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
26화
가을은 집 앞의 낡은 골목에 주저앉은 채 보급형 스마트폰의 음악을 재생했다·
그러자 귓가에 꽂은 싸구려 이어폰을 통하여 ‘바다와 낙엽의 추억’이라는 이름의 노래가 들려져 왔다·
가을이 가장 많이 불러오고 사랑한 노래다·
어쿠스틱한 통기타의 전주 속에서 그녀는 아이돌이 되기를 제안했던 선태양의 말을 떠올렸다·
‘노래 좋아하시죠?’
“···”
그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대답이 지금에서야 흘러나왔다·
“···좋아하죠·”
선태양의 말처럼 가을은 노래를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아버지가 도박을 시작하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도·
그런 아버지에게 질린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하였을 때도·
도박을 끊겠다고 울면서 확언하던 아버지가 다시 도박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노래가 있었기에 노래를 사랑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 노래에 대한 사랑마저도 사치라고 여겨지게 했다·
그래서 가을의 삶에 있어서 노래는 점점 작아졌다·
시작은 전문 보컬 트레이너를 선생으로 모시고 전문적인 지식과 기교를 다졌었다·
여력이 줄어 수강을 포기하고 트레이닝실에서 유튜브를 보며 독학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마저도 어려워져 코인 노래방에서 가볍게 목을 푸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그렇게 가을은 노래를 포기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다짐하며 가슴 한편에 밀어 두었던 마음이 오늘따라 크게 울리고 있었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지금 당장·
싸구려 이어폰에서 들리는 노래는 긴 전주가 끝을 맺고 가사의 시작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리면서도 낮고 깊게·
그녀가 몇 번이나 불러온 첫 소절이었다·
노래를 안 부른지 두 달이 넘었지만 그녀는 그 감각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가을은 그 감각에 몸을 맡겼다·
전주가 끝나고 가사가 들어오려 하자 가을은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살짝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누나?”
가을은 현실로 떨어졌다·
“···응 가현아 무슨 일이야?”
그의 동생인 유가현이 외출복을 입은 채로 문 앞을 나서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는 가을을 찾으려고 한 듯했다·
“누나 노래 부르려고 한 거야?”
가현은 그것이 기껍다는 듯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오랜만에 듣고 싶어! 누나 노래 엄청나게 잘하잖아!”
가을은 최대한 무던해 보이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누나는 이제 노래를 부르지 않을 거야·”
“···왜?”
가현은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위하여 학교도 관둔 채로 고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었다·
그런 가현이 그 이유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가현은 분명 자신 때문에 가을이 노래를 포기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 불편한 진실을 거리낌 없이 꺼내려고 하는 것이다·
“누나가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왜?”
가을의 희생을 받기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까·
자신 또한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마주하고 부딪쳐서 이 기울어진 관계를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설령 그녀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이 집안이 무너지더라도·
그것이 저 아이가 가진 상냥함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니까·”
그런 동생에게는 꿈을 포기하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
“어라? 선 팀장님 또 오셨네요!”
“하하 또 왔습니다· 가을씨·”
“여기가 이틀 연달아 들를 정도의 맛집이기는 하죠! 제가 순대국밥파 이기는 한 데 사실 순대국밥만이 아니라 수육국밥도 나쁘지 않거든요· 다대기 팍팍 넣으면 또 이게 맛도리죠! 앗 그런데 편육은 시키지 않기를 권해드릴게요· 사장님이 발주를 이상한 곳에서 받으셨는지 조금 냄새가 나더라고요·”
가을은 이 전의 일을 잊었다는 듯이 친화력을 아낌없이 발휘하며 신나게 말을 꺼냈다·
무턱대고 사람을 반기는 시골 강아지 같았다·
그런 그녀와 사담하며 국밥 한 그릇 든든하게 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식사가 목적이 아니었다·
손님이 미어터지는 카페와 빵집 편의점을 피하고 여기를 찾은 것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었으니까·
나는 그녀가 국밥에 대한 잡담을 계속 이어가기 전에 본론을 꺼냈다·
“가을씨 3일 뒤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습니까?”
내게 말을 걸며 손님이 남긴 국밥 그릇을 치우던 가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나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대답했다·
“음··· 죄송해요· 안될 것 같아요· 그날도 아르바이트가 있거든요·”
“다음 날은요?”
“다음 날도요·”
“그럼 그에 다음날은 어떠신가요?”
“다음 날도 그에 다음 날도 마찬가지예요· 제게 휴일은 2주에 한 번뿐이니까요·”
“···괜찮으신가요?”
고된 일과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로 몸을 갈아 넣는 중인 줄은 몰랐다·
가을은 나의 걱정에 소매를 걷고 팔을 보이며 이두근을 강조하기 위한 동작을 하고 건강함을 자랑했다·
“괜찮아요! 여고생은 원래 체력이 남아돌거든요!”
그러더니 자기 말에 스스로가 놀랐다는 듯이 입을 가리며 말했다·
“아참 자퇴했으니까 여고생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네요·”
가을은 가벼운 농담조로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저 농담이 내포하는 것은 그녀가 하루 4개의 아르바이트를 뛰기 위하여 자퇴까지 감행해야 했다는 현실이니까·
가을은 말을 꺼내지 못하는 나를 보며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라? 휴일에 시간을 내달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시네요?”
