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6
[8강전 대진표]
A :
베네트 힐튼
모험가 켈린
니오레 레스트맨
방랑검사 이파르
B :
침묵의 우폴린
레드번 기사 안피르
용사 후보 벤자민
화염 마법사 크라벨린 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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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이 끝났다·
『불변』의 토너먼트에 남은 인원은 여덟 명· 여기서 두 명이 뽑히게 된다·
『개혁파』 멤버는 A조에 몰렸고 빨간맛과 추기경파는 B조에 몰렸다· 대진표를 바꿀 방도는 없었으므로 이 구도에서 최선은 다음과 같다·
A조에서 베네트가 우승 B조에서 중립 파벌인 침묵의 어쩌구가 우승·
하지만 그가 레드번과 추기경파의 쟁쟁한 후보들을 뚫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현실적으로 B조에서는 빨간맛 아니면 추기경파 둘 중 하나가 뽑히게 되겠지·
어느 쪽을 골라야 한다면 빨간맛이 이기는 게 낫다·
조건문 연구소는 여전히 풀가동중이다· 나와 악신쨩은 다크서클이 죽 내려온 상태로 침울하게 테스트를 거듭하며 속속들이 발견되는 조건문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트 군집이 명령에 따라 춤춘다· 그리고 그중에서 하나 부자연스럽게 넘어지는 개체가 나타났다· 체크·
“···또 늘었어?”
“이제는 왼손 약지에 힘 많이 주면 안 돼·”
파도파도 계속 나온다·
나의 행복은 다른 세력의 불행이라 추기경파는 토너먼트의 부진에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여신의 권능을 마구 써재끼고 있다·
없던 버그가 갑자기 나타나는 셈이니 나는 점검했던 동작도 처음부터 하나하나씩 다 체크해 봐야 했다· 심지어 이새끼들이 언제 어느 타이밍에 조건문을 추가할지도 모른다·
무한히 이어지는 전수조사의 늪이다·
동시에 경기 분석도 해야 하고 여신교의 비밀도 캐 봐야 하고 일거리가 면면부절 이어지니 아무리 나와 악신쨩이라도 과로로 지칠 수밖엔·
나는 워라밸을 위한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
“좀 쉬자·”
“···그래 치사한 새끼야· 나는 엄살 부리지 말고 돌리고 있으라 이거지?”
“아니 얘는 또 무슨 소리야· 같이 쉬자고· 영차·”
“으읏·”
기계도 계속 굴리면 망가진다· 저 여신도 기능 고장을 피해 갈 수 없었는데 사람이 어떻게 버티랴· 나는 헛소리를 하는 악신쨩을 달랑 들어 올려서 옆구리에 꼈다·
그리고 즉각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세팅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푹신 하고 매트리스에 잠기면 노곤한 안온함이 감돈다·
나랑 같이 나란히 드러눕고 나서야 악신쨩은 성질을 부렸다·
“···놔!”
“너 반응이 자꾸 한 박자 늦는다?”
애가 버그가 났나·
나는 누운 채로 팔짱을 끼고 현 상황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난이도가 대폭 올랐다· 피해야 할 조건문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 온 결과 전투 모듈을 짜내는 것부터 골치가 아프다·
무협 세션 한다고 맞춤 무공을 산더미처럼 파밍 해두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업데이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을 터다·
빨간맛 공작 쪽도 ‘조건문’에 대해서 어렴풋이 파악한 눈치였다· 죽어도 왼발로 진각을 안 밟는 것을 보면 경험으로 체득했거나····
아니면 『인형사』가 나와 마찬가지로 무한 분석을 돌리고 있거나·
여기서 더 귀찮아지는 점이 뭐냐면 『개초딩운명조작』(가칭)과 ‘조건문’이 시너지를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권투 선수가 왼팔을 묶은 채로 싸운다면 그 움직임의 가짓수는 대폭 줄어들어 버릴 것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도 이와 같다· ‘~를 하면 안 된다’가 쌓이면 쌓일수록 동작은 뻔해지며·
뻔하고 읽기 쉬워진 동작은 『개초딩운명조작』에게 직격타를 맞는다·
실제로 16강전은 아슬아슬했다· 쌍절곤을 쓰던 베네트는 경기 막바지에 롱소드 『호원』을 꺼내야만 했고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니오레는 이미 진심을 다해서 싸우고 있다·
빨간맛을 피하려면 조건문이 조건문을 피하려면 빨간맛이 발목을 잡는다·
이 새끼들이 손을 잡고 나를 협공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게 추기경파가 우리들과의 정면승부를 피했다는 것· A조에 무소속 인원들과 베네트 파티를 몰아버렸으니 저들과 만날 일은 없다·
“···왜 그랬을까?”
