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1
세상은 끔찍할 정도로 어둡다·
해가 떠 있다고 한들 낮이 아니며 달이 떠 있다고 한들 밤이 아니다· 어두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밤낮은 똑같이 깜깜하기만 하다·
삶의 즐거움이란 무엇인지 나는 어째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세상은 정말 고통으로만 가득 차 있는지····
대신에·
살아남으려면 이웃을 경계해야 하고 이상한 변태 귀족이나 미치광이에게 팔려나가고 싶지 않다면 가족을 죽여야 하고 악독하지 않으면 죽고 당하는 쪽이 얼간이라며····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고 배우면 안 되는 것을 배웠다·
“셀비어는 정말 예쁜 머리카락을 갖고 태어났구나·”
“이 정도라면 우리 집안에도 아주 큰 도움이 되겠어· 어쩌면 금화까지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좋은 곳에 팔아줄게· 귀족가의 양녀로 들어가게 된다면 네 삶도 활짝 피어나는 게 아니겠니? 매일 밤이 조금 괴롭더라도 얼마나 행복한 인생일까!”
셀비어가 아빠와 엄마에게 들은 말이었다·
그녀는 유년기만 해도 이 문장의 이상함을 몰랐다· 고향으로부터 그렇게 배우고 자랐으니까· 가족도 이웃도 친구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부모가 애를 써서 낳고 길렀으니 아이들은 보은하기 위해서 팔려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키워 준 은혜를 몸으로라도 갚아야 한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배를 곯게 되니 사정이 있어서 아이를 낳아 기르지 못하면 남의 아이라도 훔쳐 팔아야 한다·
그리고 남에게 팔려나가고 싶지 않으면 자신이 파는 쪽이 될 수밖에 없다····
마을 변두리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한다·
“우리 아빠의 얼굴에는 커다란 흉터가 있는데 아빠의 아빠를 죽이다가 난 거래· 아빠가 나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밖으로 팔려나가기 전에 아빠를 죽여야 할까 봐·”
“나는 나는 그냥··· 팔릴 거야· 거기서 내 진짜 엄마랑 아빠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 거야· 더 이상 집에 있기가 싫어····”
“엄마가 널 자주 보더라 셀비어· 너를 훔쳐서 몰래 팔아버릴 생각인 것 같아· 내가 알려 줄 테니까··· 셀비어도 너희 오빠가 뭘 하려는지 알려줘야 돼?”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상함을 몰랐다· 이 마을은 외부로부터 격리되어 ‘지속적인 산 제물 공급처’로 디자인된 일종의 목장이었으니까·
마을 구성 초기에는 환상 마법이 영향을 끼쳤다· 마을 사람들의 도덕성을 낮추고 가축과도 같은 수동성을 입혔다· 하지만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은 마법조차 필요가 없다·
오래도록 지속된 악습은 문화가 되어 굳건해졌다· 이제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흔들릴 일도 없다· 그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배우고 믿게 되었으니까·
건실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듯한 마을의 이면이다·
셀비어의 고향 산제비 마을은 미쳤다·
모두가 마음의 눈을 감고 살고 있다· 하늘의 푸르름과 새들의 지저귐 인생의 행복을 노래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세상은 끔찍할 정도로 어둡다·
하지만 어두운 줄도 몰랐다· 밝은 것을 몰랐으니까·
그래서 그래서 말이야·
“셀비어라고 하는구나? 반가워· 내 이름은 ▒▒▒라고 하는데····”
그 소년은 누구보다도 특별했던 것이다·
오색 빛으로 빛나는 찬란한 삶을 알려 준 셀비어의 태양·
·······
태양을 눈으로 바라본 뒤에는 눈을 감아도 잔상이 남는다· 밝은 빛일수록 그렇다· 그래서일 것이다·
눈을 감아도 소년의 모습이 각막에 아른거리는 건· 꿈속에서 그를 다시 만나는 장면이 거듭해서 반복되는 건·
부스럭· 눈가를 훔친다·
적색 마탑의 기숙사에서 이불을 들추고 일어난 지금도· 그 잔상이 눈꺼풀 아래의 어둠 속에서 눈물과 함께 유영하는 까닭은·
너무나도 밝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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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삐삐·
삑-!
