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83
“궤변. 여기까지 쳐들어와서 말하는 게 고작 그따위 궤변이라면 실망스럽군요.”
마음을 빤히 읽고 있던 나는 귀를 의심했다.
조금 전까진 인간적인 고뇌를 품고 있던 우레회주다. 그러나 무언가 벼락처럼 번뜩이더니 모든 고뇌를 인식 저편에 집어던지고는 우레회주로 변모했다.
마치 우레회주는 인간이 아니라는 듯이.
“육신을 다른 인간이 만든 무언가로 대체하는 것. 그건 2종 금기 접목의 대죄. 불경한 마법사들조차도 주의하는 호문쿨루스의 딜레마인데 그걸 방관하라고요? 열국의 모든 인간을 황금경의 손아귀 아래 떨어뜨리라고?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존엄성을 버리게 두라고?”
그녀의 머리가 들썩거린다. 전신에 가득 뻗어나간 우레의 힘이 다시금 한데로 모인다. 그런데 모이는 방향이 조금 이상하다.
우레회주의 머리 위로 떠오른 샛노란 고리가 떠오른다. 천사…의 것이라 하기에는 불안정해 보이는 전류의 고리가 기분 나쁜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인간의 격을 낮출 바에야 평생 고통을 안고서 살아가는 편이 나아요.”
힘과 오만함을 모두 가진 그 모습은 천사나 다름없다. 억지로 다른 점을 찾자면 천사의 형상을 불러오는 게 아니라 우레를 매개로 본인의 육신을 천사처럼 쓰고 있다는 것.
여기서 제일 인간같지도 않은 게 인간의 존엄을 논하다니 아이러니네. 아무리 봐도 네가 제일 이상하잖아!
“정작 당신은 전신이 황금경의 작물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자기는 그 힘을 마음껏 이용하면서 다른 이들은 해선 안 된다니. 사다리 걷어차기잖아!”
“그렇기에 저는 특별해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저의 육체와 권능을 동경하는 대신 탐낼 테니까. 모두 앞다투어 황금경의 배설물로 육신을 채우려고 들 테니까. 모든 인간이 저와 같은 힘을 얻는다면 세상의 질서는 장난감처럼 무너질 테니까!”
우레회주의 머리카락이 전류의 고리를 휘감듯이 떠오른다. 그건 천벌을 다루는 천사 같기도 혹은 머리 위의 고리에 지배당하는 꼭두각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올라가다가 만 머리카락은 옆으로 펼쳐져 날개처럼 위아래로 흔들렸다.
벼락의 빛을 담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우레회주는 새로이 계시를 받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정녕 인간이 그 존엄을 잃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나요 인간의 왕?”
진짜 이제는 개나 소는 물론이고 굴러가던 돌멩이도 나를 알아보고 안부를 묻겠구나. 아예 소문을 내지 그러냐.
바로 옆에 안개 공국이 있기 때문에 클라우디아에는 그럴싸한 신전이 없다. 우레회주는 살면서 신전을 본 적도 없으며 신학이 학문으로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시를 받은 지금 우레회주는 누구보다도 독실한 신자였으며 그들과 뜻을 함께하는 동지였다.
운명의 선택을 받고 그 기회와 힘으로 우레회주가 된 그녀는.
“성검대였군요 우레회주. 쳇 괜한 질문을 했네.”
성황청의 직속무력부대 성검대는 운명이 선택한다.
누구도 그들에게 성검대가 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그들도 성검대가 되고 싶다고 지원하지도 않는다. 그냥 다른 인간 사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불현듯이 깨닫는다.
그들은 성검대이며 운명의 선택을 받았다고. 그들을 이해하고 긍정할 유일한 것은 천신이노라고.
우연히 얻은 힘도 믿고 따르던 가르침도 애써 지키던 가치도 절실히 바라던 것도. 그 모든 것이 이미 존재한다는 걸 깨닫고는 계시를 따른다.
“누구보다도 인간의 존엄을 지켜야 할 인간의 왕이 그것을 저버리다니. 당신은 역시 사라졌어야 했어.”
진짜 막말하네. 누구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고 사라지고 싶어서 사라졌냐? 나는 발끈해서 대답했다.
