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0
130화
-그래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 거 맞지?
“당연하지 누나· 지금 밖에 나돌아다니는 시간이 많아서 그렇지 나 사실 일도 별로 안 해· 완전 월급도둑이라니까·”
-네가 퍽이나 그러겠다· 또 네가 안 해도 되는 일 이거저거 죄다 끌어모아서 죽자고 일하고 있지 않으면 다행이지·
···나를 너무 잘 아는데?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좋은 거야· 그렇지만 그 일에 모든 걸 다 쏟아부으려고는 하지 마· 사람은 기계가 아니야· 할 수 있다고 해서 있는 여력을 전부 쏟아내면 고장 나거든·
“···노력해 볼게·”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냐 제발 쉬기 위한 노력도 좀 해봐라·
“응··· 내가 노력은 잘하잖아·”
누나의 걱정이 담긴 잔소리에 어중간한 대답을 남긴 나는 통화를 끊은 뒤 한숨을 내쉬고 다시 건반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누나가 걱정할 만하였다· 그야 요새 제대로 집에 들러서 인사를 나눈 적도 없기 때문이다· 워라벨은 진작에 박살 나 버린 일정이었지만 딱히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었다· 이는 완벽한 데뷔를 하고 싶다는 욕심 아래에 한창 데뷔 준비를 하느라 없는 일 있는 일 전부 관여하는 정신머리를 가진 내 원죄였다·
그렇게 주말과 여가라는 단어가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작곡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 위하여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서 작업실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내었다· 전철마저 끊겨 버린 이런 심야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소중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작업은 지지부진했다·
“···진짜 미치겠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문제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아서 문제였다·
파도처럼 쓸려가는 상념 그리고 기포처럼 올라오는 영감 그 바스러질 듯이 부딪쳐 가는 생각들은 저마다 자신이 정답이라고 연호했다· 그러나 그것 모두가 100점의 정답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만족 못 하지 이 정도로는···”
이상은 드높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업계에서도 탑이라고 불릴만한 퀄리티이다·
80점 90점으로도 부족하다· 100점이어야만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나 자신이 용납하지 못한다· 자존심이고 내걸린 기대고 다 무시해서라도 성공이 확실한 히트곡을 사 올 것이다·
현실은 나약했다·
나는 초심자였으며 과도한 기대를 받고 있지만 실상 요행으로 한 번의 성공을 해낸 것에 불과한 범부였다· 사실 그것이 제대로 된 성공인지조차도 의문이었다·
건반을 두드렸다· 선율이 울렸다·
시퀸서에 연주 데이터가 올라갔다· 재생했다· 다시 지웠다·
이것이 좋은지 나쁜지조차 구분되지 않았다· 그냥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막연한 느낌만 들었다·
확신이 부족했다·
재능이 부족했다·
내가 부족했다·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를 서성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이 향한 것인지 흡연실에 도달해 있었다· 담배는 없었지만 그 안에 들어가 담배 향이라도 느끼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들었다·
머릿속에 편의점이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는 정보가 떠올랐다· 딱 그 한 갑이 간절하게 느껴졌다·
제자리에 멈춰서 진한 충동과 싸우던 나는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애들 보기 쪽팔리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나는 아이들을 관리하는 매니저였다· 그런 내가 충동하나 조절하지 못해서 담배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그 아이들의 곁에 있다는 것은 한없이 부끄러운 행동일 것이다·
단념하고 다시 작업실에 돌아갔다·
그리고 DAW 프로그램이 떠 있는 모니터 옆에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피로회복제 하나를 발견했다·
[힘내세요! – 팬 1호]
“···”
참 과분한 기대였다·
“···조금만 더 힘내볼까?”
그래도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었다·
새벽은 그렇게 지나갔다·
***
“저는 병신입니다·”
건반에 머리를 박은 나는 다시금 말했다·
“저는 개 병신입니다·”
옆에서 샘플링을 하고 있던 오진우가 혀를 차더니 말했다·
“선 팀장님이 드디어 창작의 2단계를 마주하셨군요·”
“2단계가 뭐더라 타협이었던가?”
“형 그건 4단계야· 2단계는 분노지·”
“분노? 선 팀장님이 지금 딱히 화가 나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형같이 자신감으로 꽉 찬 사람 아니면 분노는 대부분 저렇게 표현돼· 그야 분노를 자기 자신에게 느끼니까·”
“···아까부터 왜 저를 분석하고 계십니까?”
“저건 뭔데? 3단계?”
“아니 단계가 변한 건 아니야· 분노의 대상이 내 쪽으로 바뀌는 거지·”
무관심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던 이자벨라가 오진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진우 동생· 그걸 알면 조금 다물어· 선 팀장님이 지금 얼마나 힘드실 텐데 그따위 농담이 나와? 양심에 이어서 싸가지도 팔아먹었어?”
