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3
53화
보육원의 뒤편 골목 주차장에서 석현우는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사과했다·
“선 팀장님 정말로 죄송합니다! 진여름님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하고 상황을 이런 식으로 만들다니 면목이 없습니다·”
나는 최대한 선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온화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사실 저는 스카우트를 하는 시점에 그녀가 승락하는 상황도 미리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말씀은?”
“저는 진지하게 진 여름 씨를 저희 투베어 엔터의 현 프로젝트의 멤버로서 고려하고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였다·
새삼 내가 연기에 재능이 있는 편이란 것을 자각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석현우는 나의 연기를 보고 순수하게 감격했다는 듯이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제게는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진여름님이 하고 싶어 하시는 일을 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럼요· 저희 사장님의 허가도 받은 일인걸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석현우는 아예 무릎을 꿇을 기세로 감사를 하더니 품에서 명함 크기의 작은 종이를 꺼내었다·
“이걸 받아 주십쇼·”
“이건?”
“제 두 번째 번호가 적혀져 있는 명함입니다· 진여름님만 알고 있는 번호이죠· 제가 필요하실 때 그 번호로 연락을 주시면 새벽이라도 튀어 나가서 일을 돕겠습니다· 무슨 일이더라도요·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석 현우가 실수한 것은 맞지만 이건 과한 대우였다·
그가 진여름을 대하는 태도는 단순한 직장 상사에 대한 예우를 넘어서는 것 같았다·
이는 내가 진강과 석 현우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확신한 생각이었다·
진여름에 대한 스카우트를 연기 시킨 것도 진강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계좌에 들어온 보수의 출처는 석현우의 사비였다·
클라이언트의 노출 기회도 그가 개인적으로 주도하는 것이었고·
그는 단순히 진여름의 마음의 안정만을 위해 일을 벌이고 이 모든 부담을 진 것이다·
“석 과장님에게 진여름씨는 어떤 존재입니까?”
나는 그 의문을 담아 물었다·
질문을 들은 석현우는 머쓱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저는 아내와 아이를 교통사고로 함께 잃었습니다·”
“···”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역린을 꺼내었다·
“그 장례식장에서 숨죽여 울고 있던 제게 한 꼬마가 말했습니다· ‘그 빈자리가 견딜 수 없이 아프다면 저를 딸로 생각하세요·’라고요· ···당시 8살이었던 진여름님의 발언이었습니다·”
“···대단하네요·”
“하하 대단하기는요· 그냥 못 배워먹은 거죠·”
“···”
···이거 감동하는 전개로 이어지는 거 아니었어?
“저는 그 말을 듣고 분노했습니다· 이 아이가 저를 모욕하려는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제게 아이의 빈 자리는 다른 무언가로 절대 채워질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서입니다· 그 때문에 불퉁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싸가지 없는 아이라고 여기면서요·”
그렇게 말하는 석현우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 마음이 특별한 계기로 변한 것은 아닙니다· 제 업무가 진여름님의 보좌였던 만큼 늘 그래왔든 곁에서 일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언제나 바쁘셨던 진백호님 대신 저는 진여름님의 운동회에 대신 참가하고 학부모 참관 수업을 참여하였습니다· 리듬체조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모든 시합을 참관하며 응원했지요·”
특별한 사건이 없더라도 시간은 한 사람을 마음에 품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정말로 딸로 여겨지더라· 그런 별거 아닌 이야기입니다· ···아 이거 진여름님에게는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그는 부끄럽다는 듯이 말하였다·
“그래서 선 팀장님께는 정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저의 실수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이를 계기로 진여름님이 다시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사실 몇십 년이고 봉사 활동을 하겠다는 그 모습 저도 좋게 보이지 않았어요·”
석현우가 바라는 미래는 이뤄지지 않을 미래였다· 내가 그것을 달성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공허한 약속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석 과장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입맛이 썼다·
***
2일 후 나는 다시 보육원을 찾았다· 겨울이가 아프다고 하였기에 이번 동행자는 다시 한번 더 가을이었다·
“태양 오빠· 여름이 가 우리 투베어에 합류하기로 한 거 사실인가요?”
“일단은 잠정적이지만 그렇게 알고 있어도 무방해·”
가을이에게 진여름을 이용해서 노이즈 마케팅을 할 것이라는 더러운 이면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또 거짓말을 하였다·
“하기야 여름이가 이쁘기는 했죠· ···그것도 많이요·”
“그렇지· 어딘지 품격 있게 아름다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배우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역시 남자는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려나요?”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도 좋아할걸?”
“···”
가을은 기타를 튜닝하던 것을 멈추고 나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 태양 오빠·”
무언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나 싶어서 나도 카메라의 시스템을 조작하던 걸 멈추고 가을을 바라보았다·
“응 왜? 가을아·”
“저도 검은색으로 염색을 해 볼까요? ···여름이 처럼요·”
얘가 뭔 바람이 들어서 지금 염색하겠데? 어차피 데뷔하면 질리도록 할 텐데·
“에이 아깝잖아· 그건·”
“아깝다고요?”