불사조 모양 알람-마법-시계의 머리를 후려쳐서 소음을 끝낸다·
아카데미의 임시 방학으로 인해 일정이 붕 떠버렸다고 한들 셀비어는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향상심을 가지고 자신을 갈고닦아서 적색 마탑주에게 인정받아 직속 제자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적탑주가 제자들에게 선물한다는 ‘소원권’을 사용해서 자신의 소꿉친구를 찾아달라고 부탁할 것이다·
자신이 노력할 때마다 재회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아진다· 그렇다면 쉴 틈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행히도 셀비어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마법의 극한에 도달할 대마법사의 재목은 아니더라도 대륙에 이름을 떨칠 정도로는 반드시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 2성급 『조율』과 『답파』를 달성한 천재였으니까·
마력의 흐름을 캐치하고 조작하는 감각이 뛰어나며 경험을 통해 쌓은 임기응변과 대처 능력도 훌륭하다· 어느 미친 마법사가 세상의 온갖 경험을 시켜 준 덕분에 이제 촉수 정도는 귀엽게 느껴진다·
유일하게 부족한 것은 마력의 양·
이것도 아카데미의 ‘무조건적인 성장’의 힘에 의해 유의미하게 늘었다· 『충만』을 달성했는지 아닌지는 테스트가 필요하겠지만·
어쩌면··· 적탑주의 제자를 노려볼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 할 수 있어·”
셀비어는 주먹을 꽉 쥐고 방을 나섰다·
적탑은 덥고 후끈하다· 사방에서 화염 마법을 연구하니 필연적으로 온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적탑에서는 열사병 환자가 무더기로 나왔던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마법이 발전하여 적탑에서 연쇄자연발화사건이 일어나 마법사 서너 명 정도가 노릇하게 구워지는 사고가 일어나자 (사제 덕분에 돈은 나갔어도 죽지는 않았다)·
‘여기서 더 화력을 높이려면 마탑 구조부터 개선해야겠구나’ 하고· 건축의 전문가들을 불러 탑을 개축했다·
열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개방형·
탑의 구석구석에는 대부분 커다란 창문이 뚫려 있다· 복도도 방도 테라스에 가깝게 꾸며졌고 프라이버시는 다소 지켜지지 않을지언정 사고로부터 안전해졌다·
마탑 근처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구경하는 건 조금 신경 쓰이지만· 그 관광객들도 대장간처럼 뿜어져 나오는 열풍에 조금 있으면 자리를 비킨다·
여기에 더해 그들은 연례행사로 청색 마탑과 마법사 교환을 추진한다·
가져다 붙인 이유는 양 마탑간의 우호 증진과 연구 협력이었지만 사실은 인간 쿨러가 필요했을 뿐이다· 청색 마탑에는 인간 히터가 필요했던 거고·
교환-마법사로 온 청색 마법사는 적탑에서 지원을 받아 마음껏 연구를 진행해 그 냉기로 탑의 열기를 식히게 한다는 구조다·
셀비어가 일방적인 라이벌로 여기는 ‘백설’과의 첫 만남 또한 이 제도로 인해서 시작되었다·
“···후우우·”
셀비어는 손부채를 파닥대면서 걸었다· 온도계를 확인하니 36도로 평소보다 살짝 높다· 이건 둘 중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적탑주님이 『태양』을 가동했든가 오늘따라 마법사들의 연구가 열정적이든가·
고확률로 후자일 것이다· 판단 근거도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제부터 『화염 장례사』입니다· 아무리 악인이라도 태어난 것 자체로 죄는 아닐 터 그들의 영혼이 모든 타락을 벗고 해방될 수 있도록··· 정성스럽고 따뜻한 불길로 태워주십시오·”
“예 예···!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닌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태우겠나이다· 제 불꽃은 따뜻할 것이고 침묵 속에서 경건할 것입니다· 화염 장례주교님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제 말을 추종하는 것이 아닌 당신만의 장례를 하십시오· 울음도 분노도 한탄도 기원도 모두 훌륭한 장례이니까요· 다만 생자를 추도한다는 큰 뜻을 잊지 마시고··· 대로를 걸으며 자신의 뜻을 펼치십시오·”
“감사합니다 장례주교님 감사합니다···!!”
