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7
37화
나는 기겁을 하며 말했다·
“대수 아버지분이 의원이시라고요!”
연기에 몰입하며 눈을 떨고 어깨를 푹 수그렸다·
“아니 그런 분의 아드님이 어떻게 이런 학교에··· 엘리트들이 가는 중학교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놀란 듯 보였던 대수 어미는 이내 상황을 받아들인 듯 크게 비웃으며 말했다·
“여기가 기반을 다질 곳이니까 이런 저렴한 학교에 몸을 담은 거지· 고등학교는 이런 저렴한 곳에 있을 생각 없어·”
“···그런·”
“풉··· 이제 알겠어? 누구를 건드린 건지?”
“아니요· 저는 못 믿겠습니다! 의원의 자제분이 이런 곳에서 나타난다니 믿을 수 없어요!”
나는 제발 아니기를 바란다는 듯이 비굴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함을 대보시죠· 어차피 거짓말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자 중년 여성은 혼자 빵 터져서는 시원하게 말했다·
“우창호라는 이름을 모르진 않겠지?”
그것도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여성은 가족사진 하나도 공개하였다· 거기에는 대수와 대수 어미 그리고 우창호 의원이 있었다·
현직 의원 우창호가 분명해 보였다·
“···세상에 우창호 의원님이 맞으시네요!”
여성은 그런 나의 호들갑을 기꺼워하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무릎 꿇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겠네· 머리도 같이 박아· 거기 3명 전부·”
“선 팀장님···”
가을이는 상황이 이렇게 치달은 거에 미안해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뒤에 말했다·
“찍으셨나요?”
“예 찍었습니다·”
누나는 셔츠의 윗주머니에서 촬영 중이던 스마트폰을 꺼내고 말했다
“녹음도 진행했습니다·”
“···”
좌중에는 침묵만이 자리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나였다·
“우창호 의원님 초선의원이죠? 유명세가 강하다던가 지지층이 확고하다든가 하는 것과도 거리가 있고요·”
“···그건 왜·”
“당이 그런 초선의원 한 명을 보호할까요? 아니면 그냥 꼬리를 잘라버릴까요?”
답은 뻔했다·
“꼬리라고? 지금 누구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우창호 의원의 부인인 사모님께 하는 말이지요·”
사실 꼬리라는 말도 고평가에 가까웠다·
전 회차의 기억에서 우창호 의원은 초선으로 정치 생활을 마무리하는 의원에 불과하니까·
“···”
“지금 영상과 녹취록 올튜브 SNS 인터넷 커뮤니티에 싹 실어 나를 생각이거든요· 그럼 당에서 제명되는 것은 확정일 것 같은데 준비하셔야죠?”
그녀는 살집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녹취록? 네가 나 후려 패겠다는 내용이 담긴 거? 그런 걸 까면 너도 무사할 것 같아?”
당연히 편집해서 올리지 멍청한 여자야·
뭐 남편이 의원이라 하면 물러날 줄 알았어? 오히려 댁이 그걸 말한 순간 좆된거야·
고맙다· 그런 생각조차 못 하는 빡대가리라서·
나는 그런 말은 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에 말했다·
“그냥 올라가는 영상 반응 한 번 보시죠· 그리고 판단하세요· 다치는 게 누군지를 말입니다·”
갑질 학부모와 성희롱 중학생 그 정체는 현직 의원의 배우자와 아들· 영상을 누르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그럼 나머지 이야기는 법원에서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대수 어미는 어디론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아마 우창호에게 전화를 건 듯 했다·
그런데 통화 내용이 달갑지 않았는 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나는 주저앉은 가현이를 일으켜 세우고 가을이를 이끌고 등을 돌렸다·
미련 따위는 전혀 없어 보이는 태도였다·
그리고 거침없이 문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때 등 뒤에서 대수 어미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대수와 여성을 바라보았다·
“더 용건이 남으셨습니까?”
중년 여성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애들끼리의 일인데·”
“애들끼리요?”
“그래 그쪽이 말한 대로 애들 싸움에 이렇게 어른들이 끼어든다는 것이 좀 추한 일이기는 하잖아· 이쯤에서 정리 하는 건 어때?”
아주 뻔뻔한 태도였다·
본인도 그것을 아는지 눈치를 흘긋 보았다·
“어른의 싸움 한번 해보자면서요?”
“그러니까 그 점에 있어서는 내가 말을 좀 경솔하게 했어· 생각해 보니 서로 그리 발품을 팔 일까지는 또 아닌 것 같아···”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손사래를 치는 대수 어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가현과 가을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들에게 좋은 구경을 시켜주고 싶었다·
“한가지 성의를 보여주시면 이쯤에서 정리 할 수도 있습니다·”
“···성의? 그게 뭔데?”
