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1
161화
해외에서 ‘뮤직 로드’의 녹화를 진행하는 선태양과 유가을을 제외한 투베어의 모든 임직원이 착석한 상태에서 천아람이 따라주는 샴페인과 오렌지 주스를 최대한 공손하게 받고 있던 도중 광고가 끝나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시작한다!”
반색한 천아람은 서수연에게 따라주던 샴페인을 내려 놓고 자리에 앉았다·
세계 각지의 길거리와 그들 사이에서 노래하는 많은 무명 가수들을 비춰주며 시작한 방송은 전문 성우의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되었다·
“세상에는 수백 가지의 언어가 있습니다· 그 언어의 다름으로 인하여 벽이 생기기도 하고 오해가 생기기도 하죠· 저편으로 자리하는 공감대· 그것을 이루는 기틀 그것이 바로 언어입니다· 때문에 언어의 차이는 문화의 차이이기도 하죠· 우리는 이 언어 차이만큼 서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모두에게나 통용되는 언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카메라가 무명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환호와 박수를 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비추었다·
“바로 음악입니다·”
어두웠던 화면이 페이드 인되며 무명 가수의 거리 무대의 관객이 아닌 거대한 페스티벌의 무대의 관중으로 전환된다·
“우리는 전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그리고 다른 언어에서· 그 음악이 가진 힘으로 서글픔을 한을 애정을 평화를 그리고 사랑을요·”
그리고 그런 관객을 보며 환희에 젖은 가수의 입가를 비추고 ‘뮤직 로드’의 타이틀이 떠오른다·
“뮤직 로드 사랑과 노래· 지금 시작합니다·”
옆에 천아람이 준비한 팝콘과 프레첼 따위의 존재마저 잊고 모든 투베어의 직원들이 집중한 가운데 뮤직 로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가수들이 모아진 스튜디오에서 서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등장한 아나운서 MC가 상황을 능숙하게 진행하고 이 경쟁의 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명성들은 모두 잊고 한 사람의 무명 가수로서 버스킹을 하셔야 합니다·”
그 내용이란 해외의 광장에서 무작위의 청중들에게 배급된 버튼을 통하여 Love 판정을 7할 이상 받는 것이 첫 번째 서바이벌의 주제라는 것이었다·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감상한 관객이 7할 이상 Love를 주지 않으면 그대로 탈락이라는 엄포와 함께 말이다·
알엔비 가수 레나 신이 약간은 오만한 자세로 물었다·
“왜 해외에 나가야 하는 거죠? 국내에서 해도 괜찮지 않나요?”
“그건 여러분들이 순수하게 음악의 힘을 증명하기를 바라여서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탑급 가수입니다· 그런 여러분들이 한국에서 무대를 한다면 쌓아온 명성과 시간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7할 이상의 Love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럼 그냥 얼굴을 가리고 하면 되지 않나요·”
그에 MC는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은 저희 프로그램에서는 가수란 흘러나오는 음만을 재생하는 기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표정 손짓 퍼포먼스 땀방울 몰입감 슬픔 기쁨 분노 광기 보이는 들리는 맡게 되는 모든 것이 여러분들을 이루는 음악입니다· 얼굴을 가리고 체형을 가리는 것은 완전하지 못하다고 저희는 판단했습니다· 그러니 해외입니다· 그곳에서라면 동방에서 오고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가수에게 명성을 느끼지는 않을 테니까요· 물론 개별 차는 어느 정도 있겠지만 그 정도 차이 정도는 상관없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러자 록커 신주림이 물었다·
“심사위원은요?”
“1라운드는 오직 관객뿐입니다·”
MC는 중앙의 스테이지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본격적인 대결 구도에 접어드는 2라운드부터는 관객들 사이에 심사위원들이 숨어 같이 평가하겠습니다만 그 점수 비율이 높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코멘트로 시청자분들의 이해에 도움을 주기 위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죠· 핵심은 관객입니다· 그걸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스튜디오의 장면은 빠르게 페이드 아웃되고 어느새 유럽의 유명 광장에서 일렉 기타 하나만을 든 채 걸어 나가는 남자 가수 한 명을 비추기 시작했다·
앞서 말을 꺼낸 록커 신주림이었다·
“솔직히 언어가 다르다고 해도· 록이라는 건 전해지거든요· 그리고 저는 자신 있습니다· 관객들을 열광시키는 거 그게 제가 십 년이 넘어가도록 해온 일이니까요· 저는 동요 곰 세 마리를 불러도 열광시킬 수 있거든요·”
그렇게 자신감을 보이는 신주림에게 피디가 질문을 던지자 그는 미리 설치된 앰프에 기타를 연결하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예상 Love 판정 수요? 흠··· 100%는 힘들 테니까 아마도 95%? 적어도 9할을 넘기는 게 아니라면 자존심이 많이 상하죠·”
그리고 모여진 관객들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그는 강렬한 기타 음을 내며 노래를 시작했다·
이윽고 버스킹이 끝난 후 관객들의 평가가 산출이 완료되자 MC는 결과를 읽었다·
“Love 판정은 67%! 신주림 씨는 아쉽게도 탈락입니다·”
“···X발·”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빠른 탈락이었다·
겨울은 당황하며 물었다·
“신주림 록커님 엄청 유명하신 분 아니신가요? 그런데 이렇게 바로 떨어트려 버리는 건가요? 잘하신 거 같았는데···”
옆에서 함께 감상하던 보컬트레이너 송요한이 대답했다·
“신주림 록커의 실력이 부족하다고는 저도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가요계에서 이 정도의 입지를 다지시지 못하셨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은 아무래도 평가를 한다는 심리와 판정의 단어가 Love라는 단어를 쓰는 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단어요?”
