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8
어떻게 되었나요?
아아·
그래요 여러분은 그 무엇 하나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물론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에요· 잠깐이나마 가족을 가졌었고 잠시나마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으니까요·
그 순간만큼은 이야기 속의 용사가 된 듯하여 가슴이 뛰고 아드레날린이 돌지 않았던가요? 이대로 세계를 구해내기만 하면 자신이 저지른 모든 잘못을 되갚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설레지 않았나요?
비록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 탓에 얻었던 모든 것들이 먼지가 되어 흩어져버렸지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손에 쥐고 즐겼으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꿈도 희망도 사회도 인간도 언젠가는 먼지가 되어 흩어져요· 이번에는 그 텀이 조금 짧았을 뿐이에요· 니오레·
그러니 그렇게 슬퍼할 필요도 없는데다가··· 사실 슬퍼할 자격도 없잖아요· 죽은 건 당신이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이니까·
알아요· 니오레· 당신은 열심히 했어요·
아프고 싫은 느낌을 꾹 참고 마도서를 탐독해 일행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죠· 그렇게 배운 마법으로 한 일이라고는 사람을 죽인 것밖에는 없지만 앞으로는 다를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한명이라도 구할 수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잘했어요· 니오레·
당신은 앞으로도 잘 해낼 거예요· 그럼요· 저는 믿고 있어요· 조금 더 자신을 바치고 조금 더 희생하고 당신의 삶을 진흙탕에 처박고 구둣발로 즈려밟아서· 고통으로 뽑아낸 힘으로 사람을 구하면· 구할 수 있다면·
참 기분이 좋겠죠· 당신은 다 죽어가고 있는데 당신이 구해낸 사람은 앞에서 웃고 있을 거예요· 아닌가요? 이게··· 당신이 바라던 정의가 아니었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당신은 당신을 해체해서 나눠주는 걸 즐기는 거잖아요·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하세요· 음 당신은 미치광이가 되어 불운한 인생을 보내겠지만 적어도 옆에서 수혜를 받는 베네트와 타라는 행복할 거예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들 사이에는 애틋한 분위기가 싹트고 있잖아요· 모든 사건이 끝나면 당신의 무덤 위에서 두 사람은 진하게 입을 맞출 거예요· 결혼도 할 테고 나중에 이렇게 회고하겠죠· 옛날에 니오레라는 가엾고 멍청한 사람이 있었지·
그만 닥치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힘을 빌려달라면서 먼저 내게 말을 걸어왔던 건 당신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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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뉴라이프 신문사 건물 안에 기자 샐리와 함께 숨어 있었습니다· 베네트는 블라인드의 틈새로 바깥세상을 내다보았습니다·
세상은 나쁜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늘이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고 온갖 동물들이 천체의 변화에 놀라 달아나던 그 시점 이후로· 시간과 공간은 오랜 규칙에서 벗어나 불안정하게 요동쳤습니다·
이를테면 허공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잘린 다리가 나타났습니다·
평범하게 걷고 있던 시민의 다리 한쪽이 갑작스럽게 공간이동을 당해버린 겁니다· 어딘가에서는 잘린 다리를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는 시민이 죽어가고 있겠죠·
이를테면 열 살 소녀가 순식간에 노파가 되었습니다·
가속되는 시간의 거품에 끼여버려 순식간에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가 버린 겁니다· 세상에 순진무구한 노인이 한 명 만들어졌습니다·
뒤틀린 시공간에 의한 함정이 도처에 깔리고 괴물들이 보란 듯이 도시를 거닐었습니다· 자신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경찰들이 화력으로 응전했으나 권총으로 상대하기에는 너무 강하고 너무 많았습니다·
악신과의 거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좁혀지고 있었으며 실시간으로 도시의 인구수는 줄어만 갔습니다·
일행의 상태 역시 좋지 않았습니다·
니오레는 심한 환청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두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젓거나 벽면에 머리를 박곤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녀의 눈동자 너머에는 새까만 것이 쌓였습니다·
타라는 모든 힘을 잃었습니다· 여기에 남은 것은 여신교의 성녀가 아니라 가족을 잃은 연약한 아가씨일 따름이었습니다·
베네트는 움직였습니다· 그의 안색 또한 어두웠으나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남겨진 아브라함의 유산· 그의 연구를 해석하는 것으로 한 번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알파값을 구해서 역소환을 건다면····
“···니오레 움직일 수 있겠나?”