나는 4발짝 걸어나가 중년 여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현이와 가을이에게 꿇으세요· 그리고 비세요·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라고요·”
초등학교에서 배워야 했을 역지사지를 알려주마 이 아줌마야·
“아 구태여 벌레처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그 정도의 배려심은 가지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런 추한 모습은 교육에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그런 짓을 할 거 같···”
“그럼 대화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법정에서 뵙시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대수 어미는 무릎을 꿇었다·
“···잘못했습니다·”
참 추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저를 보고하시지 말고 가을이와 가현이를 보고하세요·”
여성은 들끓는 분노를 참지 못했는지 볼살을 푸들거리면서도 가을이와 가현이를 보고 말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나는 그 몰골을 보고 가볍게 비웃었다·
“성의를 보이셨으니 이 일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교사님께서 잘 마무리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아 넵· 그러겠습니다!”
“물론 뒷말이 나오면 불씨가 언제든지 다시 커질 수 있음을 명심하시고요·”
교사는 침만을 삼켰다·
나는 나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가을에게 살짝 웃어준 뒤에 말했다·
“그만 가자·”
교문을 나서자 가현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은 건가요?”
저 아이가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대수 놈과 같이 학교에 다녀야 하는 가현 입장에서는 후일이 곤란하게 여겨질 것이다·
“걱정하지 마 잊을 만하면 영상이랑 녹음 편집해서 터트릴 거야· 그 대수 놈이 학교 못 다니게 해줄게· 덤으로 그 아줌마도 보내버리고·”
내가 애프터 서비스는 확실한 편이라서·
***
차를 주차해 둔 운동장 옆 구석의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던 누나는 내게 말했다·
“준비했던 저번이랑 달리 이번은 상당히 위태로웠다는 거 알지?”
“···알지·”
누나의 말이 맞았다· 솔직히 운이 매우 좋았다·
대수의 계정을 확인할 수 있던 것도 그 여자가 멍청하게 남편이 의원임을 밝힌 것도· 전부 운이 좋아서 였다·
“그런데 참을 수 없더라·”
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두 아이를 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아이들은 죄인이 아니었다·
누나는 그렇게 말하는 나를 보면서 오묘한 표정으로 웃더니 말했다·
“그런 건 졸업했다며?”
“···”
“사람들을 이용하고 넘어지게 만들어서라도 성공할 거라며?”
분명 나는 누나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그것은 일종의 다짐과도 같았다·
회귀한 나는 다른 삶을 살아가리라는 선언이었다·
“가볍게 말한 건 아니었어·”
“알지 네가 그런 말을 가볍게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네·”
누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너의 오지랖이 마냥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해· 그게 너라는 사람을 이루는 매력이니까· ···하지만 걱정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네·”
누나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살며시 내뱉은 담배 연기가 흡연실의 환풍구를 타고 하늘로 향했다·
“그러니까 잔소리 한 번만 할게·”
누나는 담배를 지져서 끄고 나를 바라본 뒤에 말했다·
“네가 가진 성공에 대한 욕구와 그 무른 마음은 함께 하기가 힘들어·”
“···무르기는 나보다 더한 양반이면서·”
“그런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야·”
“···”
“그 방향을 확실히 정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네가 상처 입을 거야·”
경험이 담긴 말이었다· 나 또한 저 말에 처절하게 공감했다·
“나는 태양이 네가 어떤 방향을 선택하더라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나가 걱정하지 않도록 당당하게 말했다·
“방향은 정했어· 나는 그때 누나에게 말했던 대로 움직일 거야· 독선적이더라도 이기적이더라도 나는 성공할 거야·”
“그럼 지금 상황은? 이것도 그 성공을 향한 이기적인 과정이야?”
이유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어찌 누나의 앞에서 말할 수 있겠는가·
가을이가 나를 위해 희생하던 누나처럼 보였다는 말을·
나는 대신 궁색한 말을 짜내었다·
“···잠깐의 일탈?”
누나는 그렇게 말하는 나를 보고 작게 미소를 띤 뒤에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흡연실을 나서며 말했다·
“나는 먼저 간다·”
“왜 같이 집에 들어가지? 태워 줄게·”
“그거 회사 차잖아· 그런 개인적인 용도로 쓰면 안 되는 거야·”
고지식한 누나 다운 생각이었다·
“그 가현이라는 아이는 내가 바래다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냥 같이 차에 타· 우리 사장님이 그런 걸 걸고넘어지실 분은 아니야·”
누나는 짜증을 팍 내며 말했다·
“아이 눈치 없는 새끼· 가을이라는 애가 너에게 할 말이 많아 보이던데 가서 이야기나 좀 들어줘·”
“할 말? 그거 같이 차에 타서 하면 되잖아·”
누나는 등을 돌려 내게 엿을 날린 뒤에 가현이를 불렀다·
“가현 학생? 제가 바래다줄게요· 저랑 같이 가요·”
가현은 나와 가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누나는요?”
