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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Chapter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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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53

그믐이 비추는 뮤리. 신묘한 움직임으로 어둠 속에 녹아드는 그녀는 말 그대로 신체를 ‘녹아내리게’ 한다. 한때 이름 날린 무희이자 비밀암살단의 일원으로 활동한 그녀는 의뢰에 따라 시조 티르칸쟈카를 암살하려고 하였다가 티르칸쟈카의 눈에 들어 엘더가 되었다.

암살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는다. 목적도 의지도 없이 명령만 따르는 인형이었던 뮤리에게 엘더의 삶은 보다 나은 선택지였다. 뮤리가 죽여야 할 사람도 뮤리를 죽이려는 사람도 여전히 많지만 최소한 죽을지도 모르는 긴장감 속에서 살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서 뮤리는 티르칸쟈카가 그녀를 해방한 것을 원망했다. 지금 뮤리의 공격은 투정이나 마찬가지.

부서진 벽의 조그마한 틈. 머리 하나도 들어갈까 말까 한 조그만 구멍으로도 뮤리는 흐르는 물처럼 빠져나왔다. 좁고 어두운 틈을 타 티르칸쟈카의 뒤를 점한 뮤리는 살기도 기척도 없이 티르칸쟈카를 향해 단검을 뻗었다. 뮤리의 단검 달송곳니가 티르칸쟈카를 노렸다.

[네 춤사위는 너의 것이나. 그 피는 나의 것.]

작은 읊조림이 들린 뒤 거대한 주먹이 뮤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본래 흡혈귀는 방어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하물며 그게 어둠을 뭉쳐 만든 그림자라면 차라리 무시하고 헤쳐 나가는 게 더 낫다.

그러나 뮤리는 거인에게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힘을 경시할 수 없었다. 맞는다고 죽진 않겠지만 불길한 감각에 뮤리는 공격을 포기하고 거인의 주먹을 피했다.

후우웅. 주먹이 폭풍을 두르고는 코앞을 스쳐 지나간다. 딱딱한 질감 묵직한 존재감 그리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피가 새까만 어둠 너머에서 느껴진다.

“혈기로 가득 차 있네요-? 권능이 사라졌어도 그 힘은 거인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는 거죠-?”

“혈기!”

먹잇감의 냄새를 맡은 바쿠타가 거인에게 달려들었다. 입을 괴물처럼 벌리고 거인의 오른손을 크게 베어 물었다. 뭉텅 잘라낸 어둠 속 혈기를 맛본 바쿠타는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건 좀…. 맛없는데….”

바쿠타가 어둠을 질겅질겅 씹으며 심심한 유감을 표시하는 찰나. 거인이 바쿠타를 한손으로 낚아챘다. 거인은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쿠타를 제 입으로 가져다 댔다.

와작.

거인의 이빨이 바쿠타의 하반신을 그대로 짓이겼다. 평생 무언가를 먹는 입장이었던 바쿠타는 먹히는 입장을 겪었다.

우적 우적. 바쿠타의 다리 한 짝을 꼭꼭 씹어 삼킨 그림자는 입가에 혈기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맛없기는 너도 마찬가지로구나.]

“어? 엄마도 배고프구나?”

바쿠타는 먹힌 와중에도 반갑게 물었으나 티르칸쟈카의 그림자는 코웃음 치며 부정했다.

[딱히. 단지 너희 입을 다물게 할 수단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아쉽네. 엄마도 배고픔을 깨달은 줄 알았는데.”

[그것이라면 이미 안다. 나는 아직도 갈망하고 있으니까.]

흡혈귀의 힘은 혈조술 피를 다루는 것. 티르칸쟈카는 여전히 혈조술을 다룰 수 있다. 다만 피가 있어야 할 곳을 고집하는 탓에 넘치는 힘을 다루지 못했을 뿐.

그래서 티르칸쟈카는 피를 ‘속였다’.