까만 머리카락에 붉은 눈을 가진 까마귀 같은 남자·
저 새끼·
아니 저 주교 아니 저 교수가··· 적탑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적탑의 기조는 화염 마법의 화력 증강을 목표로 한다· 궁극적으로는 저 하늘의 태양처럼 영원불멸하는 화염을 만들어서 무한한 에너지를 얻어내는 것이 최종 비원이었다·
그러니 적탑에 입문한 대부분의 마법사는 더욱 강한 화력만을 좇는다· 살상력을 추구한다거나 식물의 생장을 연구한다거나 하는 별종들이 몇몇 있었지만 주류는 아니었다·
하지만 저 금쪽이 교수가 오고 나서부터는····
“저 꽃무늬 폭죽 만들었어요!”
“아이구 이쁘다· 이거 마법진 이쪽 일부러 뭉갠 거죠? 꽃잎이 뭉근하게 날리는 느낌 주려고·”
“허어억 어떻게 알았어요 신입님?”
“척 보면 딱 알죠· 우리 좀 더 재밌는 거 해 볼까요? 마법진끼리 충돌하는 게 효율은 작살이 나도 이펙트가 엄청 이뻐지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옆그레이드라고 해야 할까·
화력증강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개발 방향을 추구하는 마법사들이 늘었다· 그것도 꽤 많이· 사실 지금도 증식 중이었다·
“···씨이·”
보고 있으면 어쩐지 짜증이 났다·
저들이 어떤 쓸모없는 연구를 하는지는 알 바 아니고 그게 셀비어에게 딱히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탑의 온도가 몇도 올라가기는 했지만- 그건 다른 연구라도 마찬가지인 일이니까·
생각 없이 노는 것처럼 보여서 내면의 향상심이 게으름뱅이를 용서할 수 없다며 화를 내는 걸까? 아니면····
“와 진짜 이쁘다· 와···!! 저 이거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올게요 신입님!”
“올 때 메로나!”
“그게 뭔지 몰라요!”
저토록 행복하게 웃으며 너무 재밌게 놀고 있어서 그런 걸까·
나도 놀 수 있는데·
마음 맞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검은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는 자상한 소년이 내 곁에 있었더라면 하루 종일 웃으면서 연구할 수 있는데·
아니야· 흔들리지 말자· 셀비어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소꿉친구 또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어떤 상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딴길로 샐 생각은 추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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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 마탑의 1층 중앙에는 커다란 게시판이 있다· 적탑의 마법사들은 이 게시판을 『등용문』이라고 부른다· 혹은 『절망문』이라거나·
게시판에 내걸린 과제를 완수하면 적탑주의 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용문』의 과제는 세 부류로 나뉜다· 이론부문 실전부분 영감부문이다·
이론· 마법의 이론적인 부분을 확연히 개선하여 효율을 높이거나 새로운 마법을 만들거나 이제껏 밝혀지지 않았던 술식을 규명할 경우·
“이 마법진 잘 겹치면 위력 1·35배뻥 될 것 같은데·”
영감· 여태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떠한 개념을 제시했을 경우· 혹은 적색 마탑의 연구를 가속할 수 있는 선영향을 주었을 경우·
“화염 마법은 장판기가 되게 어울릴 것 같그든요 선배님· 마법적인 불이 아니라 물리적인 불이랑 섞어서 쓰면 제 생각엔 먹힙니다· 히트에요·”
실전· 유명한 괴물을 쓰러트리거나 적색 마탑의 적을 토벌하는 등으로 실력을 증명하는 경우·
“마력만 어떻게 해결하면 잘 하면 바실리스크랑 비벼지나····”
“·······”
보통은 하나의 과제도 달성하기 어렵다· 당연하다· 쉬웠더라면 개나 소나 적탑주의 제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절망문』이라고 불리우며 많은 마법사가 자신의 재능의 부족함에 한탄한다·
그런데 이 교수새끼는 셋 다 하는구나· 교수 직함 숨기고 적탑에 숨어들어서 뉴비 코스프레를 하고는 자기 재능을 마음껏 뽐내는구나!
