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6
끼기기기긱.
달려가던 자동마차가 사람에 부딪혀서 멈췄다. 회전하는 톱날에 갈리면서 50m 가까이 끌려갔던 막시밀리앵은 지금 기뻐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찢긴 옷 사이로 보이는 건 부드러운 살갗 대신 전신을 뒤덮은 톱니바퀴다.
여러모로 상식을 뛰어넘는 상황만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가! 자네인가. 그래 생각해보니 자네에게는 가능성이 있었어. 자격은 없지만 오직 가능성이!”
막시밀리앵은 조금 전까지 격렬한 전투를 벌이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태연했다.
“왕국이 멸망하던 해 태어난 아이들. 그중에서도 솎아내고 남은 둘. 하지만 둘 다 아니었나? 설마. 죽었다고 알려진 자네가?”
‘저런! 판단에 오류가 있었군. 우리는 그가 죽은 줄 알았다. 살아있었다고 해도 별달리 특색을 보이지 않아서 무시하고 있었지. 하지만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 이들을 모두 모은 게 그라면? 시조 티르칸쟈카 마신의 힘을 다루는 소년 짐승의 왕부터 왕가의 말예까지. 그가 이끌었던 거라면!’
막시밀리앵의 눈이 기대감으로 번뜩였다.
그가 보기에 인간 대부분은 불완전하다.
인간은 모두 동일한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 피 살 뼈 근육. 그 안을 채우는 기력과 마력. 연금술사인 막시밀리앵은 그것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조합되고 어떻게 작동하냐에 따라서 형태와 능력이 달라진다. 밥을 빌어먹는 비천한 불구도 홀로 세상에 우뚝 선 절대자도. 피륙으로 빚고 마력과 기력을 채워 넣어 만들어진 같은 인간이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따라서 막시밀리앵이 보기에 인간 대부분은 자기 자질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결함품에 불과했다.
고급 자재로 만들어진 물건이 더 뛰어난 성능을 내는 거야 그러려니 한다. 애초에 태생부터 다르니 다른 성능을 가진 게 당연하니까.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배치되고 조합되었냐에 따라 그 구조적 정밀함에 따라 성능이 천차만별이라면.
막시밀리앵처럼 대단한 사람이 ‘교정’해주는 것으로 결함을 없애고 본래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지 않겠는가.
따라서 그는 인간의 왕을 찾고자 했다. 인간의 본 그것을 넘어선 인간의 특질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네가 인간의 왕인가? 정녕 이 세상에 새로이 나타난 군국을 판단하기 위해서 이 땅에 강림한 준엄한 평가자가 자네인가!”
막시밀리앵의 생각만 읽으면 그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고뇌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과감한 혁명가의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글쎄 그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의 왕을 찾고….
‘완벽한 생각 톱니를. 만인에게 통용되는 일반성을 갖추기 위해선 인간의 왕이 필요하다. 인간의 왕은 모든 인간을 대표하기에!’
머리에 톱니바퀴를 박겠다네.
정말 미친놈이잖아.
인간의 왕도 인간이야 인간. 톱니바퀴랑은 호환이 안 된다고.
“완벽하군. 완벽해! 이토록 완벽한 조합이 있을 수 있나. 자격도 있고 가능성도 있지! 만일 인간의 왕이 이들 가운데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 하하하. 숙원을 이룰 기회가 알아서 찾아오다니. 나는 행운아로군!”
제멋대로 장광설을 토해내는 막시밀리앵이었지만 나에게는 그를 닥치게 할 힘이 없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저 사람을 닥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를 보았다.
“셰이 씨.”
가만히 서서는 막시밀리앵의 장광설을 묵묵히 듣고 있던 회귀자가 내 말에 반응했다.
“어? 왜?”
“뭐해요? 갈 길이 먼데. 사이비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있을 거예요?”
회귀자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와 막시밀리앵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당당한 말이 튀어나왔다.
“무슨 말 하나 궁금하잖아.”
“궁금하다고 방금 전까지 싸우던 위험인물을 거기다 이상한 종교관까지 설파하는 녀석을 가만히 둬요? 정보가 그렇게 중요해? 우리 안전보다?”
“아 아니. 그럴 리 없잖아. 그냥.”
‘쳇. 조금 더 말하게 두지. 과병이 신나 가지고서는 제 입으로 정보를 토해내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은데.’
