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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Chapter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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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74

널따란 고원에서는 몸을 숨길 곳이 없다. 햇빛은 하늘에서 내려오며 높은 곳부터 비추기에 그림자 없는 땅에서는 세상 만물이 훤히 드러난다. 세상을 아름답게 여기는 이는 고원을 좋아할 것이다.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은 이들은 그 반대일 것이고.

 룽켄의 혈족은 수인들이 많고. 털로 몸을 보호하는 그들은 태양에 저항력이 있다. 낮이라고 방심하고 다녔다간 그대로 쫓겼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아지가 있었다.

“왈왈! 왈왈왈!”

“메에에에에에!”

콜리의 예일링 양 수인 메양은 울부짖으며 도망쳤다. 풍성하다 못해 도톰한 머리털로 몸을 감싸고 흡혈귀가 되어 불사의 힘을 손에 넣었지만 그래도 양은 양. 아지가 짖으며 달려 나가자 양의 울음소리를 내며 초소에 틀어박혔다.

콜리는 사냥개와 예일링을 데리고 추적에 나선 상황. 안개 낀 초소를 지키고 있는 건 예일링 하나가 전부였다. 양 수인이라면 예일링일지라도 햇빛을 이겨낼 수 있지만 아지는 이길 수 없었다.

양 수인이 나를 향해 울부짖었다.

“메에! 그거 치워!”

“네? 콜리 님께서 저보고 돌보라고 하셨는데요.”

“메에에! 알았다고! 내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가버려! 메에에!”

“알겠어요. 갑니다? 저 진짜 가요?”

“메에에!”

허 참. 내가 꼭 가려고 했던 건 아닌데 말이야. 어쩔 수 없구만.

나는 품에서 공 하나를 꺼냈다. 양 수인 흡혈귀에게 본능을 뿜어내고 있던 아지는 내가 공을 들자 즉각 자세를 낮추며 꼬리를 흔들었다.

 

“자! 애꿎은 양한테 화풀이하지 말고 가자! 물어 와!”

“멍!”

내가 공을 던지자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아지. 좋아. 공을 던지며 자연스럽게 초소의 경계선을 넘어갔다. 이대로 따라가면 국경을 넘을 수 있….

“아니. 아지야. 오진 마! 내가 갈게…. 벌써 물어왔니?”

“멍!”

“다음에는 좀 더 천천히 물어오렴. 자!”

공을 던지며 아주아주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었다.

국경은 선으로 명확하게 구분된 경우가 적다. 특히 그곳에 산이 있다면 더더욱 정하기 어렵다. 어차피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국경에 산이 있으면 가장 높은 능선으로 정하기 마련이다.

봉우리를 지나 능선을 넘자 산으로 가려져 있던 세상 천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안개 낀 공국에서는 쉽게 보지 못한 전경이었다. 고작 고개를 한 번 넘었을 뿐인데 지금까지 봤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시야가 보인다. 허무하리만치 쉽게.

그렇지만 이 또한 수십 개의 고개를 넘고 넘어서 마지막 하나까지 도달한 결과다. 나름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겠지. 물론 엘더가 하나도 찾아오지 않아서 가능했던 결과지만.

“힐데는 왜 떠난 거지? 나와 함께했다면 이렇게 간단히 탈출했을 텐데.”

“멍!”

“아니. 아지야. 이제 그만 물어오고 슬슬 평범하게 걸어가면 안 될까?”

국경을 넘은 이상 이제 흡혈귀는 적이 아니다. 콜리가 내 속임수를 간파하고 쫓아온다고 해도 그건 하루 정도 뒤의 일이 되겠지. 그동안 최대한 멀리 도망치자.

올라가는 것보다는 내려가는 게 쉽다. 카드로 썰매를 만들기도 하고 튼튼해진 다리로 바위를 뛰어넘으며 산을 뛰어 내려갔다. 모래를 헤치고 계곡을 뛰어넘고 수풀을 지나며 한참 이동했다.