저 아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길래 저런 발상을 떠올린 걸까?
“유가을씨에게 2주에 한 번뿐인 휴식 시간을 뺏을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상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가을은 그런 당연한 말에 감탄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흠··· 그 말은 조금 멋있었어요! 역시 선 팀장님이랑 같이 일하면 든든했을 것 같네요!”
과분할 정도로 호의적인 시선 같았다·
어찌 되었든 일단 그녀의 말은 기분 좋은 말이었다·
덕분에 대화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레 흘렀으니까·
“그렇다면 실제로 함께 일해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아쉽지만 그건 이미 거절했잖아요· 제게 아이돌을 할 시간은 없어요·”
“아이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는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진중하게 말했다·
“잠깐이라도 당신의 시간을 사고 싶습니다·”
“시간이요?”
가을은 화들짝 놀라며 국밥 그릇으로 자기 몸을 가렸다·
···대체 뭔 뜻으로 알아먹은 걸까·
“···단기 아르바이트에 대한 제의를 드리는 겁니다· 불편하다면 언제든 취소해도 좋은 그런 간단한 아르바이트요·”
가을이 일하느라 시간이 없다면 내가 고용주가 되면 된다·
시간을 사겠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단기 아르바이트요?”
그녀는 국밥 그릇을 내려놓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시급은 지금 하시는 아르바이트의 시급 중 가장 비싼 녀석의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3일 후에 딱 3시간만 제게 내어주시죠·”
나의 매력적인 제안에 가을은 눈을 감고 입술을 매만지며 진중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죄송하지만 그날은 이미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가 잡혀 있어요· 다른 분을 구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근무 시프트를 변경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부터 갑작스럽게 잡게 하면 그것대로 민폐예요· 저 같은 미성년자를 고용해 주신 고마우신 분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아요·”
기특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른의 세계란 그런 도의와 예의로 굴러가지 않는다·
“시급의 세배를 드리겠습니다·”
돈으로 굴러가지·
“세배요?”
가을은 순간 솔깃하다는 듯이 눈을 번쩍였으나 자기 뺨을 약하게 때리고는 표정을 굳혔다·
“조금의 돈을 위하여 사장님들의 은혜를 저버릴 수는···”
“네 배 드리겠습니다·”
“···저버릴 수는 없는데·”
가을의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마음에 쐐기를 박기로 하였다·
“마지막 제안입니다·”
더 이상의 담론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품은 협상가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다섯 배 드리겠습니다·”
가을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나의 눈을 응시했다·
나도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내 가을은 결심했다는 듯이 확신을 담은 시선으로 말했다·
“선 사장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냥 선 팀장이면 충분합니다·”
***
국밥집에서의 일과마저 마치고 집에 들어온 가을은 잠자리에 누운 채 선태양과의 대화를 회상했다·
‘잠깐이라도 당신의 시간을 사고 싶습니다·’
가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뭐야 그게 고백도 아니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이에서 하기에는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이었다·
선태양은 그런 말을 부끄럽지도 않다는 듯이 툭 툭 던졌다·
그것은 가을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을은 누구에게나 살가웠다·
사람 자체를 좋아했기에 상대가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면 먼저 다가가 친밀감을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녀의 모든 마음은 아니었다·
가을은 이중적인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면서 먼저 다가가는 강아지 같은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을 꺼내는 것은 두려워하였다·
그녀의 내면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삶은 고되고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 많았으며 늘 억눌린 채 살았다·
그 안에는 점차 어두운 감정이 침전하듯 가라앉았다·
그것을 보이는 것이 두려웠기에 가을은 단단한 벽을 치고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선태양은 그런 벽을 우습다는 듯이 뛰어 넘나들었다·
꿈 돈 노력 포기 등 단단한 벽에 가라앉아 있는 그녀의 금단을 수더분하게 어루만졌다·
다만 그것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선태양은 가을이라는 이름의 호수에 던져진 돌덩이 같았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마음은 한껏 출렁였다·
그의 제안을 받은 이유는 돈 때문도 있지만 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고된 일상에서 그러한 이변은 썩 달가웠으니까·
‘···그런데 왜 나를 고용하시려는 걸까?’
가을에게 어떤 가치가 있다고 시급의 5배를 줘가면서 3시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려는 걸까?
그녀는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 돈이면 자신보다 일을 잘하는 3명 적어도 2명을 고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을은 선태양이 했던 말을 회상했다·
‘가을씨의 외면은 너무나 아름다우시죠· 만인의 첫사랑이라 불릴 만큼의 매력을 가지셨다고 생각됩니다·’
‘···설마 데이트인가? ‘돈으로라도 너를 사겠어!’ 그런 거?’
“···”
그녀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손으로 빗으면서 옷장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누나 뭐해?”
“꺄아아악!”
가을은 도둑질이라도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옷장 문을 ‘쾅’ 하고 닫았다·
“나 때문에 깼구나? 미안해!”
가현은 막 잠에서 깼는지 눈을 비비며 물었다·
“···갑자기 옷은 왜 찾아보는 거야? 데이트 약속이라도 잡혔어?”
“그런 거 아니야!”
가을은 붉어진 얼굴로 눈을 가리며 말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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