다·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얘기가 나오게 될 줄 몰라서 아직 준비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봉선동 쪽이 더 급하니까요·”
[아 그것도 이야기 드리려고 했는데 마침 잘 됐네요· 의원님께서 말씀 잘 해주셨습니다· 시공사 선정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성격이 느긋한 편이 아닌건 알고 있었지만 권력에 대한 욕심이 그의 행동을 부채질 했음이 틀림없었다·
강주원 의원이 날아갈 거라는 정보를 듣고 바로 움직이는 걸 볼 때 이번 군산 시장에 자신의 정치 인생 전부를 걸 모양이다·
[의원님께서 현진물산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이번 일만 우리가 손 잡고 잘 헤쳐나간다면 의원님도 그렇지만 현진물산에도 상당한 이익이 돌아갈 겁니다·]
“그럼요· 그렇겠죠· 터미널 조감도는 최대한 빠르게 만들어서 드리겠습니다· 혹시 원하는 컨셉 같은게 있으신가요?”
[정치인이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신경쓰는게 뭐겠습니까? 뭘 지어도 그럴듯하고 번듯하면서 어르신들 오가는데 편하기만 하면 최고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도록 하죠·”
[그럼 최 과장님만 믿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영훈이 15층 봉선동 TFT로 들어서자 가장 안쪽에서 누군가와 통화중이던 고승현 부장이 손을 흔든다·
그는 곧바로 전화를 끊고는 영훈을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간 후 블라인드를 내렸다·
이제는 부서 직원들이 종종 영훈이 내려오는 걸 봐서 익숙해하는 것도 같지만 아직 누구도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는 알지 못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블라인드를 치자마자 고 부장이 물었다·
“군산 버스터미널 지금 준비중인가요?”
“아직 사업 공고도 안 떴잖아· 준비라고 할 것도 없지·”
“사업 공고 기다리지 마시고 바로 준비해주세요· 조 의원 쪽에서 군산 시장 유세에 쓰려는 모양이에요·”
“준비하는거야 문제도 아니야· 현진건설 쪽 애들한테 잘 뽑아놓으라고 하면 되니까· 그리고 이것 때문에 건축 디자인 쪽 사람도 리쿠르팅 하려고 준비 중이야· 앞으로 건설 쪽 놀릴거 아니지?”
“그럼요· 건설이 돈이 된다면 놀릴 이유가 없죠·”
“현진건설 전신인 혜성기업이 아파트보다는 정부 발주 공사를 주로 해왔기 때문에 정부쪽 사람들도 혜성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지 않아· 만약 조 의원이랑 커넥션이 계속 이어진다면 앞으로 정부 발주 공사 중에서도 덩치가 있는 걸로 받을 수 있겠어·”
“대략 뭐가 있을까요?”
“예전이야 항만이나 도로 같은 기간산업이 주였지만 지금은 각종 지식산업센터 같은 건물을 많이 발주하거든· 터미널도 사실 군산 버스터미널이 작아서 돈이 별로 안 되지만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한번 재건축 들어간다고 하면 공사비만 해도 얼마야? 아··· 어떻게 지을지 몰라서 감이 안오긴 하는데 최소 수천억
짜리 공사일걸?”
영훈도 당연히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을 가본적 있다·
연희를 따라 서래마을 맛집을 간다며 지나갈 때 봤던 그 거대하고 오래된 건물을 다시 짓는다면 엄청난 공사비가 들거라는건 건설에 대해 잘 모르는 그도 알 것 같았다·
“그런거 하나 땄으면 좋겠네요·”
“혹시 또 알아? 혜성기업이 지금까지는 국내 발주 시공만 맡았는데 이제는 해외에서 수주하게 될지?”
“그럼 혜성기업 정말 날로 먹게 되는 거네요·”
“사실 지금도 날로 먹기는 한 거야·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도대체 신영은행이랑 어떻게 딜을 한 거야?”
상체를 바짝 들이밀고 묻는 고 부장의 얼굴을 보며 영훈이 웃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냥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생각해주세요·”
“원래 그 어떻게가 중요한건데··· 하여튼 알았어· 어쩔 수 없지· 조 의원한테 보내준다 치고··· 봉선동은 어떻게 되는 거래?”