“like good cool 이 정도면 몰라도 Love라는 단어는 그리 쉽게 사용하는 느낌이 아니거든요· ‘잘하기는 했는데 Love였는가?’라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거죠· 그러한 심리적인 장벽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 같습니다·”
“으아아 그런 와중에 70%를 넘겨야 한다니 너무 어려운 거 아닌가요?”
둘이 그런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도 가수들은 연이어 무대에 올랐고 각각 76% 71% 의 아슬아슬한 Love 판정을 기록하며 가까스로 1라운드의 문을 넘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온 가수는 컨디션에 난항을 겪었는지 음 이탈 등의 눈에 띄는 실수를 했고 45%의 처참한 판정을 맞이해야 했다·
“가을 언니 괜찮을까요?”
“···”
투베어의 직원들이 긴장한 기색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전환된 화면이 익숙한 통기타를 비추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소녀 혁명이라는 걸그룹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가을입니다·”
가을이었다·
“와아 가을 언니다!”
피디는 기타를 조율하는 그녀에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가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솔직히 부담스럽죠· 여기 있는 분들은 전부 전문적인 가수분들이거나 아이돌 출신이었지만 솔로로서 성공적으로 입지를 다지신 프로 중의 프로분들이니까요· 어쩌면 제가 후일 성장에 성공했을 때 도달할 꿈같은 분들이신 거죠·”
조율을 마친 가을은 자리에서 일어나 광장의 무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무대를 나서는 지금도 이분들 사이에서 경쟁한다는 것이 실감이 되지 않아요· 그도 그럴 게 제가 나란히 서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게다가 현역 아이돌은 저밖에 없잖아요? 그런 저를 불러주신 이유는 아마도 이전에 버스킹을 하던 영상들을 피디님이 긍정적으로 봐주신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피디는 그런 그녀를 잠시 멈춰 세우고 마지막 질문을 하였다· 이 방송에서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가을은 그 질문에 사람들이 서 있는 어딘가를 바라보더니 작게 웃고는 말했다·
“그럼에도 이기는 거요·”
그리고 망설임 없이 걸어 나가며 말을 마무리했다·
“제가 받아온 사랑과 믿음에 부끄럽지 않도록요·”
그녀가 선택한 곡은 완전히 어쿠스틱한 통기타만으로 이루어지게끔 편곡된 Albatross였다·
근래 SNS를 등지로 명성을 얻은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오자 길거리의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흥미롭다 아는 노래네?’ 정도의 가벼운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 반응은 그녀가 첫 소절을 입에 담고서 바로 뒤바뀌었다·
<Pond river sea and I’m looking at you>
광장의 소리가 멈추기 시작했다·
오로지 작은 통기타 소리와 가을의 목소리를 제외한 모든 것이·
카페의 테이블에 앉아 종이 신문을 읽던 노인도 주차 위반을 위해 운전자와 입씨름하고 있던 경찰도 소매치기를 위해 돈이 많아 보이는 타겟을 물색하던 소매치기도 광장의 풍경을 사진기에 담던 여행자도 모두 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시선을 가을이 서 있는 무대로 모았다·
<I’ll remember you kid who’ll fly the furthest·>
<Until the wind blows that will make you fly one day·>
그녀는 마녀였다·
이 기이한 분위기는 사람을 매혹하는 마력은 분명 마법이라고 여겨졌으니까·
<The scene where you cross the clouds and cut through the sky·>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고요해진 광장에서 적막을 지운 것은 MC의 목소리였다·
“···Love 판정은 87%! 유가을 씨는 1라운드 통과입니다·”
그렇게 유가을이라는 천재가 그룹이라는 형태에 가려져 있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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