거인의 상반신이 티르칸쟈카의 몸 뒤로 떠오른다. 티르칸쟈카의 몸에서 나온 혈기가 거인에게로 흘러 들어간다. 티르칸쟈카를 둘러싼 그 거인은 티르칸쟈카가 자신의 몸을 따서 만들어낸 또 다른 육신이기에.

권능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그 모든 요소가 티르칸쟈카와 똑같다. 제 자리를 지키려는 혈기는 그게 만들어진 몸이라는 걸 알지 못하고는 스며든다. 그래도 괜찮다. 티르칸쟈카에게는 호수를 채울 만큼의 혈기가 있으니까.

“…씨족장 힘쓰는 법 익혔다.”

주시자 라후 칸이 중얼거렸다.

황야의 패자 라후 칸은 혈기를 집중시켜 신체의 기능을 높일 수 있다. 그 능력은 신체 전반을 강화할 수 있으나 주로 쓰이는 게 눈이기에 그에게는 주시자라는 별칭이 붙었다. 주시자답게 라후 칸은 붉은 귀화가 일렁이는 눈으로 티르칸쟈카의 그림자를 꿰뚫어 보았다. 어떤 묘기를 부렸는지 어떻게 힘을 썼는지 그리고 어떻게 파훼해야 할지.

“강력하다. 그뿐이다. 발다미르와 같은 방식. 혈기는 더 강하지만… 저급하다.”

라후 칸은 비켜 맨 창을 꺼내들었다.

저 거인은 말그대로 티르칸쟈카를 거대화시킨 것. 넘치는 힘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 고안한 방법이다. 분명히 강력하고 유용하지만 육신이라는 틀은 아직도 힘을 옭아매고 있다.

…그렇지만 혈조술의 주인이라 그럴까. 힘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남다르다. 마치 원래 자기 것을 되찾는 것 같다.

아니 따지고 보면 원래 그녀의 것이 맞다. 머지않아 티르칸쟈카는 모든 엘더의 힘을 소화해내리라. 

“저 힘을 완성한다면 누구도 원래 씨족장으로 돌려놓을 수 없다.”

주시자는 지금이 분기점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룽켄은 마지막 남은 멧돼지 수인이다. 라후 칸과 그 휘하의 켄타우로스 또한 사라지기 직전이다. 흡혈귀는 살아있는 박제. 스러져가는 도중 멈춘 시간 속에서 영원토록 존재한다. 종의 존속이라는 의무를 가진 라후 칸은 시조의 변덕을 용납할 수 없었다.

시조는 영원해야 했다. 그래야 켄타우로스도 영원할 테니까. 설사 라후 칸이 시조의 미움을 사 죽더라도 일부러 데려오지 않은 켄타우로스는 여전히 남아 명맥을 이을 것이다.

“흡!”

기회를 엿보던 라후 칸은 빈틈을 발견하고는 땅을 박찼다. 발굽이 복도에 깊은 자국을 내며 네발짐승은 두발짐승이 따라오지 못할 속도로 쇄도했다. 티르칸쟈카의 몸으로 만들어졌기에 생긴 틈 팔꿈치부터 손까지 이어지는 직선을 창으로 관통했다.

회전을 담은 창이 어둠을 흩뜨린다. 부서지고 깨진 몸에서 혈기가 흐른다. 거인이 발작적으로 몸부림을 쳤지만 라후 칸은 민첩한 움직임으로 피해내며 거인을 부수고 망가뜨렸다. 얼마 남지 않은 거인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상처를 입은 와중에도 거인의 눈동자가 돌아간다. 피를 잔뜩 머금은 듯한 새빨간 눈동자가 라후 칸의 움직임을 좇았다.

“나의 눈을 이리 간단히!”

라후 칸의 주시하는 눈이 그를 바라본다. 엘더가 빚어낸 기술이 시조의 혈기로 재현된다. 라후 칸은 정확하게 그를 향하는 시선을 보고는 깨달았다.

시조를 막을 수 있는 건 지금뿐이다. 무력으로 시조를 뛰어넘은 발다미르도 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던 듀 라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조에게 추월당할 것이다.

그러니 그 전에 도착해야 했다.