악신쨩 말마따나 묘한 일이긴 하다· 베네트가 약한 건 아니지만 제국의 공작이 직접 부리는 기사랑 비교하면 스펙이 부족하니까·
‘베네트의 배후에 우화를 강화-변질 시킬 수 있는 대단한 마법사가 있겠구나! 차라리 빨간맛이랑 싸우자·’
이런 추측을 했을 리도 없지 않나·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어도 가설 정도는 세워볼 수 있다·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조건문 하나가 있지· 신성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불행하다· 혹은 어느 시점 이후로 신성도시에 방문한 이들은 불행하다· 대충 이런 걸 사용해서가 아닐까·”
“···레드번 가문은 불행하다· 개혁파는 불행하다· 이렇게 걸어버리면 됐던 거 아니야?”
“기계는 그런 거 몰라· 다분히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여신이니까 애매모호해서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은 입력할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싶네·”
여신이 그토록 기계적이어야 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후 토너먼트는 쭉쭉 진행되었다·
8강이 지났다·
니오레는 아쉽게 떨어졌지만 베네트가 남았고 B조에서는 빨간맛의 기사와 추기경파가 하나씩 남았다· 이제 슬슬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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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화■구 손상률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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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어렴풋이 낀 밤이었다·
수증기 덩어리가 달님을 스치고 지나가면 세계 전체가 점등이라도 하듯이 어두워졌다가 밝아진다· 나는 어둠 속에서 와인잔을 흔들며 발코니로 다가갔다·
발코니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베네트가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얼음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인기척을 냈다·
“미리 축배를 들까요? 베네트 군·”
“···과하게 시기상조가 아닌가?”
“당신의 상대인 방랑검사는 이 토너먼트의 숨은 규칙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지 않겠습니까· 룰을 이해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납니다·”
“그것도 그렇다만· 그래서 나를 불러낸 이유가 뭐지?”
뭐긴· 나는 사악하게 양손을 삭삭 비볐다·
베네트가 우승하고 나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빠질 전망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여유가 있을 때 챙길 걸 챙겨야 한다 이거지·
“슬슬 대가를 받아 가도 될까 해서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 미친 마법사 네 덕분이다· 네 도움이 없었더라면 『개혁파』와 우리들은 죽은 불씨처럼 사그라들었겠지· 감사하고 있다·”
“감사로는 부족합니다· 징수하도록 하죠· 제가 받고 싶은 건····”
“성검인가?”
진실과는 한참 엇나갔지만 흥미로운 추측이었다· 수상하고 신비로운 마법사가 뭔가를 챙기려고 들면 대개는 그렇겠지·
하지만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작은 지혜다·
그동안 신성도시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면서 배웠다· 베네트 앞에서 말하기 쪽팔린다고 은근슬쩍 표시만 하고 있다가는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대답 못 듣는다·
원하는 대답을 들으려거든 용기를 내야 한다·
나는 심호흡 한 번 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양다리를 잘 걸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
베네트는 우선 자신의 귀를 후빈 다음에 손등을 꼬집어서 꿈인지 확인하고 『호원』을 소환해서 지면에 팽이처럼 돌려보다가 자기 뺨을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쳤다·
내 캐릭터 붕괴가 그렇게 충격이란 말이냐·
베네트는 발코니 난간에 팔을 걸치고 한참이나 고민했다· 어색해 죽을 것 같은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에 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해져라·”
“···솔직 말입니까?”
나는 이미 충분하게 솔직히 굴고 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라· 너는 다른 짝이 있는 여자를 사랑할 수 있나? 그리고 그걸 용인할 수 있나?”
“·······”
“없지· 가정만으로도 불쾌하다· 그녀들도 똑같은 심정이었을 거다· 할 수만 있다면 독점하고 싶었겠지·”
“···그렇 겠군요·”
맞다·
만약 유나가 자기 남자친구라며 누구를 데려와서는 너랑 동시에 사귀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하면··· 나는 무척이나 마음이 괴로웠을 것 같다·
유나와 유리가 서로 잘 지내니까· 가끔 질투를 표현하더라도 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서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묻어두었던 걸까?
베네트는 자신의 그녀들을 떠올리는 듯 애정이 어린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녀들은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나를 사랑해 주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나 또한 그만큼··· 노력하고 그녀들이 좋아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힘써야 마땅하다·”
“·······”
“양다리를 잘 걸치냐 못 걸치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마법사· 이만한 사랑을 받고 있다면···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는 태도의 문제지·”
그런가·
두 손에 꼭 쥐고 놓지 않으려는 것보다도 사랑하는 것이 먼저였던가· 곱씹어봐도 백번 옳은 말이었다·
상남자처럼 진도 균형 맞춰서 빼겠다는 베네트의 발언은 어장 관리적인 측면이 아니라── 그저 진심을 내뱉은 것이었다·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나는 깊이 감동하여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베네트· 과연 양다리의 달인이시군요····”
“···그렇게 표현하지 마라·”
베네트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좋아· 고백할까·
너무 끌긴 했다· 진짜 정말로· 이번 일만 딱 마치고 바로 고백을 박자· 몰래 꽃다발 환상을 모델링하고 있었던 건 이 타이밍을 위해서가 아니겠느냐·
음·
“···저 고백 대사는 뭐가 좋겠습니까?”