[네 베네트· 문제 없어요· 저는 괜찮아요·]
“아브라함이 언급한··· 수학 교수· 이름이 롯이라고 했던가· 그를 찾아가 계산을 부탁할 생각이다· 더 늦어지기 전에·”
베네트는 장비를 점검하고 남은 식량을 어느 정도 챙겼습니다· 니오레 또한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도시를 헤맬 준비를 마쳤습니다·
타라는 안절부절못하다가 베네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기·”
나도 같이·
“타라 너는 여기에 숨어 있어라·”
“···역시 그래야겠지?”
“그런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어· 너는 충분히 잘 해줬다· 여기서 잠깐 쉬고 있으면··· 좋은 소식을 가져올 테니까· 밖에 나가지 말고 몸을 숨겨·”
타라의 표정이 여러 감정으로 복잡해 보이자 베네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타라는 조용히 베네트에게 머리를 맡겼습니다·
달콤한 시간도 잠시뿐·
“다녀오겠다·”
베네트는 니오레와 함께 신문사 건물을 나섰습니다· 건물 안에는 타라와 샐리만이 남았습니다·
타라는 방 한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일행의 귀환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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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을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는 10분 만에 낮과 밤이 바뀌기도 했으며 저물어가던 해가 역행하여 다시금 중천에 뜨기도 했습니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시계가 있다면 귀환 시간을 나타내는 손목의 문양이었습니다·
괴물에게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서 광량도 제한된 상황· 어두운 방에서의 생활은 이것저것 우울한 생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에서부터 일행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죄책감·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은 괜찮으려나 라는 걱정·
그리고 이따금 떠오르는 베네트의 손길· 타라는 자신의 손을 자신의 머리 위에 턱 얹었습니다· 그렇게 좌우로 움직여봐도 비슷한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언제 오려나····”
“초능력자분들이잖아요· 괴물 같은 건 금방 해치울 거니까···! 그쵸?”
주먹을 불끈 쥐고 희망을 입에 담는 샐리에게 타라는 그저 고개만 끄덕여 주었습니다· 셋과 둘은 전력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자신이 빠졌는데 괜찮으려나·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쩌지·
그런 걱정들을 하면서 체감상 하루가 지났던 것 같습니다·
타라는 슬슬 초조해졌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롯이라는 수학자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까· 싸움에 휘말리기라도 했나· 교주를 만났으면 어떡하지·
불안에 떨던 타라는 표정을 한껏 일그러뜨리면서·
성표를 꺼내 벽에 걸고 두 손을 모아 어색하게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여신님 부디 두 사람을 굽어살펴주세요· 어디 하나 다친 곳 없이 건강하게 돌아오게 해 주세요· 당신의 성녀였던 저를 가엾게 여겨주신다면····
몇 년 만이었던가· 단 하나의 소원도 이루어주지 않았던 여신에게 실망한 이후로 타라는 기도를 올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불성실함에 신성력을 거두어 가셨던 걸까·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타라는 여신을 떠올리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일행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그렇게 체감상 이틀이 지났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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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타라 씨?”
“···응?”
고개 숙여 기도하던 타라는 샐리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렸습니다· 샐리는 조심스럽게 창가에 붙어 손짓했습니다·
타라가 엉금엉금 기어서 창가 쪽으로 다가가자 샐리는 블라인드를 살짝 걷어내고 창 바깥을 가리켰습니다·
“밖에··· 사람이 들어오려고 하고 있어요· 여기에·”
“···뭐?”
밖에는 나무 배트를 등에 건 남자 한 명이 신문사 건물을 기웃대고 있었습니다· 깨지고 박살 난 다른 건물에 비교하면 멀쩡한 모습에 안에 물자가 남아있는지 견주어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 안심해도 괜찮은 거죠···? 타라 씨도 주먹에서 막 빛이 났으니까···!”
샐리는 믿고 맡긴다는 시선을 쏘아 보냈습니다· 타라는 시선을 살짝 피했습니다· 그녀는 타라가 신성력을 잃고 무력화된 상태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타라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습니다·
“그 그래··· 맡겨도 돼·”
타라는 심호흡을 했습니다·
그녀는 아카데미에서 수업도 들었고 근접전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이곳은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괴물 없는 평화로운 세계였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싸우는 법을 훈련받은 사람은 몇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남자 한 명쯤은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타라는 숨어있는 대신 자신이 저 남자를 처리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문을 열고 계단으로 내려가 바리케이드를 넘어서서· 건물 밖으로 나섰습니다· 남자는 타라를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휘유 사람 있었네·”
“···그래 여기는 사람 많아· 다치기 싫으면 어떻게 해 볼 생각 말고 꺼져!”