왠지 방금 전까지 죽일 듯이 싸워놓고서는 가만히 있더라니. 또 그 정보를 얻으려고 한 거야?
나는 생각 다 읽었으니까 더 볼일 없다고! 빨리 치우고 가자고!
내 서슬퍼런 기색에 찔끔한 회귀자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덧붙였다.
“죽이기 전에 유언은 들어줘야지.”
“우리 말이나 들어주시죠! 왜 적 말을 아군 말보다 더 잘 들어주는 거야!”
“알았어 알았어.”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이야기를 들었어. 왕국이 멸망한 해 태어난 아이? 참나 만물의 영장 수뇌라는 녀석이 아무런 근거 없는 헛소문이나 믿고 있으니. 매 회차마다 그토록 뻘짓이나 반복했던 것도 당연하지. 어쨌든 이번에 군국 녀석들은 깔끔하게 처리했네.’
내 재촉에 회귀자는 다시 우리와 막시밀리앵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유언은 그게 다지? 더 할 말 있으면 죽이기 전에 빨리 말해. 우리는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
막시밀리앵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아아. 나는 자네들을 죽이지 않겠네. 확인해볼 것이 있거든.”
“미안한데 죽이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거든? 너 혼자선 결코 나를 이길 수 없어.”
“확실히 두 마신의 힘을 동시에 다루는 자네는 상대하기 벅차군. 마신전 녀석들은 도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어. 소년 하나가 두 마신을 손에 넣을 동안 꼴에 비밀결사라는 놈들이 그 지경이니. 쯧쯧.”
그러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막시밀리앵은 태연했다. 무언가 한 수 숨겨둔 이의 여유도 지원군이 올 거라 확신하는 태도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예 없었다.
또각 또각. 머리에 심은 톱니바퀴가 굴러간다. 이성과 감성을 분리하고 둘의 결합이 필요할 때만 맞물려서 엮는다. 기계가 자기 고장나는 것을 걱정하지 않듯 막시밀리앵도 자기에게 닥칠 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뭐 막시밀리앵이 믿는 구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걸 막기엔 이미 늦었다.
가장 먼저 이상을 느낀 건 티르의 어둠이었다. 자동마차의 그림자에 숨어 힘을 온존하고 있던 어둠이 크게 움찔거렸다. 새카만 몸체에 두드러기라도 난 것마냥. 움츠러들며 더욱 색을 진하게 했다.
[이건….]
무언가를 느낀 티르가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회귀자도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깨닫고는 검을 고쳐 쥐었다.
파츳. 허공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네모난 빛깔이 모자이크처럼 번쩍이다가 사라졌다.
빛이 사라진 곳에는 어떤 물건도 없다. 망막에 맺힌 잔상만이 점차 하나의 형태만 이루어갈 뿐
하지만 무언가가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 존재를 인지할 수 있으나 인식할 수 없는 어떤 것이.
회귀자가 낮게 중얼거렸다.
“이 기운은…!”
전신을 짓누르는 중압감. 차마 마주보기도 힘든 위압감이 인간보다 격상의 존재가 나타나 우리를 굽어살피는 것만 같은 아득한 감각이 느껴진다. 한없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아래 인간은 한없이 하찮다.
와중 머리에 톱니바퀴를 박아넣은 막시밀리앵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의 이성은 기계적으로 동작하고 있기에.
“하지만 자네들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누군가가 죽어버릴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오히려 내 목숨을 걱정해야 할 판이네. 그러니 나도 반칙을 써야겠어.”
빛무리가 형상을 이뤘다. 사람이었다. 두 팔과 두 다리를 갖고. 목 위에 얼굴을 단 새하얀 공백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사람과 비슷한 건 형태뿐이었다. 나는 독심술로 느닷없이 나타난 존재의 생각을 읽으려고 시도했다.
생각이 읽히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이게 사람이긴 한가?
『관제 관측 완료. 구현율 14%. 주의 요망. 현 위치는 관제 관측이 용이하지 않은 지역.』
전신이 빛난다. 제대로 마주할 수조차 없는 백광이 몸을 감싸고 있다. 눌러 쓴 새하얀 투구 때문에 눈가가 가려져 있고 얼굴에는 표정조차 보이지 않는다.
검은 선 하나로 이루어진 잔잔한 입가는 인간과 비슷해 보이기 위해 뒤늦게 그려 넣은 것 같다.