듀 라한과 발다미르. 시조를 상대로 승리할 힘을 지닌 전력들이.

 

***

공국에 도착한 이래 가장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아인이 다섯. 엘더가 하나. 단순 숫자로 보면 여섯이지만 그 질까지 따졌을 때 공국에서는 군단이나 마찬가지.

그에 비해 나는 평범한 인간이고 힐데는 일개 육장성. 육장성이 어디 가서 꿀리진 않지만 그들에게 공국으로 가서 당당하게 행동하라고 명령하면 혀를 내두를 것이다. 무력과는 별개로 불사성 때문에 아인 하나 죽이기도 어려운데 엘더의 지원을 받는다? 그냥 달아나는 게 상책이다.

도망도 그게 가능할 때 이야기지만.

“혹시 제가 인질이 되겠다고 하면 긍정적으로 고려해볼 생각이 있으신가요?”

“처리해라.”

“들어먹을 생각도 없군.”

혹시라도 도망갈까 봐 거의 피로 벽을 만들고 다가오고 있다. 엘더 하나였다면 어떻게든 빈틈을 노리고 속였겠지만 아인 다섯이 사방팔방에서 포위하니 숨 쉴 틈도 없다.

제길. 이제는 힐데의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나. 내가 반쯤 포기하고 있을 때.

“잠시.”

피의 파도가 갈라지고 다른 아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 공국에서 나와 가장 많이 마주쳤던 아인 에르테 백작이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등장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반갑게 소리쳤다.

“에르테 백작님! 구해주러 오셨군요!”

“그렇게 되겠군요.”

에르테 백작은 시원하게 인정했다.

내 지원군! 제때 와줬구나! 살짝 늦을 뻔했지만 이 정도 오차는 용서해줄게! 주인공은 마지막 즈음에 등장하는 게 더 카타르시스가 있으니까!

“에르테. 발다미르의 권속인 당신이 무슨 이유로 나를 막는 거죠?”

에르제뷔트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무리 그녀가 엘더라고 하지만 자기 권속이 아닌 다른 아인까지 막 대할 수는 없다. 급이 낮다고 해도 다른 엘더의 권속이며 수족. 마음에 안 든다고 다른 엘더의 수족을 죽이거나 해칠 수는 없으니.

거기다 에르테 백작은 그 발다미르가 신임하는 아인이다. 그녀의 행동은 발다미르까지 닿아있다. 에르제뷔트가 그 의중을 물었다.

그렇다고 해서 엘더와 아인의 차이는 어디가지 않는다. 에르테 백작은 에르제뷔트 앞에 무릎을 꿇으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적혈공의 뜻입니다. 적혈공께서는 그분이 도착하시기 전까지 상황을 크게 바꾸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발다미르의 뜻이라고?”

아인이 엘더의 뜻을 사칭할 리 없다. 그게 발다미르라면 더더욱 그렇다. 에르제뷔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그 ‘상황’에 애첩의 생사 여부는 포함되어 있었나요?”

“딱히 언급은 없으셨습니다만 아마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유는?”

“위대하신 엘더의 뜻을 어찌 짐작하겠습니까. 저는 그저 따랐을 뿐입니다.”

“…쯧.”

‘발다미르는 꼭 필요한 전력. 그도 나름 생각이 있을 테니 가능하면 따라주고 싶지만….’

그러나 하나 간과한 게 있다. 지금 엘더들은 굴레조차 끊어버린 망나니들이라는 것. 에르제뷔트는 조급하게 움직였다.

“애첩을 살리라는 말도 없었으니. 속히 치우고 나중 일은 나중에 해결하도록 하죠.”

“에르제뷔트 님 잠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을 하라.”

에르제뷔트의 권속은 그녀의 수족이다. 다른 엘더의 뜻은 알 바 아니다. 에르테의 만류도 무색하게 아인은 핏물의 파도를 일으켜 나와 힐데를 덮쳤다. 힐데가 첫 파도를 성검으로 갈라버리긴 했지만 뒤이어 오는 파도에 점점 밀려났다.

