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회사 지원(3) >
송은채 사장은 황당했지만 동생의 희한하다는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있었다·
남들이라면 쉽게 할 수 없는 말을 너무도 덤덤하게 풀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영훈이 말한 사람을 잘 본다는 건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일이다·
사실 사람을 믿을 수 없기에 수많은 검증과정을 거치고 오랜 세월 지켜보는 게 아니겠는가?
문제는 사람을 잘 본다는게 입사 전에 장담할 만한 말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마치 나는 일을 잘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니까·
“자기 소개서를 보니 절에서 살았다고 했는데 그래서 사람을 잘 꿰뚫어 보는 건가요?”
송 사장의 물음에 의구심이 담긴 건 당연했다·
“무슨 도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투시한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사람의 복장 말 사는 환경 등을 종합해서 판단하는 겁니다·”
“심리학적 접근인건가요?”
“학문적으로 말씀드리기는 곤란하지만 그와 비슷합니다·”
그녀의 관상을 보니 대략 그녀의 성격이 가늠이 되었고 그 이야기를 해주면 그녀가 더 신뢰할 거라는 건 알지만 말하지 않았다·
관상으로 사람을 잘 본다고 말을 꺼내는 순간 자신이 그저 관상쟁이가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애매한 답이네요·”
송은채 사장은 실망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뜬구름 잡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못 믿으시겠죠?”
“솔직히 그래요·”
“당연합니다·”
영훈은 당연히 그럴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송 사장은 황당했다·
당연히 믿기 힘들지만 신뢰할 만한 이유를 들어가며 자신을 어필할 줄 알았는데 거기서 입을 딱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소싯적에 친구들한테나 당해본 ‘믿기 싫으면 말든지’라는 태도 아닌가?
“끝인가요?”
“네· 제가 남들보다 유일하게 나은 게 있다면 사람을 잘 본다는 정도입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신다면 저보다 다른 직원을 채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영훈은 현진물산 입사가 욕심이 나긴 했지만 그보다 부담스러움이 컸기에 그냥 보험회사를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송은채 사장은 영훈이 저 정도로 자신만만하니 이제는 호기심이 돌기 시작했다·
“사람을 잘 본다는 건 시험을 쳐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어떻게 그걸 확인할 수 있죠?”
“오래 지내다보면 잘 알게 되겠지만 사장님은 시간을 두고 알고 싶지는 않으시겠죠?”
“맞아요· 난 불확실한 일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럼 뭐 방법이 없군요·”
영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이제 당신이 결정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송 사장은 동생이 왜 희한한 놈이라고 했는지 그제야 알았다·
생각해보면 저 이상한 친구는 면접에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있었다·
보통 면접을 보러 오는 이들이면 본사 건물에 압도되고 나이가 지긋한 임원들의 기에 눌려 어떡해서든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려 노력하는데 눈앞의 청년은 옆집 아줌마와 대화하는 것처럼 편하게 말하고 있었던 거다·
일부러 긴장하지 않는척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봤지만 그 정도로 표정관리를 잘하면 회사를 다닐 게 아니라 연기를 해야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정말 긴장하지 않고 있다는 건데 취업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초연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욕심이 없었다면 면접에 오질 말았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때쯤 영훈이 입을 열었다·
“다 끝나신 건가요?”
아예 할 얘기가 없으면 그만 일어나겠다는 태세다·
동생이 왜 퇴사한 영훈에게 그렇게 안달했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본래 사람이란 게 남의 떡이 더 커보이고 수중에 아무리 많은 명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한정판에 환장하는 법 아니겠는가?
차라리 하버드 대학이나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한 인재가 면접에 왔는데 저런 식으로 나온다면 저 싸가지 없는 새끼라고 생각했을텐데 이상하게 영훈은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출신이 스님이었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때요? 명일금융에서 한 달 일했다고 하셨죠? 우리 회사에서도 한 달 정도 인턴으로 일해보는 거 말이에요·”
예전 미생이라는 드라마에서도 바둑만 배웠던 주인공이 대기업에서 인턴부터 시작했던걸 알고 있었다·
참 감명깊게 봤던 드라마였기에 영훈은 송 사장의 제안이 퍽 괜찮게 생각되었다·
“그렇게 해도 된다면 좋습니다·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스코리아 뺨 칠 것처럼 도도하게 굴더니 이제는 또 헤벌쭉 웃으며 감사해한다·
송 사장은 순간 자신이 연기에 넘어간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제와서 되돌릴 수도 없고 어차피 한 달 인턴이기에 회사 입장에서 문제될 것도 없어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그럼 밖에 직원에게 대략적인 설명 듣고 다음주부터 출근하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이것 보라지·
금방 함박웃음으로 좋아하더니 다시 전의 표정으로 돌아와서 감히 사장에서 부탁까지 한다·
이쯤되면 궁금해서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뭐죠?”
