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2
132화
사장실에 설치된 고급 음향 설비를 이용하여 선태양이 만든 곡 ‘알바트로스’를 틀어놓고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업무에 열중하던 천아람은 갑작스럽게 걸려 온 전화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 시간에 전화를 걸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 표시된 번호를 보니 그녀가 예상했던 바와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녀 또한 용건이 있기도 하였기에 천아람은 작게 한숨을 쉬고 전화를 받았다·
“어 종훈 오빠· 무슨 일이야·”
-본가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그녀의 친오빠이자 SS의 후계자라고 손꼽히는 천재 프로듀서 천종훈이었다·
지금은 이전에 벌인 월권 때문에 위세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말이다·
“수연이 보냈잖아? 개가 가나 내가 가나 큰 차이 있어?”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지· 하지만 메시지에서는 차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알지 그러니까 수연이를 보낸 거고· 메시지를 잘 전달받았으면 알아들어야지· 이렇게 입으로 내 뜻이 어떤지 말해야겠어?”
본가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아직 천아람이 그녀가 가진 재능을 본가를 위해서 쓰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녀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서·
이전이라면 그 요구에 손익을 계산하고 합당하다고 여겨지면 참가했겠지만 천아람은 더는 그들과 연관되고 싶지 않았다·
그야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으니까·
-···하아 무가치한 짓은 그만두고 집으로 들어오라는 아버지의 전언이 있었다·
“글쎄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살면서 해온 일 중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말이지·”
-신생 기획사에 매달려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을 말하는 건가?
“아니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최고의 아이돌을 만드는 일이지·”
-그게 네가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만큼의 돈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돈이 꼭 전부는 아니지·”
-하··· 하하하 그 말이 천아람 너의 입에서 나오다니··· 농담에도 재주가 있었군·
그 말에는 그녀 또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선태양의 이야기를 천종훈을 통해서 들을 때만 해도 이런 미래가 그녀에게 다가오리라는 것· 그리고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으니까·
“그러게 나도 이런 말이 내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어· 그런데 말이야· 그 수익성이라는 것이 딱히 부족할 것 같지도 않거든· ···성공할 거야 우리는·”
-연예계가 그렇게 만만하다고 생각하나?
“어이구 그래도 SS의 소속으로 인사팀장까지 해본 내가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 그런 연예계에서도 성공할 만큼 대단한 동료들이 너무 많아서 할 수 있는 생각이야· 오만이 아니라 자신감이라는 말이지· 내기해도 좋아·”
-그 깐깐한 후각에 걸러지는 사람 중에서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고?
“어 있더라고· 내 회사인데 나도 가끔은 믿기지 않아·”
-···
천종훈은 그녀의 단언에 침묵했다·
적어도 천아람이라는 자신의 여동생은 인간을 평가할 때 절대로 과장이나 허언을 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저렇게 고평가하는 집단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모르게 약간의 두려움 마저 느끼고 있는 천종훈에게 천아람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아 우리 이번에 데뷔하기로 했어·”
그 말을 듣고 다시 한참을 침묵하던 천종훈은 말했다·
-우리 알케스트의 데뷔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나? SS와 경쟁을 해야 할 텐데?
“에이 그런 거 전부 신경 쓰면 데뷔는 언제 해? 다음 달이면 PPZ가 복귀하고 그다음 달은 발라드 황태자 서지학 앨범 발매일이야· 또 차트 줄 세우기를 하겠지· 뭘 피하려고 하면 끝도 없다니까?”
천아람은 능청스럽게 말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솔직히 같은 신입이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 말은 천종훈의 오만한 프라이드를 긁어내기 충분한 발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들끓는 목소리를 숨기지 않고 말했다·
-이런 도발을 하기 위해서 말을 꺼낸 건가? 그런 거라면 번지수를···
“아니 본론은 이제부터야·”
천아람은 약간의 장난기조차 지우고 저릿한 무게감을 담아 말했다·
“저번에 선 팀장에게 수작질 부렸던 거 기억하지?”
-···그건 왜?
“이번에도 똑같이 선 팀장에게 개짓거리하면 절대로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거라고·”
-이제 와서 말인가? 그걸 말하려고 했으면 그 개짓거리라는 걸 한 그때 말했어야지· 너도 그걸 방관했으니 암묵적인 허락을 했다고 봐야 하는데· 이런 태도 변화는 상당히 추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천아람은 그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 솔직히 그때 방관했다는 거 인정할게· 오빠의 그런 행동이 선 팀장이 다른 회사로 빠질 경우의 수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도 이용을 한 거지· 그렇게 둘의 미래를 막아버리면서도 나는 견적을 재보고 아니다 싶으면 팽해버리려고 했으니 내가 생각해도 이만한 썅년이 또 없네·”
그때의 천아람은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을 원하면서도 본가와 어머니의 강압적 교육으로 뿌리 깊게 새겨진 손익 계산의 시선을 버리지 못했다·
둘을 보면서도 끝없이 가치판단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달려드는 이유가 뭐지? 그래봐야 써먹기 좋은 카드 중 하나일 뿐이 아닌가?