“가현 학생 누나는 선 팀장이랑 할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 센스 있게 잠깐 빠져주는 건 어때요?·”
가현은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는 듯이 감탄사를 터트리고는 나의 누나를 졸졸 따라갔다·
그리고 거리가 조금 벌어졌을 때쯤 뒤를 돌아서 가을을 보고는 말했다·
“누나 파이팅! 나는 마음에 들더라! 응원할게!”
···뭘 응원한다는 걸까?
가을은 가현이의 말에 부끄러운 기억이라도 떠올린 것인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있었다·
얼굴이 작고 피부가 매우 밝아서 그런 붉은 기가 너무나 티가 잘났다·
나는 순수하게 의문을 느껴서 물었다·
“가현이가 뭘 응원한다는 거야?”
“···저도 모르겠어요·”
절대 모르는 눈치가 아니었지만 말하고 싶지 않은 듯하니 나는 그냥 모르는 체했다·
나와 가을은 차에 올랐다·
그때 서야 늘 천아람에게 일의 경과를 보고하던 시간이 지났음을 깨달았다·
나는 전화를 걸어 천아람에게 사죄했다·
그녀는 자상하게도 가을이의 안부를 물은 뒤에 오늘은 현장에서 퇴근하라고 권하였다·
기획사 사장에게서 보기 힘든 따뜻함이었다·
천아람의 배려에 감사하며 차를 가을이의 집으로 몰았다
가을이는 내 눈치만을 보면서 침묵했다·
조금 전에 그런 일을 겪은 만큼 최고의 인싸 가을이도 말을 꺼내기 어려운 모양이다·
하지만 나 또한 가을이가 저런 모습을 보이니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그렇게 우리는 가을이 집 앞의 언덕에 도달할 때까지 침묵했다·
이럴 거면 그냥 누나랑 가현이 태우고 와야 했던 거 아닌가?
“도착했네· 내릴까?”
가을은 그런 나의 말에도 우물쭈물하면서 내리지 않았다·
내리기 싫어하는 건지 할 말이 남아 있는 건지 헷갈렸다·
그 모습을 보다 보니 내가 하나 준비한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아! 잠깐만· 내가 준비한 게 있어·”
나는 얼굴에 의문을 띄운 가을을 두고 내린 뒤에 트렁크에서 쇼핑백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차에 다시 탑승한 뒤에 가을에게 그 쇼핑백을 건네었다·
“···이건?”
“가을이 너 거야· 확인해 봐도 좋아·”
가을은 쇼핑백을 열어 포장된 물건을 꺼냈다·
그녀의 따뜻한 갈색 머리와 어울리는 노란색 삼디다스 저지였다·
“아침에 겨울이가 이 옷을 입은 것을 보고 예쁘다고 말했잖아· 질투가 난다고도 말했고·”
“···”
“그런데 나는 가을이 네가 질투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거든· 너도 이런 옷이 참 잘 어울릴 것 같았으니까·”
가을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이 이런걸 왜 저에게·”
말투가 어색한 게 긍정적인 반응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마음에 안 들었나? 역시 내 센스를 믿으면 안 되었나?
선물은 실패인 듯했다· 나는 부담이라도 주지 않기를 바라며 최대한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내일이 어린이날이잖아·”
“···”
“그때 너의 어른이 되어주겠다고 말을 했잖아? 그래서 챙겨주고 싶었어·”
“···”
내가 생각하기에 그게 어른이 할 일이었다·
반응을 보니 좋지 않은 생각인 듯했지만·
“영수증도 안에 들어있으니까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걸로 바꾸면···”
침묵을 지키던 가을은 그 말만큼은 그냥 넘길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마음에 안 들 리가 없잖아요!”
“···가을아?”
노란색 삼디다스 저지를 끌어안은 가을은 울고 있었다·
“이런 걸··· 흑 제가··· 감히 흐극· 받았는데··· 흑 흑·”
말없이 휴지를 꺼내 그녀의 눈물을 닦았다·
가을은 휴지가 아닌 휴지를 잡은 내 손을 잡고 눈물을 닦았다·
“···”
여물지 못했음에도 꽃을 피워야 했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홀로 모진 바람과 악독한 벌레를 견뎌왔다·
하지만 새벽의 이슬만은 그 아이가 견디기에 너무 차가웠나 보다·
그래서 그 아이는 꽃망울로 돌아가야만 했다·
작고 여린 잎을 떨면서·
그 꽃망울이 이슬을 게워 내고 다시 완연한 꽃을 가장할 때까지 나는 옆을 지켰다·
***
“···선 팀장님·”
“응?”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 말이 가을이 나를 믿어주기 시작했다는 신호처럼 여겨져 달가웠다·
···그런데 오빠는 좀 아니지 나이 차이가 있는데·
연습생에게 오빠라 부르라고 강요하던 반성철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오빠는 힘들고 삼촌이라면···”
“오빠·”
그녀는 반론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서 어쩐지 기백마저 느껴져서 나는 조금 쫄았다·
“···그래 네가 부르고 싶은 데로 부르렴·”
“···오빠·”
가을은 눈물 속에서도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태양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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