“이야기 끝냈답니다·”
“뭘?”
“시공사 선정이요· 걱정하지 말라는데요?”
“허··· 진짜?”
고승현 부장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사실 조재민 의원과 일을 진행함에 있어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공사비만 7천억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설마 이 작은 현진건설이 딸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거둘 수는 없었다·
그런데 정말 이걸 땄다면···
고 부장은 아내의 친척을 통해 주식을 사야 한다는 말을 못 한다는게 너무도 서글퍼졌다·
안 그래도 혜성기업을 현진물산이 인수하면서 주식이 상당히 올랐는데 이 내용까지 공시에 올라간다면 주식은 지금 가격보다 한 단계 더 올라서게 될 거다·
“그렇다고 티를 내시면 안 됩니다·”
“그럼 당연하지· 모른척하고 직원들 빡세게 밀어붙일 테니까 아무도 모를 거야· 사장님한테는 보고 했고?”
“아직 안 했습니다· 지금 외부에 계시거든요· 어디 대사관이랑 뭐 한다는데 자세한건 듣지 못했습니다·”
“비서실에 있으면서 사장님 스케줄에는 관심도 없구만?”
“정말 사장님 보좌하려고 들어온 비서실이 아니니까요·”
“나 하나만 물어보자·”
뭐가 또 궁금한지 무게부터 잡는다·
“뭔데 그럽니까?”
“부사장님이 만약에 날아가면··· 혹시 네가 부사장 할 거냐?”
이건 좀 놀랐다·
설마 자신을 부사장까지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너 하는거 보면 사실 부사장님이나 다를 거 없어· 어니 따지고 보면 요 근래에 네가 부사장님이 한 것보다 더 많은 걸 이뤘잖아· 그리고 사장님의 신뢰도 회사에서 제일 높고·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는 생각 안 들어?”
영훈이 피식 웃었다·
“절 부사장 시키고 싶으신 겁니까?”
“아니··· 솔직히 다른 것보다 난 일이 우선이거든· 근데 너처럼 일 시원시원하게 잘하는 사람 못 봤어· 상사는 다른 어떤 것보다 능력이 우선이야· 그리고 일 제일 잘하는 사람이 위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해·”
“자꾸 비행기 태우시는 걸 보니까 뭘 바라고 있으신 것 같은데···”
영훈이 좀처럼 넘어가지 않자 고 부장이 은근한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정말 생각이 없어?”
“저 이제 입사했어요· 입사한지 반년도 안 됐는데 무슨 부사장입니까? 솔직히 내가 원할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잖아요? 솔직히 말해봐요· 원하는 게 뭡니까?”
“원하는 거 없어· 진짜야·”
다른 사람이라면 통했을 거짓말이지만 영훈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똑똑한 사람이며 그렇다고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리며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사람도 아니다·
실적을 얻을 사업이면 어떡해서든 일을 성사시키는 추진력을 가졌기에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그가 아닌가?
그런데 경영기획총괄 박윤재 부장을 상무에 추천하는 걸 보고 아무 생각이 안 들었을 리 없다는데 생각이 이르렀다·
“하하하! 내가 아니라 부장님이 부사장···”
“조용··· 밖에 다 들린다·”
영훈이 웃음을 터뜨리며 목소리를 높이자 고 부장이 얼른 다가와 영훈의 입을 막았다·
영훈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뭘 돌려 말합니까? 간이 작으신 편은 아닌데··· 뭐 저도 고 부장님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 부장의 눈빛이 번뜩였다·
“정말?”
“당장 부사장 타이틀을 달고 싶은건 아니실거 아닙니까?”
“아유 그러면 도둑놈 심보지· 나 그렇게 계산 안 되는 사람 아니다·”
“네· 사장님께 잘 말씀드려볼게요·”
“정말?”
영훈이 웃으며 일어나자 고 부장이 눈빛을 빛내며 따라 일어섰다·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 그럼··· 당연히 잘해야지·”
묵묵히 일만 하던 사람이 임원 승진이라는 눈에 보이는 목표가 생겨서 그런지 눈빛에 생기가 감돌았다·
< 맞춰지는 퍼즐조각(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