“제가 한 달 인턴이라는 걸 직원들이 알면 금방 나갈 사람이라고 생각해 제가 능력을 발휘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회사를 나갈 때까지는 비밀을 유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마디로 다른 공채 인턴처럼 대해 달라는 거였다·
일리있는 말이지만 다른 사람이었다면 감히 제안하지 못했을 부탁이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송 사장은 꾸벅 허리를 숙이는 영훈에게 잘해보라는 듯 어깨를 가볍게 터치하고 면접장을 먼저 나가려고 할 때 다시 영훈이 물었다·
“그런데 저···”
“네? 또 뭐죠?”
“저를 뽑으신 이유가 있습니까? 저보다 훨씬 뛰어난 인재들이 많은데·”
“이 회사가 지금까지 뽑았던 인재들 중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 없었는데 아직 회사는 정체되어 있어요· 그래서 한 명 쯤은 사람을 잘 보는 사람을 뽑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회사는 변화를 필요로 해요· 이해됐죠?”
“네·”
송 사장은 그렇게 면접장을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면접장까지 데려다 주었던 직원이 들어왔다·
면접장에 데려다 줄때만 해도 그렇게 깍듯하고 예의 바르던 그였지만 인턴으로 채용이 됐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완전히 태도가 바뀌었다·
“반가워요· 난 오재준 대리라고 해요· 궁금한 거 많을텐데 지금 그거 풀어줄 여유 없으니까 내가 지금 말하는거 잘 기억해요· 할 수 있죠?”
“네? 네···”
“다음주 월요일 아침 8시까지 출근해요· 출근 복장은 지금처럼 정장이고 머리는 지금 좀 부스스한 상태니까 더 다듬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손바닥만한 노트와 필기구 항상 챙겨 다니세요· 언제 어디서든 적을 준비가 되어 있도록· 알겠어요?”
“네·”
“8시까지 오면 회사 앞에 버스들이 줄지어 있을 겁니다· 그 버스를 타고 회사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해야 합니다· 입사 전에 받는 교육이라고 생각하면 편해요· 2박 3일 일정이라 사흘동안 갈아입을 속옷과 편한 옷을 챙겨와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내일 홈페이지 공채관련 공지 확인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보니까 이력서에 학력과 경력이 전무한걸로 되어있던데 진짜인가요?”
“네·”
그게 뭐 문제 있냐는 태도·
“크흠· 알겠습니다· 그럼 영어 실력은요? 설마 그것도 모르지는 않겠죠?”
“모르는데요·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중학교 1‧2학년 정도 수준입니다· Hi~ Nice to meet yo·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딱 이 수준입니다· 사장님도 그거에 관해서 말씀은 없으셨는데· 뭐 문제 있나요?”
면박을 주기 위해 질문했는데 오히려 더 세게 그리고 당당하게 나와서인지 순간 오재준 대리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영훈은 그런 오 대리에게 재차 물었다·
“그리고 제가 일하게 될 부서는 어디입니까?”
“그건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출근하면 알게될 겁니다· 더 궁금하신 거 있으세요?”
왠지 더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기색이라 영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없습니다·”
“그럼 다음주에 봅시다·”
“네· 수고하세요·”
영훈이 미소를 지으며 꾸벅 인사하고 나가자 오 대리는 후다닥 인사과로 올라갔다·
인사과 직원들은 오늘 면접실 정리 및 뒤처리 때문에 다들 나가고 없었고 오직 민홍기 과장만이 남아 있었다·
“야! 어땠어?”
오 대리가 잔뜩 화가난 얼굴로 말했다·
“사장님이 합격시켰습니다·”
“진짜? 이야~ 도대체 뭐지? 무슨 끈이 있는 거야? 설마···”
“과장님이 생각하시는 그 ‘설마’는 아닙니다· 사장님하고 생긴게 완전히 달라요·”
“그래? 그럼 뭐지?”
“일단 인턴으로 채용하고 보시겠다고 하니까 완전히 금수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금수저면 경남 고성 절에 틀어박혀 있을 리가 없지· 씨발 존나게 궁금하네·”
“이거 인턴한테 꼬박꼬박 존댓말 써야 하는거 아닙니까? 애가 뭔가 무서운게 없던거 같던데?”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일단 평소 하던대로 해· 스님이었는데 뭐 눈에 보이는게 있었겠냐? 부처님 말고는 다 공평한 중생들이지· 설마 사장님 앞에서도 부처 앞 중생을 대하는 태도로 있었던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요·”
민 과장이나 오 대리는 왠지 그 정체 모를 인턴 하나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 두 번째 회사 지원(3) > 끝
ⓒ 영완(映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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