몇 시간이나 뛰었을까. 아무리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장벽과도 같은 태산은 내려가는 데도 한참이었다. 숨 좀 돌릴 겸 뒤를 돌아봤더니 한참 멀리에 내가 내려온 능선이 보였다.

이토록 많이 왔는데도 앞으로 갈 길이 한참이라니. 후우. 어디서 순간이동 마법이라도 안 만들어주나.

속으로 투덜거린 나는 공을 들고는 무성의하게 던졌다.

“아지야. 길 좀 찾아봐.”

“멍!”

냅다 뛰쳐나간 아지는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파드득 파드득. 수풀이 무서운 기세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순식간에 공을 물고 돌아온 아지가 내 앞에 공을 떨어뜨렸다.

“여기!”

“안전하구나. 오케이.”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야지. 저 수풀 속에 뭐가 숨어있을지 어떻게 알고 가? 아까도 멀쩡한 땅인 줄 알고 걸음을 내디뎠다가 굴러떨어질 뻔했어.

하아. 멀다. 점차 수풀이 많아지고 있다. 사람이 다니지 않으니 길도 보이지 않아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곳은 아지로 확인하고 있다.

그래도 누군가 쫓아오는 건 아니니까. 앞만 신경 쓰면 되니까 얼마나 좋아. 새삼 좀 나아진 형편에 만족하기로 결정했을 때였다.

“아우우우우우—!!”

어디선가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게 무슨 소린지 의식하기 전에 이미 나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있었다. 늑대에게 이미 들켰을지언정 나는 늑대를 보고 싶지 않다는 일념이 담긴.

“아우우우-! 나를- 속였겠다-!”

개 수인의 울부짖음이 메아리쳐서 들려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거짓말을 한 게 들킨 거다.

“멍! 친구다!”

“이젠 아니야!”

“멍? 맞는데?”

“그러면 놀아주든가! 같이 손잡고 구르기 놀이라도 해!”

“알았어!”

“신나서 팔짝팔짝 뛰지 마! 위치가 노출되잖아!”

아지에게 일갈해봤지만 이미 늦었다. 저 능선 너머로 다섯 명의 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인견 콜리를 비롯한 국경 감시대의 예일링들. 전원이 수인으로 이루어진 털의 가호를 받아 햇빛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흡혈귀 기동부대가 사냥개를 데리고 비탈길을 뛰어내렸다.

자칫 넘어졌다간 그대로 굴러떨어질 기세였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은 수인이고 흡혈귀였으니까.

“으르르르릉!”

“커허헝!”

“메에에에에!”

다섯 개의 점은 이윽고 산사태가 되어 비탈을 휩쓸었다. 먼지구름이 어느새 자욱한 안개가 되어 흘러내려왔다. 무엇보다 가장 앞에 있는 건 새까만 털을 휘날리며 땅을 긁는 목인견 콜리였다.

저게 태양 아래 약해진 흡혈귀라고? 쳇. 저러니까 인간들이 도망을 못 치지.

햇빛이 아직 비치고 있다. 예일링까지는 내가 처리할 수 있어. 하지만 콜리만은 내 힘을 벗어났다. 이건 아지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진짜 믿음이 안 가네.

“아지야. 술래잡기가 뭔지 아니?”

“멍! 알아!”

“알면 설명하기 쉽겠네. 우리가 사냥감이고 저쪽이 사냥꾼이야! 저들에게 잡히기 전에 도망쳐야 해!”

“멍멍! 확인!”

“그러면 뛰자! 저들에게 잡히기 전에!”

반대쪽으로 뛰어나가며 내 카드 덱을 점검했다. 하도 얇아져서 볼품없어진 덱을 촤라락 펼치며 빠르게 눈으로 살폈다.

