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3
군국에서는 그 누구도 죄를 범할 수 없다.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설사 상위계급인 장교라고 해도. 지주회사의 주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만일 누군가 가진 힘과 지위를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웠다면 군국이 아니면서 시민의 고혈을 쥐어짜 자신의 목을 축였다면. 돈방석을 깔고 앉아 축배를 드는 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공공안전부 직권으로 헌병대를 부리는 군국의 처형자.
영궤 지크흐룬드가 방문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증거는 전부 확보되어 있고 그의 지위와 재산은 이미 말소된 이후다. 평소에 간이고 쓸개고 빼줄 것처럼 굴던 승냥이들도 공안의 경고를 받고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몸을 사린다.
달인의 검술은 너무 현묘해서 상대는 자기가 베인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다고 한다.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공공안전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팔다리가 다 잘린 이후.
자포자기로 저항하려고 해봤자 상대는 힘도 권력도 절정에 달한 육장성이다. 장교라고 해도 그의 칼날에 대적할 수 없다. 죄인이 허락된 유일한 감정은 군국에서 죄를 저지른 자신에 대한 후회뿐.
그러나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공공안전부가 찾아오기 전 죄인은 이전에 지크흐룬드의 방문을 받았다는 것을.
그때는 지크흐룬드의 모습이 아니었겠지만.
갈 길이 바쁘다는 재촉에 ‘캐러팔드’는 우리를 제련소 안쪽까지 인도했다.
어머아마한 규모의 공장이었다. 건물 외벽은 두꺼운 콘크리트로 되어 있었으며 커다란 굴뚝에서는 새하얀 연기가 화산처럼 뿜어져 나왔다. 이토록 커다란 건물인데 바깥에서는 창문 하나 보이지 않았다. 대신 수십 개의 환기구와 큼직한 강철 문 하나만이 외벽에 을씨년스럽게 자리해 있었다. 두꺼운 문을 열자 안쪽에서 후끈한 열기가 밀려 나왔다.
그리고 연금강 제련소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금강 제련소는 가연금물질을 연금강으로 변환하는 커다란 시설입니다. 분해 분류 정련 공정.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뉘지요. 분해 공정은 가연금물질을 디알케 그러니까 구조 변환으로 분해합니다. 그 과정에서….”
‘캐러팔드’는 자기 쓸모를 주장하기 위해 아는 척 설명했으나 그의 의도는 통하지 않았다. 다들 눈 앞에 펼쳐진 상식 밖의 광경에 경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컥 철컥.
사슬에 꿰인 인간이 레일을 따라 걷는다. 왼팔을 어깨 위로 힘없이 든 채 갈고리가 그들을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그들의 얼굴에는 표정도 생기도 없다. 낯선 침입자에게 시선을 돌릴 여유조차 갖지 못한 채 정해진 자리로 향한다. 숨을 쉬는 것도 힘겹게 시뻘건 쇳물이 흘러가는 레일 앞에 선다.
그 뒤 사슬이 철컹 당겨진다. 그 사슬 끝은 생체 단말과 연결되어 있다. 물고기 입을 꿰뚫은 낚싯바늘처럼 생체 단말 안쪽에 매달린 갈고리가 만성이 되어버린 고통으로 인간의 몸을 조종한다.
“으윽.”
마른 비명과 함께 갈고리의 힘을 이기지 못한 노역자가 손을 뻗는다. 그 앞에는 반쯤 녹아내린 연금강 선철(銑鐵)이 있다. 아직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그것을 향해 갈고리가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노역자의 손을 잡아끈다.
이 순간만큼은 노역자도 주춤한다. 생명으로서의 본능이 시뻘겋게 타오르는 철조각을 향해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끄아아아아아아악!!”
쇠사슬이 위협하듯 거칠게 당겨진다. 힘을 받은 갈고리 끝이 살갗 위로 도드라진다. 꿰인 피부에 새빨간 주름이 잡히며 밀려난다. 인간의 피부 역시 본질적으로 옷자락과 다를 바 없다고 외치는 것 같다.
힘을 이기지 못한 노역자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뻗는다. 불꽃과는 밀도부터가 다른 녹아내린 강철을 향해.
살갗이 익는다. 가만히 두면 자신을 고깃덩이로 만들 그 달아오른 열기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연금술을 써야 한다.
“세트! 리 디 디알케! 디알케에에…!”
-그런 끔찍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절규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군국 전역에 공급하기 위한 연금강을 생산할 만큼 많은 절규가.
어딘가에서는 연금술에 실패한 모양이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고기 굽는 냄새가 퍼진다. 체액이 타오르며 솟구친 새하얀 김이 공장 위쪽으로 떠올라 자기가 왔던 곳을 한 번 굽어보고는 바람을 따라 저 멀리 보이지 않은 곳으로 사라졌다.