“그런 걸 남에게 일일히 물어보고 정하지 마라·”
하지만 고백 대사를 이상하게 했다가 평생 놀림감이 되면 큰일이지 않나· 유나는 몰라도 핑발레즈는 정말 죽을 때까지 놀릴 텐데·
어쨌건 상담을 위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건 좋은 선택이었다· 들은 보람이 있다· 용기를 내 보길 잘한 것 같다· 비록 컨셉에 금은 갔을지언정····
마음이 한결 편하다·
좋아·
나는 기지개를 켜고 들어갈 준비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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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짐승들은 다가올 재난을 미리 안다·
새가 미친 듯이 홰를 치며 날아가고 온갖 들짐승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모습을 보면 그건 그들의 예민한 감각이 위협을 직감했다는 뜻이다·
즉 우화에 이르러 신체의 오감 또한 상당히 강화된 베네트와·
천부의 재능으로 온갖 정보를 읽어 들이는 나의 경우·
────·
어쩌면 이 도시의 누구보다도 빠르게 이변을 눈치챌 수 있었다·
“·······”
“·······”
얼음물이 끼얹어진 것 같다· 전신에 힘이 들어가고 뒷목이 빳빳해지는 감각이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시선과 온 신경이 도시의 중앙으로 돌아간다·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어떠한 장엄하고도 무거운 것이 희끗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 식은땀이 한 줄기 목을 타고 흐른다·
좆됐다는 느낌이 든다·
속된 말이지만 이보다도 더 내 심경을 잘 드러내는 말이 없으리라·
그리고·
어둡고 고요한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빛기둥 한 줄기가 내려왔다·
나는 저것을 안다· 『신벌』이다· 극도로 밀집된 신성력 기둥으로 사람과 사물을 가리지 않고 녹여버리는 막대한 열량을 품고 있다· 하지만 출력이 다르다·
서큐버스 여왕의 체액을 마신 성기사가 당했던 게 작은 파도라고 하면· 지금 도시의 중심에 내려앉은 것은 해일 족히 열 배는 크다·
여파로 주변 건물이 녹아 사라지며 이토록 멀리 있는데도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다·
베네트가 말했다·
“···성검이 보관된 용사전(勇士殿)이다·”
성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며 퍼즐조각이 착착 맞춰진다·
악신쨩의 여행길에서 그녀는 놈팽이 한 놈에게 용린을 먹였다고 했다· ‘그것’의 정수를 쏙 뽑아서 부여한 셈이다·
신성도시에 입성하고 나서 알았다· 그 놈팽이가 추기경파가 미는 용사 후보라는 걸· 그래서 그게 내 비장의 카드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성검에 직접 접촉하는 것을 우려했던 것처럼 여신은 ‘그것’의 편린에 민감하게 반응하리라 여겼으므로· 최악의 상황이 벌어져 추기경파가 승승장구하더라도··· 그가 용사는 못 될 거라고 생각했다·
쥐면 『신벌』이 내려올 테니까·
그러니까· 아마도 지금 저 빛기둥은····
토너먼트의 부진에 불안해진 추기경파가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아직 뽑히지도 않은- 후보에게 성검을 쥐게 했다· 이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대로 저 빛줄기가 잦아들기만 하면 해프닝으로 끝난다·
하지만 내 본능이 이렇게까지 반응하고 있다면·
이 다음이·
[경고 : 관리자 ‘용사’ 선발기기에서 ■■■의 흔적 감지·]
[경고 : 손상률 30·2%를 확인·]
[경고 : 종교 지도자의 무능이 아닌 ■■■의 개입으로 인한 의도적 타락일 가능성이 있음· 해당 판단과 연관된 경고 메시지 2 건·]
[경고 : 관리자 정화 단계를 이행합니다·]
그래·
신언(神言)이 공중에 울렸다· 모두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노이즈로 들렸겠지만 여신에게 잠깐이나마 접촉했던 나는 해석할 수 있었다·
“용사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베네트 아는 사람 전부 깨우십시오· 여신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니까· 아마도 저희에게까지 여파가 미칠 수도 있····”
[경고 : 관리자 정화 단계 1 – 도시 말소·]
나는 즉각 컨셉을 버렸다·
“예엠병 베네트! 당장 피난 준비해!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여신은 도시째로 날려버릴 생각이다!”
“···제기랄 알겠다!”
살 궁리를 해야 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마이 프렌즈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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