무기도 거의 다 썼다. 나에게 남은 건 꼬챙이 하나에 마신 넷. 일회용인 클로버 몇 개와 하트. 하트에 담긴 물약은 꽤 남아있지만 그건 신체에 무리를 주니까 가능하면 사용하고 싶지 않은데….

아니 지금 내 몸은 마신으로 이루었다. 어쩌면 별로 부담 없을 수도. 위기의 순간에 한 번 활용해봐야겠네.

마신의 카드를 양손으로 쥔 채 달려가며 기나긴 추격전을 시작했다.

 

“아우우우우–!”

가장 먼저 달려든 건 콜리였다. 거의 떨어지듯 비탈을 뛰어 내려온 콜리가 비스듬히 나를 습격했다. 살려서 오라는 명령에 충실하듯 손톱도 세우지 않고 손으로 나를 잡아채려고 했다.

“멍!”

그때 아지가 몸을 던졌다. 허공에서 한 수인과 한 짐승의 몸이 충돌했다. 팔과 다리가 서로 얽히고 둔탁한 소리가 느릿하게 들려온다. 잠시 뒤 수인과 짐승의 왕은 한 몸이 되어 데구르르 굴렀다.

“왕…! 방해하지 마!”

“멍! 놀자! 놀자!”

“이건 놀이가 아니야!”

콜리가 몸을 뒤집어 아지를 땅에 메다꽂았다. 짐승의 본능을 간직하고 있지만 사용하는 건 인간의 기술. 회전을 실은 공격에 부러진 가지가 튀어오르고 흙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난다. 짐승의 왕을 단숨에 떨쳐낸 콜리는 다시 땅을 박찼다.

그러나 압도적인 피지컬은 기술조차 짓누른다. 아지는 어느새 네발로 앉아 콜리의 뒷다리를 물고 있었다. 채 뻗어나가지 못한 콜리는 그대로 땅에 엎어졌다.

얼굴에 진흙이 묻은 콜리가 고개를 돌렸다. 콜리의 다리를 물고 있던 아지는 해맑은 얼굴로 한 번 짖었다.

“멍!”

“아우–!”

인간을 상대할 때는 다칠까 봐 제대로 힘도 못 썼지만 흡혈귀 수인을 상대로는 또 다르다. 최소한 콜리의 발목을 잡는 건 제대로 해주는 모양이다.

문제는.

“메에에!”

“으르릉!”

양 개 고양이 염소 수인이다. 예일링에 불과한 그들은 콜리보다는 좀 느렸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나를 노리고 달려오고 있었다.

흡혈귀는 종주가 곁에 있으면 더 강해진다. 햇빛 아래에다가 홈그라운드도 아니니 빌리테어 촌장보다는 약하겠지만 나에게는 그들 역시 까다롭기 마찬가지.

콜리의 의지 아래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는 그들이 내 뒤를 바짝 쫓았다. 흡혈귀가 흘리는 피 냄새에 아지가 털을 곤두세우며 으르렁거렸다. 개 수인인 콜리면 몰라도 다른 흡혈귀에게 상냥할 이유가 없는 아지였다. 아지가 땅을 박차고 뛰었다.

“아우-!”

이번에는 콜리가 아지를 붙잡고는 늘어졌다. 뒷덜미를 잡고 내던지려고 했지만 아지의 기세가 너무 강해서 휩쓸리고 말았다. 둘은 한 몸이 되어 데구르르 비탈 아래로 굴러갔다.

괜찮을까 모르겠다. 아지 말고 비탈이. 흙과 나뭇가지의 폭풍을 일으키며 굴러떨어지는 둘을 뒤로하고 나는 돌진하는 예일링들을 곁눈질했다.

“메에에! 서라! 아니면 다쳐!”

초소에 있던 양 수인인가. 구름처럼 두툼하게 자란 머리털은 부딪혀도 별 충격이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돌진하는 속도는 예사롭지 않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바닥이 발굽 모양으로 푹푹 파인다.

나는 멈추지 않았고 양 수인은 결심한 듯이 땅을 박찼다.