“아니 단순히 써먹기 좋은 카드가 아니야·”
그러나 그런 그녀도 변했다·
“친구야· 같은 꿈을 꾸는·”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서슴없이 꺼낼 정도로·
“그러니까 알아둬· 그때 같은 일이 또 생긴다면 오빠가 잘 아는 미친년이 이번에는 독을 품고 달려들 테니까·”
***
쾅!
테이블에 비치된 엔틱 디자인 전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은 천종훈이 소리쳤다·
“서수애!”
그의 외침에 조용히 나타난 서수애가 긴장한 기색으로 물었다·
“무엇이 필요하신가요?”
“데뷔 앞당긴다·”
“···네?”
“알케스트의 데뷔 앞당긴다고·”
천종훈의 돌연한 선언에 당황한 서수애는 되물었다·
“이미 일정이 다 정해져 있는데 그걸 앞당기시려는 이유가···?”
그런 서수애를 뒤로 한 채 문을 향하여 거칠게 걸어 나가던 천종훈을 더는 질문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단호히 말했다·
“그 개짓거리란 게 없어도 SS에 짓밟힐 거라는 걸 보여줘야 성이 찰 것 같으니까·”
***
소녀 혁명 4인조는 코디의 전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하기 위한 피팅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옷을 입고 사진 촬영을 한 뒤 벗기를 반복하면 그만인 만큼 그리 어려운 일정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맴버 중의 한 명이 다소 난항을 겪고 있었다·
“···안돼 이건 못 벗어·”
의외로 대부분의 과제에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고는 하는 진여름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오유리는 머리를 벅벅 긁고 말했다·
“아니 그 트레이닝 저지를 입고 찍으면 안 된다니까요· 잠깐만 벗어요· 어차피 금방이에요·”
“···사진이 남잖아· 이렇게 부끄러운 옷을 입은 사진이·”
“에이 그렇게 부끄러운 옷도 아니에요· 저랑 가을 언니 겨울 언니도 다 입고 있잖아요?”
“노출이 너무 많잖아· ···이게 뭐야 손수건으로 옷을 만든 것도 아니고·”
진여름의 표현은 아주 정확했다· 그야 그녀들이 이번에 피팅 할 옷은 소위 행커치프 탑이라고 불리는 브라탑의 변형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과감한 노출도를 자랑했다·
그건 연습할 때 입는 트레이닝 복 사복으로 입는 하늘하늘하고 품이 넓은 원피스류의 옷을 주로 입는 그녀에게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노출도였다·
하지만 노출하는 것에 거리낌이 전혀 없는 시니컬 중2병 오유리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래서 나중에 수영복은 어떻게 입으려고요· 여름 언니 은근히 부끄러움이 많다니까요· 저번 주간 평가에서도 가장 긴장했었고요·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당연히 긴장할 것 같았던 겨울 언니는 오히려 무던했는데·”
말하던 오유리는 돌연히 떠올랐다는 듯이 진여름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언니 예전에 리듬체조하던 시절엔 몸에 딱 달라붙는 레오타드를 늘 입고 다녔잖아요? 그것도 살갗만 보이지 않을 뿐 몸의 라인을 드러내는 건 비슷하잖아요? 그건 어떻게 입었는데요?”
진여름은 자신이 이런 소란을 만들었다는 것이 부끄러운지 살짝 풀이 죽은 채로 말했다·
“···그때는 어린 시절이라 딱히 보일 것도 없었어·”
“아니 그때나 지금이나 뭐가 그리 다르다···”
오유리는 말을 멈추고 진여름의 몸을 훑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인정· 지금은 보일 거 많네요·”
실로 객관적인 평가였다·
그런 오유리의 시선에 진여름은 더 움츠러들어서 선태양이 콘서트를 보던 날 선물로 준 푸른색 트레이닝 저지를 더욱 동여매었다·
그때 문밖으로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잘하고 있어?”
기자들과 만나 협의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선태양이었다·
“태양 쌤!”
“태양 오빠! 저 열심히 하고 있었어요! 오늘 갈아입은 옷만 30벌은 되는 것 같아요!”
“···저도 부끄럽지만 노력은 했어요· 어울리는 옷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흠··· 겨울이 네가 입은 다른 옷은 아직 확인해 보지 못했지만 일단 지금 입은 옷은 너무 잘 어울리는데?”
“정말요?”
“응 너무 예뻐·”
“정말요? 정말요? ···노출이 과하지는 않나요?”
“딱히? 그냥 귀여운데?”
그 대화를 듣던 오유리는 ‘이거다·’하는 판단이 머리를 스쳤다· 선태양의 저런 의견이 진여름의 뜻을 바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들었죠? 여름 언니· 선 팀장님도 이런 옷을 이쁘다고···”
말하면서 뒤를 돌아보던 오유리는 일순 모든 동작을 멈췄다·
진여름이 이미 트레이닝 저지를 벗고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딜 봐도 부끄러움이라는 건 1%도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움이었다·
한참 거울을 보던 그녀는 만족스러웠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여태까지의 주저함은 대체 뭐였는지 당당하게 문밖을 나섰다·
“선 팀장님!”
“오 여름이는 안에 있었구나? 옷 이쁘네· 잘 어울려!”
“···헤헤·”
그 촌극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오유리는 한탄했다·
“···부끄럽기는 무슨 판만 깔리면 그냥 알몸으로도 달려들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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