좀 울컥한다·
머리에 열이 오른 셀비어는 신나서 마법사에게 이론을 떠드는 미친 마법사의 옆구리에 원인치 펀치를 날렸다·
퍽-!
“억···!! 가 갑자기 왜?!”
“뭐 하냐구요· 대체 여기서 뭘 하냐구요·”
“아니 설명해 줬잖아· 내가 30조각으로 찢겨 나가서····”
“제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줄래요?!”
미친 마법사는 머쓱한 표정으로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러다가 셀비어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문득 이렇게 참견해오는 것이다·
“요새 밥은 잘 먹어?”
“···네?”
“아니 부쩍 짜증이 많길래 말이야· 이 탑은 사시사철 덥기도 하고··· 토마토나 자몽을 곁들이면 어떨까 싶네· 얘네들한테는 비타민 C라는 좋은 요정이 들어가 있어서····”
덜컥·
셀비어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굳어버렸다·
미친 마법사가 앞에서 뭐라뭐라 계속 떠들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방금 전 지나간 단어가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뭐라고 했지·
비타민 C·
진짜 조금도 그 누구도··· 그런 괴상한 단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카데미의 알레한드로 교수에게 물어보았을 때도 적탑 선배에게 혹시 아냐고 질문했을 때도·
그들은 모른다고 답했다·
그 단어를 언급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그녀의 소꿉친구 말이다·
미친 마법사의 말과 과거로부터 울려 퍼지는 소꿉친구의 말이 겹친다·
‘골고루 먹는 게 중요해 셀비어· 우리가 먹는 음식에는 영양분이라는 작은 요정이 있어서 부족한 부분을 조화롭게 보충하는 편이 건강에 좋아· 내가 리스트를 알려 줄 테니까──’
“완전식품이라는 게 있는데· 물론 그것만 먹어서 잘 풀린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계란이랑 토마토가····”
“···챙겨먹고 있어요· 토마토·”
“응?”
미친 마법사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는 표정이 되었다·
셀비어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교수가 나와 소년만이 알고 있는 신비한 단어를 알고 있는 거야·
혼란스럽다· 교수의 친구 중에 소꿉친구가 있나? 사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던 걸까 그는···?
검은 머리 붉은 눈· 아니면 혹시· 어쩌면──·
이 수상하고 경박하며 때때로 나사 빠진 교수가· 기억 속의 소꿉친구일 가능성이──
“토마토 잘 챙겨 먹고 있으면 영양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스트레스가 쌓인 걸까나· 아니면 당분? 우리 달다구리한 거 먹으러 갈까?”
“──절대 그럴 리가 없어!”
“·······”
셀비어는 빽 소리를 지르고는 달음박질해 현장으로부터 벗어났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만약 그렇다면··· 나를 못 알아봤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덩그러니 남겨진 미친 마법사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싫어할 필요는 없지 않나···?”
여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굿 데이입니다 마이 프렌즈! 무더위 조심하시고 내일도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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