하나 둘. 지금.

푸욱. 양 수인의 발밑이 푹 꺼졌다. 나를 들이받으려던 양 수인의 몸이 땅 밑으로 가라앉았다. 잔가지로 뒤덮은 함정을 눈치채지 못하고는 그대로 빠져버린 것이다.

“메에에에?”

함정에 빠진 양 수인은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야 양 수인이 빠진 곳은 내가 조금 전에 밟고 달려간 곳이었으니까.

‘도대체 언제? 함정을 파둘 겨를이 없었을 텐데?’

마신의 힘이라면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땅을 딛는 동시에 구멍을 만들고 거기에 풀과 가지를 돋아나게 해서 간이 함정을 만든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걸릴 수밖에 없다.

왜냐면 내 주위는 이미 함정투성이거든.

“큭!”

“미야앙!”

“이런…!”

수인 흡혈귀들은 내가 만든 함정에 비틀거리며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그러든 말든 나는 계속해서 한쪽으로 뛰어갔다.

“우리는 잠도 자지 않고 너를 쫓을 수 있어! 포기해!”

나는 잠은 자야 해. 그러니까 그전에 어떻게든 떨쳐내야지. 수풀을 움직여 길을 내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갔다. 양 수인이 내 뒤를 보고는 소리쳤다.

“메에에! 후회하게 될 거다!”

“메양. 반드시 살려서 데려가야 해.”

“알아! 조금은 다쳐도 되잖아!”

“그렇긴 해.”

그렇긴 해는 무슨. 나는 애첩이었거든? 다치면 큰일이 나거든?

하지만 변경의 예일링이 그런 사실을 알 리 없지. 예일링들이 사방팔방에서 나를 조여들었다. 나는 다시 스페이드 9를 손아귀에 쥔 다음 한 손으로 접었다.

근원의 나무 풀매듭.

반경 약 5m. 발밑에 존재하는 모든 들풀이 짝을 찾는다. 섬세하게 흔들리던 풀이 부드럽게 서로를 휘감았다. 드루이드 세상이 풀로 덮여있던 시기 현자라고 불렸던 이들. 그들의 권능이 고작 카드 한 장을 움직여 재현된다.

“아우우우!”

…물론 지금은 좀 세월이 지나긴 했다.

투둑 툭. 질긴 삶을 이어온 풀도 예일링들의 돌격에는 버티지 못했다. 줄기가 끊어지고 뿌리가 뽑힌다. 나의 명령에 따른 대가를 혹독히 치르는 들풀들. 나는 그들의 희생을 기리며 나아갔다.

“느려!”

“너희가 너무 빠른 거야!”

아무리 발목을 잡아도 죽음의 두려움 없이 돌격하는 예일링의 추격을 뿌리치긴 어렵다. 함정은 짓밟고 풀매듭은 끊어버리며 네 예일링이 점차 가까워졌다. 나를 죽일 작정이었으면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을 테지만 그래선 안 됐기에 예일링들은 내 앞을 추월해서 가로막으려고 했다.

좋아. 지금이다.

흩어지는 수풀 사이로 허공이 보인다. 봐두었던 절벽이다. 수풀로 가려진 절벽은 의외로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달려가고 있다면 더더욱.

나는 미끄러지듯 몸을 눕혔다. 풀과 나뭇가지를 헤집으며 속도를 죽였다. 나도 나름 속도가 붙었던 터라 땅을 꽤 미끄러지고 나서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메에에! 멈춰! 앞에 절벽이야!”

뒤따르던 예일링들도 한 박자 늦게 급정거했다. 흙먼지를 길게 남기며 예일링들이 몸을 지탱한다. 아슬아슬하게 멈춰 선 염소 수인이 입안에 들어간 나뭇가지를 뱉으며 외쳤다.

“하찮은 수를! 고작 그 정도에 절벽으로 떨어질 거라 생각했나!”