“···네 벨라 누나·”
“제임스 너도 동생이 지랄하면 좀 말려·”
“···미안합니다·”
둘이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사실 그런 건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개 같은 작곡이 아직도 지지부진하다는 현실이었다·
“선 팀장님 조금 마음 편하게 먹으시고 천천히 해보세요· 원래 창작이라는 것이 단시간에 뚝딱하고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저도 그건 알고 있는데 저희에게는 시간이 없잖아요·”
“···그건 그렇죠·”
어쩌면 기존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이렇게까지 조바심을 느낄 일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문제는 내가 데뷔 일정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안무 코디 뮤직비디오 무대 구성 패키지 디자인 등 연이어서 데뷔를 위한 단계를 밟으려면 곡만은 최대한 빨리 완성되어야 한다· 그러니 내게 남아있는 시간은 실질적으로 얼마 없었다·
“진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도 답이 아닌 것 같아요·”
“흠··· 저는 솔직히 선 팀장님이 만든 초안 중에서 괜찮은 것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 하나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 적당한 물건으로 만족할 거였으면 차라리 앨범에서 내리는 게 맞습니다·”
“···그것도 그렇죠·”
다시 건반에 머리를 박아가며 멜로디를 쥐어 짜내는 나를 보며 작게 웃은 제임스 오는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선 팀장님이 그 곡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말하고 싶은 거요?”
“네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곡이라는 것의 시작은 대부분 그런 작은 메시지에서 출발하거든요·”
“···저는 그냥 생각 없이 친 건데요·”
“지금도 그렇습니까? 창작을 위하여 욕심을 가지고 무한한 탐구를 이어가는 지금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으신가요?”
“···”
“너무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어요· 철학적인 담론이라던가 시사적인 고발 그런 대단한 이야기는 필요 없습니다· 선 팀장이 그때 편곡을 하셨을 때 담으셨던 의도 그거랑 비슷한 맥락 네 단순한 감정이어도 충분하죠·”
···나는 이 곡으로 뭘 하고 싶은 거지?
대단한 작곡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없다· 천성이 매니저인지라 내가 빛나기보다는 사계의 이름을 품은 나의 아이들을 빛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면 지금 믿을게요· 저는 지금 벌써 행복해졌으니까요·’
차가운 바람 속에서 봄을 닮은 미소를 피워 올리던 한 아이를·
‘···잠깐만 ···잠깐만 안아줘요·’
누구보다 여리고 온기를 동경하지만 정작 자신의 온기를 타인에게 나누던 한 아이를·
‘그런 이상한 당신을 만난 게 저의 인생에서 최고의 행운일 거예요·’
더없는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꽃을 피워내기를 멈추지 않던 한 아이를·
‘그런 모습을 보면 차라리 대신 아팠으면 한다고요·’
누군가를 닮겠다고 말해 놓고선 정작 더 멋있어져 버린 한 아이를·
“···”
빛나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란 의도란 그것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선 팀장님이 하셔야 할 생각은···”
“그만 말해 제임스·”
“응···? 나 또 이상한 말을 했어?”
“아니 좋은 말이었어· ···그런데 더는 필요 없을 것 같아·”
“···그러네 더는 필요 없겠네·”
제임스 오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버려 주변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몰두하고 있는 태양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미 방향을 찾으신 것 같으니까·”
***
시퀸서에 담긴 멜로디를 재생한 우리는 침묵했다·
““···””
들어도 이게 10점인지 50점인지 그도 아니면 100점인지 모르겠다·
수없이 수정하고 갈고 닦았음에도 나는 아직도 이게 좋은 곡인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게 내가 말하고 싶은 곡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옆에서 그 완성된 멜로디를 흥얼거리던 제임스 오가 물었다·
“그래서 곡의 제목은 어떤 걸로 하실 생각인가요?”
“제목이요? 아직 작사조차 하지 않은 곡인데 제목을 붙이기에는 이르지 않나요?”
“그래도 선 팀장님은 무언가 떠올리고 계시는 게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긴 하죠·”
그의 말대로 생각해 둔 이름이 있기는 있었다·
대답을 기대하는지 제임스 오 오진우 이자벨라의 시선이 모여있었다· 그 시선 속에서 담백하게 말했다·
“알바트로스·”
그 아이들을 보면 떠오르는 이름을·
“지금은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
“이상이 이번 앨범에 사용하고자 하는 곡이었습니다·”
제임스 오가 4개의 곡의 시연을 마치자 투베어의 직원들은 박수쳤다· 허나 그러면서도 몇몇 눈에는 ‘이게 끝이야?’라고 묻는 듯한 의문이 담겨있었다·
그 이유는 제임스 오가 밝힌 4가지의 수록곡이 퀄리티가 낮거나 결여를 가져서가 아니었다· 그의 작업은 그의 명성처럼 하나같이 최상의 퀄리티를 자랑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저런 시선을 보내는 이유를 제임스 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또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이 자리에 없었다·
그 의문을 참지 못한 진여름이 눈치를 보며 질문했다·
“저··· 선 팀장님은···”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때 선태양이 문을 열고 사과를 하며 나타났다·
그 모습을 발견한 가을이 반색했다·
“태양 오빠!”
그런 가을에게 작게 웃어준 태양은 음원을 출력 중인 컴퓨터 앞에 앉고 말했다·
“조정 작업에서 오류가 발견되어서 조금 늦어 버렸습니다·”
“괜찮아 선 팀장· 일정이 촉박했다는 건 다들 이해하고 있으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양은 자신을 두 눈에 가득 담은 4명의 아이와 투베어의 직원들을 살짝 바라본 뒤에 말했다·
“그럼 재생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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