생존과 고통을 담보로 이들을 혹사… 아니 쥐어짜는 군국 최악의 노역장.
연금강 제련소는 지금까지 쌓아온 상식을 전부 쳐부수고는 그 잔해 위에서 도덕과 정의를 비웃는 모독이었다.
“…이 이 이건. 말 말도 안 돼.”
공주의 반응이 늦은 것은 이 모든 시스템을 이해하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공주는 경악과 전율로 벌벌 떨었다.
“어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이들 이들이 도대체 얼마나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거죠? 아니 설사 그렇더라도! 이런 꼴은!”
비교적 이런 광경에 익숙한 회귀자는 얼굴을 찡그리는 정도에서 끝냈다.
“이래서 오고 싶지 않았던 거야. 칫 비위만 상하잖아.”
[…내 권속이 거느렸던 인간 농장도 이정도는 아니었건만. 인간은 간혹 흡혈귀보다 더한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흡혈귀인 티르조차도 그리 평가할 정도니 이 참상이 얼마나 혹독한지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색다른 광경을 맞이했을 때 인간은 새로운 반응을 보인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네모난 상자와 같다. 두 눈과 두 귀로 무엇을 흘려넣었냐에 따라 다른 반응을 내보이는 안이 보이지 않는 상자. 신이 아닌 이상 그 어두컴컴한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를 터. 하지만 충분한 관찰을 통해 그것을 흉내낼 수 있다.’
그 와중 우리 모두를 시험하듯 ‘캐러팔드’는 모인 인간의 반응을 관찰하고 있다.
‘반응 확인. 위험인물 X 기시감을 보인다. 과거에 제련소에 온 적이 있나. 그렇다면 군국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도 설명된다. 시조 티르칸쟈카 감탄…? 경멸? 하나 분명한 건 이보다 더한 수라장을 겪어왔는지 반응의 크기가 작다. 그리고.’
회귀자와 티르를 한 번식 살핀 뒤. ‘캐러팔드’가 나에게 분명한 관심을 보였다.
“어때 휴이?”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너의 반응은?’
‘캐러팔드’는 이런 위험천만한 곳에 잠입한 자신에 대한 우월감을 보였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배역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연기. 그는 속으로는 냉철하게 나를 주시하는 중이다.
왜? 지금 이곳엔 위험한 사람이 이토록 많은데 왜 하필 나를 콕 집어서 경계하는 거야?
‘정보 부족. 쓰는 힘 특정되지 않음. 캐러팔드가 설명하기로는 어디 특출난 재능이 없는 단순한 수재였다고 하나 육장성을 제치고 수석을 차지한 경력과 탄탈로스에서 살아남은 이를… 단순하다고 설명하고 끝낼 거라면 파고드는 맛이 없지.’
나도 이상한 존재에게 인기가 많구만.
군국의 모든 정보는 영궤를 한 번 거친다. 그는 통신병의 정보를 가장 먼저 열람할 권한이 있으며 심지어 그를 보조하기 위한 단독 통신본부도 존재한다.
그렇게 정보를 모은 그이기에 정보의 암흑지대나 다름없는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총사조차도 군국을 배신하게 만들었고 시조로 하여금 관에서 나오게 했지. 과연 그게 우연인지 아니면 네 능력인지. 자아 보여라 피리 부는 사나이. 어떤 수로 내로라하는 강자를 꼬드겼는지. 얼마나 중요한 배역을 맡고 있는지를….’
그래. 그게 네 뜻이라면.
보여주지.
평소와는 완전히 달라진 나를 말이야.
“이 미친 나라 같으니…. 도대체 인간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떻게 인간을 하찮은 도구 취급을 할 수 있는데?!”
군국의 이름 아래 짓밟히는 인권에 분개한 것처럼 나는 감정을 끌어올리며 소리쳤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던 공주는 내 뜻에 동의를 표했으나 회귀자는 도리어 의아한 시선을 보내왔다.
“엥? 뭐야 답지 않게. 인류애에 눈이라도 떴어?”
“농담할 분위기가 있고 그렇지 않을 분위기가 있지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요?! 셰이 씨는 이 모든 광경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도 안 들어요?!”
“어? 아니. 나는 그냥. 네가 평소에 비해서 감정적이길래….”
그야 영궤를 속이기 위함이지! 괜히 초 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정의감? 군국에 반기를 든 이유가 어쭙잖은 정의감 때문인가. 흠. 위험인물의 반응을 보면 아직 확실하지 않은데. 조금 더 시험해볼까.’
‘캐러팔드’는 본의가 아닌 척 눈치 없이 한마디 보탰다.
“어 여기는 그나마 나은 편인데….”