“한 명은 떨어진 것 같은데요.”

메에에에에-. 양 수인의 메아리가 길게 울렸다. 고개를 돌려서 동지의 추락을 눈에 담은 염소 수인은 곧장 대답했다.

“어차피 우리는 떨어지는 정도로 죽지 않아! 포기하고 순순히 잡혀라!”

“고마워요. 덕분에 죄책감 좀 덜었네요.”

너희들이 흡혈귀만 아니었어도 죄책감을 많이 느끼진 않았겠지만. 나는 카드를 쥔 양손으로 땅을 세게 내리찍었다.

장성급도 아닌 내가 기공으로 대지를 부술 수는 없다. 그건 곤기공을 극성으로 익힌 자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부서지는 걸 가속할 수 있다.

땅에 뻗은 뿌리를 거두고 끊는다. 뭉친 흙을 부순다. 대지술과 드루이즘 이 두 힘으로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절벽을 도려냈다.

“땅을…!”

둔한 흡혈귀라도 몸이 떨어지는 감각만큼은 확실하게 느꼈다. 위치가 나빴던 개 수인은 발톱으로 땅을 긁다가 미끄러졌다. 염소와 고양이 수인은 조금 빨리 위기감을 느끼고는 무너지는 비탈을 재빨리 기어올랐다.

물론 가만히 두고 볼 내가 아니다. 스페이드 8 엘릭시르의 카드로 땅을 부드럽게 쓸었다. 무너지는 땅의 한 겹이 카드로 변해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폭포처럼 흐르는 카드에 발톱이 박힌 고양이 수인도 버티지 못하고 떨어지고는 말았다.

“어림없다!”

그나마 염소 수인이 강인한 발굽으로 버텨내고는 비탈길을 올랐다. 평지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속도로 뛰어올라 다가왔다. 수염이 남아있는 염소 수인이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렇지만 예일링도 한 명이면 내가 이겨.

염소 수인의 손을 쳐내고 머리를 짓밟았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려고 했지만 양발로 세게 걷어차자 거친 발굽으로도 버티지 못했다. 점차 염소 수인의 중심이 뒤로 넘어갔다.

“크 아아아악!”

팔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균형을 잡는 그에게 나는 선심 쓰듯이 나뭇가지 하나를 내밀었다.

“자. 잡아요.”

갑작스러운 내 호의를 믿을 수 없던 탓일까. 염소 수인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손을 뻗어 가지를 잡았다. 잡을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었겠지만.

덕분에 주의는 끌었다. 나는 나뭇가지를 툭 밀었다. 가지를 잡느라 잠시 균형을 잃은 염소 수인은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그의 다른 동료와 마찬가지로 염소 수인 역시 저 머나먼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네놈-!”

“바이바이. 다음에는 가능한 만나지 말죠.”

“우리가 이걸로 끝날 거라 생각하지 마라-!”

악역이 하는 대사를 내뱉은 뒤 곧이어 쏟아지는 토사로 그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나무뿌리 하나에 매달린 채 저기 절벽 아래쪽을 응시했다. 먼저 떨어진 예일링들 위로 흙더미가 자욱하게 덮였다.

아직 낮이다. 재생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지금 이 정도 부상이라면 못 쫓아오겠지만… 밤이 된다면 또 모르지. 쳇 귀찮게. 이래서 흡혈귀들이란. 죽지 않는다는 건 반칙이잖아.

절벽 위로 기어오른 뒤 주머니에서 공 하나를 꺼내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이 수풀 속으로 사라진다 싶더니 잠시 뒤 아지가 공을 물고 나타났다.

“멍!”

“잘 놀았니?”

“멍멍!”

아지의 신난 모습과는 별개로 그다지 즐거워보이지 않는 콜리가 수풀을 헤치며 다가왔다. 흙먼지에 잔가지로 범벅이 된 콜리는 마치 걸어 다니는 땅처럼 보였다.