생각을 읽을 수 없기에 나는 그 존재가 무엇인지 모른다. 단지 회귀자와 막시밀리앵의 생각으로부터 무슨 존재인지 뒤늦게 인식했을 뿐.
“…에이메데르!”
히스토리아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천통? 저…게?”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물었다.
“같은 육장성인데 네가 몰라?”
“몰라. 천통은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 없어. 하지만 설사 드러냈다고 하더라도….”
‘저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인간이 아니잖아. 기척조차 흐릿해!’
모두의 혼란 속에서 기이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존재가 팔을 흩뿌렸다. 새하얀 팔에 언제 쥐어졌는지 모를 흰 칼날이 나타났다. 어딘가에서 뽑은 게 아니라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만 같았다.
『긴급 시퀀스. 이행.』
빛무리가 깨진 유리창처럼 흩날렸다. 번뜩이는 검이 잔상처럼 남았을 때 새하얀 그림자는 순간적으로 우리를 향해 짓쳐들어오고 있었다.
인간은 반응이 느리다. 상대가 평범한 인간의 격에서 벗어나있기에 공격의 전조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살기를 읽기도 전의를 느낄 수도 없다. 독심술이 통하지 않으니 나조차도 그게 잔상으로 남고서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피해!”
회귀자는 천반경으로 반응했지만 애초에 빛의 칼날은 그녀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새하얀 그림자가 정확히 자동마차 쪽을 향해 칼날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존재가 숨어있다.
[건방진! 감히. 내 앞에서 천사를 꺼내는 것이냐!]
티르가 그렇게 외친 직후. 안쪽에서 어둠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원래 티르는 짐칸 속에 몸을 숨기고 있기로 했다. 태양 빛에 자주 노출될수록 어둠이 소모되니 힘을 온존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격노로 눈이 붉어진 티르는 그런 계획쯤은 신경도 쓰지 않고는 어둠을 부풀렸다. 국소적인 밤이 자동마차를 중심으로 찾아왔다.
빛의 칼날이 어둠을 갈랐다. 스며드는 틈 사이로 빛이 색소처럼 스며들어온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천사의 머리가 들이밀어진다.
하지만 새카만 어둠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그 빈자리를 채웠다. 그 속에서 새카만 양산이 튀어나와 천사를 후려쳤다.
새하얀 몸에도 형체는 있었던 모양이다. 양산에 직격당한 흰 몸체가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저동마차의 앞뒤를 뒤집어서 뛰쳐나온 티르는 격양된 얼굴로 천사라고 불린 존재를 노려보았다.
[이 날파리가 감히…!]
천사는 티르의 양산을 맞고도 날아가다가 물길 바닥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몸을 흩뿌리며 부드럽게 일어섰다. 아무리 봐도 비인간적인 움직임이었다.
허공에서 헤엄치듯이 일어난 천사가 새하얀 빛을 흩뿌리며 말했다.
『막시밀리앵 국장. 조속히 복귀하라. 국장 개인의 힘으로는 이들에 대항할 수 없다.』
“하핫. 드디어 등장하셨군 천통! 보았나? 내가 찾은 것 같네!”
『국장의 의견은 묻지 않았다. 국장의 개인적인 목표와 관계없이 지금은 힘을 합칠 때다. 조속히 복귀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들을 저지할 수 없다.』
“알았어. 알았어! 알아들었네. 자네 뜻에 따르겠네!”
[어딜 도망가려고 하느냐.]
그 순간 어둠이 폭발하듯이 솟구쳐서 둘을 감싸려고 들었다. 천사가 검을 휘둘러 어둠을 떨쳐냈으나 어둠은 포기하지 않고 연달아 다가왔다.
누군가의 합류를 기다리며 시간을 끌듯이.
[성황청의 장난감이라. 설마 이곳에서 볼 줄은 몰랐는데… 재미있는 짓거리를 해주는구나. 아니면 이 나를 도발하는 것이냐?]
티르가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흡혈귀는 생명이 없다. 자기 피조차도 자기 스스로 조종하는 작자들이며 이미 죽었기에 생에 대한 본능 역시도 희미하다. 다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자의 분노를 사기는 꽤나 힘든 법이다. 인간에게는 위협적인 주먹질이나 공격조차 상대에게는 약간 무례한 언행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단 하나.