“진짜로 당신 말이 맞았어· 여기는 털어볼 만한걸·”
타라의 위협은 효과가 없었습니다· 남자는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다가 훅 불고·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한 뒤에· 전혀 겁먹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사람이 많았으면 남자가 나왔겠지· 구멍 숭숭 뚫린 거적때기를 입은 년을 내보내는 대신에·”
남자는 음욕이 담긴 시선으로 타라를 훑어보았습니다· 기분 나쁜 시선에 타라는 가슴께를 가리면서 한 발짝 물러났습니다·
남자는 나무 배트를 쥐고 위협적으로 붕붕 휘둘렀습니다·
“뭐 해 볼 생각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그러면 목숨은 살려 줄 테니까· 마침 여자가 필요했거든·”
“···기분 나쁜 새끼·”
“일단은 말버릇부터 고쳐놔야겠네· 야 이리 와·”
심호흡·
“···흡!”
타라는 등 뒤에 숨긴 돌멩이를 던졌습니다· 겨냥하는 곳은 머리·
빠악-!
맞았습니다·
“···큭!”
남자의 고개가 옆으로 팩 꺾이며 돌멩이는 그의 눈썹을 찢고 떨어졌습니다· 피가 팍 터지고 그의 한쪽 얼굴이 피로 물들었습니다·
···지금!
타라는 남자가 투척에 당황한 틈을 타 달려가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려 남자의 턱을 후려쳤습니다· 퍼억-!
그리고 다음에는 왼손으로 남자의 안면을 후려치고· 바짝 당겨 회수한 오른손으로 명치를 노려 바디 블로우를 넣었습니다· 빡-!
우드득·
타격음과 함께 타라의 손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읏?!”
남자는 복부에 철판 같은 단단한 물건을 덧대 숨겨 둔 모양이었습니다· 예상 못 한 상황· 타라가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며 행동을 멈추자 남자의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마력 마력을 불어넣어서 피하면···!
“······!”
퍽!
타라의 복부에 남자의 주먹이 깊게 틀어박혔습니다· 잠깐 몸이 붕 뜰 정도의 타격에 그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헐떡였습니다· 마력을 담아내지 않은 몸은 너무나도 느리고 약했습니다·
움직여야 돼· 고통에 멈추고 있을 때가 아니라 어서 움직여야····
호흡마저 멎을 정도의 통증을 딛고 움직이려고 했으나 너무 늦었습니다· 두터운 남자의 손이 타라의 뺨을 후려쳤습니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맞은쪽의 귀에서 삐- 하는 이명이 들렸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타라는 지면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손발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움직여야 하는데·
“···켁!”
“이 빌어먹을 년이····”
목이 졸렸습니다·
“······!!”
타라는 두손으로 남자의 손을 할퀴고 떼어내려 몸부림쳤으나· 체중을 실어 누르는 손을 떨쳐낼 수는 없었습니다· 내려다보는 남자의 눈에서 분노와 음욕이 소용돌이쳤습니다·
이대로 이렇게 허무하게···?
그때 목을 조이는 힘이 반 정도 빠져나갔습니다· 실낱같은 호흡이 가능할 정도로· 유감스럽게도 그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습니다·
남자가 타라의 옷을 움켜쥐었습니다· 그제야 타라는 자신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았습니다· 전신에 벌레가 기어오르는 것 같은 혐오감· 그리고 힘없는 자의 무력함·
싫어 안 돼· 마음속으로 수십 수백 번을 외쳐도 닿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타라는 무력한 사람들의 공포를 알았습니다·
의식이 흐려집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차라리 이렇게 될 바에는···!
그때·
쨍그랑-!
남자의 머리가 팩 숙여졌습니다· 흙더미가 후두둑 쏟아집니다· 기자 샐리가 뒤에서 화분을 들고 후려친 모양이었습니다· 샐리는 발로 밀어 차 뒤통수를 감싸 쥐고 끙끙대는 남자를 타라의 위에서 치워 낸 후에·
“···올라와요!”
“케흑 흐윽····”
타라를 이끌고 바리케이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두 사람은 바리케이드를 움직여 입구를 틀어막았습니다· 그러나 숨을 돌리기에는 일렀습니다·
쿵쿵쿵-!
“──야 당장 나와! 죽여버릴 거다!”
남자가 고통에서 회복한 모양인지· 바리케이트를 쾅쾅 두드렸습니다· 발길질과 주먹질 배트를 휘두르기도 했습니다· 타라와 샐리는 있는 힘껏 바리케이드를 밀어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초능력 초능력은···?”