“이게 당신들이 다 이상한 이름을 갖다 붙여서 그러는 건데 인간의 왕이라고 왕이 아니거든요? 백성보고 이래라저래라 하나하나 명령하는 왕은 인간들이 만든 개념이라고요.”
너희들이 멋대로 기대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애초에 나는 짐승의 왕. 인간이 짐승이던 시절 그들 모두를 대변하는 존재…였다.
따지고 보면 나는 인간이라는 종 전체에게 영향을 받는다. 말만 왕이지 오히려 궂은 일만 하는 태어났을 때부터 무보수 노동이 약속된 바지대표라고 할까. 그에 비해서 너희들 왕은 참 좋겠어. 자기 멋대로 인간을 바꾸니 말이야.
뭐 그러기 위해서 인간의 왕을 몰아낸 거겠지만.
“인간은 무릇 이래야 한다 마땅히 존엄을 지켜야 한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무릇 그런 인간이 도대체 어디 있죠? 제가 아는 인간은 아닌 것 같던데. 존엄이라는 건 또 뭔데 지켜줘야 하죠? 비상식량이라도 되나요? 그러면 좀 나눠줬으면 하네요. 꽁꽁 숨겨놓지 말고요.”
거짓 한 점 섞지 않은 내 순수한 본심이었으나 이걸 비아냥으로 들은 우레회주는 똑같이 비꼬아서 응수했다.
“인간이 어찌 되든 얼마나 비참하게 전락하든 상관하지 않겠다…. 흥 야만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군요.”
“인간이 어찌 되든 얼마나 비참하게 전락하든. 그 역시 인간 아니겠나요. 당신처럼 부정하지는 않는다고요.”
“그러다가 도시가 멸망하면? 도덕이 사라지면? 질서가 무너지면? 인간을 지켜주는 그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거기 남아있는 인간은 무엇이 되죠?”
우레회주가 팔을 확 흩뿌렸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벼락을 깃들인 손가락이 근처 아이들을 향한다. 그녀는 울부짖는 어린아이들을 가리키며 피를 토하듯이 외쳤다.
“황금경! 그 저주받을 마신이 금국이라는 질서를 무너뜨렸기에 이 땅에는 수많은 비극이 뿌리내렸어요! 감당할 수 없는 힘은 받아들이는 게 아니야. 세상을 부술 힘이라면 그건 겉으로 드러나지 말고 영영 사라져야 해! 수많은 죽음 혼란과 공포 전쟁과 비극을 일으킬 바에야! 차라리 사토 속에 묻어두고는 아예 잊어버리는 편이 나아!”
그게 질서를 지키는 방식. 힘겹게 쌓아 올린 뒤 부서뜨릴 만한 걸 전부 없애는 것. 성황청이 좋아하는 방식이다.
“황금경도 인간이었어요. 평범한 한 명의 인간.”
물론 내게 있어서는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방식이지만 말이지.
“세상에 변화를 이끈다고 해서 너무 강력하다고 해서. 마신이라고 마치 상식에서 벗어난 존재로 만들고 낙인을 찍고 터부로 삼아 생각하는 것조차 막아버릴 거라면….”
부정 금기 터부. 실제로 존재했으나 이제는 감히 떠올리지도 못하게 막아낸 것들. 마신이라 이름 붙이는 건 모두 그걸 위해서….
라고 해도 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뭐 그래도 상관없긴 해요. 여러분도 인간이니까요. 저는 여러분의 소망도 소중히 여겨요!”
우레회주의 표정에 약간의 기대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래도 저는 알아야 하거든요! 저는 인간의 왕이니까요! 당신네들은 제가 그것들을 잊고 영영 떠올리지 못하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그건 저보고 핑크색 코끼리를 절대 떠올리지 말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핑크색 코끼리는 못 참지. 그런 걸 머릿속으로 되뇌고 있는 주제에 어떻게 잊으라고 해. 그럴 거면 너희부터 알지 말던가.
아니 그것도 무리인가.
무언가를 피하려면 그에 대해서 면밀하게 파악해야 하는 법이니.
“결렬이군요.”