시간이나 돈이나 이것저것 전부 아까웠다· 염색은 공짜로 하는 게 아니니까·
뭐 눈치가 부족한 나도 회사가 돈을 아끼는 것처럼 느껴지게끔 솔직히 말하면 가을의 기분이 나쁘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약간 돌려서 말했다·
“너의 그 갈색빛 머리가 얼마나 포근하고 예쁜데· 데뷔와 컨셉이 결정되면 염색해야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조금만 더 보고 싶네·”
“···앗 그렇군요· ···포근하고 예뻐서 보고 싶으시구나·”
“응 예전에 너를 보고 만인의 첫사랑을 연상시킨다고 말한 적이 있잖아· 그 풋풋하고 앳된 아름다움은 너의 갈색 머리카락의 영향도 큰 것 같아·”
가을은 땅바닥에 머리를 박을 기세로 고개를 숙이고 기타를 조물딱 거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그 ···저 태양 오빠· 그럼 이거 받아주시겠어요?”
가을은 자기 머리카락을 뽑더니 내게 내밀었다·
···뭔 의도지 이건?
“이걸 왜 나에게···?”
“···예쁘다고 하셨으니까 가지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
나는 반응을 고민하다가 일단 떨떠름하게 감사했다·
“···어 그래 고맙다·”
“헤헤·”
손에 들린 길고 가느다란 가을의 갈색 머리카락을 보며 고민했다·
이거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보관해도 버려도 문제일 것 같은데?
담당 아이돌이 준 선물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매니저 vs 담당 아이돌의 머리카락을 고이 간직하는 매니저·
둘 다 굉장한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일단 와이셔츠의 앞주머니에 가을의 머리카락을 넣었다· 일단 가을이의 앞에서는 보관하고 처리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태양 오빠· 잠깐 저랑···”
“가을 누나! 이제 ‘푸른수염고래’ 들려줘!”
“넌 무슨 가을 언니만 보면 그 틀딱 노래 들려달래?”
“···틀딱이 아니야· 전설이다!”
“아 몰라! 가을 언니는 ‘미싱유’ 들려줘야 해!”
“얘들아 잠깐만 나 태양 오빠랑···”
가을은 아웅다웅하는 아이들 무리에게 끌려갔다·
그런 그녀는 도와달라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그냥 손을 흔들며 가을의 분투를 응원했다·
미안하다· 사진은 예쁘게 찍어 줄게· 가을아·
나는 퀘스트의 달성을 위해 가을과 여름이 봉사 활동을 하는 장면을 적극적으로 촬영하였다· 이미지 개선을 위한 자료를 만드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설명하였더니 진여름이 허락을 해주어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이미지 개선이 진여름이 아니라 겨울과 가을을 위한 것이기는 했지만···
한 번 거짓말을 시작하니 계속 거짓말을 해야 했다·
···그것이 썩 기분 좋지는 않았다·
“응? 뭘 찍으시는 건가요?”
한창 촬영하고 있던 도중 한 여자가 말을 걸었다·
뒤를 돌아 확인을 해 보니 파스텔 색조의 하늘빛 머리가 살랑거렸다· 컬러 렌즈를 낀 듯이 눈은 에메랄드빛으로 빛났으며 머리카락과 잘 어울리는 색의 티셔츠 위에 캐쥬얼한 뷔스티에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또렷하게 빛나는 시선은 분명히 아름다웠지만 막연하게 아름답다기보다는 청량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버블샤워 역주행의 주역 윤하늘이었다·
“조금 전부터 여름 언니랑 저기 기타 치는 이쁜 언니를 계속 찍으시던데 사진사님인가요?”
“아뇨 사진사는 아닙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정중하게 명함을 내밀었다· 원래 영입을 생각하고 있던 인물인 만큼 공손하게 보이고 싶었다·
그녀는 나의 명함을 읽더니 말했다·
“···투베어 엔터 선태양 팀장님?”
“네 현재 걸그룹 팀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윤하늘은 작게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하 여름이가 말한 선태양 팀장님이시군요· 이야기는 참 재밌게 들었어요· ···정말 너무 재밌게 들었죠· 푸흡·”
윤하늘은 그렇게 말하더니 웃음보가 터졌는지 저 혼자 폭소하기 시작했다·
이걸 긍정적인 반응으로 해석해야 할지 부정적으로 해석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렇게 생겼었군요!”
웃음을 멈춘 그녀는 나의 얼굴을 뜯어보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과하게 퇴폐적인 것 같기도 한데··· 오히려 그게 섹시한 것 같기도? ···응 역시 마음에 드네요·”
“하늘 씨?”
윤하늘은 함께 커피라도 먹자는 듯이 가볍게 말했다·
“선 팀장님· 저랑 사귀실래요?”
“···”
영입하려는 연습생에게 고백을 받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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