“…아우우. 시조께서 왜 너를 찾는지는 몰라도. 장난은 거기까지 해.”

흡혈귀의 피는 차갑다. 콜리는 지치진 않았지만 예일링도 없이 습격을 계속할 만큼 무모하진 않았다. 아지를 붙들기도 어려운데 나와 함께 있을 때 공격했다가 제압이라도 당한다면 그녀와 예일링들은 꽤 오랜 시간 무력화될 것이다.

일단 돌아가서 예일링을 복원하기로 결정한 그녀는 나를 노려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흡혈귀는 죽지 않아. 아무리 오래 걸려도 쫓아가고 반드시 찾아낼 거야. 영영 쫓기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투항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오래 걸리면 무슨 소용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티르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고 제 생사가 변했을 수도 있는데.”

흡혈귀라 그런가 인간의 마음을 모르네. 우리 마음은 영원하지 않다고. 변덕이라는 게 있단 말이야.

“혹시 다른 흡혈귀 만나면 제 말 전해주세요. 갖기 어려운 게 더 소중한 거라고. 그러니까 저는 소중해지는 중이라고요.”

“끝까지 그렇게 여유로워질 수 있을지 지켜보겠어. 아우우!”

콜리는 늑대의 울음소리를 내며 수풀 안쪽으로 사라졌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 혈기를 써서 그녀의 예일링을 회복시키고 밤에 다시 찾아올 예정이겠지.

예일링은 햇볕에 약하다. 달리 말하면 신경 쓸 게 없는 밤에는 훨씬 강해진다. 그에 비해 나는 발밑 하나 보이지 않는 산에서 허우적거려야 한다. 오늘처럼 쉽게 해치울 수는 없을 거다.

도망치기보다는 덫을 만들어서 아예 저들을 무력화하고 가야겠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내 뒤를 쫓는 건 한 명의 아인과 네 예일링이 전부. 아인보다 강한 추격자가 없다면 저들을 따돌릴 수 있을 거다. 

 뭐. 여기서 새로운 추격자가 등장하진 않겠지. 좋아. 대지술과 드루이즘을 전부 사용해서 짐승이 섞인 수인들에게 인간의 지혜를 보여줄까. 

***

 예일링 역시 불사이지만 불멸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혈조술이 약한 예일링인 경우 흡혈귀란 이름도 무색하게 자주 죽고 대체되는 편이다. 

 특히 해가 뜬 낮에 부상을 입거나 제압되는 게 치명적이다. 방치된 만큼 혈기를 잃고 재생력도 약해지니까. 

 추격전에서는 숫자가 무엇보다 중요한 법. 더 늦어졌다간 기껏 데려온 예일링을 써먹지 못할 거다. 콜리는 절벽 아래를 뛰어 내려가서 토사에 깔린 예일링을 구출했다. 맡은 일조차 제대로 못하는 모자란 권속들이지만 그걸 탓하는 건 나중에 할 일이다. 지금은 예일링을 복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콜리가 흙더미를 파헤치고 파묻힌 권속을 하나하나 꺼내고 있을 때였다.

 부스럭. 어디선가 수풀 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새까만 단발을 지닌 중성적인 외모의 소년 한 명이 나타났다. 벌 한 마리를 실에 묶어서 든 채로. 

 소년은 가느다란 실에 매인 채 8자 춤을 추는 벌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아지에게 묻혀 둔 추종향의 향이 여기를 가리키고 있는데.”

셰이는 콜리와 벌을 몇 번이나 번갈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봐도 아지가 까매진 건 아닌 모양이네. 너는 뭐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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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Omniscient First-Person’s Viewpoint

OFPV, 전지적 1인칭 시점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 a mere con artist, was unjustly imprisoned in Tantalus, the Abyssal Prison meant for the most nefarious of criminals, where I met a regressor. But when I used my ability to read her mind, I found out that I was fated to die in a year… and that the world would end 10 years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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