아주 정교하게 계산된 한 마디. 부주의한 ‘캐러팔드’라면 할 법한 말이면서도 은근히 파낸 함정.
나는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함정을 판다는 건 나를 완전히 사냥감으로 인식한다는 뜻.
그렇다면 사냥감을 연기해야지. 나는 그가 판 함정에 냉큼 발을 들이밀었다.
“캐러팔드 그게 무슨 뜻이야? 여기는 그나마 낫다면. 이 다음은? 뭐가 있는데?”
“이쪽 분해 작업을 맡은 사람들은 비교적 지식인들이야. 제식마법을 배웠고 연금술을 할 줄 아니까 비교적 편한 임무를 맡았어.”
“그러면 다음 공정은?”
내가 묻자 ‘캐러팔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연금술을 전혀 모르는 이들이 다음 공정에서 일하고 있어.”
모순이다. 연금강은 연금술의 결과물. 연금술을 모르는 이가 어떻게 연금강을 제련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캐러팔드’는 거기서 설명을 멈추었다. 이 이상은 네가 맞춰보라는 듯이.
‘그는 지금까지 무력적인 부분에선 도드라지지 않았다. 참모 역할일까. 어디 능력을 시험해보자.’
미안하지만 그 시험. 나는 다 컨닝으로 통과했거든. 네가 답을 아는 이상 나에게 모르는 문제는 없어.
“연금술을 쓸 줄 모르면서 연금술을 쓴다고? 그게 될 리가….”
있다. 딱 한 가지 연금술을 쓸 줄 모르면서도 연금술을 쓰는 방법이.
성년이 된 군국민이라면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는 그것. 의복 패킷을 끼워 넣으면 자기 몸에 맞추어 연금술을 발휘하는 군국 7대 발명품 중 하나.
생각을 읽은 탓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마치 사색 끝에 간신히 답을 찾아낸 것처럼 내가 떠오른 대답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정답을 말했다.
“생체 단말…?”
‘정답.’
“인간의 몸을 거푸집 삼아서 거기에 녹은 철을 부어 넣는다고…?”
‘단편적인 정보를 모아 거기까지 추리해내다니. 단순한 수재라고 보기 어렵군. 그를 이 집단의 참모로 보는 편이 맞겠어.’
‘캐러팔드’는 나에 대한 평가를 상향 조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쳇 알고 있었네. 하긴 전학년 수석인 너에게는 쉬운 문제였나….”
연금술은 다른 물질을 가공하여 유용한 물질로 변화시키는 행위를 총칭한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매순간 연금술을 부리고 있다.
먹은 음식을 태워 열을 얻고 찌꺼기를 정제하여 피와 살로 만든다. 그것을 몸 곳곳에 누빈다.
생명이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연금활동을 하는 개체인 것이다.
“네 대답이 맞아 휴이. 생명은 연금술의 제 1 원소… 그렇다면 생명 그 자체를 써서 연금술을 하는 것도 가능하지.”
이 문을 넘어가면 거기부터는 닭장처럼 좁은 공간에 갇힌 인간들이 빼곡이 있을 것이다. 생체 단말이 있는 왼팔만 철창 밖으로 내민 채 묶여있고 거기로 새빨간 쇳물이 계속 스며들 것이다.
이곳과는 다르게 티끌만큼의 자유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자유가 없어도 일하는 데 지장이 없으니까.
나는 한마디 툭 내뱉었다.
“완전히 미쳤군.”
이건 진심이었다.
이 제련소는 악의를 가지고 만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노역자들을 고통스럽게 할지언정 그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요인에 지나지 않는다.
군국이 이 제련소를 만든 이유는 그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군국을 채울 만큼의 연금자원이 있어야 이 나라를 살찌울 수 있기에 그리고 연금자원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수많은 인간을 혹사시키는 것뿐이기에. 군국은 죄수들을 착취하여 연금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고통스러워 비명을 내지르는 노역자의 모습을 살폈다. 입은 옷은 깨끗하고 스트레스로 피부와 머리카락이 다 떨어져 나가면서도 살은 제법 올랐다. 그들을 묶은 쇠사슬도 녹슨 곳 하나 없이 깨끗했다. 마력을 짜내야 할 노역자가 빨리 죽으면 군국 입장에서도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어떠한 악의도 부정도 증오도 없다. 차가운 이성만이 인간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캐러팔드가 이토록 중요한 시설에 잠입할 수 있던 이유도 알았다. 고급 인력인 장교도 제정신이 박히고선 이곳의 감독관으로 일하지 않을 테니 외부의 인력마저 끌어와야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영궤한테 걸려서 ‘캐러팔드’가 된 거고.
내가 외쳤다.
“당장 때려부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