“미안 미안 샐리··· 콜록 나 나 못 써····”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 그럼 부탁한다는 말도 안 했을 텐데!”
코앞까지 들이닥친 야만적인 폭력· 타라는 울먹이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신에게 이 상황을 헤쳐 나갈 힘을 빌어보기도 하고 남자가 힘이 빠져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요행을 바라기도 했습니다·
으직!
바리케이드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바리케이드를 이루고 있던 가구가 박살 나며 야구 배트 끝이 튀어나왔습니다· 틈새 사이로 내려다보는 남자의 눈이 보였습니다·
타라는 야수에게 사냥당하기 직전의 토끼처럼 공포에 몸을 떨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타라가 생각한 것은 베네트였습니다· 타라는 눈을 질끈 감고 외쳤습니다·
“···제발 제발 도와줘· 베네트···!”
“베네트? 누굴 찾는 건지는 몰라도 그 새끼도 오면 내가 죽여버릴-”
“그럼 해 봐라·”
남자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목소리·
남자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습니다· 얼굴 반쪽을 머리카락으로 가린 사내가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언제 내 뒤에···?!”
“해 보라고·”
호리호리한 체형· 날붙이를 들고 있기는 하지만 겉보기로는 그다지 힘이 세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쪽으로 파고들어서 힘 싸움을 걸면 쉽게 이길 것 같아서·
남자는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여자를 노려라’ 라는 조언을 무시하고 베네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래 소원대로 죽여 주──”
스걱-·
그게 남자의 유언이었습니다· 한 걸음을 떼기도 전에 그는 세 조각으로 나뉘어 계단 위로 우르르 쏟아졌습니다·
[이거 청소할게요·]
니오레가 가볍게 주문을 외우자 바닥에서 무수한 입이 돋아나 피와 살점을 삼켰습니다· 계단은 깨끗해졌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드르륵· 바리케이드가 옆으로 밀려나며 베네트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습니다· 타라는 긴장으로 빳빳하게 굳은 몸에서 힘을 풀며 그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베네트·”
“타라 다친 곳은 없나?”
“···배 맞았어· 뺨이랑· 아파·”
“좀 더 패줄 걸 그랬군· 늦어서 미안하다·”
베네트의 눈동자에 미안함이 스쳤습니다· 잘 보면 그의 얼굴에는 짙은 피로가 서려 있었습니다· 타라는 화들짝 놀라서 손을 내저으며 말했습니다· 그의 탓이 아니었으니까·
“아냐 내 탓이니까···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어·”
“원래라면 이겼을 거다· 하지만 도시의 몇몇 사람들은··· 악신의 힘을 받아 강화되어 있더군· 방금 죽은 녀석도 그런 부류로 보였다· 마력을 잃은 사람이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 너무 개의치 마·”
타라는 울음을 참아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베네트와 니오레는 힘든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참이었습니다· 둘 다 군데군데 상처가 보였고 니오레는 다크서클이 퀭하게 내려왔습니다· 활달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딱딱한 무표정을 유지할 뿐이었습니다·
고생한 이들에게 어리광을 부려서는 안 될 테니까·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주제에 짐을 하나 더 얹으려고 들면 안 되는 거니까· 타라는 억지로 기운을 냈습니다·
킁 하고 코를 들이마시고· 옷소매로 눈가의 축축함을 훔친 뒤에· 타라는 평소처럼 당당한 표정을 꾸며내며 베네트에게 물었습니다·
“···일은 어떻게 됐어? 니오레도 다친 곳은 없고?”
[잘 풀렸어요· 수학자 롯과는 접선했고 자료를 넘기고 오는 길이에요·]
“계산이 끝나면 전화로 연락하겠다더군· 그에게서 무전기도 받아 왔다·”
그들은 목적을 완수한 듯싶었습니다· 베네트는 일행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면서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명확하게 매듭지었습니다·
“교수로부터 알파값을 전달받으면 그 즉시 우리는 은의 황혼 교단이 설치했던 마법진을 역이용해서· 외신 퇴거 의식을 진행한다·”
그는 마지막 한 번의 기회를 위해서 달려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나는 함께할 수 없겠지· 타라는 그의 옆자리에 선 니오레를 한 번 바라보고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그녀는 딱 잘라 말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일행과 자신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 조금 추웠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슬슬 에피소드의 엔딩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와중입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느그으읏하게 써보자고 생각해서 요래 한달이나 투자하게 됐네요·
곧 다가올 마지막 순간을 모쪼록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이 프렌즈· 그러면 또 내일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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