“딱히 그렇지는 않아요! 자 좋은 여흥이었어요. 아쉽게도 서로의 의견이 평행선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그만 헤어질까요?”
“…그래야죠.”
한숨을 내쉰 우레회주는 벼락의 날개를 살짝 흔들며 몸을 움직였다.
온다.
직후 내 눈앞으로 벼락이 짓쳐든다. 한 줄기 바람과 전광을 뒤에 남긴 채로 뛰어나간 우레회주가 내 목을 잡았다. 어라 할 틈도 없이 내 몸이 책상을 부수고 벽에 처박힌다.
쾅 하고 강렬한 충격이 느껴진다. 터진 입가에서 피가 맴돈다. 내 목을 움켜잡은 우레회주는 살의를 담은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았다.
“라고 할 줄 알았나요? 당신도 제가 쉽게 보내주지 않을 것 정도는 예상했을 텐데요.”
아 진짜. 빠르긴 진짜 빠르네. 생각을 읽고 있어도 반응이 늦어. 나는 아릿한 고통을 느끼며 대답했다.
“…쿨럭 그러게요. 방해가 올 거라곤 예상했지만. 설마 우레회주가 직접 올 줄은.”
독심술로도 몰랐다고. 너도 네가 성검대인거 몰랐잖아! 그런데 내가 어떻게 알아! 자기가 누군지에 대한 고뇌는 미리미리 해놓으라고!
“차라리 동료와 함께 오기라도 했어야죠. 당신의 어리석음이 죽음을 자초했군요. 힘을 잃은 당신은 그 어떤 방해도 이겨내지 못할 텐데.”
“그 러네요. 저는 고작 평범한 인간이니…. 커헉!”
점점 숨이 막혀온다. 나는 마지막 여력을 쥐어짜서 우레회주의 팔을 움켜잡았다. 벼락이 튀는 팔은 꼭 강철을 손으로 잡는 것만 같다.
내가 힘을 주어봐도 그 단단한 팔은 꿈짝도 하지 않는다. 우레회주로 태어났고 우레회주로 자랐으며 우레회주의 격을 갖춘 그녀는 말 그대로 철인.
‘애처로운 모습… 이게 그 인간의 왕인가요. 그만 끝내드리죠. 사인은 감전사로 하는 편이 그나마 그의 동료들을 설득하기 쉽겠죠.’
그 손으로 벼락이 흘러들어온다. 탄산수를 마실 때처럼 짜릿한 감각이 내 목을 타고 흐른다. 개미떼가 전신을 기어다니는 듯하다.
그래도 철인이라도… 인간이긴 하니까.
‘벼락을 두른 손을 잡고도… 타격이 없어?’
놀라기는 일러.
우레회주의 팔을 잡고 천천히 움직였다. 벼락을 기공처럼 다루는 그녀의 강력한 힘은 일반적인 힘으로는 절대 떨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벼락은 어떨까.
벼락과 함께 태어나 벼락과 함께 자랐다. 심지어 육신마저도 벼락에 친숙하다. 그녀에게 있어 감전은 물놀이나 마찬가지였고 그 흐름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벼락을 손에 움켜쥐었다.
타고난 이의 타고난 고유마도. 번잡한 우레의 힘을 기공으로 빚어낸 심상.
고유마도 천둥잡이.
우레회주의 팔과 함께 그녀의 벼락도 손으로 쥐었다.
태생적으로 벼락은 흐를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벼락은 높은 천상에서 흐르는 강이나 마찬가지. 바다에 고이기 직전까지는 흐를 수밖에 없는 개념.
너무 짧고 번뜩여서 그저 힘으로 여기지만 그 본질은 흐름이고. 우레회주는 그걸 손으로 쥔다.
그녀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은 평범하니까.
까드득. 우레회주를 우레회주의 힘으로 쥐어 움직인다. 자기 자신의 힘이기에 그녀가 제 몸을 다루는 만큼 나도 그녀의 몸을 다룰 수 있다. 피뢰탑이 무너져도 멀쩡할 것 같은 강완이 내 팔힘에 서서히 밀려난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뜬 그녀를 향해 자유를 되찾은 내 입이 열렸다.
“당신을 상대로도 승산이 반반 정도밖에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