하긴 시조를 배신한 엘더가 적혈공의 말이라고 들을 리 없지. 지금 필요한 건 말이 아니라 힘이다.

“마담 에르제뷔트 멈추어주십시오!”

“나중에 늦겠다.”

“아니오. 적혈공께서 당도하셨습니다!”

에르테 백작의 외침과 함께 저 멀리서부터 누군가 달음박질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다다다다다.

듣기만 해도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지는 다급한 발소리였다. 점차 이곳을 향해 가까워지던 발소리는 모퉁이를 향해 가까워졌다. 에르테 백작은 그곳을 향해 미리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내가 기다리던 지원군이 도착했다.

“후. 늦을 뻔했군.”

품위라고는 뭣도 없이 달려온 그 존재는 다름 아닌 적혈공 발다미르였다. 에르테 백작 앞에 정확히 멈추어 선 그는 한 손에 든 보자기를 에르테 백작에게 건네며 주위를 살폈다.

에르제뷔트. 그녀의 권속. 그리고 포위된 힐데와 나. 단시간에 상황을 파악한 발다미르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에르제뷔트를 향했다.

에르제뷔트는 별다른 경계 없이 그를 맞이했다.

“늦을 뻔했다니 이미 늦었어요. 발다미르. 이토록 중요한 날에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는 거죠?”

“듀 라한을 깨우고 왔다.”

“저도 알아요. 그걸 감안하고 왜 늦었는지 묻는 거예요. 두 발로 직접 달려온 모습을 보아하니 게으름피운 건 아닌 듯한데…. 그보다 당신은 랄리온을 타고 가지 않았나요?”

“랄리온은 중간에 나를 두고 먼저 시조께 달려갔다.”

혈마 랄리온은 시조의 애마다. 아니 시조가 만든 첫 번째 권속이자 그녀가 인간일 적의 마지막 흔적이다. 티르가 서툴지언정 정성과 힘을 쏟아 만든 랄리온은 결코 티르를 배신하지 않는다.

에르제뷔트가 그 사실을 상기시켰다.

“랄리온을 시조로부터 떨어뜨려 놓는다. 그게 당신의 계획이었잖아요?”

“아니. 내가 랄리온과 동행한 것은 시조와 이격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에르제뷔트의 물음에 발다미르는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랄리온이 빠르니까.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힘을 빌렸다. 개인적인 이유로 시조의 애마를 빌리기는 죄송스러웠으나 부득이한 일정이 생겼기에 어쩔 수 없었다.”

말을 타는 이유 중에 가장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것이었다. 잠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발다미르를 쳐다본 에르제뷔트는 그에게 따졌다.

“듀 라한을 깨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그나저나 그는 어디 있죠? 그도 랄리온을 따라 시조를 향해 달려갔나요?”

“그는 여기 있다.”

“여기?”

마치 동행했다는 말투. 그렇지만 어디를 보아도 발다미르는 혼자였다. 보자기 하나를 들고 왔을 뿐. 그제야 에르제뷔트는 발다미르가 가져온 보자기에 시선을 보냈다.

그래. 저 묵직한 보자기 안에 커다란 선물이 담겨 있지.

살았다 살았어. 에르테 백작에게 다가간 나는 보자기를 풀어보자고 손짓했다. 에르테 백작은 지시를 기다리듯 발다미르를 쳐다보았고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혈사로 묶인 보자기를 풀어냈다.

묵직한 무게감을 가진 보자기가 흘러내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누군가의 머리였다. 핏발 서린 눈동자로 발다미르를 노려보는 분노와 원한에 가득 찬 인간의 머리.

아직까지 살아있는 듯한 그 머리는 핏기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발…다…미르…!”

암흑기사 듀 라한의 목이 정말 의외의 장소에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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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OFPV, 전지적 1인칭 시점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 a mere con artist, was unjustly imprisoned in Tantalus, the Abyssal Prison meant for the most nefarious of criminals, where I met a regressor. But when I used my ability to read her mind, I found out that I was fated to die in a year… and that the world would end 10 years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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