성황청과 관련된 것은 다르다. 시조 티르칸쟈카가 그들의 손에 의해 아버지를 자신을 혈족을 잃은 뒤. 성황청은 흡혈귀의 선험적인 증오를 샀다.
모든 흡혈귀는 성황청을 향해 분노한다. 티르는 그 극단에 서있다.
천사가 다가오는 티르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시조의 시선은 내가 끌겠다. 막시밀리앵 국장 반복하여 명령한다. 조속히 복귀하라.』
“하하! 역시 소모 가능한 자원은 참 좋다니까!”
막시밀리앵이 껄껄 웃으며 물러났다. 발에 달린 톱니바퀴가 맹렬히 구르고 그의 몸이 도로를 따라 빠르게 멀어진다. 그는 냉큼 도망쳤다.
다 잡은 적이 도망가는데도 회귀자는 섣불리 그를 잡으러 갈 엄두도 못했다.
천통이라 불렸던 그리고 티르가 천사라고 부른 존재가 눈앞에 남아있었기에.
[내가 너희를 순순히 보낼 것 같더냐?!]
어둠이 몸을 부풀렸다. 티르는 본인 자체가 그다지 빠른 편은 아니나 그녀의 본질은 강대한 공간 장악력에 있다. 어둠 속은 그녀의 몸 안이나 다름이 없기에 그 안에서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내가 외쳤다.
“티르! 힘을 너무 낭비하진 마요!”
하지만 지금은 낮이다. 빛을 막기 위해 어둠이 지속적으로 소모되며 약간의 틈이 생겨도 금방 허물어지고 만다.
낮에 어둠을 흩뿌리는 건 비유하자면 물속에서 공기방울을 지키는 꼴이다.
천사는 그 점을 노렸다.
검이 수십 갈래로 나뉘었다. 일격일격이 강하지는 않으나 충분히 빠르고 날카로운 참격이 연달아 어둠을 베어낸다. 면으로 뒤덮이는 어둠을 면으로 흩날리는 검격이 밀어냈다. 어둠에 약간의 틈만 생기면 아직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알아서 상처를 헤집는다.
어둠과 빛의 싸움. 그 속에서 회귀자가 움직였다.
막시밀리앵이 충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한 회귀자가 냉큼 끼어들었다.
“거기까지 하시지! 에이메데르!”
회귀자의 눈이 순간적으로 일곱 빛깔로 물든다. 운명안은 개안하지 않는 대신 칠색의 눈을 차례로 개안하여 빛을 관측한다. 그와 동시에 회귀자는 천앵을 비스듬히 들어 그 너머로 천사를 바라보았다.
천검기 칠색안 연계기. 무지개.
벼락처럼 뻗어나간 천앵이 천사를 비스듬히 베어냈다.
기척을 알아챈 천사가 백광의 검으로 맞섰으나 천앵과 백광의 검이 부딪힌 순간 새하얀 빛이 일곱 빛깔로 분해되었다. 백광을 해체하여 만들어낸 무지개가 천앵의 궤적을 물들였다. 회귀자의 검을 따라 긴 무지개가 떴다.
감정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천사는 약간 놀란 듯했다.
『그렇군. 이게 마신의. 하늘의….』
천사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회귀자는 그 힘을 그대로 밀어넣어 천사의 목을 베었다. 섬광이 번쩍이고 빛이 잔상이 길게 남는다. 천사의 몸을 꿰뚫은 회귀자가 격하게 외쳤다.
“티르칸쟈카! 마무리를!”
유리가 빛을 깨뜨릴 수 있을지언정 없앨 수는 없다. 순간적으로 흐릿해진 천사는 깜빡거리며 다시 형체를 이루려고 했다.
그 순간 어둠이 뒤덮인다. 파도처럼 몰려들던 티르의 어둠이 천사를 기어코 붙잡았다. 격양된 티르는 말도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순간 어둠 속에서 거대한 질감이 쿵 떨어졌다. 형상화된 어둠이 백광을 짓이긴 것이다.
『관측 한계…. 위험.』
[끝이다.]
티르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어둠이 몰려들어 빛을 갉아먹었다.
티르의 힘은 물리력이 아니다. 요새 힘이 너무 강해지는 바람에 강조되고는 있지만 그 힘은 저주나 지배에 가까운 것. 잡힌 이상 천사는 끝장이다.
신비로 뒤덮인 빛의 몸은 침식하고 있는 어둠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자폭 시퀀스. 가동.』
그 직후.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